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진닷컴] (글=이동진) 이건 흡사 연기 귀신들의 전쟁터 같다. 당신은 여기서 호랑이와 사자가 좁은 우리에서 맞붙는 듯한 연기 배틀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우트’(Doubt-2월12일 개봉)가 올 아카데미상 4개 연기 부문 중 무려 3 군데에 후보를 올린 것도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 작품의 제목은 ‘의심’을 뜻하지만, 할리우드가 선사할 수 있는 최상급 연기들이 시종 지속되는 이 향연의 품질에 대해서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둬도 된다.






카톨릭 교구 학교의 수녀인 제임스(에이미 애덤스)는 플린 신부(필립 시무어 호프먼)와 12살 소년 도널드의 관계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제임스의 말을 듣고 플린 신부의 부적절한 처신을 확신한 교장 수녀 알로이시스(메릴 스트립)는 그를 쫓아낼 계획을 세운다. 알로이시스 수녀가 증거 하나 없이 자신을 거세게 몰아붙이자 플린 신부도 맞서기 시작한다.

이 영화에서 메릴 스트립은 조금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말하고 움직인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같은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듯 강인하고 냉정한 인물이야말로 스트립이 가장 잘 해낼 수 있는 배역이지만, ‘다우트’에서 그녀가 가장 감탄스러운 순간은 그 사이로 언뜻 약한 부분을 드러내거나 허를 찔리는 모습을 보여줄 때이다.

필립 시무어 호프먼은 아마도 가장 입체적으로 캐릭터를 만드는 배우 중 하나일 것이다. ‘천의 얼굴’이라는 고전적 표현으로 배우를 설명하고 싶을 때, ‘다우트’의 호프먼은 더없이 적절한 예가 될 것이다. 호프먼과 스트립이 격렬하게 대립하는 이 영화 클라이맥스의 에너지는 실로 굉장나다.

에이미 애덤스만큼 무구한 얼굴을 가진 성인 배우도 드물 것이다. 물러서지 않는 두 명의 강력한 인물 사이에서 삶 전체가 통째로 흔들리는 제임스 수녀 역의 애덤스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그리고 단 두 개의 신(앉아 있는 모습이 아주 짧게 삽입되는 신까지 포함하면 세 개의 신)에만 등장하지만 ‘장면을 훔치는 연기’가 어떤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바이올라 데이비스의 모습은 전기가 오를 지경이다.

물론 이 영화의 매력은 연기에만 있지 않다. 동명의 희곡을 쓰고 연출해 토니상까지 받은 존 패트릭 셰인리가 직접 메가폰을 잡은 이 작품은 우아하고 강렬하며 지적이다. (2006년에는 김혜자씨 주연으로 국내 연극 무대에 올려지기도 했다.) 장면과 장면, 캐릭터와 캐릭터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균형 감각이 탁월한 각본은 시나리오 지망생들이 교본으로 삼을 만 하다. 특정 사실을 직접적으로 지칭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에 대한 모든 것을 다룰 줄 아는 완곡 어법의 마법이 담긴 대사도 훌륭하다.

연극의 연장선상에서 이 작품을 파악하려 들기 쉽겠지만, ‘다우트’는 의외로 매우 영화적이다. 플린 신부가 설교 속 예화를 통해 반격할 때는 두 수녀의 클로즈업 쇼트가 정확한 타이밍으로 편집되어 공격의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한다. 알로이시스 수녀가 플린 신부 앞에서 처음으로 의혹을 암시할 때 그녀가 걷은 블라인드 커튼 사이로 내리 쬐는 빛은 그의 얼굴 위에 쏟아지며 코너에 몰린 자의 당혹감을 선명히 비춘다. 극이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달을 때는 거센 바람이 인물을 향해 낙엽을 날리며, 상황이 종료되었을 때에는 온통 눈에 뒤덮인 고요한 거리가 인서트된다. 인물들의 구도를 통해 심리를 말할 줄 아는 카메라는 시종 단아하고 정확하지만, 혼돈된 심리가 극에 달할 때는 사선의 앵글을 구사할 정도로 과감해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 치열한 이야기가 결말을 열어놓고 끝을 맺은 후 관객은 어떤 판정을 내려야 할까. 알로이시스 수녀와 플린 신부의 대결에서 어느 한 쪽이 선이거나 악인 것은 결코 아니다. 이것은 여자와 남자, 가지지 못한 자와 가진 자, 보수와 진보, 절대주의와 상대주의, 욕망과 금욕, 인간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견해와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총체적으로 격돌하게 된 상황에 대한 판단이다. 극장을 나서면서 당신이 자신만의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는 먼저 당신의 세계관 전체를 샅샅이 복기해봐야만 할 것이다. 아마도 그건 존 패트릭 셰인리가 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쓰게 된 가장 중요한 목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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