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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명을 찾아서 - 상 - 京城, 쇼우와 62년 ㅣ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13
복거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87년 3월
평점 :
복거일이란 이름은 일단 특이하다는 느낌부터 줍니다. 복씨가 드믄 성씨이기도 하지만 거일이라는 이름도 흔히 보기는 어려운 이름이니까요. 그의 소설은 '비명을 찾아서'는 그의 이름만큼이나 특이했습니다. 80년대 나온 소설 중 유일한 대체역사 소설이며(요즘에는 많이 나오죠. 애휴~), 대체역사 소설이면서도 섬짓하게 조선이 독립하지 못한 상황을 설정했습니다.(보통은 조선제국으로 가는데 말입니다.) 80년대라면 저는 아직 어려서 아무 것도 잘 모를 시절이었습니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올림픽과 유치원,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의 어렴풋한 기억 정도만이 저에게 남아있는 80년대 기억의 전부이죠. 우리나라에 있어서 80년대는 어두운 군부독재의 끝자락이었습니다. 통행금지가 풀리고, 민주화의 열망이 거리를 뒤덮었죠.
소설의 주인공인 히데요(영세)는 중견기업의 과장으로 쓰러져가는 기업을 살리기 위해 미국회사인 유사라무와 합작으로 새로운 회사를 설립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중에 있습니다. 일본 제국의 관동군(만주에 주둔한 군대) 출신인 그는 뛰어난 역량으로 합작투자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냅니다. 덕분에 부장으로 승진이 기대됐지만 역시 군 출신인 내지인(일본인)이 부장이 되고 맙니다. 히데요는 자신이 조선인이란 사실에 점점 침잠해 갑니다. 이런 반면 그는 시인이기도 합니다. 시인으로 첫 시집을 발표했으며 내지문단에 진출을 시도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의 시집은 조선문단에서 꽤 호평을 받습니다. 그리고 사랑까지... 여러가지가 맞물리는 가운데 히데요는 헌책방에서 조선고시가전이라는 책을 우연히 발견하고 비싼 값에 사들이게 됩니다. 그리고 덕분에 조선말이 있었다는 사실과 역사의 왜곡을 알아가기 시작합니다. 그의 장모님이 돌아가시고 화장을 하기 위해 간 절에서는 한 암자에 칩거하던 소공스님으로 부터 만해스님의 기록들을 이어받게 됩니다. 그리고 점점 더 깊이 조선의 시를 공부하게 됩니다. 합작투자를 성공시킨 덕분에 여러가지 사무를 처리하러 내지출장을 간 그는 일본의 한 대학해서 조선 관련 자료를 찾고 그를 공부하다가 조선으로 넘어오던 중 그 때문에 잡히고 맙니다.
'비명을 찾아서'의 내용은 이게 끝이 아닙니다. 그 와중에 내지대학에서 벌어지는 민주화 요구와 군부에 의한 쿠데타, 데모하던 학생의 죽음등은 소설이 쓰여지던 시절의 어두운 사회상을 우회적으로 표현합니다. 거기에 더해져 히데요의 정체성 혼란, 내지인과 조선인의 차별, 내지인의 우월감과 조선인의 열등감 등이 겹쳐져 나타납니다. 결국 소설은 히데요가 영세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과 사회비판, 만약에 라는 가정에서 시작된 대체역사의 현실, 무분별한 외래문화의 수용비판까지 표현합니다.
상당히 두껍고 분량이 많은 데도 분량인데도 불구하고 단숨에 읽힐 정도로 몰입도가 강한 소설입니다. 20여년전에 나온 소설인데도 불구하고 21세기를 살아가는 현재의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고 많은 소설입니다. 2004/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