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 마실 나갔다가 눈에 띈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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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비룡소 걸작선 13
미하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김 / 비룡소 / 199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내방에 있는 몇권 되지 않는 책중에 모모가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책을 그다지 많이 사서 보지 못하는 판에 어쩌다가 모모는 책꽂이에 꽂아 뒀는지 내 스스로도 신기하다. 집에 있는 것은 비룡소판으로 비교적 최근에 나온 책이다. 나중에 차경아씨가 번역한 예전 책도 읽어봤는데 그다지 큰 차이를 느끼지는 못했다. 회색도당이나 회색신사나...

엔데만의 독특한 능력은 동화같으면서도 어른들이 읽어도 공감을 가게 만드는 그것이다. 엔데의 그 능력은 여타의 다른 소설가들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그러한 능력인 듯 하다.(어쩌면 내가 아직 책을 많이 못 읽어서 엔데가 유난히 돋보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른 작가들로부터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동화적인 분위기와 몽환적인 판타지의 모습, 쉽사리 사유가 미치지 못하는 곳까지 자유롭게 뻗어 나가는 상상력, 그리고 모모에서 유난히 빛나는 현실을 꿰뚫는 통찰력은 내가 모모를 사고서 후회보다는 만족을 하게 만들어 주었다.

모모는 동화적 판타지소설이다. 진정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할 만한 엔데의 소설들은 대부분이 어린이, 청소년용으로만 소개되어 있기에 오히려 어른들은 쉽사리 다가가지 못하는 모습으로 서점에 진열돼 있어서 조금은 아쉽다. 그래도 누가 뭐라고 하나? 내가 재미있게 읽었으면 된거다.

모모는 바쁘게 그리고 정신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좀 더 여유를 가지라고, 상대방의 목소리에 조금 더 귀를 기울여 보라고. 모모는 호라박사의 도움으로 회색의 사람들이 교묘한 계약을 통해 사람들로부터 뺏어간 시간을 되찾는다. 그리고 다시 한번 독자들에게 여유를 가지고 세상을 한번 둘러보라고 이야기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모모는 시간을 구출하기 위해 주어진 시간을 너무나 바쁘게 쓰지 않았던가 싶다. 하지만 시간이 돌아오자 모모는 원래의 모모로 돌아왔고 모모의 친구들도 모두 돌아왔다. 분단이로, 심지어는 초단위까지 쪼개서 쓰려는 현대의 각박한 모습 속에서 우리모두는 모모가 전해주는 메시지에 조금 귀를 기울여 봐야 하지 않을까? 2002/7/26

이후 모모는 드라마에 소개되면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고 몇몇 사람들만 알고 있던 책이 갑자기 세간의 관심을 끌면서 장기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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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7-08-07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베스트 셀러가 되는 책이 얼마나 많을까..잠시 생각해 봅니다..그러나 모모는 좋았었죠??

2007-08-08 22:07   좋아요 0 | URL
예... 물론입니다. 엔데는 여전히 제가 좋아하는 작가 중에 한 명이고 모모는 제 인생의 책 중 한 권입니다.
 
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바리데기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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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의 황폐에 맞서서 - 『바리데기』

나의 세계는 비좁고 탁하다. 내 발은 여전히 반토막난 조국을 벗어나 본 적이 없고, 길을 따라 회랑처럼 솟아난 인공의 숲에서 태어나 자랐다. 나의 경험들이란 비좁은 땅에 난립한 건물들 같다.

바리는 내던져졌다. 풍요로운 땅에서 나의 비좁은 세계에 콘크리트를 들이 붓는 동안 바리는 대지를 넘어 대양을 건넜다. 그렇게 바리는 생명수를 찾아 서녘의 끝에 해가지지 않는다던 나라까지 나아간다. 생명수를 찾아가는 바리의 여정은 한마디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무섭고 비참하여 괴로움이 많았다. 들쑥날쑥하여 종횡으로 크게 요동치고 한치 앞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이러한 여정을 함께하는 칠성이와 할머니의 존재는 바리를 지탱하고 이끌어 나가는 힘이 된다.

바리는 끝내 울음을 터뜨린다. 갈등과 반목의 세기를 온몸으로 겪으며 황폐와 맞선 바리는 끝내 울음을 터뜨린다. 마지막 대목을 읽을 때 나는 분당의 어느 카페에서 빵과 커피로 끼니를 건너며 앉아있었다. 소리 없이 눈물을 훔치며 흉한 꼴을 내보이지 않고 간신히 감정을 추스렸다. 이 황폐한 세계가 서러웠다. 나의 비좁은 세계도 서러웠다.

짧은 서평에서 끝으로 우리네 전승을 끌어다 풀어낸 작가 황석영의 거침없는 서사,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탁월한 필치에 대한 감탄을 덧붙인다. 이 부분에 대해서 길게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여러 가지 화두를 던지며 작가는 묻는다. 바리는 생명수를 찾았을까? 우리 세계를 살릴 생명수는 어디에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온전히 독자 개개인의 몫이리라. 200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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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뒤흔드는 소설
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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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샘과 열광에 대하여 -- 『남한산성』

확실히 김훈의 문장은 강하고 힘이 좋다. 나는 읽는 중간중간 『남한산성』에 대해 종종 적었다.

'읽기 겨워 천천히 드문드문 읽게 된다.'
'단숨에 넘겨버리기에 어렵고 아까운 향이 진한 독주'
'처절하리만치 정제된 언어가 폭발하듯이 밀려오는 문장'
'글이 가파르고 시선이 산만하며, 늙고 지친 기색이 역력하지만 그럼에도 생을 열어나가는 힘이 있다. 또한 문장이 단정하고 보기 좋아 부러움에 치를 떤다.'

다 읽은 지금, 삶을 이어나가는 치욕에 대해서, 살아남음에 대해서, 그에 따르는 치욕과 고통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 -- 2007/5/27

다 읽고 써놓은 것에 무엇가 덧붙일 말을 떠올리려 했으나 떠오르지 않았다. 아마도 종종 적은 것을 정리하는 것 만으로 내 입은 할 말은 잃어버렸나보다. 오래된 서평을 다시 올리면서 적은 것이지만 김훈은 나에게 열광이며 시샘의 대상이다. 종종 적어놓은 단평들에서 그 사실이 너무 잘 드러난다. -- 200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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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훈이 "남한산성"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from 風林火山 : 승부사의 이야기 2007-11-05 02:18 
    남한산성 - 김훈 지음/학고재 2007년 10월 31일 읽은 책이다. 올해 내가 읽을 책목록으로 11월에 읽으려고 했던 책이었다. 재미가 있어서 빨리 읽게 되어 11월이 아닌 10월에 다 보게 되었다. 총평 김훈이라는 작가의 기존 저서에서 흐르는 공통적인 면을 생각한다면 다분히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매우 냉정한 어조로 상황을 그려나가고 있다. 소설이기에 작가의 상상력이 개입이 되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읽었음에도 주전파..
 
 
 
현의 노래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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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대어진 삶의 굴곡 - 『현의 노래』

이 소설의 주인공은 우륵이 아니다. 우륵의 제자 니문도 아니고, 가야의 대장장이 야로와 그의 아들 야적도 아니다. 신라의 병부령 이사부도 아니다. 가야의 왕도 아니고, 신라의 왕도 아니다. 우륵의 여인 비화와 그녀를 언니라 부르던 아라도 아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다만 소리일 뿐이다. 소리는 그 주인이 없고 정처가 없어 머무르지 못한다. 소리는 다만 울릴 때만 소리이며 울림이 끝나면 소리도 없다. 삶은 살아있을 때 삶이고 죽으면 삶이 아니다. 수많은 생명들이 명멸해가던 삼국의 전장에서 쇠의 흐름은 소리의 흐름과 같았다. 하지만 야로는 죽임을 당했고, 우륵은 신라의 악사에게 가야의 금을 주었다. 이것이 쇠의 흐름이고, 소리의 흐름이다. 당연한 생의 명과 멸 사이에서 우륵과 야로는 늙고 노쇠한 몸으로만 느낄 수 있는, 니문이나 야적의 몸으로는 느낄 수 없는 큰 흐름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우륵이 만든 12현의 가야금은 아직도 그대로 내려와 전수되고 있다. 첨단을 달리는 병장기의 주재료는 여전히 쇠인 듯싶다. 소리의 흐름과 쇠의 흐름은 여전히 마찬가지이다. 주인이 따로 없고 울려야 소리이며 살아야 삶이다. 한 무장의 자취를 따라가며 자분하게 썼던 칼의 노래와 달리 현의 노래가 따라가는 그 자취는 난중일기와 같이 뚜렷하지 않다. 그 자취가 고서에 드문드문 남겨진 기록이며, 릉에서 발굴된 유물이며, 여전히 연주되는 악기다. 이 뚜렷하지 못한 자취를 따라가며 그 안에는 더 많은 허구가 차용되었고, 그 허구는 현의 노래를 한편의 소설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을 만치 차용됐다. 도무지 감정의 기복이란 찾아보기 힘든 건조한 문체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소설 속에는 잇대어진 삶의 깊은 굴곡이 살아있다. 그 깊은 굴곡 속에 희로애락이 모두 살아있음에 대해서는 더 할 말이 없다. -- 2004/3/2

다시 올리면서 뭔가 덧붙이는 말을 쓴다.
현의 노래를 처음에 나온 구판으로 가지고 있다. 당시 싸인회를 했었는데 시간이 어긋나 벗에게 부탁해서 간신히 싸인까지 받아놓았었다. 김훈은 나에게 열광이며 시샘의 대상이다. 얼마전 서점에 나갔다가 신판을 보고 책이 정말 예쁘고나 감탄해 마지 않으며 사고 싶은 충동에 휘말리기도 했었다. 다만 김훈의 여러 소설들 중 가장 힘이 떨어지는 것을 집으라면 『현의 노래』를 집게 된다. 개별의 소설로 놓고보면 결코 못된 소설은 아니지만 『칼의 노래』가 가지는 힘이 너무 강했기에 비교가 될 수 밖에 없다. 김훈의 소설 중 으뜸이라면 여전히 『칼의 노래』를 꼽고 버금이라면 단편집,『강산무진』을 꼽을테다. -- 200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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