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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함께 읽는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
에릭 카펠리스 엮음, 이형식 옮김 / 까치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 그림을 통해 뭔가 잃어버린 시절을 떠올리게 되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 '잃어버린 시절' 속에는 어떤 구체적인 이야기가 있을까? 궁금했다. "권태에 빠진 한 청년이 홍차에 곁들여 먹던 마들렌느의 맛에 이끌려 기억 속의 어린 시절을 찾아가는 회상기"라는데 나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하였기에 전체적인 스토리 전개는 미약하고 때론 여러번 읽어도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한탄에 빠져 읽기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그림과 함께 '화자'라는 인물과 그를 둘러싼 사람들(스완, 엘스띠르 등등)의 이야기가 있다. 구성은 단순하다. 하나 또는 두 개의 그림과 함께, 어떤 상황을 두세줄로 설명(책의 주인공 '화자'가 아닌 이야기 속 화자가 설명한다.)하고. 그 밑에 주인공 '화자'와 주변 인물들의 생각이나 말로 이루어져 있다. 상황을 예를 들자면, 등장인물(프랑스의 상류층 사교계 사람들)이 연회나 전시회에 참석하고, 어떤 사람에게 반하게 되었다 라는 정도일 것이다.
그림 속 "숨은 그림 찾기" 식으로 처음에는 소개되는 그림과 어떤 연관성을 찾으려고 기웃거렸다. 그런데 '누구의 그림 속 누구처럼, 또는 '무엇처럼'이라고 표현할 뿐이다. 그리고는 그림을 통해 나는 책 속의 또다른 그림과 사람들을 상상하기에 바빴다.
예를 들면, 책에는 화가 '엘스띠르'가 등장한다. 전시회에서 엘스띠르의 그림을 본 감상을 또 다른 그림(책 속의 실제 그림)을 통해 설명하는데, 색다른 느낌이었다.
또다른 그림보기의 즐거움도 있다. 소설 속 여행지에서 풍경이 그림을 통해 더욱 생생하게 살아나기도 하였다. 그림을 통해 저자가 느낌 감동을 소설 속 이야기로 표현한 것인지, 실제로 본 풍경을 그림에 투영한 것인지 그 경계가 모호해지는데. 이 책의 은근한 매력이 아닐까 싶다.
잃어버린 시절은 기억의 파편들이 뒤엉켜 어떠한 의미를 알기가 어렵듯이 이 책의 중반까지는 내 머릿 속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었다. 대략, '화자의 어린 시절의 한 부분, 질베르뜨와 친구 장-루, 그리고 스완과 오데뜨의 사랑 이야기가 있어지'하는 정도다. 하지만 채워지지 않은 조각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점점 이야기의 윤곽이 드러나면서 되찾은 시절의 그림 하나를 완성하였다. '화자'가 발백에서 만난 연인(2권) '알베르띤느'와의 사랑이야기가 하나의 그림일 것이다. 사랑하게 되어 함께 전시회도 가고, 연회도 참석하고, 그러다가 동거(결혼?)를 하게 되고, 사랑에 금이 가게 되는 과정들이 연상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사랑이 식은 후, 알베르띤느는 떠나고, 그녀가 죽은 후의 '화자'가 겪게 되는 감정들이 차갑고 짧막하게 드러난다.
내가 이 책을 이해하고 많은 부분을 받아들이기에는 역부족이다. 물론 여러가지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전쟁을 논하기도 하고, 상류층의 허위의식을 고발하기도 하였다. 예술론을 펼치기도 하고, 사랑, 죽음, 질투 등등의 인생의 다양한 감정의 단편들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 책의 전체적인 느낌은 한 마디로 '인생을 짧고 예술은 길다"였다. 아니, 예술은 영원성을 가지며, 삶에 무한한 에너지를 제공한다는 메시지일 것이다. 옛 그림을 통해, 그 머나먼 옛 이야기가 오늘에도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것이었다.
" 오직 예술은 통해서만 우리들은 우리들 자신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고, 우리의 것과 같지 않은 세계 속에서 다른 사람이 발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으며, (.......) 예술 덕분에 우리들은 단 하나만의 세계, 즉 우리의 세계만을 보는 대신 그 세계가 스스로 증식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따라서 독창적인 예술가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들은 우리의 임의에 맡겨진 그만큼 많은 세계를 가질 수 있는데. (......)" - 제7권 되찾은 시절 中 (31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