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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쓸모 - 자유롭고 떳떳한 삶을 위한 22가지 통찰
최태성 지음 / 다산초당 / 201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역사이야기의 외피를 두르고 있는 자기계발서 같은데?
나쁜 느낌은 아니고... 진심으로 역사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느꼈으면 해서 만든 책이란 게 느껴진다. ‘역사공부는 왜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해답으로 충분. 그 해답을 통해 느낀 것들로 자신을 돌아보고, 생각하게 하고, 미래를 그려보게 하니 이것이 자기계발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저자의 말대로 너무 실용적 측면만 강조하는 것 같아 망설여지지만 ‘역사의 쓸모’라는 제목에 제법 합당한 내용이다.
E.H.카는 역사를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말이야 그럴싸하지 막상 그 대화를 어떻게 하는지, 무슨 대화를 하는지 어찌 알겠어. <역사의 쓸모>가 그 대화를 엿볼 수 있게끔 예시를 보여준다. 역사의 한 토막을 빌어와 스토리로 풀어내며 방향을 제시하고 있으니 역사 공부 가이드북으로 적절할 것 같다.
최태성 쌤이야 한국사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말그대로 큰별 같은 존재라 모르는 사람 없을 거다. 나 역시 몇 년 전에 한국사능력시험 관심 있어서 공부하려고 사둔 문제집이 최태성 쌤 꺼였고. 하지만 따로 강의를 들은 게 아니고, 문제집 사서 혼자 공부한 거여서 저자의 가치관이나 추구하는 방향성에 대해선 몰랐는데, 이 책에서 그런 부분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경어체 형태여서 어쩐지 강연을 글로 보는 느낌도 들고, 조용조용 나긋나긋 그러나 논조는 확실해서 꽤 맘에 들었다. 쉽게 읽을 수 있는 대중서로 손색없다.
27p. 우리는 참 재미없게 역사를 배웠습니다. 어떻게 역사를 공부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좋은 점수를 받을 것인가‘ 에 집중했죠. 그래서 연도별로 일어난 사건을 외우고, 그 사건을 일으킨 사람을 외우고… 이런 식으로 공부를 해왔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성인이 되어서 기억에 남는 것도 없고, 역사를 다시 공부하고 싶어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않습니다.
역사는 아득한 시간 동안 쌓인 무수한 사건과 인물의 기록입니다. 그야말로 무궁무진한 콘텐츠라고 할 수 있지요. 그 안에는 수많은 사람의 삶과 그 과정에서 형성된 문화의 흥망성쇠가 담겨 있습니다. 여러분이 어느 새로운 대상을 접하든, 어떤 일을 벌이든 역사에서 그 단초를 찾을 수 없는 것은 거의 없어요. 음식도, 옷도 우리 삶을 구성하는 주변의 모든 것이 역사 속에서 함께 발전해온 것이니까요. 역사를 골치 아픈 암기 과목이 아니라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면 역사의 품으로 첫발을 디딘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제 보물이 가득 쌓여 있는 그 지도를 신나게 펼쳐보기만 하면 됩니다.
역사 속에서 위인으로 평가받는 사람들은 정상에서 배회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물러나야 할 때 물러날 줄 알고, 잘 내려온 사람들이지요. 우리는 역사를 통해 잘 내려오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를 통해 나의 존재, 나의 격을 지킬 수 있으니까요.
정약용은 자신이 계속해서 읽고 쓰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 이유도 밝히고 있습니다. 만일 자신이 지금의 생각을남기지 않는다면 후세 사람들은 형조에 있는 죄목만 보고 자신을 죄인 정약용으로 기억할 것이라는 거죠. 그래서 끊임없이 기록하겠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정약용이 자식들에게 당부했던 말을 전하며 이야기를 마칠까 합니다. "진실로 너희들에게 바라노니, 항상 심기를 화평하게 가져 중요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과 다름없이 하라. 하늘의 이치는 돌고 도는 것이라서, 한번 쓰러졌다 하여 결코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다른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겸손을 배우죠. 역사는 사람뿐만 아니라 실제로 존재했던 나라의 흥망성쇠를 들여다보는 것이기도 합니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가끔은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천하를 호령하던 인물이 쓸쓸하고 비참하게 죽는가 하면, 사방으로 위세를 떨치던 대제국이 한순간에 지도에서 사라져버리기도 하니까요. 역사에서 이런 일은 너무나 비일비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시시때때로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역사를 통해서 자신의 위치를 돌아볼 줄 알아야 합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물론이고 순항하고 있을 때도 그렇습니다. 지금 정말 괜찮은가? 그냥 되는 대로 흘러가고 있는 건 아닐까? 무언가 잘못된 건 없을까?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있는 게 맞을까? 자꾸 물어봐야 해요. 스스로에게 질문하는것을 멈추면 그저 관성에 따라 선택하고 관성에 따라 살게니다. 역사는 그 어느 것도 영원할 수 없음을 알려줍니다. 그때는 맞았던 것이 지금은 틀릴 수도 있어요. 과거의 영광에 기대어, 자신의 성공에 도취되어 현재를 점검하지 않으면 잉카의 마지막 황제나 연개소문과 같은 실수를 하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끊임없는 성찰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구텐베르크 인쇄기를 보면 새롭게 발명된 기술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 이미 존재하고 있던 기술이었죠. 금속활자와 프레스기, 종이를 응용한 것이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입니다. 알고 보면 창조가 아니라 조합이에요. 하지만, 달리 보면 조합을 통한 창조이기도 합니다.
아이폰 말고도 스마트폰은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초기 아이폰 광고를 보면서 굉장히 신선하다고 느꼈어요. 다른 스마트폰 광고와 달랐거든요. 광고만 봐도 그 지향점이 다르다는걸 알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기업은 우리가 최고의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걸 보여줘요. 액정이 어떻고, 기능이 어떻다는 걸 설명합니다. 그런데 아이폰 광고는 그렇지 않더라고요. 아이폰의 기술이 사람들의 생활을 어떻게 바꿀지 보여줍니다. 이걸 누르면 당신의 아침이 달라질 것이고, 이 기능을 통해 멀리떨어져 그리워하던 사람과 얼굴을 보며 통화할 수 있고…이런 내용이에요. 이게 바로 철학 아닐까요? 마치 기술 자체가 아니라 당신의 삶을 어떻게 하면 좋게 변화시킬지 연구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잖아요.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는 엄청난 일이에요.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까막눈이었던 백성이 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죠. 그 파장은 엄청납니다. 지식의 독점은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서양의 지식인들이 라틴어로 자기들끼리 지식을 독점했듯이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어요. 조선시대에 대부분의 일반 백성은 글을 읽고쓸 수가 없었습니다. 공부는 먹고사는 걱정에서 해방된 양반들이나 할 수 있었어요. 지배층은 피지배층이 공부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억압된 자들이 똑똑해지는 순간 이 상황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것을 깨달을 테고, 그것을 바꾸려 할 거 아녜요? 그럼 자기들이 골치 아파지잖아요. 그래서 상민이나 여자는 공부를 시키지 않았던 거예요. 그냥 순응해서 살길 바랐으니까요.
최초의 기술이나 최고의 기술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영향력입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기, 아이폰, 한글의 공통점은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대중의 욕구를 발견해 충족시켰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보다 쉽게 소통할 수 있게 해주었죠.
창조나 창의력을 말하면 사람들은 자꾸 전에 없던 새로운것을 만들어내려고 해요. 그러나 아무리 새로워도 사람들이 선택하지 않으면, 열광하지 않으면 널리 쓰이지 않습니다. 저는 소수를 위한, 소수의 권익을 대변하는 기술은 역사의 흐름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는 자유의 확대를 향해 나아가고 있어요. 폭발력을 지닌 창조적 발명은 소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다수를 대변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진정한 창조인가 생각해봐야 할 때입니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려고 하기 전에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더 자유로워지고 편안해질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런 고민을 바탕으로 한 창조만이 오랜 시간 생명력을 가지고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며 세상을 바꿔나갈 테니까요.
협상가는 보통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협상가에게 중요한 건 훌륭한 말솜씨보다 정확한 눈이지요. 여기서 정확한 눈이란 정세를 파악할 줄 아는 통찰력과 상대의 의중을 감지하는 관찰력을 말합니다. 근래에 서희의 뒤를 잇는 우리 시대의 서희를 발견했는데요, 바로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 금지 조치를 둘러싼 한일 무역 분쟁에서입니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협상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거래를 할 때, 업무를 정할 때, 연봉을 높일 때 등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협상을 합니다. 심지어 연애를 하고 친구를 사귀면서도 협상이 필요해요. 협상이란 상대방도 만족시키고 나도 만족하는 결과를 내기 위한 과정입니다. 내 것만 생각해서도, 상대의 것만 생각해서도 안 되죠. 어떤 종류의 협상 테이블이든 그 앞에 나서기 전에 서희와 원종의 외교술을 떠올려봤으면 좋겠습니다. 배짱을 가지고 섬세하게 상대를 관찰하면서 본인의 패를 놓지 않는다면 결국 원하는 것을 얻게 되리라고 역사는 말하고 있습니다.
외교적인 만남과 대화에 ‘그냥‘ 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어떤 말이든 그냥 툭 던지는 것은 없고, 큰 고민 없이 아무렇게나 던져서도 안 되지요.
그래서 저는 역사 속 인물을 멘토로 삼습니다. 그리고 농담처럼 이렇게 얘기합니다. 이미 검증된 분이라 걱정이 없다고 요. 실제로 그래요. 언제 탈이 생길지 모르는 멘토 대신 역사에서 롤모델을 찾는 편이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분들은 강연을 열지도 않고 텔레비전에 출연할 수도 없지만, 전생애를 통해 우리에게 조언을 건네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사실은 그가 대안을 제시하는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유배당하고 유랑하면서 만난 비뚤어진 세상에 문제의식을 느낀 정도전은 그런 세상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해결 방법을 하나하나 치밀하게 고민했어요. 길고 막막한 인생의 터널에서 주저앉는 대신 자신이 바라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움직였습니다. 나 같은 사람을 이렇게 대접하다니, 고려 망해라!‘ 하면서 괴로워하고술이나 퍼마셨다면 정도전이라는 이름은 역사에서 잊히고 말았을 것입니다.
인생은 단 한번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더욱 해답에 목말라 있는지 모릅니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어떤게 살아야 하는지 알기 위해 책을 읽고 조언을 듣고 때로는 직접 부딪쳐가면서 답을 구합니다. 저는 김육이 한 번의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질문에 자신의 일생으로 답했다고 생각합니다. 삶을 던진다는 것의 의미를 보여주는 분이죠.
삶의 가능성이라고 하면 굉장히 거대한 말 같지만 사실은 몹시 연약한 말이기도 해요. 다른 사람의 가능성과 비교하며 상처 입기 쉽거든요. ‘저 사람에게는 있는데 나는 없네‘ 라는 시각으로 보면 삶은 쉽게 초라해지고 가능성은 희박해집니다. 그래서 비교는 오로지 나 자신과만 해야 합니다.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더 낫기를, 또 오늘의 나보다 내일의 내가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거죠.
외우기 힘들 만큼 수많은 단체와 수많은 독립투사가 있기에 우리 근현대사는 살아 있는 것입니다. 생각을 바꾸면 이런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역사를 공부하면 우리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맥락이 잡힙니다. 역사에서 인간의 자유는 늘 이기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이것이 바로 역사의 수레바퀴예요. 역사를 통해 우리는 사회의 변화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역사의 수레바퀴 안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문제란 별로 없습니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변화의 움직임도 알고 보면 역사에서 그 문제의 뿌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좀 더 폭넓게 사회 문제를 이해하고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질 수 있게 되죠.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순간, 문제의 핵심을 바라보고 해결하는 원동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가 또 한 발자국 나아갈수 있는 것 아닐까요?
역사는 흔한 오해와 달리 고리타분하거나 미련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현시대의 맥을 짚는데 가장 유용한 무기이자 세상의 희망을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되는 도구죠.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우리는 늘 불안해합니다. 이 시대는 어디로 가고 있는것일까? 그 속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역사를 공부한사람은 이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할 것입니다. 과거보다 현재가 나아졌듯이 미래는 더 밝을 거라고, ‘나‘ 보다 ‘우리’ 의 힘을 믿으며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면 된다고, 역사를 통해 혼란속에서도 세상과 사람을 믿고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다시 공부하려는 사람들에게 저는 이렇게말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공부하는 건 역사지만 결국은 사람을, 인생을 공부하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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