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진닷컴] (글=이동진) 실연한 혁진(송삼동)을 위로하기 위한 술자리에서 친구들은 다음날 강원도 정선으로 여행을 떠나자고 술김에 제안한다. 그러나 이튿날 혁진이 정선에 도착하고 보니 친구들은 자느라고 모두 서울에 남아 있는 상황. 홀로 펜션에 가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던 혁진은 옆방에 혼자 여행 온 여자를 발견하고서 와인 한 병을 들고 찾아간다.






기술적인 면으로만 보면 ‘낮술’(2월5일 개봉)은 독립영화 치고도 열악하고 보잘 것 없는 편이다. 조명을 하지 않아 실내 장면이 조악하고, 장면마다 사운드도 고르지 않다. 초점이 맞지 않는 쇼트가 자주 발견되는 촬영은 이 영화의 가장 큰 흠이다. 특별한 효과를 내는 것도 아닌데도 대화 장면에서 이미지 라인(카메라가 배우들을 찍을 때 전체 360도 중 절반인 180도 어느 한 쪽에서만 찍어야 한다는 규칙)을 지키지 않아서 관객에게 시각적 혼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편집은 기본적으로 감이 좋지만 마름질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고 종종 의도를 조급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연기자들도 대부분의 경우 아마추어에 가깝다.

하지만 이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이 모든 단점들에는 자연스레 눈을 감게 된다. 그건 관객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는 대단한 매력이 ‘낮술’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노영석 감독은 러닝 타임 내내 발군의 유머 감각과 뛰어난 캐릭터 조형술, 그리고 다음 이야기를 계속 궁금하게 만들 줄 아는 화술로 내내 객석을 즐겁게 해준다.

이 기발한 코미디의 웃음은 머리 속에서 비틀어 짜낸 꽉 찬 재담이 아니라, 생활의 주변에서 빈 곳을 찾아 여유롭게 찔러대는 유머라는 점에서 리듬이 뛰어나고 또 질리지 않는다. 불협화음을 일으키며 만나서 파열음을 내며 헤어지는 이 영화의 비루한 남자들과 수상한 여자들을 포함, 아마추어 배우가 연기한 단역 하나하나까지 잘 살려낸 인물 작법도 감탄스럽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란희’란 이름의 캐릭터는 당장 꿈에 나타날 정도로 강렬하고 기괴하며 흥미롭다.) 우연에 많이 기대긴 하지만, 오인과 오해와 억측 속에서 점점 황당해지는 이야기는 기본 동력이 워낙 강력하다.

‘낮술’만큼 술자리 장면이 많이 나오는 한국영화도 없을 것이다. (115분의 상영시간 동안 술 마시는 신은 모두 11차례나 나온다.) 이 작품 속 음주는 대화를 하기 위한 배경을 제공하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핵심적인 분위기를 형성하고 사건을 배태한다. (보고만 있어도 콩나물국 생각이 절로 날 정도다.) 술자리의 그 모든 실수와 과장, 약속하지 않는 유혹과 충족되지 않는 욕망이 부유하고 충돌하며 빚어내는 이 영화의 에피소드들은 한 걸음 떨어져서 지켜볼 수 밖에 없는 맨정신의 관객들에게 우스꽝스럽다 못해 기이하기까지 하다. (그러니 일부의 표현과 달리, 이 작품은 ‘술이 땡기는’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다음날 술자리를 취소하고 금주 선언을 하고 싶게 만드는 영화다.)

아울러 ‘낮술’은 남자라는 동물이 무엇을 기대하고 어떤 것을 못 참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제 그만 찌질해지고 집으로 돌아가고픈 ‘인간’과, 더한층 찌질해질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기어이 ‘소득’을 얻고 싶은 ‘수컷’ 사이에 선 ‘남자’의 딜레마가 여기에 있다. 인물의 행태나 이야기 전개 방식, 혹은 술과 연애가 엮인다는 점에서 홍상수 감독의 ‘생활의 발견’이나 ‘강원도의 힘’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겠지만, 작품의 온도나 지향점은 완전히 다르다. 이 영화 속 인물의 비루함이나 인물들 사이의 성적 긴장감은 귀여운 쪽에 훨씬 더 가깝다.

노영석 감독은 연출 외에도 각본 촬영 편집 미술 음악(삽입곡을 만들고 직접 노래도 불렀다)까지 혼자 도맡아 하며 데뷔전을 훌륭히 치러냈다. 제작비가 겨우 1000만원에 불과한 이 영화가 이토록 명확한 성과를 낸 것은 포기해도 될 것과 절대로 포기해선 안 되는 것을 그가 정확히 알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독립영화에 눌어붙은 갖가지 강박에서 자유로운 ‘낮술’이 만약 개봉 후 흥행에서까지 성공하면, 향후 제작될 장편 독립영화들의 밑그림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성공한다는 쪽에 걸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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