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그늘에 앉아 보렴
--이기철
벚꽃 그늘 아래 잠시 생애를 벗어 놓아보렴
입던 옷, 신던 신발 벗어놓고
누구의 아비 누구의 남편도 벗어놓고
햇살처럼 쨍쨍한 맨몸으로 앉아보렴
직업도 이름도 벗어놓고
본적도 주소도 벗어놓고
구름처럼 하이얗게 벚꽃 그늘에 앉아보렴
그러면 늘 무겁고 불편한 오늘과
저당잡힌 내일이
새의 날개처럼 가벼워지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벚꽃그늘 아래 한 며칠
두근거리는 생애를 벗어놓아보렴
그리움도 서러움도 벗어놓고
바람처럼 잘 씻긴 알몸으로 앉아보렴
더 걸어야 닿는 집도
더 부서져야 완성되는 하루도
도전처럼 초조한 생각도
늘 가볍기만 한 적금통장도 벗어놓고
벚꽃그늘처럼 청정하게 앉아보렴
그러면 용서할 것도 용서받을 것도 없는
우리 삶
벌떼 잉잉거리는 벛꽃처럼
넉넉해지고 싱싱해짐을 알 것이다
그대 흐린 삶이 노래처럼 즐거워지길 원하거던
이미 벚꽃 스친 바람이 노래가 된
벚꽃 그늘로 오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