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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 - 30년 동안 미처 하지 못했던 그러나 꼭 해 주고 싶은 이야기들
한성희 지음 / 갤리온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제부터인가 네 또래인 그들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모든 것을 다 잘하려고 애쓰지 말라고, 지금 불안하다면 인생을 잘살고 있다는 증거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이렇게 엄마의 당부는 시작한다. 결혼을 앞둔 딸, 결혼 후 손이 닿지 않는 외국으로 건너가는 딸을 생각하며 쓴 글이다. 한 글자 한 문장이 따뜻한 심리학 책이다. 결혼, 사랑, 일, 육아, 인간관계에 이르기까지 정신과 의사인 엄마는 그동안 만났던 딸 또래들을 떠올리며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온기가 넘치면서도 단호하기도 한 이 책을 읽으며 나도 결혼 전에 읽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실 사람들이 아무리 돈이 중요하고 조건이 첫째라고 해도, 마음속으로는 끈끈한 애정으로 결합된 관계를 원한다는 걸 나는 안다. 오늘날 사람들은 가정을 단순한 경제 공동체가 아닌 사랑과 우애로 맺어진 행복의 공동체로 생각한다. 옛날 사람들보다 욕심이 많은 것이다. 욕심이 많으면 그만큼 더 노력해야 한다. 경제 문제로 머리를 굴리는 만큼, 사랑도 가꾸고 보살펴야 하는 것이다.
결혼을 앞둔 사람들에게 딱 3일만 스스로 질문을 던지라고 말한다.
첫째 날에는 "이 남자와 대화가 되는가?"
둘째 날에도 "이 남자와 대화가 되는가?"
셋째 날에도 "이 남자와 대화가 되는가?"
철학자 니체는 "결혼할 때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라. 다 늙어서도 그와 대화를 잘할 수 있겠는가? 결혼에서 그 외의 것들은 다 일시적인 것들이다"라고 말했다. 결혼은 연애와 다르다. 연애가 하늘의 별도 달도 다 따 주고 싶은 달콤한 관계라면 결혼은 매일같이 해결해야 할 게 많은 파트너 관계다.
20대에게 결혼이란 함께 있고 싶음이다. 30, 40대에게 결혼은 생산의 개념이다. 아이를 낳고, 집을 마련하고, 재산을 쌓아가는 시기다. 50, 60대에게 결혼은 한 지붕 아래 두 살림이다. 둘이서 하나로 살았으니, 이제는 다시 나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면서 둘 사이의 심리적 거리를 유지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70, 80대에게 결혼 생활은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준비를 해 나가는 과정이다. 그때 배우자는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웰다잉의 파트너로서 존재한다. "내가 먼저 가면 이 사람 어떡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말이다.
심리학자 아얄라 말라크 파인스는 무의식에 의해 사랑을 선택하는 과정을 '무의식의 지혜로운 선택'이라고 표현했다. 어쩌면 무의식은 어린 시절 풀지 못한 마음의 문제를 이성과의 관계를 통해 다시 한 번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주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비록 힘들고 지난할지라도 이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고 해결하려고 노력한다면 우리는 인간으로서 눈부시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성장이 아닐까. 절대로 사랑에 대해 냉소적이 되지 마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입장에서 결혼이란 매일같이 해결해야 할 게 많은 파트너 관계라는 말에 절대적으로 공감한다.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여자들이 책임지고 있다. 연애와 다른 결혼. 나는 연애의 연장이 결혼인줄 알았고, 쉽게 대화가 되지 않는 남편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나도 딸이 생긴다면, 대화가 되는 남자와 결혼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엄마로서 먼저 걸은 길에 대해 알려주는 책에 푹 빠졌다. 심리학이라는 것이, 어떨 때는 위로만도 못하단 생각을 했던 나다. 실제적으로 해결되는 것이 없다면 학문으로서 무용한 것 아니냐고 무식한 소리를 했었다. 그런데 이 책은 심리학이라는 것이 삶의 길을 인도해주는 나침반 같은 것이라 이야기한다.
그랬기에 이 책을 펼치자마자 결혼에 관한 부분을 읽었던 것이 아닐까.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분을 해소하기 위한 어떤 방법을 찾고 싶었다. 욕심이 많다면, 노력해라. 어떤 노력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결혼이 어떻게 흘러가고 내가 왜 그런지, 이에 대해 안 것으로도 위로가 되고 길이 보이는 느낌이다.
일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를 나답게 만들어 주는 자기대상으로 삼는다면 오래도록 너에게 든든한 존재감과 성취를 가져다 줄 것이다. 그것만큼 인생에서 든든한 것도 없을 것이다.
늦은 나이에 그림을 시작한 중견 화가가 있다. 그는 아무리 지친 날이라도 캔버스에 점 하나라도 찍고서야 하루를 마감한다. 대작도 차근차근 찍은 점들이 모여 탄생하는 거라면서, 그는 자기가 쉼 없이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비결을 설명했다. 그 말을 들으니 우리의 인생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하루가 쌓여 인생이라는 작품을 이룬다. 그 인생의 그림에는 기쁨, 성공, 희망의 색깔뿐만 아니라 고통, 실패, 좌절의 색채도 가득하다. 그러나 멀리서 바라보면 모든 색깔이 조화를 이루어 한 폭의 작품이 된다.
어쩌면 거절당한 상대방이 서운해하거나 뒤에서 욕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면 소설가 김훈의 말을 기억하렴. "사람들이 작당해서 나를 욕할 때도 나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네놈들이 나를 욕한다고 해서 내가 훼손되는 게 아니고, 니들이 나를 칭찬한다고 해서 내가 거룩해지는 것도 아닐 거다. 그러니까 니들 마음대로 해 봐라. 니들에 의해서 훼손되거나 거룩해지는 일 없이 나는 나의 삶을 살겠다."
인생을 아름답게 조화롭게 꾸미는 것은 오늘 내가 어떤 점을 찍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결혼도, 일도, 육아도, 삶도 그러하다. 엄마가 그러했듯, 나도 잘 살게 될 것이다. 아름답게 인생이란 작품을 꾸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