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민주주의를 찾아라 - 대의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에 가린 민주주의의 진짜 얼굴 비행청소년 17
장성익 지음, 방상호 그림 / 풀빛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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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민주주의를 찾아라

 

 

 

민주주의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 상태라서 사라진 민주주의를 찾아라를 받아들고 민주주의에 대해 좀 더 다가가보고자하는 마음으로 책장을 펼쳤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이다. 대한민국을 구성하고 있는 국민들은 민주주의 국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모두들 자유와 평등, 행복할 수 있는 기회 보장, 생명에 대한 안전보장을 누리고 있을까? 얼마 전 강원랜드 입사 비리로 권성동 국회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국회에 상정되었다. 이는 정정당당하게 입사채용 시험을 보는 청년들의 앞길을 막고, 입사채용 압력을 넣어 권성동 자신의 사람을 강원랜드에 채용하도록 강요했다는 사실, 정말 천인공로할 일이었다. 강원랜드 입사시험에 지원한 모든 사람들이 대한 공정한 평가가 이뤄지지 않은 것은 분배와 평등, 자유, 기회균등, ... 민주주의의 원칙을 무너뜨리는 행태였다. 이처럼 민주주의는 잘못 작동되어 정치나 권력에 종종 이용된다. 우리들은 민주주의를 올바른 방향으로 흘러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들을 해야 할까?

 

“1부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2부 민주주의는 안녕인가?, 3부 민주주의가 갈 길은?” 3부로 목차가 나뉘어져 있다.

 

마우스랜드라는 나라가 있었다. 생쥐들의 나라인데 이 나라에선 대통령을 몇 년에 한 번씩 뽑았는데, 그들이 뽑은 대통령은 생쥐가 아니라 고양이었다. 나라가 엉망진창이 되어 삶이 매번 고달파져도 여전히 생쥐들은 고양이만 뽑았다. 달라진 것은 고양이털 색깔뿐이었다. 색깔이 바뀌면 법도 바뀌었는데, 검은 고양이 정부는 쥐구멍을 고양이 발이 충분히 들어갈 수 있게 커야한다는 법을 만들었다. 생쥐들은 고통에 시달리다가 흰 고양이를 새 통치자로 뽑았더니 흰 고양이는 쥐구멍을 네모지게 만드는 법을 만들었다. 네모진 쥐구멍은 둥근 쥐구멍보다 두 배 더 크게 뚫어졌다. 생쥐들은 삶이 더 위험해지고 더 고달파졌다.

 

그때 한 쥐가 홀연히 깨달았다. 고양이 대통령은 고양이만 돌볼 분 생쥐는 안중에도 없다는 것을... “생쥐가 통치하는 나라를 만들자고 외쳤다. 그러나 환영할 줄 알았던 다른 생쥐는 그 생쥐를 빨갱이라고 모라 감옥에 처넣었다

 

캐나다 의원 토미 더글러스가 1962년 캐나다 의회에서 연설하면서 소개한 우화란다. 이 우화를 대하는 순간, 대한민국의 현실이 떠올랐다. 재벌 1%만을 위한 정치를 하던 MB와 박근해 정부를 생각하면서, 눈물 한 방울 뚝 떨어뜨렸다. IMF에 대해 모두들 허리띠를 졸라매고 감당하려할 때, 비정규직 노동자가 전 사회적으로 생겼다. 비정규직들은 월급이 반으로 깎이면서까지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데, 그들의 월급 반을 챙긴 기업들은 그 돈을 노동자들을 위해 재투자하거나 분배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사사로운 주머니를 불려주는 현상으로 근 20여년을 비정규직들은 서러움 속에 살게 되었다. MB는 경제실리주의란 신자유주의 정책을 폈고, 1% 재벌만을 위한 세금 감면법을 만들어 재벌기업들 세금을 감면해주었으나, 결코 서민들을 위한 세금 감면이나 비정규직을 정규화 하는 정책은 일체 하지 않았고, 오히려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안 사사로운 주머니를 채우며 국민들은 탄압하고 억압했다. 생쥐와 고양이 이야기는 이명박 정부, 이명박 고양이를 떠올리면 치가 떨린다.

 

과연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1. 민주주의는 제도를 뜻한다. 좁게는 정치체제나 통치 형태, 권력 구조 등을 가리키지요. 좀 더 넓게는 경제나 사회 시스템 같은 것들 또한 제도로서의 민주주의 개념에 포함됩니다.

2. 민주주의는 사상, 철학, 정치 원리, 사회 운영 규범 등을 가리키는 말이다.

3. 민주주의는 생활양식과 문화까지도 포괄합니다. 한 사회의 집단의식과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 이와 관련된 삶의 윤리와 논리 같은 것들도 민주주의 개념에 포함된다는 얘기다.

제도와 시스템으로서 민주주의, 사상과 정치 원리로서 민주주의, 삶과 문화로서 민주주의 ... . 민주주의는 이 모든 차원을 두루 아우른다.

 

16대 미국 대통령 링컨은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에 의한 통치를 말했다. 즉 민주주의란 인민, 곧 시민이 자신을 위해 정부(통치권력)를 세워 스스로 다스린다는 말이다. 민주주의는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서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모든 사람의 꿈과 지혜와 의지가 아로새겨진 정치적 이상이자 공동체적 규범이며 삶의 논리이다.

 

그렇다면 민주주의가 어떤 문제를 해결하거나 특정 목적을 이루는 데 필요한 수단과 절차라고 한다면 어떤 일이 생겨날까? 문제를 해결하고 목적을 이루는 데 더 효율적이고 간편한 방법이 있다면 민주주의는 쓸모없는 것을 여겨지지 않을까? 이것은 괜한 우려도 아니고 근거 없는 추측도 아니다. 수많은 독재자가 민주주의를 억압하면서 가장 즐겨 내세우는 구실이 경제성장과 안보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민주주의는 경제성장을 추진하는데 거추장스럽고 비효율적이다. 경제성장을 이룰 때까지는 잠시 민주주의는 미뤄도 된다. 국가 안보를 위해서는 사회 안정과 질서가 필수적이다. 국론이 분열되고 사회가 혼란스러워지면 안 된다. 민주주의는 좀 제약해도 된다.” 그러면서 그들은 독재를 합리화한다. 민주주의를 이런 식으로 취급한다면 그 순간부터 민주주이라고 할 수 없다.

 

국민을 억압하고 탄압하면서 사당화 하여 권력을 차지하고, 사사로이 주머니를 채우는 데만 급급했던 MB와 박근해, 그들은 사사로운 탐욕을 채우기 위해 민주주의를 저버리고 국민들을 경제성장과 안보라는 이름으로 억압과 탄압의 족쇄를 채웠다. 댓글알바를 대거 동원하고, 매크로를 돌려서 정부와 각 부처가 직접 나서서 댓글조작과 여론조작에 앞장섰다. 이것은 민주주의에 위배되는 행위이다. 국민들의 알 권리를 억압한 행위이다.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를 간략하게 살펴보면, 첫 번째 대통령 이승만은 독재와 부패를 일삼고 장기 집권을 위해 부정선거를 저질렀다. 1960년에 분노한 시민이 들고 일어난 것이 4.19혁명이다. 이승만은 망명을 외국으로 떠나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지만, 혼란스러웠다. 19615.16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다. 이후 박정희는 18년 동안 민주주의를 짓밟았다. 1972년 유신헙법을 선포한 것은 특히 악명 높은 악행이었다.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뽑는 직선제를 없애는 것을 비롯해 민주주의를 무덤으로 몰아넣는 악법 중 악법이었다. 이에 시민 저항과 민주화 운동이 거세게 불타올랐고, 그러던 와중이던 19791026일 박정희는 부하의 총에 맞아 독재자의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그렇다면 민주주의는 살아났을까? 아니다. 1980년 또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다. 광주항쟁이 이를 상징한다. 무차별 양민 학살이라는 만행을 저지르면서 권력을 움켜쥔 전두환 군사독재 세력은 또다시 이 나라를 캄캄한 압제의 밤으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극심한 탄압 속에서도 시민 저항의 불길은 또 다시 타올랐다. 그 결정이 19876월 항쟁이다. 결국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한목소리로 외쳤다. 이때부터 대통령 직선제로 대통령을 뽑았다. 6월 항쟁의 결과로 1987년 대통령 직선제로 노태우가 당선되고 말았다. 이때 민주화운동을 벌이던 김대중과 김영삼이 동시에 노태우와 함께 출마하는 바람에 두 사람을 따르던 정치세력들이 분열되면서, 시민의 표가 갈라졌다. 이에 어부지리로 노태우가 당선되는 비극이 일어났다. 그 바람에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또 다시 비틀거렸다. 1998~2008년까지 김대중과 노무현 대통령의 민주주의 정부 시절을 겪었다. 그 뒤 503716의 보수정부가 들어섰다. 그런 다음 촛불 시민혁명으로 문재인 새 정부가 들어섰다.

 

권력자들과 재벌기업이 결탁해서 사익을 추구에 몰두했던 716503 두 정부로 사회전반에 걸쳐 민주주의, 경제적 발전이 크게 퇴보했다. 일부 재벌기업가 권력자들만 배를 불렸을 뿐, 국민들 생활을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지금 자한당과 바미당은 문대통령에게 경제적 낙후의 책임을 떠밀고 있다. 503716의 실책을 서민들의 허리가 휘어지는 사실을 감추고 지금 문대통령 정부에게 그 모든 것을 다 덮어씌우고 있다.

 

경제 성장을 위해서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을 비롯한 민중을 무자비하게 착취했다. 민중은 경제성장의 도구이자 희생양이었다. 비록 독재 정권이 경제적 성장을 했을지 모르지만 민주주의 입장에서는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일이었다. 가난과 불평등은 경제 안에 문제가 아니라 경제 바깥의 문제라는 사실이다. 가난과 불평등은 단순히 경제적 문제가 아니다. 정치적 문제이고 권력 문제이다. 경제성장으로 만들어진 부를 어떻게 분배하고 관리하고 운용할지를 경정하는 것은 정치의 몫이다. 자본의 탐욕, 기업의 횡포, 시장의 왜곡 등을 규제하고 바로잡는 것 또한 정치의 몫이다.

 

그런데 이명박과 박근해 정부는 앞장서서 자본의 탐욕에 눈이 빨갰고, 기업의 횡포를 막기는커녕 오히려 기업별 손을 들어주었고, 시장의 공정성을 왜곡하는데 규제하고 바로 잡기는커녕 장단을 맞췄다. 1%의 경제가 아니라 모두가 고루 잘사는 “99퍼센트의 경제이지, 모두가 고루 잘사는 99퍼센트의 경제이다. 정치가, 정치의 주체인 시민이 경제와 관련한 경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할 까닭이지요. 이것이 경제민주주의이다. 나아가서 이것이 참된 민주주의를 이루는 길이다. 가난과 불평등 문제는 경제만 잘 꾸려 나간다고 해서 해결할 수 없다. 정치를 바꾸고 권력을 바꾸어야 한다. 돈이 아닌 사람이 세상의 주인이 되려면 좋은 국가와 좋은 권력과 좋은 정부를 만들어 내고, 좋은 정치를 펼쳐야 한다. 그래야 좋은 경제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이것이 경제민주주의가 이루고자 하는 일이다.

 

경제민주주의 크게 두 가지 측면, 하나는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경제적으로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를 위해 부의 공정한 분배, 사회복지 강화, 대기업의 소유와 경영 구조 개혁, 이들 기업으로의 과도한 경제력 집중 해소, 정경유착과 특권·특혜 시스템에 철폐, 부정부패와 비리 근절 등이 과제로 꼽히는데, 경제민주주의는 이 차원을 넘어선다. 다른 하나는 노동문제가 그것이다. 노동에서 주체성과 자율성과 창조성을 되찾아야, 즉 좋은 노동을 실현해야 삶의 존엄과 인생의 행복을 맛볼 수 있다. 삶의 성숙을 이루고 자유와 평화를 누리게 하는 노동, 자기가 하고 싶고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것을 하는 노동, 서로 돕고 함께 나누며 더불어 행복해지는 노동 같은 것 아닐까?

 

 

민주주의는 까마득한 옛날에도 펼쳐진 적이 있습니다. 2500년 전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 아테네입니다. 그때 아테네 민주주의는 오래도록 민주주의에 새로운 영감과 아이디어를 제공해왔습니다. 아테네 민주주의에서 배울 것들 중 핵심, 추첨(제비뽑기)민주주의 즉 직접민주주의의의 실천이다. 당시 아테네 정치의 주체는 시민이었다. 물론 여성, 노예, 외국인 등은 시민에서 배제되었다. 이런 한계를 전제로 하고 보았을 때, 아테네 민주주의에서 높게 평가할 것은 시민이라면 누구나 공공선을 실현하는 정치적 의사 결정에 자율적으로 참여했다는 점이다. 아테네 민주주의에서 시민의 공적인 정치 참여는 일상적인 행위였단다. 아테네에서 어떤 정치적 합의나 결정을 이끌어 낸 것은 다수결의 힘이 아니었다. 재산도 아니었고, 특정 개인의 위세나 영향력도 아니었다. 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자유로운 토론이 그 절차였고, 어떤 주장과 놀 리가 공공선을 이루는데 더 걸맞은지가 판단 기준이었습니다. 공적인 정치 참여를하면서 살아야 자유를 누리고 자기 정체성을 찾을 수 있다고 여긴 아테네 시민들이었다.

 

아테네 민주주의의 뼈대를 이루는 핵심기관으로는 민회, 평의회, 민중법정, 행정관 등이 있다. 아테네는 만회는 약 6000명에 이르는 시민들이 1년에 40번도 넘게 자발적으로 모여 나라의 중요한 일들을 심의하고 결정했던 아테네 민주주의의 심장이었고, 평의회에서 일할 사람 500

명을 뽑는 방식은 추첨제였는데, 법안 작성, 민회 모임 준비, 공공사업과 행정 관리 등과 같은 업무를 처리했다. 민중법정은 법령에따른 판결, 공직에 오를 시민의 자격 심사, 공직 업무와 회계에 대한 감사 등과 같은 일을 하는 곳이었다. 여기서 배심원도 구실을 하는 사람들도 추첨으로 뽑았다. 여러 가지 행정 업무를 처리하고 정책이나 법을 집행하는 행정관도 다르지 않다. 700개의 관직 가운데 대다수인 900명 정도를 추첨으로 뽑았다. 군사나 재정분야 등과 같은 높은 전문성이 요구되는 100명 정도만 민회에서 선거로 뽑았다. 이렇게 추첨되어 뽑힌 공직자들에게 수당을 지급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도 생계 걱정에서 벗어나 부담 없이 공적인 일에 참여할 수 있다.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를 비롯해 나라를 이끄는 중추기관의 핵심 종사자들, 지금 우리로 치면 국회의원, 행정관료, 법관 등을 모두 제비뽑기로 정한 게 아테네 민주주의였다. 덕분에 아테네의 모든 시민은 어떤 공직이든 자기가 원하기만 하면 어렵잖게 참여해 일할 수 있었다. 추첨에서 뽑히기만 하면 되니까요. 관련 자료에 따르면 전체 시민 가운데 50~70퍼센트가 적어도 한 번 넘게 평의회에서 일한 것을 추정된다.

 

아테네 사람들은 왜 이런 시스템을 만들었을까요? 그것은 선거로 공직자를 뽑으면 재산이 많거나 신분이 높은 특성 계층이 권력을 독차지하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정치란 특별한 능력과 자격을 갖춘 소수 전문가나 엘리트가 다른 사람들을 통치하는 게 아니었다. 그들에게 민주주의는 권리이자 의무였다. 무엇보다 삶 자체였습니다. 그래서 아테나 시민들은 생업에 종사하며 세금을 내는 생활인, 자기들의 공동체를 지키는 군인, 행정과 입법과 재판에 참여하는 공직자 등과 같은 여러 역할을 서로서로 돌아가며 말았다.

 

 

아테네 사람들은 스스로 자기를 다스린다고 생각했다. 시민이 곧 정부라 여겼기에 시민이 정책과 법을 만들었다. 아리스토텔레서는 통치와 복종을 번갈아 하는 것을 시민의 덕으로 높이 평가했다 훌륭한 시민은 자유민답게 지배할 줄도 알고, 자유민답게 복종할 줄도 알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덕이다.”라 그는 말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추첨민주주의 한 형태가 실행되고 있다. 바로 20081월부터 시행하는 국민참여 재판제도이다. 배심원들은 형사재판에 직접 참여하여 피고인에게 죄가 있는지, 죄가 있다면 어떤 법을 얼마나 내릴지를 정해야한다. 재판부는 배심원단의 이런 결정을 참고해 판결을 내린다.

 

추첨민주주의가 민주주의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은 추첨민주주의가 민주주의 이상과 본질에 잘 들어맞기 때문이다. 직접민주주의와 간접민주주의를 함께 융합해서 국가를 운영하는데 필요하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배우게 되었다. 무엇보다 민주주의에 대해 좀더 접근적으로 개념의 이론과 실천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전 세계에서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잘 운영되고 있다는 대한민국, 과연 그럴까 민주주의를 위해 많은 피를 흘린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오늘날이 있게 한 선배들에게 감사하다는 생각을 한다. 촛불혁명으로 대통령까지 탄핵시키기고 들어선 문정부 시대를 기대와 응원으로 나는 건너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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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죽음과 함께 사라지는가 - 달라이 라마와 유전자의 생명토론
아리 아이젠.융드룽 콘촉 지음, 김아림 옮김 / 영림카디널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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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는 죽음과 함께 사라지는가

 

 

 

 

삶과 죽음은 우리 인간들에게 언제나 숙제이다. 우리는 죽음과 함께 사라지는가책을 받아들고 목차를 살펴보면서 책의 내용을 미리 점쳐보지만, 아직은 목차만으로는 다 알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목차증에 가장 먼저 잡아끄는 제목을 먼저 펼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내 독서는 가슴에 와 닿는 순서부터 읽는 습관이 생겼다. “1장 세균도 의식을 지닌 존재인가, 2장 생명, 죽음, 그리고 희생, 3장 생명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4장 히말라야와 티베트 사람들, 5장 생태학과 카르마, 6장 인간은 선천적으로 선한가, 7장 명상과 새로운 질병들, 8장 과학과 종교를 넘어서로 구성된 제목들을 죽 살펴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인간에게서 육체가 죽음에 이르면 정말 영혼이 존재할까? 이런 물음을 정면으로 대결해서 나에게 물어보지 않고 나는 늘 회피했다. 그냥 대충 육체가 죽으면 영혼도 끝이지 뭐가 있어? 이런 답을 나는 해답으로 나에게 들려주지 않았나 싶다. 아니 솔직히 해답에 대해서는 확실한 확증이 없다는 것이 내 솔직한 심정이다.

 

이 책은 종교인과 과학자가 융합해서 내용을 썼다고 말한다. 종교인들에게 과학을 가르치면서, 세균은 의식이 있을까? 세균은 인간으로 환생할 수 있을까? 의문을 가지면서 그들은 과학을 처음에는 믿지 않다고 과학실험하고 난 뒤에 믿게 되었다고 말한다. 살생은 안 된다고 종교는 말하지만, 생쥐 10마리로 수천 명의 목숨을 살린다면 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승려들에게 생물학을 가르치는데, 수업하는 동안 통역사들은 영어로 된 단어와 개념을 티베트어로 승려들에게 전달한다. 이때 학생들을 잘 파악해야 효과적으로 통역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선생들은 2년에 걸쳐 티베트 불교문화를 공부했고 티베트 승려를 비롯해 승려들과 일했던 교육자들과 수많은 대화를 나누었던 것들이 이 책에 녹아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죽음에 대해서, 과학적이면서 정신분석학적 두 측면에서 접근했을 때, 붓다는 윤회를 말했다.

 

내세가 있다는 것은 종교에선 말하는데, 생물학적으로는 육신이 숨을 거두면 그것으로 끝일까? 내 개인적 생각으로는 영혼이 있다는 것을 믿고 싶다. 승려들이 세포에 대해 연구하고 토론하면서 선생들의 도움으로, 세포들이 서로 센서로 연결되어 있어 연락을 주고받는 다는 것을 이해 해갈 때, 처음 생물시간에 세포에 대해서 공부하던 것이 생각났다. 신경세포 뉴런,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 뇌신경과 척수신경, 축색, 수상돌기 ... 등등 우리 몸속에 네트워크인 신경은 무수한 뉴런들이 모여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배우면서도, 그저 신기하고도 먼 나라 이야기 같았다. 그런 것들을 승려들이 공부를 했다니 어린 시절을 신비로움 가득하던 생물을 무척이나 좋아했기에 그들의 심정을 조금은 알 듯 하다. 얼마나 신비로운 세상이었을까?

 

티베트 고원에서 사는 유목민들과 높은 고도의 초원은 아주 밀접하게 융합되어 오랜 역사 속에 독특한 목축문화를 이뤄왔다. 바위산맥과 커다란 호수, 깊숙이 파인 계곡을 흐르는 강에 가로 막힌 채, 다채로운 환경 덕분에 무척이나 다양한 생물종이 살아간다. 그들은 티베트 고원의 생태계의 일부로서 모든 행동과 삶, 죽음이 날씨와 바람, , 계절의 순환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7세기 무렵 유목민 조상들이 불교와 그 핵심 가치를 받아들였단다. 서구에서야 환경과 인간을 분리된 존재라는 관점들이 퍼져있지만, 티베트는 인간을 자연의 일부라 생각한단다. 많은 과학자들이 티베트인들에게 과학을 가르치려고 노력한단다. 본인들의 분야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미처 보지 못했던 과학의 가능성과 한계, 모순을 탐구하기 위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발생생물학레서 불교의 관점을 도입하면서 수정에서 죽음까지의 과정을 달리 생각하게 되었단다. 생태학도 마찬가지란다. 과학적으로 기술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한 체계를 티베트 불교는 전통적 과학의 방법으로는 이해와 예측이 불가능했던 것을 가능하게, 개념적인 공간을 터주었단다.

 

불교에서는 업보라는 개념을 통해 모든 것이 시공간을 따라 인과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 연결되어 순환된다고 여긴다. 정확하게 어떤 방식으로 그렇게 되는지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그것이 우주가 작동하는 방식이라고 본다. 과학은 원인과 결과를 밝혀내는 작업에 기초를 둔다. 이것은 과학은 보통 다수의, 비선형적이고 비위계적인 원인과 결과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과학과 불교는 관점과 공간으로 확장되지 않고는 서로 복잡하게 연결된 체계를 예측하거나 다루지 못한단다.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자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상세하게 서술한 저자의 필력을 따라가다가, 문득 책장을 덮고 생각한다. 새가 한 마리 죽어 나무 아래 묻히면, 그 나무가 걸음으로 새의 영양분들을 다 빨아올려서 잎과 꽃을 피울 것이다. 잎사귀는 벌레가 먹고, 열매난 새와 다람쥐와 사람이 먹을 것이다. 그들이 싼 똥은 다시 땅으로 돌아가 다시 풀과 나무로 자라는 자양분이 될 것이다. 이렇게 돌고 도는 것이 윤회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내 육체는 사후 분해되어 자연으로 되돌아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내 육신으로 만들어진 내 분신은 세상에 살아남아 그의 자녀를 생산하여 그의 피를 나눠주는, 내리 사랑으로 내 후손은 계속해서 태어날 것이다. 나는 죽었지만 나의 피는 영원히 살아있게 된다. 그래서 올바르고 성실한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늘 하면서 살아왔던 것 같다. 그런 생각이 없다면 100여년도 안되는 유한한 인간의 삶, 너무 아까워서 어쩔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 책을 덮는다. 오랫동안 삶과 죽음에 대한 진한 여운이 남을 것 같다. 오늘 커피 한 잔은 아주 진하게 느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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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기 전 꼭 배워야 할 인성 수업 - 현직 교사가 들려주는 가르치지 않고 깨닫게 하는 인성 교육법 27
박찬수 지음 / 라온북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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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기 전 꼭 배워야 할 인성수업

 

 

 

 

 

“1장 미래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가르침. 2장 어른이 되기 전 꼭 배워야할 인성, 3장 사람이 먼저인 아이로 키우기, 4장 가르치지 않고 깨닫게 하는 인성 교육, 5장 함께 공감하고 경험하며 사람됨을 배우는 교실이 책의 목차를 읽다가 문득 코딩교육에 대해 이렇게 열풍이 일어나고 있나? 깜짝 놀랐다. 사실은 작년에 코딩교육을 문화센터에서 한 3개월 이상 교육을 받았던 기억이 있어 깜짝 놀랐다. ‘그 딱딱하고 재미없는 코딩을 유치원 때부터 한다고? 아이들은 많이 놀아야 두뇌야 유연하고 창조적여지는데 ...’라 혼잣말을 하면서 책장을 넘겼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 우리나라는 IT산업을 커다란 물줄기로 정책을 삼았던 것은 김대중 대통령으로서, 미리 선경지명을 갖고 예견하셨던 시대가 지금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다. 아니 이명박근혜 9년 동안 IT산업은 10년 세계 추세에 뒤떨어져 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코딩교육이 열풍이라는 말이 탄식을 불러 일으켰다. 지난 10년 계속 IT산업을 발전시켰더라면 지금 한국은 어떠한 위치에 있을까? 아마 세계를 이끄는 리더들이 한국에 다 존재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드론, 인공지능 로봇, 자율주행차, ...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그야말로 만화라고만 생각했던 일들이 현실화되면서, 우리들 머릿속은 점점 더 바빠져가는데,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인간의 한계 극복을 위한 이러한 것들이 만들어지는 시대에 대해서, 과연 소모품이던 것들이 인간을 소모품화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이 앞서는 것은 나만 그럴까? 코딩교육 열풍이 분다는데, 왜 나는 아이들이 점점 더 바빠지고 숨 가빠지는 것이 걱정되는지 모르겠다. 공부에 지친 아이들, 이 아이들이 즐겁게 놀며 공부하고 청년 시절을 행복하게 보낼 방법은 없는 걸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미래 인재상과 미래 사회에 갖추어야할 역량을 제시한다고 교육에 바로 반영할 수는 없다.

 

시대가 변하고 공간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인성이란다. 저자는 말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가족은 무엇인가? 친구는 누구인가? 이웃은? 공동체란? 지역 사회와 나는 어떤 연관이 있나? 나와 함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이런 물음으로 앞으로 다가올 세상을 준비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 아닐까? 라고 우리에게 묻는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인간에 대한 물음은 나에 대한 물음으로 시작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성적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다보니 마음 나눌 선생님들이 사라지고, 아이들이 꿈을 꾸지 못하고, 여럿이 어울리기보다는 공부 속에 파묻혀 외톨이가 되어가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더더구나 없는 처지가 되어간다.

 

스마트한 시대에 살면서 우리들은 기다린다는 것이 지루하다고 생각하고, 지루한 것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되어버렸다. 교사나 부모들은 아이들을 좀 기다려 주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 상처를 주고 아프게 한다.

 

가르치지 않고 스스로 깨닫게 하는 방법으로는 마라톤경기 참가, 서로 의지하는 도보 여행, 함께 밥 먹으며 나누는 진심, 메모로 마음 전하기, 한복 입고 교단에 선 선생님, 군에 제자 면회 가기 등 서로 교류하면서 진심을 주고받는 방법으로 소개하고 있다. 지리산을 오르고, 정치 현장에서 역사를 배우고, 영화를 통해 세상을 배우고, 스스로 몸을 움직여 땀을 흘리며 체력을 단련하는 운동을 하면서 함께하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삶으로 공감하며 나누는 것이 어쩌며 우리네 살아있는 것에 대한 공감이 아닐까? 저자가 소개하는 방법들을 하나둘 실천하다보면 그것들이 내 몸 안에서 체화될 때, 사각 교실 안에서 영어 알파벳 코딩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리라 생각한다.

 

건강하고 근육질 단단한 삶을 위하여, 규칙적으로 땀 흘리며 운동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도 없으리라 생각한다. 모든 삶에 근간이 되는 건강을 잃고서 아무리 전교1등의 삶을 산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인성도 그렇다. 든든하게 근육질 있는 건강한 인성을 닦았을 때 삶도 건강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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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숨 쉴 틈 - 인생의 길을 잃은 여자, 인생의 끝에 선 노인을 만나다
박소연(하늘샘) 지음, 양수리 할아버지 그림 / 베프북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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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숨 쉴 틈

 

 

 

 

 

 

여자의 숨 쉴 틈이란 제목을 읽으면서, 여자가 숨을 쉴 수 없었구나, 여자, 여자라 중얼거리면서 정면으로 여자라는 이름표를 단 나를 들여다보는 기회가 생긴 것 같아 반가움으로 책장을 넘긴다. 엄마로, 아내로, 사업가로, 며느리로, 딸로 살아오면서 한 겹, 두 겹 껴입었던 갑옷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삶을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들을 이 땅의 여자, 아니 이 지구의 여자로 태어나면 누구나 겪을 일이지만, 마음이 약해져 있는 여인에게는 버겁고 서러운 무겔 느꼈을 텐데, 그래 누가 위로 해주나? 같은 여자가 공감하고 위로의 말로 토닥토닥 어깨를 두드려주어야지, 이런 말을 건네오는 것 같아 책장을 단숨에 넘겨간다.

 

이 책은 구성은 “1장 나, = 돌보지 않은 날들, 나조차도 돌보지 않는 날들, 2장 여자, 사랑 여자의 숨 쉴 틈, 3장 엄마, 가족 꽃병에는 꽃무늬가 없다으로 되어 있다.

 

아이들이 먹다 남은 밥, 반찬들을 양푼에 쏟아붓고 비빔밥을 만들어 먹는 여자, 식구들이 다 나간 후 집안 청소, 빨래등 식구들 치다꺼리 하다가 지쳐 한잠 자고나면 저녁 준비를 해야하고, 저녁 먹고나면 각자 방으로 들어가면 혼자 덩그마니 TV 좀 보다가 잠자리에 들어 하루를 마치는 여자의 하루, 참 쓸쓸하기 그지 없다. 이렇게 사소하지만 사소해서 존재감이 없는 여자의 하루, 그런 삶이 이 책에는 수두룩하게 나온다.

 

오래간만에 횟집으로 외식을 식구들끼리 가도, 자식들 챙기느라 부모는 제대로 회 한첨 먹기가 바쁘다. 그저 회접시 옆에 주점부리 반찬에만 입질을 할뿐, 그런 부모의 마음을 자식을 키워봐야 내 부모가 이랬구나 깨닫는다. 그래서 오늘은 할머니 할아버지 먼저 드시고 그 다음 엄마 아빠 드시고 그 다음 너희들 먹어라 한다는 어머니의 말을 들었을 때는 박장대소했다. 나도 앞으로 우리 딸에게 그래야겠구나.

 

하루 종일 업무에 시달리다 집에 오면 설거지부터 빨래, 방청소까지 하고 나면 그냥 저녁도 먹기 싫을 정도로 피곤해져서 방에 들어가 쓰러져 자는 내 모습 같아서 이 책에 나오는 여인의 마음이 공감이 되어서 끝까지 술술 읽어버렸다.

 

일과 가사일의 무게를 슬슬 조절하기 시작하면서, 조금은 잔 꾀를 내기 시작했다. 설거지가 밀리면서 큰 들통을 사다가 물을 가득 채우고 그릇을 담그고 뚜겅을 닫아놓으라 아이와 남편에게 시키고, 이틀에 한 번씩 몰아서 설걷이를 하고, 빨래통을 큰 것을 두어서너개 놓고 빨래를 불리해서 담아 금한 것은 니들이 알아서 돌리라고 하고, 집안이 어질러져도 조금 태연하게 날잡아 청소하는 걸로 하면서부터 조금씩 내가 쉴수 있는 시간들이 생겼다. 책도 보고, 독후감도 쓰고, 조슴씩 내 시간이 생기면서 나도 이 책의 주인공처럼 숨 쉴 틈을 찾았다.

 

당연하게 엄마가 해줘야 한다는 것에서, 이젠 니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니들이 해, 남편에게도 내가 없고 밥이 없으면 밥 정도는 좀 하고, 당신 빨래는 당신이 좀 세탁기에 돌려요.”라 속에 있는 말을 하던 날은 정말 속이 시원했다. 그 후 나는 빨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내가 내 숨통을 터놔줘야지 남편이나 아이가 알아서 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여자로서 내가 느끼던 어려움, 숨막힘, 외로움들이 다 묻어나서 솔직히 눈물을 흘리던 날도 있었다. 같은 여성들에게 추천하고픈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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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맑스 - 엥겔스가 그린 칼 맑스의 수염 없는 초상
손석춘 지음 / 시대의창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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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맑스

 

 

 

 

디어 맑스를 받아들면서 학창 시절에 칼 맑스의 자본론라는 책을 빌려다보았던 기억이 있는데, 그가 주장했던 것들이 그렇게 감명 깊게 가슴에 남아 있는 것이 있었나 싶다. 왜냐하면 당시 그 책을 읽는다, 쉬운 듯 하면서도 너무나 딱딱하고 재미가 느껴지지 않았다고나 해야할까? 그러다가 이 책을 만나니 새삼 반가웠다.

 

책의 구성은 “”1부 악마가 된 랍비, 2부 알려지지 않은 걸작2부로 목차가 구성되어 있다. 맑스의 자본론은 자본의 속성과 축적의 비밀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했던 기억과 함께,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 정치를 하는 사람,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 직장을 다니는 사람, 대학생들, ... 이 사회를 살아가면서 한 번쯤을 읽어야 하는 것 아닌가? 당시 생각했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대학 때 교수님께서 하시던 말씀이 생각났다. 맑스가 말하던 공산주의가 이 세상에 정말 실현된다면, 그것은 정말 지상의 낙원 그 이상일 것이다. 그러나 소련에 레닌이 천명했던 공산주의는 맑스가 이야기하는 공산주의가 아니라, 레닌과 그 아래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공산주의는 맑스의 공산주의가 아닌, 변질되어버린 사상이라던 말씀이 아주 오랫동안 남아있다. 이 책은 맑스에게 편지를 쓰는 형식으로 만들어진 소설이다.

 

덥수룩한 그의 수염으로 뒤덮인 얼굴을 모니터로 들여다보면서 참 우아한 남자다란 생각을 한다. 수염을 그렇게 멋스럽게 길러 자신의 풍모를 당당하게 세상에 드러내며 사는 그, 자본론을 읽어보면 참 많은 생각들로 가득 찬 그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듯 까마득해지는 것은 나만일까? 그는 정말 자본주의를 너무도 잘 들여다보고 있었다. 평등하지 못한 분배, 부익부, 빈익빈을 너무나 잘 표현했다는 생각을 한다. 특히 신자유주의 경제, 이명박에 의해 불평등 분배로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는 대한민국 현실을 너무나 잘 표현했다는 생각에 놀랄 놀자이다.

 

거기다, 금수저, 은수저, 흑수저란 자본주의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분류하는 유행어가 확산되고 있는 대한민국에, 그가 나누던 계급의식, 그것 또한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져서 소름이 끼칠 정도란 생각을 한다.

 

길고긴 글을 엥겔스가 친구 맑스에게 보내는 형식으로 맑스의 사상을, 자본론을 다 이야기하는 듯해서, 술술 읽어 내려갔다. 이 책의 주인공인 엘겔스가 내가 만일 달라이 라마라면, 자네는 붓다일거야라는 한마디에 기절초풍이었다. 사실 진짜 맑스의 자본주의는 노동자를, 가난한 자의 고민을 생각하지 않았으면, 밑바닥에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았으면 그런 책을 그는 정말 써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맑스는 붓다이다란 엘겔스의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인다.

 

엥겔스와 칼 맑스는 <공산당선언>을 공동 집필했단다. 엥겔스는 맑스의 뒤에서 경제적 지원을 했고, 맑스가 죽은 뒤 자본론에 대한 해설을 통해 이 책에 관심을 쏟게 하고 이 책이 그들의 성서라는 생각을 불어넣은 사람이 바로 엥겔스란다. 두 친구는 공동의 견해를 가지고 있으면서 서로 의존하면서 서로 격려하는 사이였다. <오이겐 뒤링 씨의 과학변혁>(1978) 책으로 맑스의 사상을 선전하는데 기여했는데, 엥겔스 혼자 이 책을 썼단다. 이 책은 독일의 사회민주주의자들 사이에서 맑스가 차지하고 지위를 빼앗으려고 위협한 베를린대학교 교수 카를 오이겐 뒤랑의 영향력을 분쇄했다. 맑스가 죽은 뒤 맑스의 사상에 관해 제 1의 권위자로 활동했단다. 어떤 학자들은 엥겔스가 맑스의 사상을 왜곡했다 말하지만, 정작 맑스 본인은 엥겔스 때문에 자신의 관념과 견해가 중요하게 왜곡되었다 느낀 적이 없었단다.

 

맑스가 엥겔스 부인 메리가 죽었는데도 무심했던 것을 서운해 이들의 우정에 위기가 찾아왔었으나 맑스가 엥겔스가 나중에 리지와 살 때, 알뜰살뜰 리지에게 인사말을 붙이면서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였단다. 엥겔스와 맑스는 맑스가 죽을 때까지 서로 사상을 공유하는 친구로서맑스에게 엥겔스는 경제적 지원을 해줬고, 맑스의 사상을 대중화하는데 힘썼다. 맑스가 죽은 후에도 그의 사상에 대한 제 1 권위자가 되었다.

 

두 사람의 우정으로 태어난 맑스의 자본론은 어쩌면 성서만큼이나 지구에 살아가는 사람이란 생명들에게는 축복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면서 책장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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