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틸다 (양장) - 로알드 달 베스트
로알드 달 지음, 퀸틴 블레이크 그림, 김난령 옮김 / 시공주니어 / 2004년 2월
평점 :
절판
굉장한 독서광인 마틸다는 총명하기까지 해서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혼자서 글을 깨우치고 수에 대한 감각을 익힌다. 이른바 '천재소녀 마틸다!' 탁월한 지능으로 주변 사람들을 깜짝깜짝 놀라게 하지만 정작 그녀를 아끼고 돌봐야 할 부모는 그런 마틸다를 '별난 아이'라 치부하며 무시한다. 교육에 관심을 기울이기는 커녕, 책을 사달라는 아이에게 '집에 TV가 있는데 그깟 책이 무슨 소용이냐'며 호통을 치고, 5살도 채 안된 아이를 내버려두고 놀러다니는 일이 일상다반사다.
어릴때 '천재'나 '영재' 소리를 무수히 듣던 아이도 제대로 된 교육이 뒷받침 되어주지 않으면 점점 그 능력이 퇴화돼서 어른으로 성장했을때 일반인과 별반 다를바가 없다는 연구결과가 있다지. 그런데도 마틸다의 부모는 영 자식에게 관심이 없는지라 선생님이 찾아와서 교육상담을 하는데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순간 '아니 이렇게 사랑스럽고 지혜로운 딸내미를 두고도 그 진가를 못 알아보는 부모는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인간이야.'라는 생각이 들어 울컥하는데, 그거 참느라 좀 고생 했다. 후우-후우- 심호흡. 아이 키우기 힘들다는 거 알지만 그래도 제 배아파 낳은 아이라면 최소한의 그들의 얘기를 들어줄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도 부모로서의 권위와 체면은 있어서 아이 앞에서 '나 잘났네' 뻐기는 꼴을 보고 있자니 열 받아서 원. 과보호와 과다교육도 문제지만 무관심과 방치는 더욱 안 좋은데 말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교장선생님인 '트런치불'인데... 뭐 긴 말 않겠다. 이 책에서 가장 악질적인 캐릭터라 보면 된다. <마틸다>는 철저히 아이들의 눈으로 보는 어른들의 세계를 묘사하고 있는데 '트런치불'교장 선생님은 <개구리 왕눈이>의 '투투'나 <개구쟁이 스머프>의 '가가멜'에 비견된다 할 수 있겠다. 군림하기 좋아하고 애들을 못잡아 먹어서 안달이니까... 덩치는 또 좀 큰가. 힘은 또 어떻고. 전직 '해머던지기' 국가대표였다니 말 다했지. 그 실력을 십분 발휘하여 툭하면 아이들을 휙휙 돌려 창문밖으로 집어던지니 이쯤되면 이게 동화인지 공포물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물론 마틸다 외 아이들이 순순히 당하고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끔은 깜찍한(..과연;) 반란을 일으키며 부모님과 교장 선생님께 '복수'를 하기도 하는데, 이 책을 읽는 사람이 그들 또래의 아이들이라면 상당히 통쾌함을 느낄 것이다. 나조차도 '쌤통이다!'라는 생각이 드니까. 바보같은 어른들은 아이들을 마음으로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가끔 그들은 태어날때부터 어른인 것처럼 착각에 빠진다. 분명 그들에게도 아이였던 시절이 있을텐데...
그렇다고 <마틸다>에 이런 갈등관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진심으로 아이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재능을 일깨워주는 사람도 있다. 바로 하니 선생님. 그녀는 아이와 어른의 소통자로 그들의 입장을 대변해주기도 하는데 마틸다에게는 안식처 같은 존재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하니 선생님이 마틸다를 대할때의 태도이다. 어른으로서 아이를 대하는 게 아니라 친구같은 태도로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 집으로 초대한 아이에게 마냥 어린아이 대접을 하는게 아니라 '좀 도와주겠니?'할 때,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듯 자신의 과거를 얘기할 때, 그런 모습이 참 좋다. 그런게 바로 눈높이 교육이 아닐까.
로알드 달은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 그랬던 것처럼 <마틸다>에서도 약간의 판타지적 요소를 가미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 마틸다가 눈으로 사물을 움직인다던지 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야기의 진행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 초능력은 마지막 클라이막스에서 카타르시스를 체험하게 한다. 악질 캐릭터의 개과천선 여부를 보여주지는 않지만 잘못된 행동의 결과를 보여주며 독자에게 상상의 여지를 남겨두는 것도 여전히 매력적이다. 전체 이야기가 끝난 것이 아니라 에피소드 하나가 끝난 것 같은 느낌. 그 뒤에 이어질 마틸다와 하니 선생님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도 책을 읽는 것 만큼 즐거운 일이다. 로알드 달의 동화가 왜 '어른이 아이에게 읽혀주고 싶은 동화'가 아니라 '진정으로 아이들이 읽고 싶어하는 동화'인지 알 수 있었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