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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나크 사냥 ㅣ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결코 실망시키지 않는 작가.
요 1년 사이 일본 작가들의 소설을 많이 읽었는데 그중 유일하게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 작가가 바로 미야베 미유키다. 물론 모든 책이 다 훌륭한 건 아니지만 대부분이 책들이 마음에 들었고, 못해도 평작은 되었다는 말이다. 이번 책인 <스나크 사냥>은 나온 지가 1달 가까이 되었는데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 그것도 별생각 없이 집어들었다 그만 끝까지 다 읽고 말았다. 한번 잡으면 다 읽을 때까지 놓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 왜 그랬을까.
시작은 여느 소설이 다 그렇듯 평범하다. 제멋대로인 어린애 같은 성격의 게이코라는 여자가 잠시 소개되고 오리구치가 슈지에게 만남을 주선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이야기는 바로 결혼식장으로 이어진다. 게이코는 진심으로 사랑했던 고쿠부에게 이용당하고 버림 받았다는 것을 알고 그의 결혼식장에 총을 들고 숨어든다. 고쿠부의 동생인 노리코는 돈과 인맥을 얻기 위해 게이코를 버리고 부자집 딸과 결혼하는 오빠에게 혐오감을 느낀다. 한편에서는 오리구치가 자신의 목적을 위해 게이코의 총을 노리고 그녀의 아파트 근처에 숨어서 기다린다.
이 책에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이들의 행동이 교차한다. 게이코와 노리코, 슈지와 오리구치, 오리구치와 가미야, 고쿠부와 게이코 등등.
단 하룻밤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게 얽힌 사건이 숨가쁘게 진행된다.
겨우 사건 하나가 매듭지어졌나 생각하고 한숨을 돌리면 다른 곳에서 또다른 사건이 벌어지고 그게 또 마무리되나 싶으면 또 사건이 일어난다. 한마디로 시종일관 급박하게 사건이 돌아간다. 당연히 독자는 결과를 알기 위해 등장인물들의 행로를 숨가쁘게 따라갈 수밖에 없다. 나도 기다 클리닉에서 대단원의 막이 내릴 때까지 한순간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책 속에서 인용되는 루이스 캐롤의 <스나크 사냥>에 나오는 잡으면 그 사람이 사라지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처럼 등장인물들은 모두 괴물을 잡으려다 자신이 괴물이 되어버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읽으면서 지갑이 화자가 되는 <나는 지갑이다>를 잠시 떠올렸는데 비슷한 시기에 출간되어서 느낌이 비슷했나보다.
번역자와 해설과 편집자의 말 속에 미야베 미유키의 글은 어두운 가운데 한가닥 희망을 남긴다는 게 있었다.(어두움 속에 부드러움이던가) 어쩌면 내가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것도 그래서일지 모르겠다. 어지럽고 광폭한 사건들이 지나간 자리에 미약하지만 남아 있는 따스한 온기. 거기에서 안심하게 되나보다.
다른 책들도 빨리 번역되어 나왔으면 좋겠다.
덧: 미미 여사의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는 출판사의 강력한 주장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