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나는 포피를 데리고 가게를 빠져나와 아파트로 가는 계단을 올라갔다. 방 네 개짜리 작은 아파트였지만, 안에는 방 스무 개는 너끈히 채울 만큼 많은 물건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리나의 부모님, 조부모님, 심지어 증조부모님이 쓰던 물건들까지 빼곡히 방을 메우고 있었는데, 낡고, 부서지고, 금이 가고, 열두 번 아니 수백 번은 더 꿰매고 덧단을 대어 너덜너덜해진 옷가지 같은 것들이었다. 엠버에 사는 사람치고 물건들을 아무렇게나 내버리는 이는 거의 없었다. 엠버 사람들은 그들이 가진 물건들을 닳아 없어질 때까지 써야 했다.

선반이 없는 빈 벽은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것들로 장식했다. 복숭아 통조림 상표, 바싹 말린 노란 호박꽃 몇 송이, 색이 바랬지만 여전히 예쁜 보라색 옷에서 찢어낸 길고 가느다란 헝겊조각 같은 것들이었다. 그림들도 있었다. 리나가 상상력을 발휘하여 그린 그림들이었다. 리나가 그린 그림들은 어딘가 엠버 시와 많이 닮아 있었다. 단지 그림 속의 건물들이 더 환하고, 더 높고, 창문이 좀 더 많을 뿐이었다.

  그림들 가운데 한 장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걸 보고, 리나는 그것을 주워 핀으로 벽에 다시 붙여 놓았다. 그리고 잠시 그 앞에 서서 그림을 바라보았다. 리나는 같은 도시를 되풀이해서 그렸다. 어떤 때는 멀리서 바라보는 도시의 풍경을 그렸고, 때로는 건물들 중 하나를 골라 세밀하게 그리기도 했다. 가끔은 상상 속 도시의 주민들을 그려 넣기도 했는데, 사람 몸을 그리는 데 리나는 영 서툴렀다. 그리다 보면 사람들의 머리가 너무 작아져 버렸고, 팔은 으레 거미 다리처럼 되기 일쑤였다. 그림들 가운데는 리나가 상상의 도시에 도착했을 때 주민들이 환영하는 장면을 그린 것도 하나 있었다. 그림 속에서 리나는 외부에서 이 도시를 방문한 최초의 손님이었다. 사람들은 리나를 제일 먼저 집으로 초대하는 영광을 차지하려고 서로 옥신각신했다.

마음속으로 상상 속 도시를 얼마나 생생하게 그렸는지 리나는 이 도시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기에 이르렀다. 실은 그럴 리 없다는 것을 리나도 알고 있었다. 엠버의 모든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엠버 시 전서』에서는 다르게 가르쳤다. “태곳적에 엠버 시는 건설자들이 우리를 위해 설립했다. 어둠의 세계 안에서 엠버 시만이 유일한 빛이며, 엠버 시의 외부는 사방으로 암흑만이 끝없이 펼쳐져 있을 뿐이다.”

리나는 엠버 시의 경계지역에 간 적이 있었다. 경계지역에 쌓인 쓰레기 더미 끄트머리에 서서 리나는 엠버 시 너머로 펼쳐진 끝없는 어둠을 한없이 바라보았다. 미지의 지대. 이 미지의 지대를 넘어 멀리 나아가 본 사람은 지금껏 아무도 없었다. 아니, 멀리 나아갔다가 되돌아온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물론 미지의 지대로부터 엠버 시로 찾아온 사람 역시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없었다. 사람들이 아는 한은, 저 너머에는 암흑만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하지만 리나는 여전히 또 다른 도시가 존재하기를 바랐다. 상상 속 도시는 정말 아름다웠고, 손을 뻗으면 만질 수 있을 것처럼 느껴졌다. 때때로 리나는 모든 사람들을 이끌고 그곳으로 찾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러나 지금은 리나에게 다른 도시 따위는 떠오르지 않았다. 오늘만큼은 자신이 있는 바로 이곳에서 더없이 행복했기 때문이다. 동생을 소파 위에 내려놓으며 리나가 말했다. “여기서 기다려.” 그러고는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곳엔 포피의 손이 닿지 않도록 유리컵과 접시들을 넣어두는 곳으로 쓰이는 냉장고와 전기화덕이 있었다. 냉장고 위에 매달린 선반에는 냄비와 항아리, 많은 숟가락과 칼, 그리고 할머니가 언제나 태엽 감는 것을 잊어버리는 시계와 긴 통조림 들이 한 줄로 늘어서 있었다. 리나는 필요한 물건을 즉시 찾아낼 수 있도록 알파벳 순서대로 통조림을 정리해 두려 애썼지만 할머니는 항상 뒤죽박죽 섞어 버렸다. 지금도 열의 맨 끝에 콩 통조림(B)이 놓여 있고, 열의 맨 처음에 토마토 통조림(T)이 놓여 있는 것을 보니, 할머니가 또 건드린 게 분명했다. 리나는 ‘유아용 음료’라는 딱지가 붙은 통조림과 ‘삶은 당근’이라고 쓰인 병을 각각 하나씩 꺼내 뚜껑을 따서, 국물은 컵에 쏟아 붓고 당근은 접시에 담아 소파에 앉아 있는 동생에게 주었다.

포피는 턱 아래로 국물을 줄줄 흘리며 음료를 마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근 몇 개를 먹어 치우더니 나머지 당근으로는 소파 쿠션을 쿡쿡 쑤셔 댔다. 리나는 거의 완벽하다 할 수 있을 만큼 행복했다. 적어도 오늘은 엠버에 드리운 암운에 대해 아무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내일이 되면 그토록 소망해 온 메신저가 될 테니까!

리나는 포피의 턱에 붙은 끈적이는 오렌지색 덩어리를 닦아 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모든 게 다 괜찮을 거야.”

 

<지난 시리즈 보기>

[연재 5 ] CITY OF EMBER 시티 오브 엠버- 2장 시장에게 전하는 메시지

[연재 4 ] CITY OF EMBER 시티 오브 엠버 - 직업 배정의 날3

[연재 3 ] CITY OF EMBER 시티 오브 엠버 - 직업 배정의 날 2

[연재 2 ] CITY OF EMBER 시티 오브 엠버 - 직업 배정의 날 1

[연재 1 - episod1] CITY OF EMBER 시티 오브 엠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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