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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침묵 ㅣ 세계 거장들의 그림책 4
주제 사라마구 글, 마누엘 에스트라다 그림, 남진희 옮김 / 살림어린이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살림어린이의 초등학생들을 위한 세계 거장들의 그림책 4권. 노벨문학상 수상자 주제사라마구의 글이 실린 유일한 그림책이다. 물의 침묵이라, 제목에서부터 뭔가 묵직함이 밀려온다. 그간 접했던 주제사라마구의 글들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기에, 그가 그려내는 그림책은 어떨까 하는 궁금증이 먼저 일었던 책. 그래서 너무너무 읽어보고 싶었던 책. 이 책은 확실히 다른 유아용 어린이 그림책과는 다르다. 전달하고자하는 바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이지 꼭 한번 읽어보라고 권해주고 싶은 책이기도 하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고, 그 어려움을 어떻게 헤쳐나갈지에 대한 대답을 들을수 있는 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적정 독자 연령이 초등학생인 점을 가만한다면 이책은 정말 괜찮은 책이다. 특히나, 주제사라마구의 글뿐만 아니라, 콜라주 기법을 동원한듯한 그림역시 눈길을 끈다. 정말 이세상에 단하나뿐인 주제 사라마구의 그림책이자, 오랫만에 보는 내 삶의 즐거움을 채워줄 한권의 소중한 그림책. 이제 그럼 그 이야기 속으로 떠나 볼까?
이야기의 주인공 '나'가 알몬다 강으로 낚시를 하러 간다. '강의 입'이라 불리는 모래톱으로 말이다. 모래톱을 입으로 표현한다는 거, 아마 처음 들어보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사실 나부터가 모래톱 하면 생각나는 거라곤, 김정한의 모래톱이야기라는 소설뿐이고, 실제 모래톱을 본적은 없기에 정말 인간의 입을 닮았을까? 하는 호기심이 먼저인다.
'하얀 낮의 작별을 노래하는 곳'에서 나는 낚싯줄을 던지는데, 특정 장소에 자신만의 이름을 부치는 것또한 그냥 사소히 넘어 갈수 없을것만 같다. 사실은 너무 시적인 표현이라고 해야하나? 뭔가 나역시 어딘가를 자주 찾게 된다면 이름이라도 하나 부쳐야할것만 같다. '나'가 던진 낚싯줄에 물고기가 걸려들고, 그 물고기와 씨름을 하게 된다.
그러다 물고기가 낚싯바늘, 낚싯줄, 찌와 추까지 모두 물고 사라지고 마는데, '나'는 하염없이 실망하고, 또 실망하고 만다. 실망이라, 아마 우리 아이들도 어른들의 눈에 대수롭지 않은 것들을 자기가 해내지 못해서 실망하고 좌절할때가 있지 않을까? 분명 어른들의 눈에는 아무것도 아닌데, 아이들은 그렇지 못할때가 분명히 있다. 하지만 중요한것은 그 실망을 어떻게 극복하냐하는것이 문제가 아닐까?
'나'는 그때 새로운 낚싯대로 무장을 하고 와서 다시 복수를 하기로 결심을 하고는 강의 입에서 족히 일킬로는 더 떨어진 자신의 집으로 힘차게 달려간다. 물고기가 분명히 새로운 먹잇감이 나타날때까지 나를 기다릴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곤 집으로 돌아와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할머니에게 한다. 할머니는 물고기가 지금도 거기 있을까? 라는 말을 하시지만 나는 알아채지 못한다. 우리 아이들도 그렇지 않을까? 뭔가에 크게 실망하고 또 뭔가 자신의 것을 되찾아야한다는 생각때문에 부모님이 하는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않을수 있지 않을까? 물론 부모님의 말이 모두가 옳지 않을수도 있지만, 조금은 귀담아 드는것도 어떨땐 중요하지 않을까?
나는 강으로 다시 달려갔지만 해는 이미 저문 후였고, 낚싯대를 드리우고 물고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지만 결국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아이는 그때 물의 침묵을 깨닫게 된다. 세상의 어떤 친묵보다 진한 친묵을.
물고기를 잃어버리고, 자신의 물고기를 내어놓지 않는 조용한 물을 보면서 아이는 무엇을 깨달을수 있었을까?
단순히 자신의 실패를 깨닫고, 실패자로 살아가야지 이런 생각을 했을까? 아니 결코 아닐것이다. 실패를 할수 있다는 걸 깨달았을것이다. 내가 원하는대로 세상이 흘러가지는 않구나 하고 말이다. 그리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아이는 한층 더 성숙해 질수 있었을 것이다. 실패는 누구나 두렵다. 어른인 나도 두려운 걸, 하지만 그 실패를 극복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할수 있다는 거 그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아이는 물고기를 잡지못한채 돌아오면서도 분명히 누군가가 그 물고기를 잡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아닌 누군가가 그 물고기를 잡을테고, 자신의 실패를 겸허히 받아들일줄 아는 자세. 그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음번에는 물고기를 잡기 위해서 더 만만의 준비를 해서 나타나지 않을까?
초등학생들. 유치원을 거쳐 이제 겨우 학교라는 작은 사회, 앞으로 우리앞에 펼쳐질 큰 사회에 비하면 충분히 작은 사회다. 그 사회에서 어려움을 겪고, 실패를 겪을 때가 종종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이책은 힘이 되어줄것이다. 니가 지금은 실패했지만, 앞으로도 더 열심히 한다면 해낼수 있다고, 그까짓것 아무것도 아니라고 격려해주는 책이 바로 이책이다. 물의 침묵은 진하고 깊다. 하지만 그 깊은 내면속에서 우리 아이들은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할것이고, 세상을 살아갈수 있는 힘을 얻을것이 분명하다.
세계 거장들의 그림책 시리즈는 정말이지 한번도 실망을 시키는 일이 없는 것같다. 그림책이 단순한 아이들 눈높이에만 맞는 유치한 책이라고 여긴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 그림책에서 풍겨져나오는 심오한 이야기들, 그 이야기속에서 우리는 순수한 아이들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힘을 키울수 있는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꼭한번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그리고 독특한 그림형식이 너무 마음에 든다! 잊지 못할정도로 진하게 기억에 남는달까~ 오랫만에 제대로된 그림책을 본 느낌이다! 내 삶의 또하나의 즐거움, 물의 침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