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 남인의 후예.
시천주(侍天主): 모든 사람은 같은 하늘님을 모시고 있으므로 평등하다.
『동경대전』(1880): 한자 경전. 포덕문, 논학문, 수덕문, 불연기연
『용담유사』(1881): 한글 포교 가사집. 용담가, 안심가, 교훈가, 몽중노소문답가, 도수가, 권학가, 도덕가, 흥비가, 검결
제2대 최시형(崔時亨, 1827~1898): 양천주(養天主)
천지부모(天地父母), 이천식천(以天食天), 유무상자(有無相資), 향아설위(向我設位)
전봉준(1855~1895): 남접 지도자, 동도대장(東徒大將)
호남 좌도: 김개남(1853~1895, 총관령), 김인배(1870~1894) - 과격
호남 우도: 손화중(1861~1895, 총관령), 김덕명(1845~1895) - 온건
이필제(1825~1871): 영해 봉기 주도
제3대 손병희(孫秉熙, 1861~1922): 인내천(人乃天)
남접 지도자. 1905년 천도교 창시. 1910년 기미독립선언서 민족 대표
이렇게만 놓고 보면 이 책은 다른 저작물과 하나도 다르지 않은 것처럼 생각된다. 『1860, 근대의 시작』은 문학과 역사와 철학이 겹치는 지점에서 빛난다. 투박하게 말해서 이 책은 문사철(文史哲)의 삼중주(三重奏)다. 이 삼중주가 빚어내는 화음은 아름답다. 문학평론가인 저자는 독자를 동학이 배경인 문학작품 속으로 데리고 들어간다. 그 뒤를 따르다 보면 이미 읽은 작품을 새롭게 받아들이게 되고, 미처 읽지 않은 작품은 읽고 싶어진다. 이 책은 동학혁명의 현장을 답사한 글품으로 더욱 탄탄하다. 저자는 원주에서 김지하의 『이 가문 날의 비구름』을 비판하고, 정읍에서 박태원의 『갑오농민전쟁』과 송기숙의 『녹두장군』을, 고창에서 서정주의 『질마재 신화』를 분석하고, 하동에서 박경리의 『토지』를 상찬(賞讚)한다. 김지하는 영적이고 신비주의적 요소에 빠져들면서 자신을 제대로 성찰하지 못했다고 보았다. 박태원은 민중 의식의 성장을 보여주었지만, 동학의 사상에 바짝 다가서지 못한 채 유사종교로 인식했다는 점에서 아쉬웠다. 송기숙 역시 시천주에서 사인여천을 거쳐 인내천에 이르는 과정을 놓치고 인내천을 앞세움으로써 동학 그 자체를 일그러뜨렸다고 비판했다. 이 비판은 동학이 인간이 하늘을 모시고[최제우], 키우던[최시형] 상태에서 인간이 하늘이라는[손병희] 오만함으로 변질된 전개 과정을 지적하는 사유와 연결된다. 서정주는 동학을 부정하고 김성수 일가를 찬양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는 점이 한계였다. 동학의 근대성을 제대로 인식한 작가는 박경리라는 게 저자의 평가다.
저자가 이들을 평가하는 잣대는 동학의 본질을 얼마나 제대로 드러냈는가 하는 점이다. 김인호는 동학을 파레시아(parrhesia)로 보았다. 파레시아는 “정치적 장에서 자기 자신의 의견을 목숨을 걸고 말하는 것”(188쪽)을 의미한다. 파레시아는 ‘진실성, 위험, 의무, 자유, 수용성’이 본질이다. 동학에서 이런 본질적 요소를 찾아내는 김인호의 눈빛은 형형(炯炯)하다. 동학혁명은 죽창이나 몽둥이를 들고 고부, 무장, 황룡촌, 석대들, 영해, 우금치에서 온몸으로 저항했던 함성이었다. 동학혁명군은 관군과만 싸운 게 아니다. 동학혁명군은 유림과만 싸운 게 아니다. 동학혁명군은 일본군과만 싸운 게 아니다. 동학혁명군은 관군, 유림, 일본군 모두와 싸웠다. 동학혁명은 죽을 걸 알면서도 전투에 나섰던 이들의 목소리였다. 이들의 목소리를 얼마나 올바르게 형상화했는가가 저자가 작품을 평가하는 잣대다. 문학과 역사를 버무린 책은 자칫하면 문학도 아니고 역사도 아닌 어정쩡한 얼치기가 되기 십상이다. 『1860, 근대의 시작』은 문학과 역사, 철학, 어느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이 세 요소가 단단히 결박되어 논지를 이끌어 간다. 공부를 충분히 한 저술가는 ‘어려운 것을 쉽게’ 설명한다. 그게 이 책의 정체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