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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 발상에서 좋은 문장까지
이승우 지음 / 마음산책 / 2006년 3월
평점 :
품절
아마 고2 때였을 것이다. 양귀자의 <천년의 사랑>을 읽고 '나도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에 크게 유행하던 소설이었는데, 하병무의 <남자의 향기>와 더불어 친구들 사이에 대인기였다. 건조하리만치 담담한 문체나 강약고저가 거의 없이 잔잔하게 흐르는 스토리는 전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었기에 금세 지루해 할 법도 한데, 나는 손에 잡은 책을 덮을 수가 없어 밤을 샜던 기억이다. 책을 다 읽었을 땐, 멍하게 한 30분을 앉아 있었던 것 같다.
처음으로 스토리가 소설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개성, 문체, 분위기, 호흡 등 소설의 매력을 결정짓는 것은 수 십 가지였다. 그리고 난 난생 처음으로 소설을 읽는 것 만이 아닌, 직접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통속적인 이야기를 특별하게, 낯선 소재를 친근감 있게, 자신만의 개성과 문체를 가지고 남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때는 생각만 하다가 접었는데, 얼마 전부터 다시 그런 생각 -이야기(소설)를 써보고 싶다는- 을 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좀 더 적극적으로 소설 창작에 대해 공부해보기로 했다. 마침 내가 읽으려고 적어둔 책 목록에 이승우의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가 있었다.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제목은 물론이요, 슬쩍 훑어본 내용이 마음에 들어서 읽으려고 찜 해둔건데 마침 잘 됐다 싶어 당장에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은 소설 쓰기에 대한 기본적인 자세와 마인드,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 우선 첫 부분에는 '이야기'가 삶에 미치는 중요성을 간략하게, 그러나 강렬하게 설파하고 있는데 이 일곱 장 남짓한 프롤로그 부분이 너무나 가슴깊이 와 닿아서 나는 금세 책 속에 빠져들었다. 저자는 '글을 잘 쓰려면 많이 읽고 많이 써야 한다'고 뭉뚱그려 말하지 않는다. 물론 그런 기본적인 이야기를 하긴 하지만 좀 더 친절하게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설명하고 있는데, 그 방법 중 하나로 '느리게 읽기'를 권한다. 정보나 지식을 습득하기 위함이라면 속독이 좋을 지 모르나 소설을 쓰는 사람에게는 속독은 그다지 권할 만한 방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꼼꼼하게 천천히, 문장 하나, 단어 하나, 심지어 문장 부호 하나에 집중하는 책 읽기를 통해 그 소설을 쓴 작가를 만나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좋은 소설을 쓰는 방법을 직접 몸으로 배우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소설을 쓰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불쑥 든다. 짧은 감상글을 쓰는 사람에게도, 분석 내지 비평글을 쓰는 사람에게도, 이 방법은 꽤 유효할 것 같다. 다른 사람의 좋은 글을 꼼꼼히 읽는 것은 그저 이해만 하는 것과는 다른 느낌일 것이다. 그에 따른 결과도 다를 것이고.
이 밖에도 책은 발상에서 설계, 인물 설정, 좋은 문장에 이르기까지 소설 창작의 방법적 측면을 조곤조곤 설명하고 있다. 몇몇 소설들의 문장을 인용하는 세심함은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된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기본적으로 소설가로서의 자세와 마인드가 가장 중요하다고 일침을 놓는다. 소설을 쓰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진 요즘, 그 현상은 환영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그런 사람들 가운데 (기본 중의 기본인)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다고 한다. 독자는 싫고 바로 작가가 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심지어 소설 창작의 방법을 몇 개월 학원 다녀서 딸 수 있는 자격증 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더 심각한 일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소설 쓰기는 테크닉이 아니다. 배워야 할 것은 기술이 아니라 정신이고, 방법이 아니라 태도이다.'라고 저자는 힘주어 말하고 있다.
'소설가로서의 자세(의식)가 소설쓰기(기술)에 앞서야 한다'는 저자의 말이 어쩌면 진부하고 고리타분 할 지도 모르지만 소설 창작에 입문한지 얼마 안된 사람이라면, 혹은 아직도 소설 창작에 있어 많이 헤매고 있다면, 이 책은 앞으로의 길을 밝혀주는 등불이 되어 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다. 덧붙이자면, 저자가 소설가로서 얼마나 커다란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는지도 엿볼 수 있어 좋았다. 그때문인지 몰라도 '소설쓰기'가 생각한 것 보다 훨씬 어려워 보여 조금 주눅이 들기도 했지만 한번 쯤 도전해 보고 싶은 투지가 생겼달까. 동기부여에도 한 몫하다니, 이 책 어쩌면 단순한 창작론 그 이상의 책일지도 모르겠다.
덧) 내가 별 하나를 뺀 것은 순전히 독자로서의 욕심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 좋은 내용이 고작 170여 페이지라니... 좀 더 많이 알려주어도 좋은데 말야; 하긴 중요한 건 다 알려주었으니 여기서 더 덧붙이는 건 오히려 페이지 수 늘리기 밖에 안 될지도 모르지. ...그래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네,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