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근처 채석장 반대 현수막을 보면서 문득 문지의 '채석장' 시리즈 생각이 났다. 물론 '억까'하고 싶지 않다. 채석장 시리즈를 읽을 의향도 있다. 하지만 저 비유적 표현이 쉽게 허용된 이유를 생각해보게 된다.


한겨레 기사에선 채석장 시리즈를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문학과지성사가 새 인문사회 문고판 시리즈를 시작했다. 이 시리즈엔 ‘채석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마르크스의 <자본>을 영화화하려던 세르게이 예이젠시테인의 미완의 프로젝트에 훗날 알렉산더 클루게가 ‘상상의 채석장’이란 이름을 붙인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시리즈 이름이 암시하듯 수록하는 텍스트들은 잘 세공된 완성품보다는 투박하고 거친 원석 조각들에 가깝다. 정련된 에세이나 논문으로 거듭나기 전 사유의 파편을 모아놓은 창작 메모나 연구노트 정도라고 할까.>


소개글엔 도시에 건물 짓기 위해 돌을 캐가는 행위를 말하고 있진 않다. 작가들이 써놓은 메모 형식의 글을 보석을 만드는 원석에 비유한다. 독자는 채석장에서 작가가 써놓은 원석을 캐낸다.


출판사가 있는 도시에선 채석장도, 반대 현수막도 볼 일이 없다. 현실의 채석장은 산을 깎아서 만드는 장소다. 나무를 없애고 먼지를 일으키고 덤프트럭이 다니게 되면서 주변 주민들은 피해를 본다. 


이미 많은 집들을 다른 방식으로 재분배하지 않는 한, 지방 어딘가에서 밭에 있는 모래를 캐내고 산을 깎아서 돌도 얻어야 한다. 아파트를 영원히 짓기 위해서.


녹색평론에도 짧게 소개된 적이 있는데, 이번 정부에서 전국에 산업단지를 짓는다고 많은 산과 언덕들을 민둥산으로 만들었다(산업단지는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전국 모든 도 지역에서 선정되었다). 녹색평론에 언급된 산업단지는 충청도 쪽에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우리 집 근처에도 산업단지 예정지가 있다. 길에서 매일 민둥산(몇 년 전에 깎였다)을 보게 되면서 저 산이 저렇게 쉽게 아무런 관심도 없이 파괴되는 이유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4대강 사업의 반대 여론과 비교해보면 허무할 정도로 아무런 관심이 없다. 지역 주민들은 땅값이 오르고 보상도 해주기 때문에 반기는 분위기이기도 하다.


채석장이나 산업단지로 예정된 산과 언덕에는 '이름'이 없다. 4대강 사업에 그렇게 많은 반대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영산강', '낙동강', '남한강'이라는 이름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어떤 생물에게 '이름'을 붙여주면서 우리는 '성원권'을 부여하고 그 대상을 소중히 여기게 된다(<사람, 장소, 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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