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는 모든 것에 무섭게 몰두를 했었다. 꽃을 하나 놓고 보더라도, 꽃에게서 뭔가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들으려는 사람처럼 그렇게 장시간 으르고 달래며 그 앞에 앉아 있곤 했다. 그러면 그것들은 그녀에게 결국은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고야 말았는가, 그녀는 잘게 몇 번 웃고, 찡그리기도 하고, 고개도 몇 번 끄덕거려 주고서야 비로소 자리에서 일어났었다.
대학 때, 여름마다 자두를 따러 갔었던 외가엔 외할머니와, 이모와, 나 뿐이었는데 언제부턴가 그녀는 우리에게 속하지 않고 있었다. TV 앞에 앉아서도 TV를 보지 않았고, 나와 밥을 먹으면서도 나를 보지 않았다. 내가 던진, 분명히 그녀에게 가 닿았을 질문은 한번도 그녀를 내 앞에 불러내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 어떤 사물과도 눈을 맞추지 않았다. 건강하고 예뻤을 때, 나를 그렇게도 이뻐해주던 그녀는 그렇게 주변의 모든 것으로부터 자신을 놓았다. 마지막 해 여름엔 보름 넘어 외가에 머물렀지만 얼굴 한 번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해 겨울, 그녀는 죽었다.
일요일이었고, 맨날 늦잠이던 나는 친구의 결혼식이 대구에서 있어서 새벽같이 일어나 화장을 하고 있었는데, 이모의 죽음을 알리는 그 전화를 내가 받아버렸다. (증조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에는 나는 당신 옆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약사발을 든 엄마가 들어와 할아버지를 깨울 때까지 나는 돌아가신 것도 몰랐었다) 이모는 그 즈음 식물처럼 방 안에 누워만 있었고, 끼니를 끊은 지도 오래 되었다고 했다. 그래도 할머니는 때마다 방에 들어가 이모에게 말을 걸고, 밥을 떠 먹이고 하셨단다. 그 날엔, 새벽 기도를 가기 전에 갔다 오겠다고 인사를 하러 이모방에 들어갔더니, 웬 일로 이모가 할머니를 알아 보곤, 엄마, 교회 갔다 와서 맛난 것 좀 해줘 하더란다. 그 뒤의 이야기는 너무 뻔해서 혹시 할머니가 지어내신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교회 갔다 왔더니, 죽어 있더라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죽음에 직면한 그녀가, 죽어가는 자신의 몸을 느낀 그녀가 얼마나 무서웠을까 생각했다. 아무리 미친 사람이라지만 (그래, 빙빙 둘러 얘기하긴 했지만 그녀는 미쳤다. 미쳤다는 말 말고 더 어떻게 그녀의 상태를 설명할 수가 있겠는가)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혼자 서서히 죽어 갈 때, 얼마나 엄마가 보고 싶었겠으며 얼마나 다른 가족들이 그리웠겠는가를 생각했다. 그래서 참, 많이 울었다. 그녀가 너무 가여워서.
그런데, 이 책의 "이상한 가역 반응"에서 나는 이런 문장들을 보았다. "보이고 들리는 그 어떠한 것에도 얽매이지 않음으로써 나는 자유였다." 그는 발가벗기우고 결박당한 채, 어둠 속에 그냥 앉아 시간을 보내야만 하는 어떤 실험에 참가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나는 마냥 죽는 날까지 이대로 있으라고 해도 있을 것 같았다." 아하, 그렇구나. 결박당한 건 그의 몸이지 머릿속이 아니구나. 보이고 들리는 그 어떠한 것에도 얽매이지 않아서 그는 자유였구나. 그의 눈 앞에는 그가 바라는 모든 것이 펼쳐져 있구나. 그냥 마냥 죽는 날까지 그대로 있으라고 해도 있겠구나. 그래서 그렇게 죽어도, 그렇게 죽어가도 행복하겠구나. 몸은 그렇게 죽어도 그의 정신은 저 혼자 살아 그렇게 언제까지나 행복하겠구나......그렇겠구나....무섭지 않았겠구나.....
언제나, 행복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