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당신의 드라마다 - Heroine 김윤진의 할리우드 도전기
김윤진 지음 / 해냄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 7월 초에 읽은 책 ::

내가 느낀 김윤진의 이미지는 어떠냐면, 널리 알려진 '쉬리'의 여전사 이미지 보다는, 드라마 '예감'에서의 커리어우먼 이미지가 더 강했다. 97년에 방영한 미니시리즈 '예감'은 당시 굉장한 인기 드라마였고, 나 역시 꼬박꼬박 시청했던 드라마 중 하나였는데, 내용은 여자 주인공(이혜영)의 성공스토리와 사랑이야기다. 지금이야 그런 스토리가 흔하지만 그때에는 여주인공을 (거의) 원톱으로 내세운 드라마가 별로 없을 때여서 굉장히 신선했었다. 가장 선명하게 기억나는 장면을 꼽으라면 단연 이혜영이 죽자사자 뛰어다니는 모습이다. 드라마 한 회당 평균 15~20분은 뛰는 장면이었던 것 같다. 당시엔 고군분투하는 여성의 사회생활을 '진짜 발로 뛰어다니는 모습'으로 밖에 표현할 수 없었던 걸까.;;; 암튼 이 역동적(?)인 화면들 속에 잠깐씩 등장하는 '김윤진'은 밑바닥에서 치고 올라오는 이혜영과 반대로 이미 어느 정도의 커리어를 쌓은 인물로 잡지식 표현대로라면 '쿨하고 시크한 전문직 여성'의 대표적인 모습이었다. 직함도 무려 '실장님'. (우리나라 드라마계에서 '실장님'의 위치를 생각해보면 이미지가 바로 그려진다.-_-;) 한 마디로 김윤진은 여성들의 선망의 대상으로 묘사되고 있었는데, 아닌게 아니라 초반에는 꽤 멋있게 나왔다. 후반부에 질투에 눈이 먼 못된 마녀 캐릭터로 전락해서 아쉬웠지만; 하여간 그 전까지는 주인공이 동경의 대상으로 삼을 만큼 멋진 인물이어서 약간의 호감을 가졌더랬다. 첫인상이 그래서일까? 나는 '실제 김윤진도 장실장님 이미지일 것 같아!'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해오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지난 달 말에 김윤진이 출연한 모 토크쇼를 보게 되었다. '로스트' 촬영으로 인해 까맣게 탄 피부에 발그레한 얼굴로 시종일관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잘 나가는 대스타답지 않은 소탈한 면모와 말투, 딱딱하진 않지만 똑 부러지는 생각과 편안한 여유를 가지고 있었다. 연륜에서 오는 푸근함도 좋았고, 대범하고 낙관적인 성격도 무척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그녀가 현재까지 이루어 온 커리어까지 더 해지니 플러스 알파가 되고도 남는다. 와, 정말 멋진데!?

김윤진의 책이 나온다고 했을 때, 나는 기대와 실망을 동시에 했다. 기대는 '오오, 그럼 할리우드 도전기를 생생하게 엿볼 수 있는 거야?' 하는 마음에서였고, 실망은 '과연 뜨긴 떴군! 책 내는 것 보니… 근데 좀 성급한 거 아닌가?' 하는 약간 회의적인 생각에서였다. 그래도 [세상이 당신의 드라마다]라는 제목 하나는 참 마음에 들더라. 세상이 나의 드라마라니… 아, 뭔가 로맨틱하고 격정적이다. 나는 '드라마'라는 말을 좋아한다. 흔하디 흔한 일상이 특별함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왠지 모를 짜릿한 흥분이 느껴지는 단어다. 그런 드라마를 세상을 무대로 펼친단다. 일단 읽어봐야겠다.

부제가 'Heroine 김윤진의 할리우드 도전기'이다. 그런 만큼 할리우드 진출을 결심한 때부터 지금의 위치에 오르기까지의 이야기가 중심을 이룬다. 알려져 있다시피 김윤진은 2002년 '밀애'로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배우로서 정상을 경험한 그 때에 더 높은 곳을 향해 발을 내딛었다. '그게 뭐? 그게 그렇게 대단한 거야?'라고 할 수도 있는데, 내가 보기엔 이거 엄청 대단해 보인다.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이면 그 이후의 배우 활동은 거의 '탄탄대로'이지 않나. 다음 영화들이 줄줄이 망하지 않는 이상 지금까지보다 쉽게 걸을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캐스팅도 잘 될테고 말이다. 실제로 김윤진이 "저 할리우드로 진출하고 싶어요."라고 말했을 때, 매니저와 소속사의 반응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이 시나리오가 가장 많이 들어오는 타이밍인데 미국 진출이라뇨? 미국 가면 회사에서는 아무 도움도 줄 수가 없어요. 혼자 가서 무조건 시작한다는 건 맨땅에 헤딩하는 거라구!" 그래도 김윤진은 밀어부쳤단다. 지금 아니면 어린 시절의 꿈이었던 할리우드 문은 평생 두드리지도 못할 것 같다고, 지금처럼 배우로서 가장 인정받고 있을 때가 기회이고, 이 자신감과 믿음이 깨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다며 도전은 지금이어야 한다고, 도와달라고 했단다.

이와 관련한 에피소드에서 '펜던트 이야기'가 나오는데, 나는 이게 굉장히 마음에 와닿았다. 99년 '쉬리' 이후, 한창 바쁘게 일할 때 선물 받은 펜던트가 있었는데, 그 안에 짧은 메모를 적어두었단다. '3년, 정상, 그리고 돈. - 1999년 11월 3일 2:39am.' 한국에서의 바쁜 생활에 할리우드 도전을 포기하게 될까봐 두려워서 적어놓은 소원이라고 한다. 그 후, 그녀는 정말 열심히 일했고, 딱 3년이 되는 2002년 겨울, 청룡영화게 여우주연상을 타면서 목표를 달성했다. 한동안 잊고 지내던 펜던트를 청소하면서 찾아낸 후, 그 안에 적힌 소원을 다시 보게 되면서 거부할 수 없는 징조 같은 것을 느꼈다고 했다. 그리고 새로운 목표를 적어 넣은 후, 도전하기로 마음 먹었단다. '할리우드 정상, 결혼, 행복'

물론 실제보다 다소 미화되어 보이기도 하지만, 나는 이 이야기에서 김윤진의 열망이 느껴져서 좋았다. 어린 시절 부모님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서 그 곳 브로드웨이에서 경험을 쌓으며 연기자의 꿈을 키운 김윤진에게 할리우드는 단순한 동경의 대상을 넘어서는 것일테지. 그걸 잊지 않고 찾아가는 모습에 괜히 내 마음이 찡하다. '레터맨 쇼' 출연 당시의 에피소드에도 나오는데, 대학시절 그 스튜디오 근처에 살던 그녀는 그 곳을 바라보면서 '나도 언젠가는 저기에 출연할거야!'라는 꿈을 꾸었단다. 그래서 그 꿈이 이루어졌을 때의 흥분은 말도 못할 정도였다고. 그러고 보면 그녀가 두 번째로 펜던트에 적어 넣은 소원도 점점 이루어져 가고 있는 것 같다. '소원 메모'가 마법의 주문이라도 되는 걸까? 언제나 그렇지만 꿈을 실현해 가는 사람들을 보면 반짝임이 느껴진다. 그와 동시에 보는 사람의 자극도 이끌어내지. 나도 꿈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이 밖에도 책에는 할리우드로 진출하면서 겪은 크고 작은 사건들, 그때 그때 느꼈던 감정들과 생각이 씌어져 있는데, 특히 할리우드 진출 초반에 '구안와사'로 고생한 경험담이라든가, 이름 때문에 겪은 에피소드, 적지 않은 나이와 동양인이라는 단점을 어떻게 극복했는지에 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로스트  관련 이야기를 중심으로 미국 연예계가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부터 그 곳의 드라마 제작 구조, 배우 캐스팅, 촬영 현장 이야기까지 내게는 전체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라 재미있게 읽었다. 무엇보다 문장 호흡이 짧고 꾸밈이 없는 편한 글들이라 마치 지인의 경험담을 듣는 것 같아 즐거웠다. 간간히 실려있는 사진들 때문에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도 들고. 하여간 마음에 든다.

위에서도 얘기 했지만 꿈이 있는 사람은 참 아름다워 보인다. 그래서 묵묵하게 목표를 향해 한발짝 한발짝 나아가는 그녀의 모습이 보기 좋다. 앞으로도 이런 좋은 모습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문득 영화 '귀여운 여인'의 마지막 나레이션이 생각난다.

할리우드로 오세요.
여러분의 꿈은 뭔가요?
모두 할리우드로 오세요.
여기는 꿈의 전당 할리우드!
꿈이 실현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하죠.
하지만 이 곳은 할리우드.
계속 꿈을 꾸세요.
시간은 충분하니
계속 꿈을 꾸세요..

그래, 꿈 꿀 시간은 충분하다.
필요한 건 용기와 도전, 그리고 노력 뿐!
나도 언젠가 멋지게 펼쳐질 나의 드라마를 꿈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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