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작전명 발키리’ 감독 브라이언 싱어의 영웅


기사입력 2009-01-20 09:46



[이동진닷컴] (글=이동진) (이 기사는 1월19일자 <(1) ‘작전명 발키리’ 감독 브라이언 싱어가 서스펜스를 만드는 법> 제하의 인터뷰에 이어지는 후반부 내용입니다.)



1월18일 열린 '작전명 발키리' 내한 기자회견장에서의 브라이언 싱어 감독. (사진제공=이십세기 폭스 코리아)



-‘유주얼 서스펙트’와 ‘죽음보다 무서운 비밀’로 이름을 널리 알리기 시작한 감독님이 ‘엑스맨’ 시리즈를 만든다고 할 때 조금 의아했습니다. 만화를 원작으로 삼은 수퍼 히어로 영화는 감독님의 이전 작업과 비교할 때 무척이나 다른 분야처럼 느껴졌으니까요. 그런데 ‘엑스맨 1’과 ‘엑스맨 2’, 그리고 ‘수퍼맨 리턴즈’를 멋지게 성공시킴으로써 이젠 수퍼 히어로 장르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연상되는 연출자가 되셨죠. 그런데 이제 다시금 ‘작전명 발키리’를 통해 리얼리티를 중시하는 작품을 맡으셨습니다. 수퍼 히어로 장르의 영화를 만들 때와 이런 영화를 연출할 때의 자세는 어떻게 다릅니까.

“영화를 만들면 만들수록 책임감이 점점 더 커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유주얼 서스펙트’ 때는 크리스토퍼 맥커리씨가 쓴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영화화했지요. ‘죽음보다 무서운 비밀’은 스티븐 킹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지만 자유롭게 각색을 했어요. ‘엑스맨’을 포함한 수퍼 히어로 영화 3편은 이미 원작 만화를 통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온 주인공이 등장하는 작품이었죠. 그러다 보니 원작에 대해서 책임감이 자연스럽게 생기더군요. 그런데 이번에 ‘작전명 발키리’를 찍으면서 또 다른 종류의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특히 이 영화를 준비하기 위한 사전작업 때문에 독일에 갔을 때 독일 사람들에게 이게 얼마나 중요한 이야기인지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기에, 역사적 사실에 맞춰서 정확하게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처음엔 스릴러라서 관심을 많이 가졌던 게 사실인데, 관련 비화들을 알아갈수록 점점 더 실화에 대한 책임감이 커졌던 경우지요. 인물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고 스토리도 마음대로 붙일 수 있었던 ‘엑스맨’ 같은 영화와 달리, ‘작전명 발키리’는 실존했던 분들의 기록이나 사진 같은 자료들이 남아 있기에 더욱 조심스러웠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은 독일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영웅입니다. 그런데 배역에 깊이 몰입한 좋은 연기에도 불구하고 탐 크루즈씨가 슈타우펜베르크 대령 역을 맡았다는 것에 대해 제작 당시 독일에서 반대가 적지 않았습니다. 독일 정부가 촬영에 비협조적이었던 것을 포함해 촬영 당시 구설수가 적지 않았는데, 당시 이런 반응에 대해선 어떤 느낌이었습니까.

“저는 그런 문제에 대해서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분들은 이 영화를 아직 못 본 상황이었고, 우리가 영화를 어떻게 만드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비난했기 때문이죠. 제가 ‘엑스맨 1’을 찍을 때도 제작 과정에서 이런저런 비판들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이렇게 결론 내렸어요. ‘영화에 대한 평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보고 나서의 평이고 또 하나는 보기 전의 평이다. 영화를 보고 난 다음의 평은 받아들인다. 그러나 보기 전의 평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무엇에 대해서 비판하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비판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작전명 발키리’를 촬영할 때도 그런 보도를 전혀 읽어보지 않았습니다. 관심이 없기도 했지만, 일단 영화를 찍느라고 너무 바빴기에 보려고 했어도 볼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바로 직전에 만드신 ‘수퍼맨 리턴즈’와 ‘작전명 발키리’를 비교해 보면 장르상 차이점이 두드러져 보입니다. 한 편은 수퍼 히어로 영화고 또 한 편은 실화를 소재로 한 역사 영화니까요. 그렇지만 그런 외형상의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두 영화의 주인공은 결정적인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세상의 부조리에 맞서서 싸워나가는 고결한 영웅이라는 점이지요. 사실 이런 캐릭터는 감독님 이전 작품들의 주인공과는 좀 다르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엑스맨’ 시리즈까지의 작품들에서는 인물과 관련해 감춰진 비밀이 드러나거나 선악의 경계가 좀더 모호했던 데 비해, 최근 두 편은 훨씬 더 선과 악의 경계선이 명확하면서 주인공의 선한 의지가 강조되는 상황이니까요. 이런 차이는 단지 소재의 차이에 기인하는 건가요, 아니면 인간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감독님의 시선이 어느 정도 달라졌기 때문인가요.

“세상을 바라보는 제 시선이 달라졌다기보다는 스토리와 소재에 따라 다루는 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작전명 발키리’의 경우, 선과 악 사이의 애매모호함 보다는 주인공이 독일군 장교로서 근무하면서도 정신적으로는 상부에 반대할 수 밖에 없는 인간적 갈등이나 복잡성에 더 관심을 갖는 영화인 거죠. 제 아버지도 한국전 참전 용사이십니다. 아버지 역시 한국 땅에서 전투에 참여할 당시 개인적으로 느낀 어려움이 많으셨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군인이면서 한 인간으로서 느끼는 복잡한 심리에 초점을 두고 싶었던 거죠. ‘수퍼맨 리턴즈’나 ‘작전명 발키리’는 소재 자체가 분명한 대결 구도를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영화의 경우 히틀러가 그 대척점에 자리하고 있으니 더욱 명확히 대비되는 것이고요. 이 두 영화의 그런 특징과 관계 없이 저는 여전히 인간의 미묘한 속성이나 선악의 모호한 경계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수퍼맨 리턴즈’에서 수퍼맨은 “사람들은 영웅이 더 이상 필요 없다고 말하지만 내겐 영웅을 갈구하는 소리들이 너무나 많이 들린다”고 말합니다. 감독님은 최근 들어 영웅담을 계속 만들고 계신데, 현실에서도 영웅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무엇보다 사람들은 사람들을 필요로 합니다. 특히나 우러러보고 존경할 수 있는 사람들을 원하지요.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들조차 현실적으로 역할 모델로 삼거나 영감을 줄 수 있는 누군가를 원합니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뭔지 잘 알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잘 모른다고 할까요. 저는 영화를 통해서 그런 것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그 대사가 바로 그런 의미를 담고 있겠지요. 사람들이 원하는 것과 말하는 것은 다르니까요. 돈이나 사랑이 필요 없다고 호기롭게 말하는 사람도 실제로는 그런 것들을 갈구하고 있습니다. 말은 그렇게 하지 않아도 가슴 속에서는 비밀리에 갈구하는 게 있다는 것을 영화를 통해 표출하고 싶었습니다.”

-그렇다면 감독님 어린 시절의 영웅, 혹은 역할 모델은 누구셨습니까. 그리고 지금도 그런 분이 계신가요.

“제 개인적인 삶에서는 부모님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제 일에 대해서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을 역할 모델로 생각합니다.”

-함께 작업해보니 배우로서 탐 크루즈씨는 어땠습니까.

“매우 뛰어난 배우였습니다. 처음부터 제게 믿음을 주었고 저와의 호흡도 잘 맞았습니다. 어떠한 것이라도 기꺼이 해보려 하는 자세가 되어 있는 열린 배우죠. 그와 함께 이 영화를 만들면서 이런저런 의견을 나누다 보니, 흡사 대학 영화과 학생으로 처음 동료들과 함께 영화를 만들 때의 흥분이 다시 느껴지는 듯 하더군요. 그럴 땐 탐 크루즈가 대단한 스타라는 사실을 잠시 잊곤 하는데, 이후 영화를 찍을 때 연기하는 모습을 다시 보게 되면 ‘아, 저래서 저 사람이 그렇게 큰 배우가 되었구나’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되더라고요. 그는 영화를 정말로 사랑합니다.”

-탐 크루즈의 최고 연기는 어느 영화에 들어 있다고 보십니까. ‘작전명 발키리’는 제외하고요.(웃음)

“ ‘제리 맥과이어’가 아닐까요? 그의 출연작은 거의 다 봤는데, ‘제리 맥과이어’에서 연기가 정말 좋았죠. 초기작 중에서 ‘위험한 청춘’(Risky Business)도 무척 좋았습니다.”

-최근 들어서 할리우드는 대단히 뛰어난 영화들을 많이 내놓고 있습니다. 10여 년 전의 할리우드와 비교해 보면, 작품의 수준이 월등히 높아졌다고 할까요. 이런 일들이 어떻게 가능해졌다고 보십니까.

“역설적으로 말하면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점점 더 끔찍한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관객들이 그러한 할리우드의 주류 영화에 진력을 내고 다른 영화들을 찾아가니까, 그에 따라 다양한 좋은 영화들이 나오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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