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에 나오는 '제인'의 말을 작가의 관점으로 읽어도 좋을까? <오만과 편견>과 <에마>에 제인이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각각 어려움을 겪지만 인물의 됨됨이는 꽤나 긍정적으로 그려진다. <에마>의 제인은 주인공 에마와 가까운 사이는 아니어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 <오만과 편견>의 제인은 주인공 엘리자베스의 언니이다. 가족 구성원 중 가장 가깝게 지내는 언니. 제인은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타인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한다. <오만과 편견>에서 가장 '나쁜 놈'으로 나오는 위컴에 대한 진실이 밝혀졌을 때에도, "그녀는 오해가 있을 가능성을 입증하려고 진지하게 애썼다."(p.287) "착하고 한결같이 순수한 심성을 지닌 그녀는 언제든 정상참작의 여지나 오류 가능성을 강조하는 편이었다."(p.184) 


  이러한 태도가 너무도 지속적으로 언급돼서 나중엔 희극적으로 느껴졌다. 아무리 나쁘고 어리석은 사람이 나타나더라도 그 사람을 최대한 호의적으로 바라보려 노력하는 제인. <위대한 개츠비>의 첫 부분에서 화자의 아버지가 해준 조언에 부합하는 태도이다. 제인과 같은 태도를 갖기 힘든 이유는 어딘가에서 다른 누군가에게 받은 상처가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에도 기억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이러한 상처가 있어. 너를 처음 보지만 그래도 너를 못 믿겠어." 우리 앞에 나타난 새로운 사람이 억울할 수도 있겠다. "나는 네 기억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야." 제인의 태도는 다아시에게는 성공하고 위컴에게는 실패한다. 다아시는 처음에 평판이 안좋다가 좋은 사람으로 밝혀지고, 위컴은 괜찮은 사람으로 여겨지다가 최악의 '나쁜 놈'이란 진실이 드러난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읽기 전에 상상한 제인 오스틴 소설 속 주인공은 좀 더 지혜로운 모습이었다. <에마>를 읽고 <오만과 편견>을 다시 읽으면서, 제인 오스틴 소설의 주인공(엘리자베스와 에마)이 완전하게 지혜로운 인물들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엘리자베스가 완전하게 지혜롭고 신처럼 상대방의 생각을 읽을 수 있어서 아무런 오해도 안했다면, 아무런 갈등도 없었을 것이고 장편 소설이 될 수도 없었다. 에마가 아무런 허영심 없이 자기가 누구를 사랑하는지 알았다면, 그 사람에게 바로 사랑한다고 말하고 소설이 한순간에 끝나버렸을지도. 


  엘리자베스나 에마는 처음에 뭔가 오해하거나 누구를 사랑하는지 몰라서 안 좋은 길로 빠진다. 하지만 오해를 하더라도 <오이디푸스왕>처럼 파국을 맞으면서 깨달음을 얻진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오해했던 사람을 다시 만나면서 "내가 저 사람을 잘못 봤구나"라는 깨달음을 얻고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 또는 내가 저 사람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줄 몰랐는데, 이러저러한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는 와중에 저 사람은 아직도 저 자리에 서있고 그 사람이 갑자기 멋있어 보이고 "내가 저 사람을 사랑하는 구나"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오만과 편견>의 리디아와 위컴처럼 아예 잘못된 길로 빠진 게 아니라면, 한 사람이 선의를 가지고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지닌 채로 삶을 살아간다면, '시간'이 해결해 줄 수도 있다. 물론 시간 속의 '내'가 해결해야겠지만. (하지만 이런 질문도 남는다. 그런데 리디아와 위컴은 어떻게 되는 걸까? 내가 리디아나 위컴일 가능성은?) 


  조금의 지혜로움이라도 견지하기가 위태롭다. 리디아, 위컴, 베넷 부인, 콜린스 그래서 소설 속 많은 사람들과 내가 어리석은 채로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순식간에 잊어버릴지도 모르지만 어떤 태도를 지녀야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정도는 배울 수 있었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누군가를 만나 사랑에 빠져야 로맨스 소설의 제대로 된 독자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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