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류승완감독의 '베테랑'을 봤다. 역시 나에게 류승완감독의 최고작은 '부당거래'임을 확인하고 극장을 나섰다. 베테랑은 부당거래의 완벽한 플롯에는 많이 미치지 못하고 좀 듬성듬성이었는데, 감독이 흥에 겨워 찍었다는 건 알겠더라.

'왕좌의 게임'을 본 이후로 어떤 영상을 봐도 그닥 와닿지 않는 현재의 나의 상태가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그래서 중세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보면 좀 희석이 될까 싶어 예전에 케이블에서 봤던 '킹덤오브헤븐'이 생각나서 VOD를 검색했더니 다행이 있었다.

'왕좌의 게임'이 정의와 불의, 선과 악이 불분명한 권력의 세계를 그렸다면, '킹덤오브헤븐'은 기사도 정신에 충실한 세계를 그린다. 처음 케이블에서 볼때는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본 영화라 감독이 누군지도 무슨 영화인지도 모르고 보기 시작해서 푹 빠져 봤는데, 끝나고 나서 타이틀롤에 감독으로 리들리스콧이 나와서 아. 그럼그렇지하고 수긍했던 기억이 난다.

 

다시 보기한 '킹덤오브헤븐'은 역시나 좋은 영화였다. 나는 주인공 발리안의 태도가 참 좋았다. 그 태도를 뭐라고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힘들기는 한데, 무심하다고 해야 하나 초연하다고 해야 하나, 겉으로는 종교적인 광기에 사로잡힌 듯이 보이나 사실은 사리사욕을 취하려는 인간들 사이에서 절대적인 확신을 갖지 않는.. 다만 인간(그 인간이 비천하던, 귀족이던, 종교가 카톨릭이던 이슬람이던..)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만은 가진 태도.  

영화 중 대사로 한다면 So be it(그렇게 두라).  발리안은 중요한 제안을 거절할 때마다 "So be it'이라고 대답한다. 어찌보면 권력욕이 없는 그런 태도가 전쟁을 불러일으켰을 수도 있으나, 불안한 평화는 언젠가는 깨질 수밖에 없었고, 그 와중에 '양심의 예루살렘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란 신념을 지키려는 발리안의 태도는 무너져가는 예루살렘에서 오히려 백성들의 목숨을 구해낸다.  

내가 가장 마음에 든 장면은 발리안이 자신의 영지에 가서 우물을 파고 마을사람들과 돌아오는 장면이었다. 열심히 땀흘려 노동한 대가로 우물에서 물이 나오자 뿌듯한 마음 한가득 안고 마을로 돌아오던 장면에서 유대인 카톨릭 이슬람인 모두가 공존하며 지내는 이상향을 실현한 듯 보였다.

 

영화를 다 보고 찾아보니 런닝타임이 45분 정도 더 긴 디렉터스컷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부랴부랴 중고를 주문했는데 디렉터스컷에는 본편에서 생략되었던 스토리와 인물들이 더 있다고 하는데 기대가 많이 된다.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십자군 전쟁과 살라딘에 대한 관심이 커져서 관련서들을 좀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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