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가끔 부엌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뒷물을 하셨다. 밤잠이 없던 어린 나는 가끔 그 소리를 들었다. 쪼르르..쪼르르륵..쪼르르..그 소리를 들으면 공연히 오줌이 마려웠다. 

타락하는 나를 받아줘 나 오늘 이렇게 원하고 있어 / 이미 꿈에서 널 안아본 날 가져주길 바래 / 이젠 말로 하지 않겠어 / 그냥 얻을 수 있어 / 오늘 밤 이런 맘 난 주체할 수 없었어 / 하고싶어 더 말은 말아줘 / 모두들 이런 일 다 비밀스레 숨기며 날 천하게 바라보곤 해

널 생각하면 숨이 가빠와 내 마음 이렇게 뜨거워 있어 / 그 안에 니가 잠시 들어와 날 식혀주길 바래 / 이젠 말로 하지 않겠어 그냥 얻을 수 있어 / 오늘 밤 이런 맘 난 주체할 수 없었어 / 하고싶어 더 말은 말아줘 / 모두들 이런 일 다 비밀스레 숨기며 날 천하게 바라보곤 해 / 내가 완전하지 않다는 말한 적 있었었잖아 넌 그래도 상관없댔어 / 다들 아무렇지 않은 척 깨끗하게 서 있지 구역질 나 참을 수 없어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소리는, 관능적이면서도 애처로웠다. 늙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젊지도 않은, 여자로서의 몸보다는 엄마로서의 몸이 더 우선되는 그런 다섯 아이를 가진 여자의, 뒷물하는 소리. 관능보다는 사실 애처로움이 더 크다. 이소라가 가사를 쓰고 직접 부른 이 노래처럼.

발매되자마자 샀다가, 사자마자 누군가에게 빌려주고, 그러다 결국 누군지도 몰라 돌려받지 못한 이 앨범을 운좋게도 6년 뒤인 (오..6년이나?) 2003년 3월 8일에 다시 구할 수 있었다.

고르는 물건마다 몇 년은 가게에 묵었던,  내가 아니면 누구도 돌아봐주지 않을 것 같은 것들. 작은 키에도 바바리가 꽤 어울리던 그가 한 자리, 한 자리에서 오래 박힌 그것들을 빼낼 때마다 잊고 있었던 저 노래가 한 소절, 한 소절, 머리에 와 박혔다. 그가 마침내 열 몇 장의 씨디를 안고 나를 향해 돌아섰을 때, 내 머리는 저 노래로 가득차 있었고, 나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그에게 말했다. . 하고싶어 더 말은 말아줘..

오, 그랬으면 지금쯤 애 하나를 옆에 끼고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그 때 내가 절실히 갖고 싶었던 건 그 자가 아니라 저 씨디였다. "고르시는 음반을 보니까 갖고 계실 것 같아 여쭙는 건데, 한상원 2집 있으세요? 있으시다면 제게 잠시 빌려주시던가 공씨디에 녹음 좀 부탁드릴께요." 있다고 했다. 두 장이나. 게다가 하나는 미개봉 상태란다. 이게 웬 봉이냐. 우리는 서로 주소와, 이름과, 전화번호를 주고 받았고, 나는 그에게 미선이, 아무밴드, 신해철 정글스토리 같은 것들을 주고, 그로부터는 한상원 2집, 동물원 3집, H2O 3집, 한영애 2집, 임재범 1집 같은 것들을 받았다. 그가 나보다 세 살 많지만 우리는 이렇게 친구가 되었다.

나는 다시 kiss와 solitude를 들을 수 있게 되었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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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2-19 0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상원이 베이스파트를 맡았던 곳이 어데죠? 분명한데...저 사람, 좀 째지하면서 담배연기처럼 늘어지는 가락이었고요. 저, 스무살 때 저 사람 음악 잘 들었는데...지금은 당최 생각이 안 나네요. [봄, 여름, 가을, 겨울]인가...아닌 거 같은디...

비로그인 2004-02-19 0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검색해서 찾아보니 2집이구만요. [신촌블루스]로 또 착각할 뻔 했네요. 음...구냥 [한상원밴드]구나, 올커니...

비발~* 2004-02-19 0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아깝다... 한상원2집을 이야기할 때 알아들었어야 했는데...

비로그인 2004-02-19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하하...쌤 답글에 뒤로 넘어져 버렸네요. 이해해 주쑈. 지가요, 일주일 간격으로 학년별로 읽어야 될 책이 많아서 속독을 하는데 꼭 중요한 것을 빠트린당게요. 흐흐...겸연쩍...

마태우스 2004-02-19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soul kitchen님의 취미 중 일부를 알게 된 것 같네요.

soulkitchen 2004-02-19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제목에 앨범명을 써 넣었어야 하는 걸 깜빡~ 처음 이 앨범을 샀던 건 유앤미블루나 이범용, 신해철 같은 이름들 때문이었는데, 저 두 곡을 가장 좋아하게 됐지요. 다른 트랙들도 하나 버릴 것이 없습니다. 마태우스님, 취미 중 일부..남들 다 잘 때 안 자고 깨어서 뒷물하는 소리 훔쳐 듣는 거요? ^^; (제대로 들켰다!)
아...날씨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