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의 수업
수산나 타마로 지음, 이현경 옮김 / 판미동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처음 책을 펼쳤을 때는 몰랐다. 왜 이 남자는 산 속에 혼자 머물고 있는 걸까? 이야기는 읽어내려가면서 그 남자가 왜 현재 그 곳에 머물고 있는지를 말해주었다. 이 책은 소설이라고 말하지만, 내가 보기엔 주인공 마테오 혼자의 독백이 더 많은 느낌이다. 나는 심장전문의였고, 14살에 눈을 다쳐 장님이 된 아버지가 있었다. 


마테오에게는 아내 노라가 있었고, 아들  다비데가 있었다. 14년을 노라와 함께 살았는데 어느날 노라는 고가도로의 가드레일을 들이 받고 만다. 그 일로 아내와 아들을 한꺼번에 잃어버리고 마테오는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된다. 다들 노라의 죽음을 두고 자살일 것이라 말했다. 물론 마테오도 그렇게 믿어버렸지만 말이다. 


마테오의 삶 속에서 우리는 깨달음을 얻을 수 밖에 없다. 마냥 한마디 한마디 내뱉는 마테오의 생각들이 우리로 하여금 생각 속을 끌어당기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모두 자기 자신을 어떻게든 정의하려고 하는데, 그러한 정의가 우리를 존재할 수 있게 해준다. 그 정의는 뗏목이고, 우리는 그것에 의지해 일상의 격랑 속을 헤쳐나간다. 이 뗏목 덕분에 우리는 미치지 않고 강어귀에 도착할 수 있다"(p.14)


나 스스로를 정의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나를 바로 세우고 나란 존재에 대해서 의식하고 깨닫게 된다면, 우리는 삶을 버릴 수 없을 것이고 스스로 살아갈 이유를 얻게 될지도 모른다. 


문득 문득 책에는 공감 가는 구절들이 많이 등장한다. 


" 시는 일상에서 작은 창문을 열어 줘. 회색빛 일상들 속에서 우리에게 실제와는 다른 빛을 살며시 보여 주지. 시는 항복하지 않는데 필요한 거야." 항복이란 당신에게는 관습적인 시간에 쫓겨 스스로 억누르고 뒤로 물러서다가 결국 활기 없는 행동과 이미 했던 말들, 이미 했던 일들의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만다는 것을 뜻하지(p.108)


시를 읽으면서 시가 작은 창문이라는 생각을 해본적이 있었던가? 얼마나 내가 메마른 삶을 살고 잇었는지, 그리고 관습 속에 묻혀 살아가는 지에 대해서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둘째아이를 임신했던 아내의 죽음 이후 신부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주고 받은 대화가 있다. 


" 아무도 의문을 품지 않고, 아무도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삶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멋질 겁니다. 삶에 선택의 길이 있어서, 삶이 시작되어 악과 피로와 질병을 없앨 수 있다고 착각한다면 말입니다…….하지만 그 반대지요. 삶이 시작되면 정의와 젊은이와 힘센 이와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파괴합니다. 우리는 이것에 저항할 수가 없어요."(p.149)


삶은 마음대로 할수 없어서 삶이 아닐까? 마테오의 삶은 사실 지켜보는 것만으로 힘들었다. 사랑하는 아내 그것도 이제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고 있던 아내와 자식을 한꺼번에 잃는다니, 삶이 유지가 될까? 


그리고 마테오의 삶에 다시 나타난 한 여인, 라리사. 사실 라리사가 임신을 했다고 말하자 돈봉투를 건네는 마테오를 보면서 많이 실망했다. 소중한 누군가를 잃었고 아직 그들을 떠나보낼 용기가 없다고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정작 라리사와 새로운 생명은? 라리사도 마테오를 떠나고, 아버지도 마테오를 떠나면서 그는 홀로 남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의 삶에 또다른 깨달음을 얻게 된다. 영매 플로라를 통해서 노라가 자살한 것이 아니라고, 동맥류가 있었던 노라가 이식을 잃어서 가드레일을 들이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을 아버지라고 찾아오는 밀라노출신의 어린 청년 나단으로 부터 용서를 받는 과정까지. 마테오의 삶은 불쌍하기도 하면서도 뒤늦게라도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고, 자기가 얼마나 아집 속에 살아가고 있었는지를 깨달은 것만으로도 참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아버지의 편지 속에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운명은 내게 전혀 다른 인생을 준비해 놓았어. 나는 이 운명을 이해해야만 했지. 처음에는 너무나 힘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운명이란 나 자신을 만나러 가야만 하는 길이라는 걸 알았지. 그러니 너도 조만간 모든 걸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거다. 나는 아직 살아 있고 내 삶을 사랑했다. 하루하루 성실하게 변함없이 용기 있게 그 삶을 만들어 갔지."(p.238~239

)


내 삶을 살아 간다는 것, 운명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건 쉽지 않지만 우리는 오늘도 운명을 받아 들이고 열심히 살아가야하지 않을까? 


마테오는 영매 플로라의 말을 듣고 이런 말을 한다.

"생각이 자유로워지자 그때까지 내가 현실을 제대로 보지 않았고, 내가 본 현실을 직시한 적이 한 번도 없었으며, 다만 내가 보고자 했던 그게 현실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p.268)


이 책을 통틀어서 내가 가장 좋다고 손꼽을 만한 구절이다. 현실을 직시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너무 잘 아니깐, 모든 일에 있어서 있는 그대로를 바라볼 수 있고, 마음으로 그것을 받아들 일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 일일까?


영원의 수업은, 삶과 죽음을 동시에 말하고 있다. 삶과 죽음 동떨어져있는 것이 아니다. 마테오가 깨달은 수 많은 것들을 우리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잔잔하면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소설같지 않은 소설, 영원의 수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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