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화점, 사랑이었는지 묻지 말아요
 


이견이 있을 수 있나. <쌍화점>의 진짜 주인공은 주진모가 연기하는 고려왕이다. 고려왕은 이 영화의 가장 강력한 원죄고 방아쇠다. 모든 갈등은 고려왕으로 인해 만들어지고 심화되며 해결된다. 왕 연기란 어려운 것이다. 어떻게 해도 전형적으로 보인다. 역할도 제한돼있다. 입체적으로 보이거나 체온이 드러난다는 일 따윈 너무나 어려운 노릇이다. 그럼에도 <쌍화점>의 고려왕은 많은 걸 내보인다. 속내도 보이고 갈등도 보이고 그로 인해 보는 사람 속을 까뒤집어 그것 참 아프게 만든다. 표정과 발성, 표현, 거의 모든 부분에서 주진모는 기대 이상의 모습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이 배우가 언제 이렇게 성장했을까. 훌륭한 연기다.

영화는 동성애자인 고려왕과 그가 사랑하는 호위무사 홍림의 이야기를 그린다. 원나라가 후사를 문제로 압력을 가해오자, 고려왕은 누구보다 아끼는 홍림을 왕후와 합방시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이후로 모든 것이 파국으로 치닫는다. 이야기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길 것도 없다. 게이인 줄 알았는데 바이잖아, 너 이 자식 나를 사랑하긴 했더란 말이냐, 그래도 다시 한 번 시작하면 안 될까, 정도랄까.

다시 한 번 시작하길 바라는 고려왕의 마음은 보는 이들의 지나간 기억들과 맞물려 많이 아프고 저리다. 망가져 갈라진 관계는 붙지 않는다. 인연의 끝은 냉정하다. 그것을 되돌리고 싶어 하는 모두의 마음은, 그 끝의 차가운 체온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 단면의 냉기를 인정하고 나면 함께했던 모든 날들이 거짓으로 남을 것 같기 때문이다. 고려왕의 분열적인 애증 또한 진심에 대한 회의감 탓이다. 우리 사이 감정의 척추가 사랑이었는지, 계급이었는지 회의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 묻거나 대답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몰라도 알 수밖에, 알아도 모를 수밖에 없는 그런 것이다. 그럼에도 대답을 요구함으로써, 고려왕은 파멸에 몸을 던진다. 홍림의 마지막 행동은 고려왕의 의심이 어리석은 것이었음을 반증한다. 하지만 고려왕은 그 진심을 영원히 알 수 없다. 언제나 그렇다. 이별이란, 우리 삶 꼭 그만큼이나 비극적이고 희극적이다. 허지웅 (<시사in> '캐릭터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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