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은건 아니고 Call Me by Your Name 영화를 봤다. 보는 내내 이탈리아 북부 시골의 햇살이 내뺨에 닿는것 같고. 살구열매를 입안가득 물고 있는것 같고. 시원한 강물이 내 피부를 스쳐가는 것 같고. 무엇보다 매끄러운 소년의 입술이 내 혀 끝에 닿는것 같았다. 영화를 통해 오감만족을 느낀 드문 경험이었다.
영화에서 제일 좋았던 건 엘리오 가족의 대화였다. 이탈리아어, 영어, 불어, 독어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이 가족은 적재적소에 필요한 언어로 대화한다. 일상적인 대화는 영어로, 친구들과는 이탈리아어로 문학을 이야기 할 때는 불어와 독어로.. 그게 얼마나 부럽던지... 엘리오와 그 부모들의 유연한 사고는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능력에서 온 것이 아닐까 생각됐다.


(이하에는 영화의 스포가 넘칠만큼 있습니다 -.-;;)

 

영화의 화자는 17세 엘리오지만 난 24세 미국 청년 올리버의 감정선을 좇아가며 보게됐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첫사랑의 풋풋함, 간절함은 기억 저편에서 쉽사리 떠오르지 않아서일 것 같은데. 올리버의 감정선을 내 마음대로 재구성하며 영화를 봤다.

 
올리버는 키 크고 잘생기고 똑똑하고 운동도 잘해서 어디서나 선망의 대상이이었고, 자신만만한 청년이었다. 그러던 그가 여름 방학을 맞아 저명한 학자의 저술을 돕기 위해 온 이탈리아의 여름별장에서 세상에 없을 것같은 미소년 엘리오를 만나 치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엘리오는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섬세하고 지적이고 피아노 연주도 훌륭하니 사랑에 빠지는 것이 너무 당연했을것이다. 하지만 소년을 사랑한다는 죄책감에 엘리오를 피해보기도하고 격정때문에 밤새 온동네를 헤매 다니기도 했을것이다. 영화에서는 “밤새 너를 생각하며 이곳에 있었다”는 올리버의 한 줄 대사에 많은 감정들이 느껴졌다. 엘리오와 하룻밤을 보낸 아침, 엘리오가 자기에게 실망하지 않았을까 걱정하며 눈치를 보는 올리버가 안쓰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결국 올리버는 자신을 잃기 전에, 엘리오를 만나기 전의 자신으로 돌아가기 위해, 이탈리아를 떠나 헤어졌던 여자친구와 재회하고 결혼을 결심한다. 올리버는 엘리오처럼 자신을 이해해줄 부모도, 친구도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과연 그 결혼생활이 행복했을까. 엘리오를 잊을수 있을까? 아마도 그러지못할것이다. 엘리오의 아버지처럼 환경의 테두리에 자신을 가둔 것을 후회하지 않았을까.


치명적인 사랑은 그만큼 위험한 것이다. 경험하지 않았더라면 안온한 삶을 살았을. 하지만 운명같은 격정을 누린 기쁨의 댓가를 평생 치뤄야할 올리버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 부러운 마음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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