내 친구의 그림일기 13
아비코 미와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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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 책을 딱 보면 여느 만화책보다 조금 작은 크기에, 앞에 동글동글한 얼굴, 직설적으로 말하면 넙데데한 얼굴에 아몬드형 눈동자를 빛내는 고양이 한 마리가 턱하니 버티고 있을 겁니다. 그래요. 여기서 '내친구'라는 놈은 바로 이 고양이 녀석입니다. 이 만화는 처음부터 동화적인 소재로 시작합니다. 떠돌이 고양이가 왠지 마음에 걸려 집으로 데려온 토무는 초등학교 4학년의 남자아이입니다. 회사원 아버지와 좋으신 어머니가 있는 평범한 집안의 남자아이이지요. 가족 모두 동물을 좋아해서 떠돌이 고양이를 집에서 키우는 것을 허락맞고 그날 밤, 토무는 고양이와 함께 잠을 청하는 데, 옆에서 부스스 일어나는 느낌이 들어 잠이 깨고 말았습니다. 불을 켜고 보니 옆에서 곤히 자고 있던 고양이가 없어져 무슨일일까 궁금해 하면 살금 살금 이리 저리 찾아 다니는 데, 참으로 당황스럽게도 고양이는 정원에서 과일 주를 마시면서 술에 취해 인간어로 술주정을 부리고, 두다리로 서서는 휘청대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결국 고양이는 토무와 그의 가족들, 그리고 토무의 절친한 친구 키라(불확실)에게 인간어를 할 줄도 알고 글을 읽고 쓸줄도 안다는 사실을 들키고, 자신을 구경거리로 삼거나 무서워하며 떠나갈까봐 불안해하게 되는데, 그렇지만 그들은 그런 고양이를 따스하게 받아주고, 주홍빛의 털이 귤같다고 미캉라는 이름까지 붙여줍니다. 그리고 고양이들과, 멍멍이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물들과 그들의 주인이자 친구인 인간들의 이야기가 착한 고양이 미캉의 시선을 통해 따스하게 비춰집니다. 보면 고양이가 사랑스러워져서 견디지 못할 겁니다.
어찌보면 유치하다고도 할 수 있는 내용이고, 그림도 유치하다고도 할수 있지만, 그 안에 숨어있는 여러가지 동화적인 장치들이 가슴을 따스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재미난 상상력과 따스한 일상에 대한 시각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같은 일을 가지고 얼마나 아름답고 긍정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지를 절절히 깨닫게 해준다고나 할까요? 항상 재미난 일만 있는 것도,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것도 아니고, 마치 그저 우리들의 일상과 같이 좋은 일과 나쁜 일과 아무 것도 아닌 일상들이 나란히 이어져 있는데도, 따스하고 아름다워 보이게 하는 그 작가의 정신에 저는 존경을 금치 못하겠더군요. 그림도 보면 볼 수록 예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특히 고양이 그림에 있어 서는 거의 압권입니다.>_< 가슴이 따스해지는 만화를 보고싶다면 꼬옥 찾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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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와 클로버 1
우미노 치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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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대에서의 알콩달콩한 사랑얘기이며 제목만 봐도 뭔가 순정만화의 오라가 물씬물씬 피어오르지만, 막상 껍질을 벗겨보면....

은하철도 999기관실처럼 생겨먹은 모리다군의 아파트라던가.. 온몸의 뼈가 뒤틀리는 색깔찾기 게임이라던가(반드시 시체 등장).. 클로보클이라던가.. 하이힐로 머리찍기의 달인이자 철인 야마다라던가.. 아무튼 기타등등 곳곳에 예상할 수 없는 매니아의 혼이 불타오르는 만화이며, 동시에 대학 4학년인 나의 심금을 울리는 청춘물이다! (취직과 인생의 목표설정으로 방황하는 다케모토군~ ㅠ,ㅠ) 일단.. 두쌍의 삼각관계(사실은 사각, 오각일지도 모른다.) 일군에 초점이 맞춰져 있긴 하지만, 그것보다도 대학생활 동안의 엑기스랄까 고민이 듬뿍 담겨져 있다. 재능, 목표, 질투, 다급함, 불안, 초조, 취직, 짝사랑, 이별, 친구...같은 것들 말이다. 약간 아스트랄하면서도 섬세하고, 가슴에 꽂히는 문구들과 묘사, 서사들이 잔뜩. 막 정신없이 웃으면서도 책을 덮고 나면, 쓸쓸하고 그리운 감정이 머리끝까지 차올라서 눈물을 찔끔 흘리면서 잠이 들게 되는 그런 책이다. 얼른 다음권이 나오면 좋겠다. 그리고... 8학년에 겨우 제적을 안당하고 졸업하게되었으나 다시 3학년으로 편입한 모리다군의 아스트랄 인생기를 빨리 보고싶다. ㅠ,ㅠ 그리고 클로보클! 클로보클 하구미!(하나모토 교수님이 다, 달려오고 있어. 피해야해~@!) 재능있지만 소심하고 여린, 하지만 뭔가 만화속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질투가 날정도의 열정과 집중력을 가지고있는 그 녀석이 정말로 어떻게 살아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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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속삭임 1
기시 유스케 지음, 권남희 옮김 / 창해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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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소설이라고 했다. 그래, 처음엔 정말로 호러소설 같았다.
그런데 중반엔 의학스릴러가 되고, 종반에는 에어리언 같은 류의 괴기액션(?)물이 되었다. 뭔가 자세하게 이야기를 할만한 체력은 안되고, 감상을 말하자면 그럭저럭 괜찮은 대중소설이라는 느낌이다.

천사의 속삭임은 호러소설이지만, 로빈 쿡의 의학스릴러를 닮았다. 음 사실 유령이라던가 뭐 그런 초자연적인 게 주인공이 아니라 기생충이 주인공이니까 의학스릴러라고 해도 별 상관 없겠지. 왠지 잡탕스러운 느낌.. 재밌지만, 뭘 말하는 건지는 알쏭달쏭, 후생성을 비판하는 것 같으면서도 너무 노골적이라 우습기만 하고, 호스피스로서, 생명의 고통스런 연장이냐 평안한 죽음이냐. 하는 문제도 뭔가 매끄럽게 다뤄진 것 같진 않고... 가장 별로인 건, 역시 미스테리가 너무 일찍, 그것도 설명에 의해 풀어져 버린 것. 이건 호러라고 하기도, 스릴러라고 하기도 그렇잖아. ㅡ,ㅡ; 물론장충에 감염된 사람들의 이상행동은 참 매끄럽고 섬뜩하게 잘 표현되었다. 인과관계를 다 알고 봐도 섬뜩할 정도, 그치만 모르고 보면서 하나하나 공통점을 독자 스스로 찾아가면서 보았다면 왠지 더 오싹오싹했을 것 같은데...

처음엔 정말 재밌었는데 나중엔 조금 아쉬웠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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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전의 새
성석제 지음 / 하늘연못 / 199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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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씨의 소설집 혹은 수필집 혹은 꽁트집 혹은 거짓말 모음...

날카롭고, 우습고, 유쾌하고, 서글픈

어라? 느낌이 익숙한데. 라고 생각하고 나서 보니, 그저께 즈음에 다읽은 김훈의 세설(世設) '너는 어느쪽이냐고 묻는 말에 대하여'가 떠오른다. 성석제씨는 60년생이니까 김훈씨보다는 좀 젊군, 그렇지만 그래도 격동의 시대를 살아온 우리의 아저씨들임에는 다름없다.

아아 그시대 아저씨들은 모두다 그런가 보다. 온몸으로 현실과 부딪히고, 그 눈에 그 광경을 또렷하게 박아넣은 사람들은 모두다 그런가 보다.

-혹시 우리 아버지도 그렇지 않을까? 비뚤어진 말투에, 지겹지만 잠이 안와서 잠오려고 무협지를 읽지만 그 내면에는 그런 날카롭고 유쾌하고 서글픈 그런 무언가가 응어리져있는 게 아닐까?

김훈씨의 세설은 그 특유의 문체때문에 향이 진하고 송곳같이 콕콕 찌르는 느낌이 있다. 그치만 비참하지는 않다. 날카롭고 유쾌하고 서글픈... 그런 무언가의 느낌이 든다. 세상을 이야기하는 그의 시선은 엉뚱하고, 그래서 재미있지만 사실은 그게 진실임을 알기 때문에 조금 서글퍼지기도 한다.

아, 성석제씨도 그렇다. 물론 김훈씨는 좀더 조용조용하고, 나직하게 말하는 경향이 있다. 짧고 간결하게 말하는 김훈씨는 그 많은 말들에 비해 과묵해보인다. 한편 성석제씨는 가볍고 소탈하다. 동네 세탁소 주인처럼 유쾌하고 수다스럽다. 거짓말쟁이지만 모두를 유쾌하게 만들어주곤 하는 어떤 아이와 같은 느낌도 있다. 그치만 이사람도 엉뚱한 거짓말 속에 진실을 담아낸다. 그의 아이러니는 세상의 아이러니. 세탁소 아저씨는 모두를 웃기지만 그 웃음에는 삶의 애환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이런 사소한 차이점을 빼면 두 사람은 '허허허'하는 너털웃음을 독자에게 짓게 하면서, 씁쓸하고 서글픈 세상맛을 보게 한다. 물론 세상이 그렇듯이, 내가 살아온 인생 또한 그렇듯이, 가끔은 정말로 멋진, 재미나고 따스한 이야기도 있다.

인생이란 그런 것. 이라는 걸까...

중년의 멋을 느낄 수 있는 책들이었던 거 같다.

... 설마 이대로 아저씨의 세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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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인을 기다리며
존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들녘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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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쿳시의 소설.

제목 그대로 식민주의, 야만인과 문명인, 그런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요즘은 감동받은 책이라도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야만인을 기다리며도 그랬다. 사색적이면서도 상징적이고.. 아무튼 뭐라 표현할 수 없이 꿰뚫는 듯한 문체였다. 나에게는 김훈의 글도, 어슐러 르귄의 글도 그랬다. 어느새인가 그 이야기 안으로 빨려들어가서는 찌릿찌릿한 고통을 느끼면서 튕겨져 나온다. 눈물이 날 것 같은 이야기들이다.

제국의 먼 변방, 느닷없이 군인들이 들이닥치고 야만인을 잡아야겠다고 나선다. '야만인'이란 것은 실제하는 것인가. 그걸 누가 구분하는 거지? 콜럼버스가 신대륙에서 원주민들을 줄줄 끌고 나타나 동물마냥 구경시키고 돈을 받았던 게 생각났다. 짧은 저고리 밑으로 젖먹이느라 축쳐진 젖가슴이 드러난 아낙을 '야만'의 증거라고 신기해하며 사진찍는 개화기의 서양 사진가들도 생각났다. 서울역을 배회하는 부랑자들,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정글의 부족들... 동정과 호기심과 경멸로 뒤엉킨 그 시선들에 그들의 본질은 아마도 소외되어있겠지.

군인들은 우리마음속의 어두운 그런 욕망, 야만인을 원하는 우리의 욕망을 이용해서 원하는 것들을 차지한다. 늙은 치안판사는 믿었다. 어떠한 사람들이 부당하게 고통받으면 그 고통을 목격한 사람들은 수치심 때문에 괴로워하게 되어있다고... 그러나 실제로 인간은 그러할까? 야만인의 뺨을 철사로 꿰고 아무이유없이 고문하고 낄낄거리고, 강간하고 살해하고 서슴없이 폭력을 행하는 이들도 어머니께 다른 이를 상처주지 말라고 배웠을까? 그들도 누군가 고통스러워할때, 그것으로 인해 수치스러워할까? 나는 확신할 수가 없었다. '이새끼!'하고 화를 내는 고문관을 바라볼때, 나는 그것을 믿을 수가 없다.

나는 그래서 이글을 보면서 너무 슬펐다. 어디서나 일어나는 잔혹한 일들이 그려져 있다. 우리나라, 바로 이땅에서도 그런 일들이 벌여져왔고, 또 벌어지고 있다. 나는 곰곰히 과거부터 현재까지 계속 존재하는 그런 수치들을 생각하면서 부끄럽기도하고 눈물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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