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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한 초콜릿
미리암 프레슬러 지음, 정지현 옮김 / 낭기열라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여러모로 모범적이고 반듯하게 보이는 아이에게도 나름대로의 고민은 있기 마련이다. 하물며 감수성 예민한 10대라면? 그 고민때문에 밤을 지새우기도 한다. 뚱뚱한 에바는 아무리 감추려 해도 감춰지지 않는 '살'이 콤플렉스다. 보여지는 모습에 자신을 잃은 에바는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이 싫고 어울려 잡담하는 것도 싫다. 몰래 만들어 놓은 '자기 구석'에서 혼자 있기를 좋아하지만 머릿속은 늘 복잡하다.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신경이 쓰이고, 나만의 친구라 생각했던 카롤라가 다른 아이와 웃고 떠드는게 싫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럴수록 귀는 더욱 쫑긋해져서 자신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데도 괜히 비약하게 되고 마는 것이다. 집에가면 아빠는 늘 권위적이고 엄마는 그런 아빠에게 군소리 없이 맞춰준다. 동생은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에바는 그 모든 것이 싫다. 그렇게 팽배해진 열등감과 불만은 점점 에바를 구석으로 몰아 넣는다.
다이어트를 결심하는 건 순간이다.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버터를 잔뜩 바른 마지막 식빵 하나를 입속에 구겨넣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마는 것이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정신없이 음식을 탐하던 자신을 발견한 순간, 에바는 깜짝 놀란다. 먹는 동안 한없이 기뻤던 마음이 이내 우울해져서 눈에서 눈물이 툭 떨어진다. 이런 자신이 싫다. 끊임없이 결심하고, 금세 허물어뜨리는 자신이 원망스럽다. 누군가가 '의지박약'이라고 비난해도 할 말은 없다. 원래 이렇게 생겨먹은 걸 어쩌란 말이야. 배부른 속이 불편해진다.
외모 콤플렉스에서 오는 강도 높은 스트레스, 그로 인한 자학이 정점에 다다를 때쯤 에바는 미헬이라는 한 소년을 만나게 되는데, 결국 그와의 있었던 일들이 에바의 내적 문제를 털어버리게 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고를 전환하게 해주는 버튼 역할이랄까. 자신이 뚱뚱해서 멀어졌다고 생각했던 친구 카롤라, 자신과는 다른 세상 사람 같았던 아이들, 사사건건 자신을 구속하려는 아빠에 대한 생각이 바뀌면서 에바는 소통의 즐거움을 발견하게 된다. 그저 눈으로만 보고 판단했던 것들을 직접 피부로 경험하면서 점점 웃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남에게는 있고 나에게는 없었던 것들보다, 나만 가지고 있는 좋은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에바. 알고보니 자신은 뚱뚱한 에바가 아니라 조금 통통한 에바였고, 외톨이가 아니라 좋은 친구를 가진 행복한 소녀였던 것이다. 이제 에바는 옷을 살 때마다 친구와 함께 즐겁게 쇼핑을 할 것이고, 어두운색 옷이 아니라 밝은 색 옷을 입게 될 것이다. 우울하거나 힘이 들 때마다 엄마가 주신 초콜릿을 씁쓸하게 녹여먹는게 아니라 초콜릿 그 자체의 달콤함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생각의 전환은 눈에 낀 커다란 눈곱을 떼어내는 기분이다. 갑갑하고 흐릿하니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세상을 깨끗한 시야에 담아내는 기분. 사실 손으로 스윽 한번 문지르면 없어질 것을, 방법을 모른탓에 눈곱을 붙이고 살았던 건지도 모른다. 성장소설은 이래서 좋다. 알고보면 싱겁거나 유치한 고민들을 같이 고민해주고 생각을 환기시킬 수 있게 해 주니까. 이것은 타장르에는 없는 독특한 즐거움이다. 10대들의 고민을 일련의 사건을 통해 들여다 보는 것은 다시 한번 그 때로 돌아가볼 수 있는 '타임머신'같아서 좋다. 책을 읽다보면 나의 그 시절이 생각나서 슬며시 웃게되는데, 이것은 아마 이미 경험한 자로서 내보이는 여유같은 것이겠지? 한번쯤 주위를 돌아볼 수 있게 해 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