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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아직도 복받쳐 오르는 그 어떤 것 때문에 목이 메이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어쩔 줄을 모르고 있다. 방금전에 세수를 하고 코를 풀고 겨우 진정을 했나 싶었는데, 막상 글을 쓰려고 보니 또 가슴이 미어진다. 어떤 말 부터 꺼내야 할 지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너무 많이 울고 난 다음에는 항상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고, 괜히 멍해진다. 눈물에 섞여 나를 지탱해 줄 힘도 조금씩 빠져나갔나보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그렇게 묘한 후유증을 남겨주는 책이었다. 앞으로도 가끔씩 나타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제목이랑 조금 안어울리지만 이 책이 사형수에 관한, 혹은 사형제도에 관한 이야기란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읽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그런 류의 소재는 왠지모를 불편한 감동을 가져오게 마련이다. 게다가 소설이므로 분명히 사형제도를 옹호하는 입장은 아닐꺼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평소에 '사형제도를 고수하자'쪽에 손을 들어주고 있는 나의 입장과 대립될 게 뻔하고 종국에는 내가 가진 가치관에 혼란이 올게 뻔했다. 그래서 읽고 싶어도 읽기를 거부해 왔다. 그러나 우습게도 나는 이 책을 찾아 읽게됐고, 이 밤에 누가 들을까봐 소리죽여 우느라 안간힘을 쓰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눈물은 물론이고 콧물까지 말썽이어서 그것 해결하며 보느라 다 읽고 나니 코가 다 헐어 있을 정도였다.;;
우려하던대로 나는 지금 '사형제도, 과연 필요한가?'라는 물음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혼란에 빠져있다. 이것은 7~8년전쯤 '남자의 향기'라는 소설을 읽고 느꼈던 그것보다 훨씬 복잡한 것이다. '과연 인간이 인간의 죄를 처벌할 수 있는 것일까?'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비록 죄수라 할지라도 자기가 하지 않은 일에 대한 누명을 쓰고 죽는 일만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에 몇 안되는 사형제도 유지국가로서 그 체면(?)을 유지하려면 적어도 제대로 된 수사와 재판은 확실히 해야하지 않을까?
눈 앞의 '사실'은 눈에 보여지는 것일뿐 그것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책에서도 말하듯 누군가 어떤사람을 죽이려고 칼로 찔렀는데 하필 그의 목을 감고 있던 밧줄을 잘라서 그가 살아나온 경우와 누군가 어떤 사람의 목을 감고 있는 밧줄을 자르려고 했는데 그 사람의 목을 찔러버리는 경우... 앞의 사람은 상장을 받고 뒤의 사람은 처형을 당하게 된다. 행위자의 의도는 전혀 다른데도 불구하고 보는 사람은 행위의 결과만을 두고 판단하게 되버리는 것이다. 그야말로 아이러니! 아아..점점 더 모르겠다. 과연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 .
그러나 틀림없는 것은 내가 이 책을 너무도 경건하게 봤다는 것이며 중반부터는 내가 바라는 결말이 아닐까봐(혹은 누군가가 슬퍼질까봐) 떨려서 책장을 넘기는게 두려웠을 정도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드러나는 사건의 진실이, 그리고 그가 겪었던 모든 것이 얼마나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것인지 알게 된 순간 목이 턱-하고 막히는 것 같았다. 잠시 숨을 고르면서 나도모르게 기도란 걸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조금 당황스러웠다. 아무래도 좋다. 제목처럼 그들이 행복한 시간을 가질 수만 있다면. . . 그럴수만 있다면 정말 좋겠다. 하긴 이미 가졌는지도 모르지만. . .
+ 기억에 남는 구절 +
. . .위선을 행한다는 것은 적어도 선한게 뭔지 감은 잡고 있는 거야. 깊은 내면에서 그들은 자기들이 보여지는 것만큼 훌륭하지 못하다는 걸 알아. 의식하든 안 하든 말이야. 죽는 날까지 자기 자신 이외에 아무에게도 자기가 위선자라는 걸 들키지 않으면 그건 성공한 인생이라고도 생각해. (중략) 정말 싫어하는 사람은 위악을 떠는 사람들이야. 그들은 남에게 악한 짓을 하면서 실은 자기네들이 실은 어느정도 선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위악을 떠는 그 순간에도 남들이 실은 자기들의 속마음이 착하다는 것을 알아주기를 바래. 그 사람들은 실은 위선자들보다 더 교만하고 더 가엾어. . .
------158p 모니카 고모가 유정에게 하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