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아는 사람을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작년에 한창 이슈가 되었던 '루저' 발언에까지 이르렀다.
둘 다 '루저' 발언을 했던 여대생이 좀 경솔했던 건 사실이지만
그 뒤의 반응은 너무 지나치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난 그때 이러다 사람 하나 잡겠다 싶어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반응이 뜨거웠던 이유에 대해 그분이 재미있는 의견을 내놓았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남자들은 한번도 외모에서 그런 객관적인 기준(키 180센티라는)으로
평가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엄청난 문화적 충격을 받았을 거라는 것이다.
반대로 어릴 때부터 여자들은 줄곧 누군가와 비교되고 평가되는 데 익숙하단다.
미스코리아, 누가 예쁘네 못생겼네, 몸무게가 얼마네...등등.
그렇다 보니 웬만한 이야기는 들어도 그냥 듣고 흘리는 경지에 이르렀단다.
내가 보기엔 저렇게까지 난리를 칠 일이 아닌데
왜 저렇게 소송에 뭐에 주변에 일단 남자란 성별을 가진 사람이라면
저 사건에 심각한 반응을 보이는지 궁금했는데 그분의 말에 공감했다.
그런 거라면, 이해가 된다.
우리나라 남자들은 다섯 중 넷이 '나 정도면 괜찮지'라고 생각하는 데
여자들은 다섯 중에 셋은 '난 어딘가가 부족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그러니 '루저' 발언은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충만한 남자들에게 핵폭탄급의 충격이었을 것이다.
여태껏 객관적 기준과 관계 없이 '나 정도면'이라고 생각하며
여자들의 외모에 온갖 잣대를 들이대며 난리를 쳤는데
자신들도 그런 평가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 말이다.
그분은 앞으로 이런 사건이 좀더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남자들이 현실을 좀 파악했으면 하고 바랐다.
더불어 그런 일을 통해 여자들에 대해 좀더 신중하게 말할 수 있으면 더 좋겠고.
과연 어떻게 될지....
덧:
그후에 우연히 갔던 모임에서 또 루저 발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내가 그냥 말실수에 가까운데 인터넷에서 너무 과잉반응이라 놀랐다고 했더니
어떤 남자분이 '루저'가 영미권에선 얼마나 심각한 욕인지 아냐며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 단어의 의미를 잘 몰라서 심각성을 모른다고 했다.
외국 같으면 총 맞을 단어라며 흥분하는데 위의 대화가 생각났다.
어차피 단어 느낌을 모르는 우리나라에서 남자분 말은 의미가 없지만
벌써 몇 달이 지난 일인데도 여전히 남자들에겐 민감한 이야기구나 싶었다.
확실히 면역력을 좀 키울 필요는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