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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의 탄생 - 퇴계 이황부터 추사 김정희까지
김권섭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처음 책을 접했을때, 두꺼움에 살짝 망설여졌다. 행여나 어려워 읽기가 고생스럽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였다. 하지만 첫장을 넘기면서 차근히 읽어 나가다보면 시간가는 것을 잊게 된다.
'선비의 탄생'이란 제목에서 '선비'에 대한 또다른 해석을 다룬 내용이 아닐까? 하여 호기심이 일었다. 조선시대, 선비하면 고지식하고 지나친 예만 무리하게 강조하고, 대쪽같은 의지 정도로 나는 살짝 부정적이고 답답하게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어찌 인간다운 다사로움이 있을까?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선비의 탄생'이란 제목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나는 정말 새로운 선비를 접하게 된다. 그들의 인자함과 다사로움에 감동받아 눈시울을 붉어지기 일쑤였다.
조선시대를 대표할 만한 9명의 학자들의 삶과 그 속의 인간관계들을 총망라하고 있다. 퇴계 이황, 남명 조식, 율곡 이이, 송강 정철, 남설헌 허초희, 교산 허균, 고산 윤선도,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순으로 그들의 부모님과의 관계, 자식간, 친구간, 그리고 스승간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하며 어떤 마음으로 대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그리움, 살뜰함, 애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그들의 옛글을 통해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노라면, '선비'라는 것이 얼마나 고결하고 아름다움인지 깨닫게 된다.
그 옛날의 글인데도 오늘날 시사하는 바 또한 크다. 솔직히 옛글은 읽기가 어렵다. 어려운 한자어도 많고 배경지식도 부족하여 이해하기 힘든 점이 많아 꺼려하는 바 크지만 지은이는 쉽게 풀어 다시 설명해 주고 있어 두번세번 의미를 새길 수가 있었다. 이황의 '아내는가도처가는남아'라는 테마의 글에서는 손자 안도에게 보내는 부부에 대한 편지글과 다산의 '제게는세가지병통이있습니다.'라는 테마에서는 다산과 '황상'간의 사제지간의 이야기 그리고 허균의 '의당절반의봉급으로대접하리니'라는 테마에서 교산과 여인 이재영의 친구간의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역사 속에서 배운 단편적인 지식으로 인한 편견이 사라지는 점도 있었다. 고봉 기대승과 퇴계 이황의 내용이 그러하다. 학문적 대립으로 인해 그들의 관계를 새롭게 들여다 볼 수 있어 좋았고 송강 정철의 대한 정치사적인 편견도 말끔히 씻을 수가 있었다.
이 책의 지은이가 국어선생님이라서 그런지, 내가 모르고 있던 우리말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던 것 역시 좋았다. 또한 글을 읽으면서 여러번 반복하고 있어서 앎의 즐거움을 다소나마 느낄 수 있었다.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자세의 올바른 모범을 제시하고 있다. 물론 그들처럼 하기가 쉬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본받아 사랑하는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를 조금이나마 다사롭게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지 않을까?
선비, 그들은 홀로 우뚝 솟은 것이 아니었다. 두터운 인간 관계 속에서 온마음으로 다한 결과, 주변의 빛이 모여 더욱 빛나는 존재가 되었던 것이다. 참으로 숙연해지면서도 가슴이 뭉클해지며 감동적인 이야기들로 가득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