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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조와 박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8월
평점 :
항간에 ‘히가시노 게이고’가 사실은 한 명이 아니라 히, 가, 시, 노, 게, 이, 고 이렇게 7명의 작가 집단이라는 말이 인터넷에 떠돌았다. 워낙 다작하는데다 매 작품마다 일정 수준의 퀄리티를 유지했기 때문에, 그걸 한 명이 그렇게 빠른 속도로 공장에서 찍어내듯이 작품 하나를 뚝딱 만들어 내는 걸 믿기 어려워서 나온 우스갯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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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우스갯소리를 마냥 웃어넘길 수가 없는 게,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이 우리 나라에 처음 번역돼 나올 무렵 나는 그의 작품을 죄다 섭렵하던 백수였는데 작품 나오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읽는 속도가 따라갈 수가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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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에 출간된 옛 소설이 번역되어 나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새 작품도 깜짝 놀랄 정도로 자주 출간되어서 조금만 게을러지면 읽을 작품이 밀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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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도장깨기 하듯이 읽어대다가 어느 순간 ‘내가 졌다;’하는 심정이 되어 포기. 그게 아니더라도 쏟아져나오는 일본미스터리소설에 질린 참이기도 해서 그 후로는 몇몇 작품 빼고는 일본 추리물은 안 읽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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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몇 년 전에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고
이 양반 아직 건재하네 싶었는데, 작품의 스타일이나 분위기는 많이 바뀌었단 느낌을 받았다. 소설이 너무 말랑하고 따뜻했단 말이지.(심지어 울기도 했음.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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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백조와 박쥐’는 히가시노 게이고 데뷔 35주년 특별작이란 타이틀을 달고 대문짝 만하게 홍보를 하길래 오랜만에 읽은 작품 되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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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히가시노 3대작이라고 생각하는 작품이
•백야행, ⠀
•용의자 x의 헌신⠀
•악의⠀
인데,
솔직히 말하면 ‘백조와 박쥐’가 위 세 작품의 재미를 넘어선다고는 말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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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히가시노는 범죄 트릭을 극적 요소로 굉장히 잘 버무릴 줄 아는 작가고, 그것 때문에 읽는 내내 긴장감을 놓지 않게 하는 작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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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 작품은 애초에 의도하는 바가 다른 데 있다. 극적 긴장감보다는 히가시노가 전하고 싶은 주제의식에 대해 독자가 끊임없이 생각해보길 바라고 숙제를 던져주는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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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에 대한 진실이 중요한가 vs 처벌이 중요한가.⠀
✔️선의는 과연 언제나 옳은 일인가.⠀
✔️모두가 공정함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그 과정에서의 맹점은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피해자 혹은 가해자의 가족들에게 가해지는 매체의 무신경하고도 질기게 물어뜯는 취재와 대중들의 과도한 재단은 혹시 21세기의 새로운 연좌제는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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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등… 생각하고 토론할 거리가 제법 있는 작품이었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사건해결의 짜릿함보다는 숙연해지는 기분. 하나하나 파고 들어가면 한없이 진중해지는 주제들이기에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다 읽고나니 미뤄두었던 그의 작품을 좀 더 봐볼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작품이 많으니 고르는 재미도 상당할 듯. 집에 사두고 안 읽은 것부터 클리어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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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엉뚱하게도 이 책 읽으면서 여기 나오는 먹거리에 어찌나 관심이 가던지. 특별한 음식이 나오는 건 아닌데, 희한하게 먹고 싶어지대. >_< 책 속에 여러 일본 지명이 나오는데, 읽으면서 구글맵으로 일일이 찾으면서 봤더니 극중 인물 돼서 탐정수사 하는 것 같아 재밌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