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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 오브 엠버city of ember> 출간을 앞두고, 함께읽기 이벤트를 합니다.
연재글을 보고 의견을 마구마구 달아주세요.
총 30명을 추첨해서 10월 21일 책을 보내드립니다.
씨오엠C.O.M.(city of ember) 마니아 여러분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리나는 오른쪽 벽에 난 닫힌 문 쪽으로 다가갔다. 앞으로 당겨 문을 열자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였다. 자신이 방 안에서 한참을 기다리던 사이 다들 어디로 갔는지, 리나는 다만 그것이 궁금했다. 리나는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한 층의 계단을 다 오르자 굳게 닫힌 문이 나왔다. 조심스럽게 그 문을 여니 또 다른 복도와 더 많은 문들이 닫힌 채 늘어서 있었다. 리나는 그 문을 도로 닫고, 계속해서 위로 올라갔다. 나무 계단에 부딪치는 둔탁한 발자국 소리가 크게 울렸다. 리나는 누군가 이 소리를 듣고 달려와 자신에게 호통을 치지나 않을까 더럭 겁이 났다. 리나가 들어와서는 안 되는 곳이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아무도 뒤쫓아 오지 않았으므로 닫힌 문을 하나 더 지나쳐 계속 위로 올라갔다.

공회당은 엠버 시에서 하나밖에 없는 3층 건물이었다. 리나는 꼭 한 번쯤은 공회당의 지붕 위에 서서 도시 전체를 내려다보고 싶었다. 그곳에서라면 엠버 시 너머 저편, 미지의 지대를 언뜻 내다볼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리나의 그림 속, 환히 빛나는 도시가 만약 실제로 존재한다면 그 도시는 저 건너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계단 꼭대기에 이르자 ‘지붕’이라는 표지가 붙은 문이 나왔다. 그 문을 있는 힘껏 밀어젖히자 차가운 공기가 리나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리나가 있는 곳은 건물 밖이었다. 리나 앞으로 평평한 자갈 바닥이 깔려 있었고, 리나가 열 발짝 정도 앞으로 나아가자 시계탑의 높다란 벽이 눈에 들어왔다.

리나는 곧장 지붕 끝으로 갔다. 그곳에 서자 엠버 시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바로 발아래는 하큰 광장이었고, 사람들이 이리저리 바삐 오고가고 있었다. 이렇게 위에서 내려다보니 움직이는 사람들이 길쭉하다기보다 동그랗게 보였다. 하큰 광장 너머로는 불 밝힌 건물의 창들이 줄을 맞추고 서로 교차하며, 사방으로 노랗고 검은 빛의 격자무늬를 아롱아롱 만들어 냈다. 리나는 미지의 지대를 지나 좀 더 멀리 내다보려 해 봤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엠버 시의 가장자리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빛이 아른아른거렸다. 그 건너편에는 암흑 말고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그때 광장 아래에서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좀 봐!” 작지만 귀청을 찢을 듯한 소리였다. “지붕 위에 누군가 있어!” 리나는 몇 사람이 가던 길을 멈추고 위를 올려보는 게 보였다. “저게 누구야? 저 높은 곳에서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누군가가 크게 소리쳤다. 사람들이 점점 더 많이 몰려들더니 공회당 계단 앞에 한 떼의 사람들이 모여 섰다. ‘다들 나를 보고 있어!’ 하는 생각에 리나는 웃음이 절로 나왔다. 리나는 신이 나서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었고, 흥에 겨워 클로빙 광장 무용 행사 때 배운 종종걸음 곤충발 춤까지 췄다. 그러자 사람들이 웃음보를 터뜨렸고, 차츰 더 크게 함성을 질렀다.

그때 리나의 등 뒤에서 문이 거세게 열리고, 검은 수염이 텁수룩하고 몸집이 우람한 경비병이 느닷없이 들이닥쳤다. “멈춰!” 하고 호통 치며 경비병이 으름장을 놓았지만, 사실 리나는 전혀 달아나지 않았다. 그는 리나의 팔을 움켜쥐었다. “너 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저는 그냥 호기심에…….” 리나는 최대한 순진한 목소리로 말했다. “단지 지붕 위에서 도시를 내려다보고 싶었을 뿐이에요.” 리나는 경비병의 명찰 배지를 읽었다. ‘렛지 스탭마크, 경비대 대장’이라고 씌어 있었다.

“호기심은 말썽을 낳는 법이지.” 렛지가 말했다. 그는 발밑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내려다보았다. “넌 소동을 일으켰어.” 그는 리나를 문 안으로 끌고 들어갔고, 계단을 세 층이나 내려가는 내내 등을 떠밀며 서두르라고 재촉했다. 그들이 대기실에 도착하자 바튼 스노드가 좌우로 턱을 씰룩대며 안절부절 못한 채 서 있었다. 그의 옆에는 시장이 있었다.

“말썽을 피운 아이입니다, 콜 시장님.” 경비대 대장이 말했다.

시장은 리나를 노려보았다. “네 얼굴이 기억나는구나. 직업을 배정하는 날이었지. 부끄러운 줄 알아라! 새로 받은 일을 하면서 스스로 명예를 더럽히다니.”

“말썽을 일으키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어요.” 리나가 해명했다. “메시지를 전해 드리려고 시장님을 찾던 중이었어요.”

“이 아이를 하루나 이틀 정도 감옥에 집어넣을까요?” 경비대 대장이 물었다.

시장은 얼굴을 찌푸리고 잠깐 동안 곰곰이 생각했다. “메시지의 내용이 뭐지?” 시장이 물었다. 리나가 그의 귀에 대고 속삭일 수 있도록 허리를 낮추었다. 시장에게서는 오래 조린 순무 냄새가 살짝 났다.

“여덟 시에 배달.” 리나가 시장의 귓가에 속삭였다. “루퍼로부터.”

시장은 희미하게 굳은 미소를 짓더니 경비대 대장 쪽으로 몸을 돌렸다. “기껏해야 철부지 어린애가 벌인 어릿광대짓이 아닌가?” 시장이 말했다. “이번만 봐주마. 하지만 지금부터는 바르게 행동하도록!” 시장은 리나에게 경고했다.

“네. 시장님.” 리나가 대답했다.

“그리고 자네.” 경비병 보조를 향해 돌아선 시장은 통통한 손가락을 그에게 흔들며 말했다. “앞으로 방문객을 받을 땐…… 각별히…… 조심하게.”

바튼 스노드는 눈을 끔벅끔벅거리고는 머리를 깊이 끄덕였다.

리나는 현관문 쪽으로 달렸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여전히 현관문 밖 계단 주변에 서 있었다.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은 리나가 밖으로 나오자 환호성을 지르며 반겨 주었지만, 어떤 사람들은 얼굴을 찡그리며 “골칫덩어리,” “어리석은 계집애,” “자랑꾼”과 같은 험한 말들을 중얼거렸다. 리나는 갑자기 창피스러워 귀밑이 붉게 달아올랐다. 으스댈 생각 따위는 전혀 없었다. 리나는 서둘러 그곳을 지나 오터윌 가로 나와 달리기 시작했다.
 

[연재 9 - 엠버 시 전서] CITY OF EMBER 시티 오브 엠버

[연재 8 - 메신저 2] CITY OF EMBER 시티 오브 엠버 

[연재 7 - 메신저] CITY OF EMBER 시티 오브 엠버

[연재 6 - 리나의 집] CITY OF EMBER 시티 오브 엠버

[연재 5 ] CITY OF EMBER 시티 오브 엠버- 2장 시장에게 전하는 메시지

[연재 4 ] CITY OF EMBER 시티 오브 엠버 - 직업 배정의 날3

[연재 3 ] CITY OF EMBER 시티 오브 엠버 - 직업 배정의 날 2

[연재 2 ] CITY OF EMBER 시티 오브 엠버 - 직업 배정의 날 1

[연재 1 - episod1] CITY OF EMBER 시티 오브 엠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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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옷장 안의 상자






 사람들이 정전사태에 관해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다니 이상했다. 전력공급이 끊어지면 사람들은 으레 모퉁이에 옹기종기 모여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며 활발히 토론하곤 했다. “정전됐을 때 자네는 어디 있었나?”라거나 “전기 기술자들의 문제가 대체 뭐야? 지금 일하는 놈들은 다 해고하고 새 일꾼들을 뽑아야 한다니까” 하는 식이었다. 그런데 어찌 된 셈인지 이번엔 정반대였다. 이튿날 리나가 출근하는데 거리가 이상하게 조용했다. 사람들은 땅바닥만 쳐다보며 바삐 걸어갔다. 멈추어 서서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도 나지막이 할 말만 하고는 서둘러 제 갈 길을 재촉했다.

 그날 리나는 똑같은 메시지를 무려 열두 번이나 배달했다. 다른 메신저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한 사람에게서 또 다른 사람에게로 전달되고 있는 이 메시지의 내용은 간결했다. “7분.” 정전 시간이 지금까지 있었던 다른 최장 시간 때보다 두 배나 길었던 것이다.

 공포가 온 도시를 뒤덮고 있었다. 리나는 오싹한 한기 같은 공포를 느꼈다. 직업 배정의 날에 둔이 이야기했던 것이 진실임을 리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엠버는 매우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었다.

 그 다음 날 온 도시의 알림판에 다음과 같은 공고문이 나붙었다.




시민 총회 안내




모든 시민 여러분들은 내일 저녁 6시에

하큰 광장에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중대한 사항을 전달할 예정입니다.




시장 르맨더 콜




 중대한 사항이라니 뭘까? 리나는 궁금했다. 좋은 소식일까 아니면 나쁜 소식일까? 리나는 얼른 듣고 싶어 애가 탔다.

 이튿날, 사방에서 하큰 광장으로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서로 따닥따닥 붙어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들은 아이들을 목말 태웠고, 키가 작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밀치며 맨 앞줄로 가려고 애썼다. 리지를 본 리나는 반가워서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어린 남동생을 데리고 나온 빈디 찬스도 보였다. 리나는 고민 끝에 할머니와 포피를 집에 두고 나왔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 속에선 포피를 잃어버릴 위험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시계탑에서 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종소리가 여섯 번 진동하며 울려 퍼지자, 시민들이 기대에 차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모여든 군중 위를 물결치듯 퍼져 나갔다. 사람들은 더 멀리 보려고 발끝으로 서서 목을 쭉 뺐다. 공회당의 문이 열리고 시장이 경비병 두 명을 양옆에 데리고 밖으로 걸어 나왔다. 경비병 하나가 시장에게 확성기를 건네자 시장이 연설하기 시작했다. 확성기를 통해서 들려오는 시장의 목소리는 명확하지 않을뿐더러 갈라지는 소리까지 났다.

 “엠버 시민 여러분.” 시장이 말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기다렸다. 사람들은 조용히 하며 정확히 들으려고 귀를 쫑긋 세웠다.

 “엠버 시민 여러분.” 시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시장은 좌우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불빛에 비친 시장의 대머리가 번들번들 빛났다. “우리 도시가 최근 조그만 어…… 어리엄을 겪었습니다. 이러한 때는 우리 모두에게 대다난 차믈써엉이 필요하지요.”

 “시장이 뭐라는 거야?” 사람들이 다급히 속삭였다. “시장이 뭐라고 했어? 잘 못 들었다고.”

 “조그만 어려움이래요.” 누군가가 대답했다. “우리 모두에게 대단한 참을성이 필요하답니다.”

 시장이 연설을 계속했다. “하지만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시장이 말을 이었다. “여러분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나왔습니다. 다음과 같이 보장하기 위해 나왔습니다. 어려운 시기는 지나갔습니다. 우리는 초시어언의 노려역을 다하고 있습니다.”

 “뭐라고?” 날카롭게 쑤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라고 말한 거야?”

앞줄에 선 사람들이 뒤편으로 말을 전달했다.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최선의 노력.”

 “더 크게!” 누군가가 소리쳤다.

시장의 목소리는 확성기를 통해 더욱 우렁차게 울려 퍼졌지만 그럴수록 더욱 불확실하기만 했다. “다…… 아화앙해서는 아아됩니다. 두려엄, 두려어워 해애선 아안된니다. 무우우서어 하아리유가 저언히 엄써요오.”

 “못 알아듣겠어요!” 다른 누군가가 큰소리로 외치자 주위 사람들도 서서히 흥분과 불만으로 술렁이기 시작했다. 누군가 뒤에서 등을 미는 바람에 리나는 앞으로 밀려났다.

 “시장이 말하길, 우리는 당황해서는 안 된대요.” 어떤 사람이 말했다. “공포심이야말로 가장 나쁘다는 거예요. 무서워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거죠.”

공회당 계단 위에 서 있던 경비병 두 명이 시장 곁으로 좀 더 가깝게 붙어 섰다. 시장은 확성기를 다시 들어 올리고 연설을 계속했다.

 “해겨어채애글 차자가느은 주우웅임니다.” 그는 이제 쩌렁쩌렁 고함을 질렀다.

 “‘해결책을, 해결책을 찾는 중입니다’, 라는군요.” 앞줄에 서 있던 사람이 뒤쪽으로 내용을 전달했다.

 “어떤 해결책?” 리나 곁에 서 있던 여자가 물었다. 군중 속의 다른 사람들도 이 여인의 말을 되풀이했다. “어떤 해결책? 해결책이 뭔데?” 이들의 부르짖음은 어느덧 합창이 되어 더 크고 힘차게 울려 퍼졌다.

 리나는 또다시 뒤에서 공회당 쪽으로 나아가려는 사람들이 떠미는 압력을 느꼈다. 난폭하게 떠미는 사람들의 팔이 리나의 몸을 찔러 댔고, 육중한 몸집이 리나를 밀어붙였다.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어서 이곳을 벗어나야 해! 리나는 이 생각뿐이었다.

리나는 사람들 팔 아래로 몸을 웅크리고 들어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찾는 대로 돌진해 가며 군중들 뒤쪽으로 뚫고 나갔다. 시장의 목소리는 점점 알아들을 수 없는 잡음이 되어 갔고, 모여든 인파는 화가 나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거나 발밑에 깔릴까 두려워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리나는 누군가에게 발을 밟혔고, 목에 둘렀던 스카프는 절반쯤 풀어져 버렸다. 불과 몇 초였지만 리나는 사람들의 발아래에 짓밟히는 것은 아닌가 두려웠다. 마침내 겨우 사람들 무리에서 빠져나온 리나는 학교 계단으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리나는 경비병들이 시장을 보호하며 공회당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군중들은 고함치며, 일부 사람들은 손에 잡히는 것이면 무엇이든-자갈, 쓰레기, 구겨진 종이, 심지어 자신들의 모자까지도-닥치는 대로 내던지기 시작했다.




 리나는 뛰어가고 있었다. 시장의 연설 내용 따위는 이미 마음속에서 지워 버렸다. 오터윌 가에서 가게 문을 열기 위해 돌아가고 있는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달려가던 리나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대화를 주워들을 수 있었다.

 “우리가 믿어 주기를 바라는 거야…….” 누군가 말했다. “시장은 단지 우리의 불만을 잠재우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어…….” 또 다른 사람이 말했다. “대재앙을 향해서…….” 세 번째 사람이 말했다. 모든 목소리들이 분노와 공포로 떨리고 있었다.

 리나는 이 모든 것들에 대해 더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리나는 보도블록 위를 쿵쿵 소리가 날 정도로 세차게 밟고, 등 뒤로 짙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달렸다. 리나는 그저 빨리 집에 도착해서 식구들과 함께 뜨거운 감자 수프를 만들어 먹고, 그러고 나서 새 연필로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털실 가게 옆에 난 계단을 한 번에 두 단씩 뛰어오른 리나는 아파트 문을 벌컥 열어젖히며 들어섰다. 그런데 문 앞에 놓인 무언가에 발이 걸려 넘어지면서 팔과 무릎을 바닥에 사정없이 부딪치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리나는 놀라 빤히 쳐다보았다. 훤히 열린 옷장 옆에는 외투와 장화, 가방과 상자 들이 높게 쌓여 있었고, 그것들 안에 들어 있던 물건들은 몽땅 쏟아져 나와 어지러이 엉켜 있었다. 옷장 안쪽에서 쿵쿵대고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할머니?”

 쿵쾅대는 소리가 몇 번 더 울렸다. 할머니가 옷장 모서리에서 얼굴을 삐죽 내밀었다. “오래 전에 이 안을 살펴봤어야 했는데. 그 물건은 여기에 있을 거야, 그렇고말고. 이 안에 뭐가 있는지 좀 와서 보렴!”

 “할머니.” 리나의 가슴이 갑자기 철렁 내려앉았다. “아기는 어디 있어요?”

 “아! 포피는 여기 있지!” 옷장 안 깊숙한 곳에서 할머니의 목소리가 울렸다. “이 할미를 도와주고 있었단다.”

 리나는 바닥에서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곧 포피가 눈에 들어왔다. 엉망진창 어질러진 바닥 한가운데에 놓인 소파 뒤에 앉아 있었다. 포피 앞에는 어둡고 광택이 나는 무언가로 만들어진 작은 상자가 놓여 있었다. 상자에는 경첩으로 연결된 뚜껑이 달려 있었는데, 뚜껑은 열린 채 뒤쪽으로 덜렁거렸다.

 “포피, 그거 언니가 좀 봐도 될까?” 리나는 허리를 굽히고 내려다보았다. 뚜껑 테두리에는 기계장치로 보이는 게 달려 있었다. 일종의 자물쇠가 아닐까, 리나는 생각했다. 상자는 훌륭하게 만들어졌으나 많이 손상되어 있었다. 단단하고 부드러운 상자의 표면에는 움푹 들어간 상처와 여기저기 긁힌 흔적이 있었다. 무언가 소중한 것을 보관하고 있었던 것 같았지만 지금은 텅 비어 있었다. 리나는 상자를 집어 들고 확인하려고 안을 샅샅이 살펴보았다. 확실히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다.

 “이 안에 뭐가 들어 있었니, 포피? 찾은 거 없어?” 하지만 포피는 좋아서 깔깔 웃기만 했다. 포피는 잔뜩 구겨진 종이를 질겅질겅 씹고 있었다. 포피는 손에도 종이를 들고 있었는데, 그걸 찢고 있었다. 포피 주변에 어지럽게 널린 종잇조각들 중 하나를 리나가 집어 들었다. 그 종잇조각은 작고 완벽한 서체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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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회당은 도시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하큰 광장의 한쪽 면을 몽땅 차지하고 있었다. 돌로 포장한 광장에는 나사못으로 고정한 긴 의자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또한 공지사항을 알리는 알림판도 두 개 설치되어 있었다. 널따란 계단을 따라 공회당으로 올라가면 불룩하고 둔중한 기둥으로 틀을 만든 현관문이 나타났다. 시장의 집무실은 이 공회당 안에 있었다. 공무원들은 어느 건물에 깨진 창문이 있는지, 어떤 가로등을 고쳐야 하는지, 엠버에 살고 있는 인구는 모두 몇 명인지 등을 조사하고 빠짐없이 기록했다. 엠버의 시계를 맡아 관리하는 시간 관리원과 법을 집행하는 경비대 사무실도 모두 이곳에 있었다. 경비병들은 이따금씩 소매치기나 싸움에 휘말린 사람들을 감옥에 집어넣기도 했다. 공회당 한쪽에 툭 튀어나오고 비탈진 지붕으로 덮인 1층짜리 작은 구조물이 바로 감옥이었다.


리나는 계단을 뛰어 올라가 문을 지나 널찍한 현관 안으로 들어섰다. 왼쪽에 놓인 책상 앞에 경비병 한 명이 앉아 있었다. ‘바튼 스노드, 경비병 보조.’ 가슴에 달린 배지가 이름을 알려 주었다. 넓은 어깨와 잘 발달된 근육질 팔, 그리고 목덜미가 두터운, 덩치가 큰 남자였다.

리나를 보자 그는 오물대던 턱을 잠시 멈추고 입술을 위로 올리며 살짝 웃었다. “안녕! 여기엔 무슨 일로 왔지?” 그가 말했다.

“시장님께 전해 드릴 메시지가 있습니다.”

“좋아, 좋아!” 바튼 스노드는 무거운 몸을 주섬주섬 일으켜 세웠다. “이쪽으로 오너라.”

바튼은 리나를 데리고 복도를 따라 가다가 ‘접견실’이라는 표지가 붙은 문을 열었다.

“여기서 기다리렴. 시장님은 개인적인 용무로 지하 사무실에 계시거든. 하지만 곧 올라오실 거야.” 그가 말했다.

리나는 안으로 들어섰다.

“시장님께 알릴 테니 앉아서 잠시만 기다려. 시장님이 널 만나러 곧 오실거야. 가능한 한 빨리.” 이렇게 말한 뒤 바튼은 등 뒤로 문을 닫고 나갔다. 이내 문이 다시 열리더니 잔털이 소복한 작은 머리가 한 번 더 나타났다. “메시지의 내용이 뭐지?” 그가 물었다.

“반드시 시장님께만 전달해야 해요.” 리나가 대답했다.

“물론이지, 당연히 그래야지.” 경비병이 말했다. 문이 또다시 닫혔다. 저 사람은 상황파악을 정확히 못 하는 것 같아, 리나는 생각했다. 경비병이 된 지 얼마 안 돼 뭘 모르는 모양이었다.

접견실은 허름했다. 지금이야 이렇게 볼품없지만 한때는 제법 인상적인 장소였겠다고 리나는 생각했다. 암적색 벽은 군데군데 벗겨져 갈색 페인트로 덧칠이 되어 있었다. 오른쪽 벽에는 굳게 닫힌 출입문이 있었다. 보기 흉한 밤색 양탄자가 방바닥에 깔려 있었고, 그 위에는 닿으면 가려울 것 같은 빨간 천을 씌운 안락의자와 몇 개의 작은 의자가 놓여 있었다. 찻주전자와 컵을 받치고 있는 조그마한 탁자가 있고, 방 중앙에 나란히 놓인 큰 탁자 위에는 누군가 읽다 만 것처럼 『엠버 시 전서』가 펼쳐져 있었다. 벽에는 초대 시장부터 지금까지 모든 시장들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는데, 초상화의 주인공들은 오래된 액자 유리 뒤에서 근엄한 표정으로 내려다보았다.

리나는 커다란 안락의자에 앉아 기다렸지만 누구 하나 오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방 둘레를 어슬렁어슬렁 걸어 보았다. 그러다가 『엠버 시 전서』 위로 허리를 굽히고 문장 몇 줄을 읽었다. “엠버의 시민은 사치스러운 물품들은 가질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태초에 저장창고를 가득 채워 둔 건설자들의 선견지명에 따라 언제까지나 충분한 물자가 보장될 것이다. 지혜로운 자라면 부족하지 않은 생활에 만족할 것이다.”

리나는 책을 몇 장 더 넘겼다. 그리고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다. “공회당의 시계는 밤낮 없이 항상 시간을 표시해야 한다. 시계가 정지하는 일은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시계가 없다면 언제 일하러 가고, 언제 학교에 가는지 사람들이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언제 전깃불을 켜고 언제 꺼야 하는지 조명 담당자가 어찌 파악할 수 있겠는가? 매주 시계 태엽을 감고 하큰 광장에 있는 날짜 표시판을 바꾸어 놓는 것은 시간 관리원의 담당 업무이다. 시간 관리원은 이러한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할 것이다.”

리나는 책을 내버려 두고, 시장들의 초상화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일곱 번째 시장인 포드 모레스워트는 리나의 증조할아버지의 증조할아버지의-얼마나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지 확실치 않지만 아무튼-할아버지였다. 참으로 우울해 보이는 얼굴이구나, 리나는 생각했다. 길쭉한 뺨은 가운데가 움푹 들어갔고, 입은 양쪽 끝이 접혀 내려갔으며, 두 눈엔 허탈한 빛이 서려 있었다. 리나가 가장 마음에 드는 초상화는 온화하게 웃고 있는 검은 곱슬머리의 네 번째 시장, 제인 라켓의 초상화였다.

한데 아직껏 접견실로 들어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문 밖 복도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리나에 대해 다들 까맣게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연재 8 - 메신저 2] CITY OF EMBER 시티 오브 엠버 

 [연재 7 - 메신저] CITY OF EMBER 시티 오브 엠버

[연재 6 - 리나의 집] CITY OF EMBER 시티 오브 엠버

[연재 5 ] CITY OF EMBER 시티 오브 엠버- 2장 시장에게 전하는 메시지

[연재 4 ] CITY OF EMBER 시티 오브 엠버 - 직업 배정의 날3

[연재 3 ] CITY OF EMBER 시티 오브 엠버 - 직업 배정의 날 2

[연재 2 ] CITY OF EMBER 시티 오브 엠버 - 직업 배정의 날 1

[연재 1 - episod1] CITY OF EMBER 시티 오브 엠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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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12 05: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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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신저 본부는 공회당 뒤편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클로빙 가에 있었다. 이튿날 아침 리나가 메신저 본부에 들어서자 본부장인 앨리스 플리리가 맞아 주었다. 플리리는 눈이 창백하고 잿빛 머리카락에다가 빼빼 마른 여자였다. “우리의 새로운 메신저입니다.” 앨리스가 다른 메신저들에게 리나를 소개했다. 모여 있던 아홉 명이 리나에게 미소 지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했다. “여기, 이게 네 제복이야.” 본부장은 이렇게 말하며 다른 메신저들이 입고 있는 것과 똑같은 모양의 빨간 제복을 리나에게 건넸다. 단지 제복이 리나에게 조금 클 뿐이었다.

그때 공회당의 시계탑에서 ‘둥’ 하는 소리가 깊게 울려 퍼졌다. “8시다!” 플리리 본부장이 큰 소리로 외치며 긴 팔을 흔들었다. “모두들 자기 위치로!” 시계가 일곱 번 더 울리는 사이 메신저들이 제각기 사방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이윽고 리나를 향해 돌아선 본부장이 말했다. “네 담당 구역은 가안 광장이야.”

그러자 리나가 고개를 끄덕하고 곧장 출발하려는데 본부장이 리나의 목덜미를 붙들었다. “규칙은 아직 말하지도 않았어!” 본부장은 이처럼 말하며 울퉁불퉁 마디가 진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첫째, 고객이 네게 메시지를 말하면 곧바로 내용을 암송하여 네가 메시지를 정확히 알고 있음을 확인시켜 줄 것. 둘째, 시민들이 네가 메신저라는 것을 즉각 알아볼 수 있게끔 언제 어디서나 빨간 제복을 입고 있을 것. 셋째, 가능한 한 신속히 전달할 것. 그리고 고객들은 메시지 한 건당 20센트씩 지불할 거야. 배달 거리에는 상관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리나가 한 마디 했다. “저는 항상 빨리 달려요.”

“넷째,” 본부장은 계속해서 설명했다. “절대 다른 사람이 아닌, 반드시 지정된 사람에게 메시지를 배달할 것.”

리나는 다시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얼른 일을 시작하고 싶어 발끝이 절로 들썩였다. 플 리리 본부장은 슬며시 웃더니 “가 봐” 하고 말했다.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리나는 출발했다.

리나는 자신의 발걸음이 강하고 빠르고 확신에 차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가구 수리점의 창문을 스쳐 지나가며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힐끗 쳐다보았다. 리나는 등 뒤로 나부끼는 짙은 색 머리카락과, 검은색 양말을 신은 긴 다리와, 펄럭이는 빨간 제복을 입은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단 한 번도 두드러지지 않았던 평범한 자기 얼굴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한눈에도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다.

가안 광장에 들어서자마자 리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메신저!” 리나의 첫 번째 고객이었다! 내티 프라인이라는 노인이었는데, 그가 늘 앉는 긴 의자에 앉아서 리나를 부르고 있었다. “이걸 셀버튼 광장 18번지에 사는 레이버넷 파슨스 씨에게 전해 다오. 조금만 더 가까이 다가오련?” 노인이 말했다.

리나는 수염이 듬성듬성 난 노인의 입가에 귀가 거의 닿을 정도로 허리를 굽혔다.

노인은 쉰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내 화덕이 고장 났습니다. 저녁 드시러 오지 마세요. 자, 외워 보거라.”

리나가 메시지를 따라 외웠다.

“좋아.” 내용을 확인한 노인은 리나에게 20센트를 주었다. 리나는 도시를 가로질러 셀버튼 광장으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리나는 같은 자세로 긴 의자에 걸터앉아 있는 레이버넷 파슨스 씨를 발견했다. 그에게 부탁받은 메시지를 들려주었다.

“늙은 순무머리.” 메시지를 다 들은 그가 투덜댔다. “게으른 벼룩 얼굴 영감 같으니라고. 틀림없이 요리하기가 귀찮았던 게지. 답신은 없단다.”

가안 광장으로 뛰어서 돌아오는 길에 리나는 신자들 무리를 지나쳤다. 그들은 둥그렇게 둘러서서 서로 손을 마주 잡고, 쾌활한 찬송가 한 곡을 부르고 있었다. 요즘 들어 신도들이 부쩍 더 늘어난 것 같았다. 그들이 믿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리나는 알지 못했지만, 신도들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만은 틀림없어 보였다. 신도들은 항상 웃는 얼굴이었으니까.

 

 [연재 6 - 리나의 집] CITY OF EMBER 시티 오브 엠버

[연재 5 ] CITY OF EMBER 시티 오브 엠버- 2장 시장에게 전하는 메시지

[연재 4 ] CITY OF EMBER 시티 오브 엠버 - 직업 배정의 날3

[연재 3 ] CITY OF EMBER 시티 오브 엠버 - 직업 배정의 날 2

[연재 2 ] CITY OF EMBER 시티 오브 엠버 - 직업 배정의 날 1

[연재 1 - episod1] CITY OF EMBER 시티 오브 엠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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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나는 포피를 데리고 가게를 빠져나와 아파트로 가는 계단을 올라갔다. 방 네 개짜리 작은 아파트였지만, 안에는 방 스무 개는 너끈히 채울 만큼 많은 물건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리나의 부모님, 조부모님, 심지어 증조부모님이 쓰던 물건들까지 빼곡히 방을 메우고 있었는데, 낡고, 부서지고, 금이 가고, 열두 번 아니 수백 번은 더 꿰매고 덧단을 대어 너덜너덜해진 옷가지 같은 것들이었다. 엠버에 사는 사람치고 물건들을 아무렇게나 내버리는 이는 거의 없었다. 엠버 사람들은 그들이 가진 물건들을 닳아 없어질 때까지 써야 했다.

선반이 없는 빈 벽은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것들로 장식했다. 복숭아 통조림 상표, 바싹 말린 노란 호박꽃 몇 송이, 색이 바랬지만 여전히 예쁜 보라색 옷에서 찢어낸 길고 가느다란 헝겊조각 같은 것들이었다. 그림들도 있었다. 리나가 상상력을 발휘하여 그린 그림들이었다. 리나가 그린 그림들은 어딘가 엠버 시와 많이 닮아 있었다. 단지 그림 속의 건물들이 더 환하고, 더 높고, 창문이 좀 더 많을 뿐이었다.

  그림들 가운데 한 장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걸 보고, 리나는 그것을 주워 핀으로 벽에 다시 붙여 놓았다. 그리고 잠시 그 앞에 서서 그림을 바라보았다. 리나는 같은 도시를 되풀이해서 그렸다. 어떤 때는 멀리서 바라보는 도시의 풍경을 그렸고, 때로는 건물들 중 하나를 골라 세밀하게 그리기도 했다. 가끔은 상상 속 도시의 주민들을 그려 넣기도 했는데, 사람 몸을 그리는 데 리나는 영 서툴렀다. 그리다 보면 사람들의 머리가 너무 작아져 버렸고, 팔은 으레 거미 다리처럼 되기 일쑤였다. 그림들 가운데는 리나가 상상의 도시에 도착했을 때 주민들이 환영하는 장면을 그린 것도 하나 있었다. 그림 속에서 리나는 외부에서 이 도시를 방문한 최초의 손님이었다. 사람들은 리나를 제일 먼저 집으로 초대하는 영광을 차지하려고 서로 옥신각신했다.

마음속으로 상상 속 도시를 얼마나 생생하게 그렸는지 리나는 이 도시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기에 이르렀다. 실은 그럴 리 없다는 것을 리나도 알고 있었다. 엠버의 모든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엠버 시 전서』에서는 다르게 가르쳤다. “태곳적에 엠버 시는 건설자들이 우리를 위해 설립했다. 어둠의 세계 안에서 엠버 시만이 유일한 빛이며, 엠버 시의 외부는 사방으로 암흑만이 끝없이 펼쳐져 있을 뿐이다.”

리나는 엠버 시의 경계지역에 간 적이 있었다. 경계지역에 쌓인 쓰레기 더미 끄트머리에 서서 리나는 엠버 시 너머로 펼쳐진 끝없는 어둠을 한없이 바라보았다. 미지의 지대. 이 미지의 지대를 넘어 멀리 나아가 본 사람은 지금껏 아무도 없었다. 아니, 멀리 나아갔다가 되돌아온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물론 미지의 지대로부터 엠버 시로 찾아온 사람 역시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없었다. 사람들이 아는 한은, 저 너머에는 암흑만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하지만 리나는 여전히 또 다른 도시가 존재하기를 바랐다. 상상 속 도시는 정말 아름다웠고, 손을 뻗으면 만질 수 있을 것처럼 느껴졌다. 때때로 리나는 모든 사람들을 이끌고 그곳으로 찾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러나 지금은 리나에게 다른 도시 따위는 떠오르지 않았다. 오늘만큼은 자신이 있는 바로 이곳에서 더없이 행복했기 때문이다. 동생을 소파 위에 내려놓으며 리나가 말했다. “여기서 기다려.” 그러고는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곳엔 포피의 손이 닿지 않도록 유리컵과 접시들을 넣어두는 곳으로 쓰이는 냉장고와 전기화덕이 있었다. 냉장고 위에 매달린 선반에는 냄비와 항아리, 많은 숟가락과 칼, 그리고 할머니가 언제나 태엽 감는 것을 잊어버리는 시계와 긴 통조림 들이 한 줄로 늘어서 있었다. 리나는 필요한 물건을 즉시 찾아낼 수 있도록 알파벳 순서대로 통조림을 정리해 두려 애썼지만 할머니는 항상 뒤죽박죽 섞어 버렸다. 지금도 열의 맨 끝에 콩 통조림(B)이 놓여 있고, 열의 맨 처음에 토마토 통조림(T)이 놓여 있는 것을 보니, 할머니가 또 건드린 게 분명했다. 리나는 ‘유아용 음료’라는 딱지가 붙은 통조림과 ‘삶은 당근’이라고 쓰인 병을 각각 하나씩 꺼내 뚜껑을 따서, 국물은 컵에 쏟아 붓고 당근은 접시에 담아 소파에 앉아 있는 동생에게 주었다.

포피는 턱 아래로 국물을 줄줄 흘리며 음료를 마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근 몇 개를 먹어 치우더니 나머지 당근으로는 소파 쿠션을 쿡쿡 쑤셔 댔다. 리나는 거의 완벽하다 할 수 있을 만큼 행복했다. 적어도 오늘은 엠버에 드리운 암운에 대해 아무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내일이 되면 그토록 소망해 온 메신저가 될 테니까!

리나는 포피의 턱에 붙은 끈적이는 오렌지색 덩어리를 닦아 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모든 게 다 괜찮을 거야.”

 

<지난 시리즈 보기>

[연재 5 ] CITY OF EMBER 시티 오브 엠버- 2장 시장에게 전하는 메시지

[연재 4 ] CITY OF EMBER 시티 오브 엠버 - 직업 배정의 날3

[연재 3 ] CITY OF EMBER 시티 오브 엠버 - 직업 배정의 날 2

[연재 2 ] CITY OF EMBER 시티 오브 엠버 - 직업 배정의 날 1

[연재 1 - episod1] CITY OF EMBER 시티 오브 엠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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