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의 노래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잇대어진 삶의 굴곡 - 『현의 노래』

이 소설의 주인공은 우륵이 아니다. 우륵의 제자 니문도 아니고, 가야의 대장장이 야로와 그의 아들 야적도 아니다. 신라의 병부령 이사부도 아니다. 가야의 왕도 아니고, 신라의 왕도 아니다. 우륵의 여인 비화와 그녀를 언니라 부르던 아라도 아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다만 소리일 뿐이다. 소리는 그 주인이 없고 정처가 없어 머무르지 못한다. 소리는 다만 울릴 때만 소리이며 울림이 끝나면 소리도 없다. 삶은 살아있을 때 삶이고 죽으면 삶이 아니다. 수많은 생명들이 명멸해가던 삼국의 전장에서 쇠의 흐름은 소리의 흐름과 같았다. 하지만 야로는 죽임을 당했고, 우륵은 신라의 악사에게 가야의 금을 주었다. 이것이 쇠의 흐름이고, 소리의 흐름이다. 당연한 생의 명과 멸 사이에서 우륵과 야로는 늙고 노쇠한 몸으로만 느낄 수 있는, 니문이나 야적의 몸으로는 느낄 수 없는 큰 흐름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우륵이 만든 12현의 가야금은 아직도 그대로 내려와 전수되고 있다. 첨단을 달리는 병장기의 주재료는 여전히 쇠인 듯싶다. 소리의 흐름과 쇠의 흐름은 여전히 마찬가지이다. 주인이 따로 없고 울려야 소리이며 살아야 삶이다. 한 무장의 자취를 따라가며 자분하게 썼던 칼의 노래와 달리 현의 노래가 따라가는 그 자취는 난중일기와 같이 뚜렷하지 않다. 그 자취가 고서에 드문드문 남겨진 기록이며, 릉에서 발굴된 유물이며, 여전히 연주되는 악기다. 이 뚜렷하지 못한 자취를 따라가며 그 안에는 더 많은 허구가 차용되었고, 그 허구는 현의 노래를 한편의 소설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을 만치 차용됐다. 도무지 감정의 기복이란 찾아보기 힘든 건조한 문체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소설 속에는 잇대어진 삶의 깊은 굴곡이 살아있다. 그 깊은 굴곡 속에 희로애락이 모두 살아있음에 대해서는 더 할 말이 없다. -- 2004/3/2

다시 올리면서 뭔가 덧붙이는 말을 쓴다.
현의 노래를 처음에 나온 구판으로 가지고 있다. 당시 싸인회를 했었는데 시간이 어긋나 벗에게 부탁해서 간신히 싸인까지 받아놓았었다. 김훈은 나에게 열광이며 시샘의 대상이다. 얼마전 서점에 나갔다가 신판을 보고 책이 정말 예쁘고나 감탄해 마지 않으며 사고 싶은 충동에 휘말리기도 했었다. 다만 김훈의 여러 소설들 중 가장 힘이 떨어지는 것을 집으라면 『현의 노래』를 집게 된다. 개별의 소설로 놓고보면 결코 못된 소설은 아니지만 『칼의 노래』가 가지는 힘이 너무 강했기에 비교가 될 수 밖에 없다. 김훈의 소설 중 으뜸이라면 여전히 『칼의 노래』를 꼽고 버금이라면 단편집,『강산무진』을 꼽을테다. -- 200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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