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사업가 윤 모 씨(34.벤처 사업가)의 여자 친구는 22살 대학생이다. 서울 청담동 트렌드 리더인 윤 씨와 그의 친구들 사이에는 이렇게 10살 안팎의 나이 차이가 나는 여자친구를 만나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기혼자인 윤 씨는 "어린 여자를 만나는 게 유행"이라면서 "특히 최근 들어서 여대생을 포함, 어린 여자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10살 차이 나는 남자를 만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주로 20대 초반 여성과 30대 남성이 교제하는 케이스로 띠동갑(12살 차이) 정도의 나이 차이가 나는 커플을 일컫는 '띠커플'은 일종의 원조교제로 새로운 사회상을 반영하는 풍속도다.
청담동은 '띠커플'들의 주무대. 청담동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A 씨(36)는 "심하게 말하면 요즘 청담동 고급 식당과 와인바 등은 띠커플들 덕분에 목숨을 유지한다고 해도 과한 말이 아니다"라고 털어놨다. 극심한 불경기로 손님이 눈에 띄게 줄어든 청담동 고급 업소에서 그나마 돈을 써주는 사람들이 바로 '띠커플'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압구정.청담동에서 여전히 잘나간다는 P, O, L, W 레스토랑 등과 S, M 등 한우 전문점에서는 언제난 '띠커플'로 보이는 남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강남의 일부 특급 호텔도 '띠커플'이 영업에 큰 도움을 준다. 호텔 내 식당뿐 아니라 객실도 많이 이용하기 때문이다. 예약없이 찾아와 객실을 이용하는 손님을 호텔 용어로 워크인(walk-in) 게스트라고 하는데 강남의 메이저 호텔인 R과 I호텔을 비롯, 또다른 R, A 호텔, 강북의 H 호텔의 워크인 게스트 가운데 대부분을 '띠커플'이 차지한다는 것. 전직 R호텔 프런트 직원은 "강남의 호텔은 워크인 게스트를 위해 객실의 5% 정도는 예약을 받지 않고 남겨둔다"면서 "한눈에 '띠커플'로 보이는 남녀가 대부분이고, 개중에는 연예인들도 있다"고 밝혔다.
워크인 게스트는 단체 할인 등 할인율이 적용되지 않는 100% 요금을 내기 때문에 호텔로서는 환영 대상. '우아한 체면' 때문에 드러내지는 못하지만 워크인 게스트를 내심 환영하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라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띠커플'의 대유행은 사회 전반을 덮친 불경기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게 강남 젊은이들의 해석이다. 젊음과 미모를 가진 20대 초반 여성과 경제력을 갖춘 30대 남성이야말로 요즘같은 불경기에 딱 맞는 '환상의 궁합'이 아니냐는 것. 남성들이 사회생활을 통해 쌓은 세련된 매너, 풍부한 지식, 소비적인 고급 문화에 대한 이해 등도 나이 어린 여성들로 하여금 30대 남성을 찾게 하는 이유다.
'띠커플'인 한 서울시내 사립여대 학생(21)은 "나이 많은 오빠들이 듬직해서 좋다는 말은 '외부용 멘트'에 불과하다"고 여운을 남겼다.
▶ 돈은 기본·코드는 필수! '메트로 섹슈얼'적인 남성이 주류
재력있는 30대 남성이라고 해서 모두 '띠커플'을 꿈꿀 수 있는 건 아니다. 나이 어린 여성과 공유할 수 있는 코드를 가져야만 통한다. 대부분 '메트로섹슈얼'적인 소비형태를 가진 '뉴서티'들이 '띠커플'에 성공하는 30대 남성들이다.
'띠커플'을 이루고 있는 여성들은 특정 계층이나 직업군에 몰려 있지 않다. 대학생, 회사원 등 이른바 '멀쩡한' 여성들이 대다수. 대부분 청담동 식 라이프 스타일을 즐길 줄 아는 여성들이 많다.
이 밖에 유흥업소 종업원들도 '띠커플' 대열에 대거 합류해 있으나, 이는 속칭 '공사'(금전 및 물질적 후원을 얻어낸다는 뜻의 유흥업계 은어)를 위한 경우가 많다. 이들은 고급 레스토랑보다는 주로 고깃집에서 주로 발견된다.
이 밖에 최근에는 연상녀-연하남 커플도 일반적인 코드로 자리잡는 분위기. '띠커플'보다는 나이 차이가 적은 게 특징으로 2~5살 차이가 일반적이다. 데이트 비용은 보통 남녀가 나눠 부담한다. 3살 연하남과 교제하고 있는 회사원 K 씨(29)는 "요즘은 주변 여성들이 '실은 나도 시작했다'며 연하남과의 교제를 고백하는 일이 잦아졌다"면서 "여성들의 자기주장이 강해지면서 자칫 끌려다닐 수 있는 연상남보다 휘어잡기 편한 연하남을 선호하는 것 같다"고 최근 유행의 이유를 설명했다.
[일간스포츠 맹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