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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의 시행착오는 죄가 아니다
정다희 지음 / 한솜미디어(띠앗) / 2019년 8월
평점 :
'죄가 아니다'
누가, 워킹맘의 시행착오를 죄라고 할 수 있을까? 겪어보지 못한 사람 조차 죄라고 할 순 없을 거다. 저자는 워킹맘이고, 아이를 키우면서 워킹맘이라는 것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써 내려간다. 결론은 모든 워킹맘을 위로한다.
워킹맘과 전업맘, 이 둘 모두를 해 봤다. 육아휴직 이후 아이를 친정엄마에게 맡기고 복직할 수 있었다. 그리고 거의 정시에 퇴근하는 직업이어서 오후 6시 전후로 친정엄마와 바톤터치를 했다. 그렇게 1년 조금 넘는 시간을 워킹맘으로 살았다. 저자에 비하면 나는 힘든 것도 아니었다. 저자는 아이를 봐 줄 사람이 없었고, 퇴근 시간도 불규칙했으며, 아마도 육아휴직 없었을 거라 생각이 든다. 나 같았으면 벌써 포기했을 것이다.
워킹맘이었을 동안 저자와 마찬가지로 힘듦이 있었다. 돌도 되지 않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그 때가 아마 10개월 정도였던 것 같다. 퇴근해서 오면 저녁식사 후 집안 청소, 아이 돌보기, 아이 재우기. 흔히 말하는 집으로 다시 출근하는 셈이었다. 매일 자정을 넘기고 곯아 떨어져 자고 다음 날 힘들게 출근하고. 새벽에 아이가 깨지 않으면 다행이다. 새벽에 아이가 깨면 인간의 한계에 도달하게 된다. 나만 힘들고, 나만 손해보는 느낌이었다. 당연히 남편하고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 아이가 아프거나, 어린이집이 방학일 때도 발을 동동 구르는 건 나였다. 그 때는 몰랐다. 이런 생각들이 나를 더 힘들게 한다는 것을. 모든 게 다 처음이라 힘들 수 밖에 없고, 그 시기가 또 힘든 시기였고, 남편의 도움을 어떻게 구해야할지, 남편도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몰랐던 시기였다.
동생의 출산으로 인해 엄마의 도움을 받을 수 없게 되었고, 엄마는 동생도 나와 똑같이 기간동안 아이를 봐주고 그 후에는 양쪽 모두 도움을 주지 않겠다고 선언하셨다. 사람을 구하거나, 어린이집에 오래 맡길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둘 다 싫었다. 그리고 그만두기도 싫었다. 결국 그만 두긴 했지만, 그 당시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도 한몫 했다.
지금은 일을 그만둔지 1년이 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1년 4개월 정도 되나보다. 1년 정도 아이를 보겠다고 생각하고 그만 둔 거 였는데, 벌써 1년하고도 4개월이 지났다. 이제 다시 취업을 준비해 볼 시기가 온 것 같다. 이 시기에 이 책을 만난 건 행운일까? 불행일까? 책에 써 있는 내용들이 겁이 난다. 아이와 떨어져야 하는 것, 아이가 어린이집에 오래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것, 모르는 사람에게 아이를 맡겨야 한다는 것,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추억이) 줄어들거라는 것, 직장생활에서 오는 짜증이 늘어날 거라는 것, 발을 동동 구르게 될 상황이 생길 거라는 것,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거라는 것, 퇴근하고 다시 집으로 출근하는 상황이 벌어질 거라는 것, 남편과의 관계가 나빠질 거라는 것..... 좋은 건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저자가 이 부분이 이기적이라 다른 사람들에게 공격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엄마는 이기적이면 안 되는 건가?)
저자는 내가 겁을 내는 것들을 시행착오 끝에 잘 극복해 나간다. 엄마가 일을 하면, 아이들은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엄마도 그 시간에 최선을 다하고, 선택과 집중을 통해 엄마 뿐 만 아니라 워킹맘을 둔 아이들에게도 이해시키는 것이 가능하며,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방법이 생기고, 남편과의 분담도 원활해진다고 한다. 직장에서 연차가 올라갈수록 경력이 쌓이듯이 저자도 워킹맘에 대한 경험이 쌓이는 듯 하다. 하지만 이렇게 되기 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기도 하다. 다 때려치고 싶은 순간도 많았을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거저 된 거 아니에요." 이 한 마디에 얼마나 많은 것이 포함되어 있는가.
워킹맘일 때는 전업맘이 부럽고, 전업맘일 때는 워킹맘이 부럽다.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욕망인가? 워킹맘일 때는 워킹맘에 만족하고, 전업맘일 때는 전업맘에 만족할 순 없는 걸까? 일을 그만 두고 미친듯이 힘들었다. 나의 의지로 일을 그만 둔 것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나만 손해를 본다는 생각 그리고 다시 취업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함 때문에 스트레스가 최고조에 달했고, 자존감도 바닥을 쳤다. 이로 인해 육아도 집안일도 남편을 대하는 것도 매우 불안정 했다. 6개월 정도 지나니 내려 놓음인지, 전업맘의 적응인지 모르겠지만 스트레스가 가라앉았고, 스스로의 만족감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워킹맘일 때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씩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 집에 평화가 찾아왔다. 안정적인 생활이 유지 되고 있다. 생각해보면 결국 해결책은 저자가 말한 나 자신에 대한 관리이다. 생각의 관리, 행동의 관리, 시간의 관리, 스트레스의 관리 등등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p.168
워킹맘이 집과 일터를 오가면서 일에 달고 사는 말이 있다. "시간이 없다." 또는 "시간이 부족하다." 과연 그럴까? 그날 낮에 내가 느낀 것은 나는 시간이 결코 부족하지 않았다. 쓸데없는 걱정과 잡념에 나의 시간을 너무 관대하게 놓아줘 버렸다. 나에겐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남아 돌아서 엉뚱한 짓들을 하느라 나를 위한 시간들이 없었던 것이다.
이 내용은 워킹맘 뿐 만 아니라 전업맘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전업맘은 시간을 정말 효율적으로 잘 써야 한다. 전업맘도 생각보다 바쁘다. 등원시키고 뒤돌면 하원시키고.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른다. 엄밀히 따져보면 내가 하루의 시간을 어떻게 썼는지, 핸드폰만 붙잡고 있진 않았는지, 쓸데없는 만남에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건 아닌지.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p.72
다음 날 아침, 차이나타운에서 본 중국여자 머리를 해달라 그러질 않나, 모자가 예쁘게 써졌는지 거울 앞에 서서 10번 넘게 확인했다. 말할 거리가 많아서 너무 신났던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행복해하니 오랜만에 갔다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좀 더 자주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파이팅 있게 일을 시작했다. 오후에 알림장 알람이 울려서 들어가 봤는데 아이들에게 또다시 배신감을 느꼈다. '아빠가 아이스크림 사줬어요.' '아침에 엄마가 작은 마트 김밥이랑 음료수 사줘서 먹었어요.' 아빠가 모자 사주셨어요.'
워킹맘인 저자가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큰 맘 먹고 소래포구-월미도-차이나타운에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며 추억을 만들었는데, 결국 어린이집 가서 하는 말이 뭘 사줬다는 말 뿐, 차이나타운의 '차' 자도 꺼내지 않았다니. 아이들은 다 똑같은가보다. 배신감을 느꼈다니 너무 공감이 되고 웃겼다.
이 책을 읽으니 앞서 간 선배는 내가 겁내 하는 것들을 어떻게 극복해 나갔는지, 너무 친절히 써 놓았다. 갈등하는 나에게 워킹맘도 괜찮다고, 다시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다. 용기를 조금 더 내봐야겠다. 이 책은 현재 워킹맘 뿐 만 아니라 다시 워킹맘이 되기 위해 준비하는 엄마에게도 매우 필요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