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송필환 옮김 / 해냄 / 2008년 2월
평점 :
주제 사라마구. 1998년 노벨문학상 수상. 포르투갈 출신. 대표작- 눈먼자들의 도시, 눈뜬자들의 도시.
이것이 내가 아는 주제 사라마구의 전부이다. 얼마 전 눈먼자들의 도시와 눈뜬자들의 도시를 구입하고 읽으려던 차에 신간 이름없는 자들의 도시가 출간되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그의 전작 눈먼자들의 도시와 눈뜬자들의 도시를 읽지 못하고, 오늘 주제 사라마구라는 작가를 난생 처음 접하게 되었다. 포르투갈 소설 역시 내게는 생소했고, 주제사라마구라는 작가의 문체 역시 내겐 새로웠다. 뭔가 무거우면서 사람의 본질을 찌르는 듯한 느낌의 문체. 믿음이 가는 문체라고 해야 하나?
중앙호적 등기소. 우리나라에는 그런 곳은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곳은 사람의 태어남과 죽음이 언제나 함께 공존하는 곳이다. 죽은 사람의 서류들은 등기소 창고의 한쪽 구석을 차지하고, 죽은 자들과 산자들의 기록부가 구분되어 정리 되고 있었다. 그러다 죽은 자들의 수가 늘어나면서 산자와 죽은 자들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주인공 주제씨는 이 중앙호적 등기소의 50이 넘은 사무보조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등기소와 문 하나로 연결되는 등기소 옆면의 벽에 딸린 단촐한 집에 살고 있다. 그의 취미는 유명 인사들의 자료를 모으는 것. 그러다가 어느 날 일반인 한명의 기록부를 함께 가져오게 되고, 거기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우연히 가져온 36살의 이혼한 여성의 기록부. 그것은 그의 삶 자체를 송두리째 흔들어놓았다. 왜 하필 그녀를 찾아 나서려는지 자신도 알지 못했다. 그녀를 찾기 위해 그녀가 태어난 곳 1층에서 그녀의 대모를 만나게 되고, 그녀가 다녔던 학교를 찾아가 그녀의 생활기록부를 훔치게 된다. 그러다 그녀가 자살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왜 자살했는지 그 이유를 찾아 움직이기까지 한다. 어찌보면 기이한 이야기의 연속, 어디 저런 사람이 실제로 있을까 싶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하지만 작가가 여기서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36살 이혼녀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되어 그녀의 존재 자체를 찾아나서는 일은 결국 우리 주변의 인물들에 대한 존재의 인식과 그 존재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 인생에서 의미 없던 하나의 존재가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인생에서 제일 큰 의미를 지닌 인물로 다가올 때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할까? 그리고 우리 인간은 언제나 죽음과 삶의 경계에 있기 마련이거늘, 과연 삶, 죽음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사고를 해야할까? 나도 아직 잘 모르겠다. 어떻게 사고하는 것이 결국 옳은 것인지 말이다. 하지만 한 장의 서류만이 우리가 이 세상에 살다 갔음을 증명한다면 무언가 좀 쓸쓸하지 않을까? 이 소설에서는 결국 죽은자와 산자의 자료를 함께 보관하기로 하고 끝을 맺고 있다. 단지 서류를 한곳으로 모은다는 의미가 전부가 아니라 누군가의 존재에 대해 잊지 않고 의미를 부여하겠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주로 만연체의 문장으로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속의 대화와 서술, 그리고 장황한 상황과 심리묘사. 처음 접해본 주제사라마구의 소설은 내게 굉장히 어렵게 다가왔다. 특히나 사람의 존재와 인식이라는 대단히 어려운 주제를 가지고 소설에 접근하고 있기에 더 그런 것 같았다. 아직도 존재와 인식이라는 갈림길에서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할지 잘은 모르겠지만, 그래도 대충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할지를 알 것같다. 평소에 아무렇지 않게 스쳐지나갔던 일들, 모든 것이 당연하다 받아들여졌던 일들에 대해서 또한번 생각해볼수 있게 된것같다.
p.74 인생이란 그림같은 것이어서 비록 언젠가 그것을 만져보고, 냄새를 맡고, 맛보기 위해 다가갈지라도 항상 서너 발자국 정도는 떨어져서 그것을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p. 145 모든 것을 다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인간의 영혼이란 인간적이지 못할 대도 많다.
p. 185 지금 네가 있는 이곳의 어둠은 너의 몸속에 존재하는 그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아냐. 어둠이란 인간의 살이란 것을 경계로 두 개로 분리되어 있지.(중략)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는 어둠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배웠듯이 자신의 외부에 존재하는 어둠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도 배워야해.
p.209 존재하지 않는 사람에게 거짓이란 없어요.
p. 221 완전한 죽음은 망각의 마지막 열매이고, 삶이란 기억 속에서 영원할 것입니다.
p. 253 눈앞에 바로 보고 있어도 거짓을 보지 못할 수가 있다는 걸.
p. 291 결국 죽음이란 다 똑같은 거야.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이고, 섞이고 뒤바뀌면 어때. 어차피 세상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