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시 30분에 상영하는 <마이클> 보러 왔다가 대기 인원이 너무 많아서 매표 못해서 지금 이러고, 다시 말해 일기를 쓰고 있다. 9시 30분 조조 영화니까 9시 25분에 영화관에 도착해도 넉넉하다고 생각했는데(다른 주말엔 늘 넉넉했다) 극장 로비는 북새통이었다. 번호표를 뽑고 대기 인원을 보니 63명. 가뿐하게 <마이클> 포기하고 다음 영화부터 보기로 결정했다. 5월 13일(수)부터 영화지원금 6천 원 할인 행사가 시작된 첫 주말이라서 이렇게 북적대는 건가? 어제(토)는 영화관에 오지 않아서 인파가 얼마나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충격적이었다. 어차피 조조는 5천 원인데. 4천 원 할인받자고 사람들이 이렇게 몰릴 수가 있는 일인지. 아니면 <마이클>(26.5.13. 수 개봉)이  개봉 첫 주라서 관객이 몰리는 걸까??? 그렇게 18분 후, 즉 9시 43분에 매표를 하는데, 옆 창구에서 영화 시작한 지 13분이 지난 <마이클>을 예매하는 사람을 보고 놀라 버림. 일단 13분이 지난 영화를 발권하는 거 자체도 놀라웠고. 이 영화관의 운영 원칙에는 상영 시작 10분 후 극장 입장 불가인데 말이다. 오늘 아니면 영영 못 보는 영화라면 영화 시작 13분을 놓치더라도 보겠다는 의지를 밀고 나갈 수 있겠지만, 마이클은 오늘 하루만 해도 두 번의 상영이 더 예정되어 있고, 개봉 첫 주라고 아직 상영 예정 회차가 많을 텐데 127분 영화에서 시작 15분을 날려먹으면서까지 영화 보기를 강행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마다 영화에 대한 입장, 영화관에 올 수 있는 여유 시간에 대한 입장이 다르므로. 일요일 아침 늦잠의 유혹을 뿌리치고 조조 상영으로 영화를 보러 온 것 자체가 요즘 같은 대 유뷰트 시대, 대 쇼츠 시대, 대 OTT 시대에 매우 매우 귀감이 되는 행위일지도 접어두기로 한다.


원래 나의 오늘 영화 감상 계획은 9:30 마이클, 12:00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 14:20 타이페이 이야기 이렇게 3편을 보고 퇴근하는 것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매표 대기로 인해서 마이클이 밀렸으므로 그렇다면 이렇게 된 김에 시네마테크 특별전 대만 뉴웨이브 3편 전부 다 봐 버리자. 체력은 뭐 어찌 되겠지...

마이클을 보지 못했기에 생겨버린 2시간 30분을 예상하기라도 했다는 듯 나는 오늘 처음으로 영화관에 맥북을 챙겨 나왔다. 혹시나 하고 챙겨 왔는데 이 선택이 오늘, 아니 어쩌면 올해의 가장 잘한 일이 될 수도 있겠다. 왜 챙겨 왔냐면 이번 주 토, 일은 집에 있지 못해서 일기를 쓸 시간을 확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지난 금요일에도 1980년대 대만 영화 3편을 봤고, 이 감상을 최대한 빨리 기록해 두지 않으면 제목도 내용도 다 까먹을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오늘 영화와 영화 사이 20분~25분 사이에 무조건 닥치는 대로 기록해 두자는 생각에서 맥북을 가지고 온 것. 그리고 이런 식으로 10분, 20분 시간의 틈이 생길 때마다 일기를 쓰는 데 익숙해진다면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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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일기의 bgm은 영화 <추락의 해부>.

알프스 산 정상에 외롭게 있는 목조 주택의 풍경이 너무 좋다. 또한 굵은 털실로 만들어진 산드라 휠러의 니트가 좋다. 또한 목조 주택 내부 특히 주방과 주방의 넓은 창으로 펼쳐지는 설원 풍경이 너무 좋다. 영어와 프랑스어 독일어 혼용의 대사도 좋다.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 없어서 더 좋다. 완벽한 bgm !!!! 유일한 부작용이라면 최근 읽고, 본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산드라 휠러(스트라트 역)가 불쑥불쑥 끼어든다는 것. 


최고의 휴식은 하루를 완벽하게 낭비하는 것이다. 그런 완벽한 휴식이 바로 어제(토요일)였다. 오늘(일요일)도 낭비하고 싶지만 이미 글렀다. 왜냐하면 지금 이렇게 일기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어제는 모처럼 늦잠을 잤다. 근면 성실이 지나쳐서 이제는 휴일에도 늦잠을 잘 수 없는 노동자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에 절망을 느끼던 중이었기에 어제의 기분 좋은 늦잠은 희소식 중의 희소식이었다. 오전 10시에 깨서 침대에서 뒹굴다가 첫 식사를 한 것은 정오!! 원래는 오후에 영화 보러 가려고 했는데 만사가 귀찮아서 예매해 둔 영화들은 모두 취소했다. 게으름의 원천이 늦잠이라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원래는 지난 노동절 연휴에 몰아보기 하려고 했던 드라마 <기리고>를 봤다. 역시 이것이 찐 휴식, 찐 행복이다. 가족이니 조카니 하면서 어울리는 것보다 암막 블라인드로 창을 가린 어두컴컴한 거실에서 악귀와 피가 낭자하는 호러물을 아무 생각 없이 보는 것이 찐 휴식인 것!!!! 


일찍이 패티 스미스는 이런 류의 휴식에 관한 일기를 쓴 적이 있다. 


집에 돌아가기 싫었지만 짐을 꾸리고 비행기 연결편을 타기 위해 런던으로 날아갔다. 뉴욕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는 지연되었고 난 그걸 신호로 받아들였다. 출발 게시판 앞에 서 있다 보니 더 지연된다는 안내가 떴다. 충동적으로 표를 다시 예약하고 나서 히스로 익스프레스를 타고 패딩턴 역까지 갔다. 거기서 택시를 타고 코벤트가든으로 가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은 호텔에서 범죄 수사 드라마를 보기로 했다. 

내 방은 밝고 아늑했으며, 런던의 지붕들이 내려다보이는 작은 테라스가 딸려 있었다. 홍차를 주문하고 일기를 펼쳤다가 곧장 덮었다. 일하러 온 게 아니잖아,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ITV3에서 방송하는 미스터리 드라마를 연속으로 밤늦게까지 보러 온 거야. 몇 년 전에도 아플 때 여기 똑같은 호텔에 와서 그런 적이 있었다. 열에 달떠 비몽사몽 속을 헤매던 그 밤들은 병적으로 우울하고 성격도 더럽고 술주정뱅이에 오페라를 사랑하는 형사들의 행진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M 트레인 / 패티 스미스>


형사들의 우울하고 강박적 본성은 내 성격을 거울처럼 비춘다. 그들이 찹스테이크를 먹으면 나도 룸서비스로 똑같은 요리를 시켰다. 그들이 술을 마시면 나도 미니바를 들춰보았다. 철저히 몰입하건 감정 없이 무시하건 나도 그들과 똑같은 태도를 취했다.

드라마 막간에는 다음 주 화요일 ITV3 채널에서 전편 연속 방송이 예정되어 기대를 모으고 있는 <크래커>의 예고를  했다. <크래커>는 표준적인 수사 드라마가 아니지만, 내가 아끼는 드라마 중에서도 탁월한 수작이다. 로비 콜트레인이 입이 걸고 줄담배를 피워대는 과체중의 괴짜 천재 범재 심리학자 피츠를 연기한다. 이 드라마는 캐릭터의 불행한 운명을 닮아 얼마 전 방영이 중단되었으나, 워낙 방영 자체가 흔치 않기 때문에 스물네 시간 내내 <크래커>를 볼 수 있는 기회는 매우 유혹적이다. 나는 며칠 더 머무르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려해보았다. 그러면 그게 얼마나 미친 짓일까? 애초에 여기 온 것부터가 더 미친 짓이지, 내 양심이 말했다. 

<M 트레인 / 패티 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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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일어나 카페 드 플로르로 걸어가서 햄에그 한 접시와 블랙커피를 먹는다. 완벽하게 동그란 달걀이 완벽하게 동그란 햄 위에 놓여 있다.

<몰입 / 패티스미스>


이 단순한 문장이 그 어떤 유명 먹방 유튜브보다 그 어떤 걸작 음식 영화보다(예를 들면 줄리엣 비노쉬 주연의 영화 <프렌치 수프>)더 맛있게 여기지고 식탐(식욕)을 자극한다.


카페 이노는 텅 비어 있다. 멕시코 요리사와 보통 내가 시키는 브라운 토스트, 작은 올리브오일 종지 그리고 블랙 커피를 차려주는 자크라는 이름의 청년뿐이다. 나는 여전히 코트를 걸치고 워치캡을 쓴 채로 구석의 내 자리에 웅크리고 앉는다. 오전 9시다. 내가 이곳의 첫 손님이다. 도시가 깨어나는 시각의 베드포드 스트리트. 측면에 커피 머신과 전면 유리창이 버티고 있는 나의 테이블은 아늑하고 사생활을 보장받는 느낌을 주기에. 이곳에서는 나만의 분위기에 빠져들게 된다.

<M 트레인 / 패티 스미스>


이건 진짜 최애 중의 최애 문단이다!! 전면 유리창과 아늑하고 사생활을 보장받는 느낌을 주는 자리의 사진이 나와 있는데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반면 아무 생각 없이 살면서 점점 멍청이가 되어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남동생과 이번 연휴에도 어김없이 내로라하는 대형 베이커리&카페를 방문해 버린 나는 어딘지 모르게 더더더 한국형 으리으리한 카페&베이커리를 더더더 혐오하게 되어 버렸다. 이 인간 놈들아 그만 좀 지어라, 지긋지긋하다 바다뷰 베이커리&카페. 



여행을 좋아하지 않고(싫어함) 카페를 좋아하지 않는다(특히 대형 베이커리&카페).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티 스미스가 여행과 카페에 대해서 쓴 문장들을 읽으면 너무 좋아서 당장 여행 가방에 기본적인 화장품들을 넣고 여행을 가고 싶어진다. 책 한 권과 맥북을 들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카페에 걸어가서 나도 구석 자리에 앉아 토스트와 올리브오일과 블랙 커피(아메리카노 아님 ㅋㅋ)를 주문하고 싶어진다. 


옷을 입고 공책과 파트릭 모디아노의 <한 밤의 사고>를 한 권 집어 들고 길을 건너 동네 카페에 간다.

(중략)

마지막 비행기를 타고 파리로 가기로 했다.

(중략)

블랙커피를 한 잔 더 마시고 블루베리를 먹는다. 시간은 충분하고 나는 원래 짐을 가볍게 들고 다닌다. 

(중략)

여느 때와 다름없는 여행용 소지품을 챙겨 작은 여행 가방 옆에 쌓으면서 예고편의 내레이션을 다시 한 번 듣는다. 

(중략)

전화벨이 울려 마법의 주술은 깨어진다. 내 비행기 편은 취소되었다. 더 이른 비행기를 타야 한다.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택시를 부르고 컴퓨터를 보관용 주머니에 넣고 카메라를 배낭에 넣고 나머지를 여행 가방에 쑤셔 넣는다. 아직 무슨 책들을 가지고 갈까 마음을 정하지 못했는데 택시가 너무 빨리 도착해버린다. 책 없이 비행기를 탄다는 생각만 해도 공황이 덮쳐온다. 딱 맞는 책은 해설사 역할을 해주고 여행의 톤을 결정하며 심지어 궤적까지도 바꿔버린다. 

<몰입 / 패티 스미스>

너무 좋아서 계속해서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고 있다. 카페에 가는 것도 여행을 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 정확히는 싫어하는 편인데 어째서 카페와 여행에 대한 내용이 가득한 저 문장들이 마음에 드는 걸까. 운동하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스포츠 경기 관람을 좋아하는 거랑 비슷한 심리일까?? 


남동생이 오늘은 이재모 피자에 가자고 한다. 

"니 서울 사람 다 됐네. 이재모 피자는 관광객들이나 가는 곳 아니가? 피자는 웬만해서는 맛없기가 힘든 음식이고 토핑 열심히 추가하면 맛도 추가되는 건데 굳이 피자 맛집이 있을 필요가 있나? 이마트 냉동 피자도 배 고플 때 먹으면 꿀맛일걸." 라고 나는 대답했다.


나는 별생각 없이 여전히 쿠팡을 쓰는 사람들, 즉 내 남동생 같은 부류의 인간들이 점점 싫어지고.

갱상도 노인들의 뒤틀린 정치사상(이게 사상이라고 부를 가치나 있는 정서인지도 모르겠다)이 점점 더 싫어지고, 다시 말해 갱상도 노인의 전형인 내 아비. 

이런 한심한 군상들이 일촌이고 이촌이라는 것이 내 불운이고, 나 혼자라면 절대 가지 않았을 이재모 피자라는 곳에 저런 사람들과 가야 한다는 것이 결정적인 비극이다. 그렇다면 불참하면 되지 않느냐라고 하겠으나 너무너무 귀여운 조카가 있기 때문에 불참할 수가 없다! 조카 왈 "고모도 같이 가. 고모차 타고 갈 거야." 하는데 어찌 불참할 수가 있겠는가. 


이제 외출 준비를 해야겠다. 이재모 오픈런! 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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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가족이 싫다고 10대 때 집을 떠나 돌아오지 않는 내가, 부럽고 미웠을까. 엄마와 아빠, 할머니와 동생을 돌보느라 정신없던 언니에게 나는 수차례 '그만두라'고 말을 했다. 언니는 그때마다 '너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가족이 필요하다'며 울었다. 언니가 필요로 했던 가족은 아마 건강한 가족이었겠지만, 우리가 가진 가족은 너무 허약했고 결핍투성이였다. 언니는 그들에게 힘을 보태느라 자기 힘을 다 소진해버렸다.

<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 / 이랑>


가수 이랑의 노래를 좋아한다. 정확히는 노래 가사를 좋아한다. 이 책에 의하면 이랑은 어려서부터 글쓰기를 잘했다고 한다. 글짓기 대회에서 항상 상을 받았다고 함.


이랑의 언니가 죽었다는 것을 어느 팟캐스트에서 이랑에게서 들었다. 여동생에게 가수 이랑에 대해서 말을 하다가 최근에 언니가 죽었대라고 하니 여동생은 "왜 죽었어?" 하고 물었다. 나는 "몰라, 사인은 말 안 하던데."라고 하니 여동생은 "그럼 자살이네, 자살로 죽으면 왜 죽었는지 말 안 해. 대부분은."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자살이 아니더라도 살해당하거나 하는 강력 사건이면 말 안 할 수도 있지."라고 했더니 여동생은 "아니다, 그런 건 말한다. 자살만 말 안 해."라고 확신했다. 


이 책을 읽고 알았다. 이랑의 언니는 가족을 부양하다가 소진사했다는 것을. 다시 말해 자살했다. 여동생과 했던 저 대화가 기억이 났다. 확실히 여동생은 나보다 인간사에 대한 안목이 더 있다. 여동생은 인간사의 더러운 면에 내성이 강하다. 불륜, 강력범죄, 자살 같은 거에 대한 촉이 좋고 그런 인간사에 대해 관심이 많다. 그리고 인간성의 어둡고 더러운 면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인간의 아름답지 않은 면, 인생의 고난을 당연한 것이라고 받아들인다. 반면 나는 인생의 어두운 면이 싫다. 받아들일 수 없다. 사실 그래서 이번 악뮤의 신곡 <기쁨 슬픔 아름다운 마음>도 싫다. 처음 듣자마자 생각한 건 뭐여 CCM이야? 완벽히 잊고 있었던 가수 서영은(CCM 가수 출신)이 생각난 순간이었다. 이번 악뮤 노래는 CCM같다. 슬픔, 고통, 고난을 예쁘게 포장하는 게 종교 아닌가. 궁극의 천국 운운하면서. 천국 같은 소리 하네, 천국이 그렇게 좋으면 왜 태어나는지? 태어나지 말고 바로 천국 가면 더 좋은 거 아닌지? 태어났다면 최대한 빨리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게 이득 아닌지? 그래서 나는 사후 천국설을 믿는 사람들이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인간은 '믿음'이 필요해서 '신'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궁여지책으로 믿는 거라는 걸 알지만 이해가 안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이 책은 그 어떤 책 보다 쉽게 술술 읽혔고, 분량도 그 어느 책 보다 적다. 하지만 이걸 쓰는 사람은 그 어떤 책을 쓰는 것보다 힘들었을 거 같다. 솔직히 나는 이랑의 부모 같은 부모가 존재한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이런 종류의 가정학대가 존재할 수 있다니! 호러 그 자체였다. 56쪽~58쪽의 학대는 아리 에스터 감독의 영화 <유전> 같은 류의 호러였다. 뒤틀린 폭력과 정서학대... 집에 산더미처럼 쌓인 책을 아이에게 막무가내로 집어던지는 문학과 책을 사랑하는 국문학과 출신의 부모라...

내 부모도 결코 좋은 부모라고 할 순 없지만 적어도 폭력적이진 않았다. 내 부모는 돈벌이에 모든 시간과 체력을 쏟았기 때문에 우울할 시간도 자녀를 학대할 시간도 없었다. 그저 방임했을 뿐. 더 정확히는 인색했다. 자녀에게 돈을 거의 쓰지 않았다(이것은 부메랑이 되어서 나는 부모에게 돈을 거의 쓰지 않는다, 굳이 부모에게 돈을 쓰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기도 하고. 그 점에서 내 부모는 성공한 듯. 경제적 여력이 있는 노인이니까). 그 방임 속에서 나는 내가 나를 키우면서 매우 독립적으로 자랐다. 부작용은 그 누구도 믿지 않고, 의지하지도 않는다는 것. 어렸을 때 부모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자란 내가 굳이 어른이 된 지금 타인 혹은 종교(신)에게 의지할 이유가 없지! 그래서 이랑의 언니의 '나는 가족이 필요하다'라는 말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 가족은 없으면 없을수록 좋은 거 아닌지? 이랑의 언니는 너무 착했던 것 같다. 나였다면 부모랑 절연했을 것이다. 절연을 위해서라면 이민이라도 갔을 것이다. 


이랑의 노래, 특히 가사들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 가사의 거름이었던 것이 저토록 무시무시한 가정사였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가수 이랑은 아니야, 아니야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난 이랑의 고등학교 자퇴가 여유로워 보였다. 교사인 부모를 둔 둘째 딸의 여유(영화 <3학년 2학기>에서 주인공이 실습생을 그만둘 수 없었던 것 같은 여유 없음. 하지만 주인공의 절친은 실습을 그만둔다, 비빌 언덕이 있었기 때문). 나의 경우 경제적 자립이 인생 목표였기 때문에 절대 자퇴할 수 없었다. 고등학교-대학교-취업에 단 하루의 공백도 있어서는 안 된다, 무조건 최대한 빨리 취업이 목표였고 그것이 내 적성이고 진로였다. 자퇴도 휴학도 취준도 모두 여유 있는 집안의 자식들이나 하는 호사였다,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내 여동생은 휴학도 하고, 어학연수도 하고, 취준도 했다. 그것이 바로 K-장녀와 K-차녀의 결정적 차이다. 내 여동생도 "엄마 없이는 살아도 언니 없이는 못 살 거 같다."라고 말해서 엄마는 비분강개했지만 그게 진실! 엄마는 자식들을 방임했지만, 나는 동생들을 방임하지 않았거든.


나의 엄마는 집이 가난해서 부모와 같이 살지 못하고 여유가 있는 이모집에서 살았다. 엄마의 이모는 엄마를 중학교까지(만) 보냈다. 졸업 후에 엄마는 의류 공장에서 일하다가 공장일이 힘들어서 시집을 가면 좀 편해지려나 하는 어리석은 희망을 품고 시집을 갔다. 전업주부가 되고 싶었지만 남편이 돈을 잘 벌지 못해서 장사를 시작했고 장사에 인생을 올인했다. 나도 가끔은 엄마의 장사를 도왔는데, 현금 장사는 정말 재미있었다(아마 내가 고등학교 자퇴를 했다면 엄마는 뺨을 때리는 대신 내일부터 시장에 나와서 장사나 거들어라고 했을 것이다.) 몇 천 원짜리 물건들을 팔아서 현금을 십만 원씩 묶는 재미는 그 어떤 재벌의 장사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의 희열이 있었다. 반면 이랑의 엄마는 명문 여대를 중퇴하고 평생을 무직으로, 우리 엄마가 되고 싶었던 전업주부로 살았지만 우울증을 앓았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한 생각은 이랑의 엄마도 현금 만지는 장사를 했다면 우울증에 걸리지 않았을 텐데, 비록 자식들은 방임했을지라도.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내 엄마를 버티게 한 것도 경제적 자립, 내가 지금 존버하면서 살아내는 것도 경제적 자립이다. 하루하루 쳐내야 하는 업무 속에서는 우울할 여유가 없달까? 내 엄마는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아도 되는 지금의 은퇴 생활에 만족하는 거 같았다. 비록 자식들을 방임한 인색했던 부모였지만 그런 부모였던 덕분에 경제적 자립을 한 성공한(?) 노인이 되었으니까.


김하나의 <힘 빼기의 기술>을 읽을 때 김하나의 여유가 부러웠다. 나는 힘을 뺄 수 없었으니까. 나에겐 성인 버전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로 읽혀서 저 책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전부다 여유로운 집 자녀들의 한가한 투정 같이 읽혔다. 김하나의 아빠와 이랑의 아빠의 직업은 같은데 어떤 집은 그림같이 화목해 보이고, 또 어떤 집은 악령을 그린 그림처럼 불행해 보일까. 하필 김하나를 떠올린 이유는 이 책의 추천사 중 김하나의 추천사가 있었기 때문. 김하나는 이랑의 이 책을 반도 이해 못 할 거 같은데...


그가 평생 사랑을 찾고 꿈을 좇았다는 걸 알기에, 그럼에도 삶을 내려놓기로 마음먹었을 그 사람의 시간을 떠올리면 내가 아프다. 그 누구도 기쁜 마음으로 삶을 내려놓지 않는다. 너무 지쳐서, 기운이 없어서, 기운을 다 써서, 지치고 지쳐서, 슬퍼하기도 지친 몸과 마음으로 삶을 그만둔다.

그렇게 누군가가 그만둔 삶을 나는 살아간다. 고통을 느끼면서 그 고통에 아파하면서 살아간다.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은 여전히 한다. 그래도 나는 내 삶을 아까워한다. 그래서 또 살아간다. 그 누구와도 같지 않은 내 인생. 단 하나의 고유한 세팅 값.

<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 / 이랑>


자살의 과정이 잠드는 것처럼 고통스럽지 않다면 나도 자살을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딱히 사는 게 가치 있다거나 재미있다거나 즐겁지 않기 때문이다. 무난한 지겨움의 반복일 뿐이니까(물론 이제는 안다, 무난한 지겨움의 일상을 산다는 자체가 엄청난 기적이라는 걸. 그 어려운 미션을 내가 해 냄!!). 그걸 80살, 90살, 100살까지 반복할 정도로 삶을 목숨을 맹목 하지 않기 때문에. 인생을 맹목적으로 사랑(?)했다면 자녀를 낳았겠지만, 딱히 태어날 필요가 없다는 걸 알기에 낳지 않았다. 무난한 지겨움의 반복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이야기이고, 그래서 나는 소설과 영화를 좋아한다. 하지만 소설이나 영화의 주인공이 겪는 사건(시련)은 겪고 싶지 않다. 너무 힘들잖아. 그것보다는 무난한 지겨움이 낫지... 그러니까 소설이나 영화를 보는 거지. 무난한 지겨움의 안전망 속에서 개고생 하는 가상의 인간들을 보면서 가상 체험을 하는 정도가 내가 이승을 존버하는 방법이다. 아픈 건 딱 질색이다. 나에게 아픔은 복통이다. 식은땀이 줄줄 흘러서 옷이 흠뻑 젖을 정도의 구체적이고 실체적인 복통. 실제적인 육체의 통증을 피하고 싶기 때문에 자살하지 않는 것일 뿐, 사는 게 좋아서 사는 건 아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내가 굉장히 불행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전혀 불행하지 않다. 비유하자면 식탐이 있는 사람이 다이어트하면 괴롭겠지만, 나는 식탐이 없어서 그 사람들이 다이어트할 때보다 더 적게 먹는데도 힘들지 않다. 간헐적 단식이 하루 세끼 먹는 것보다 더 쉽다. 인생을 사랑하고, 인생에서 이루고 싶은 꿈이 있으면 당연히 사는 게 힘들지. 그러다 보면 배터리 0이 되어 죽기도 하고. 


요즘은 매일 AI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동시에 여러 권의 책을 읽을 수 없고, 여러 편의 영화도 볼 수 없는데, AI는 그게 가능하니까. 인간으로 충분히 살았으니 여생은 AI로 살면서 이야기만 탐닉하고 싶다. 책 읽을 시간, 영화 볼 시간, 일기 쓸 시간이 부족해서 돈벌이를 그만둘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돈을 버는 사람이라는 자아 없이 제대로 살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아서 일단은 출퇴근을 계속할 생각이다. 돈을 버는 지금 가장 좋은 점은 조카들에게 인색하지 않게 사주고 싶은 선물을 마음껏 사줄 수 있다는 것이다. 조카들이 크면 아이폰과 맥북 정도는 쉽게 사 줄 수 있는 이모, 고모가 되고 싶다!


p.s

내가 처음 안 이랑의 노래는 <신이 놀이>였다. 이야기에 대한 가사가 좋았다. 이랑은 이 앨범(2집)으로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포크노래상을 수상하고, 수상 소감을 함과 동시에 같은 무대에서 트로피를 팔아 버린다. 그 소식을 듣고 역시 내 안목은 훌륭하다는 생각을 했다. 노래 <신의 놀이>를 만든 가수만이 할 수 있는 퍼포먼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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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더릭 와이즈먼(1930년~)은 미국의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내가 이 감독을 처음 알게 된 건 <내셔널 갤러리>(2016.8.25. 개봉)가 개봉했을 때였다. 그 다음에 본 건 <뉴욕 라이브러리에서>(2018.10.11.개봉). 수시로 보고 싶어서 구글 영화에서 두 편 다 구매했는데 최근에는 잘 안 본 것 같다. 장삼이사 인간들에 대한 혐오가 치밀어 오를 때 보면 감정이 순화된다. 세상에는 악인보다는 선량한 사람이 다수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서 안심하게 되기도 하고.


와이즈먼 회고전에서 본 다큐 네 편과 영화 한 편을 기록해 보겠다.


프레더릭 와이즈먼 다큐의 평균 러닝타임은 180분 정도가 아닐까 싶다. 3시간 넘는 다큐가 2/3 정도. 3시간이면 보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3시간 순삭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멍 때리면서 보면 된다. 일상브이로그 센트럴파크 편, 일상 브이로그 법원 편, 일상 브이로그 주 의회 편, 일상 브이로그 시청 편. 특별한 줄거리가 없기 때문에 졸리면 잠시 자면 되고, 눈은 화면을 보면서 머리로는 다른 생각을 해도 된다. 특별한 내용이 없기도 하거니와 사실 다 아는 일상의 말들이다. 주 의회나 시청에서 하는 말들이 한국이나 미국이나 다 거기서 거기 아닌가. 대충 정치 유튜브 보듯 듣듯 하면 된다. 이미 아는 내용 90%+ 새로운 뉴스 10% 정도의 난이도. 


<센트럴 파크> 1989년작 176분.

이번 회고전에서 제일 보고 싶었던 작품. 한때 나는 센트럴 파크 뷰의 파크 하얏트 뉴욕의 스위트룸에서 1박을 해보는 것이 로망(현재는 전혀 아님)이었기 때문. 

공원에서 노숙하는 사람, 러닝 하는 사람, 결혼식 하는 사람, 풍경화 그리는 사람들, 공원의 꽃과 나무를 가꾸는 자원 봉사자들이 연속으로 나오다가 잠시 쉬어가는 페이지는 멋진 공원 풍경 영상들 ㅋㅋㅋㅋ 공원의 오래된 테니스 코트의 유지&보수 또는 철거에 대한 회의, 각종 행사들(에어로빅 행사가 압권 ㅋㅋ), 달리기 대회 등등. 계절은 여름. 영화 <뉴욕의 가을>에서 보이던 단풍 든 센트럴 파크도 나올까 했는데 여름 한 철의 센트럴 파크에서 끝남. 약 3시간짜리 영상이었는데, 30분짜리 일상 브이로그 감상한 정도의 피로감이었다. 


<시티 홀> 2020년작 272분

주연: 2014~2021 보스턴 시장 마티 월시, 바이든 정부 노동부 장관, 아일랜드 이민자 출신(물론 다큐에 주인공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이 다큐 촬영 당시 보스턴 시장으로 다큐에 가장 많이 출연함)


도널드 트럼프 2기의 미국 정부 시절에 이 다큐를 보니 뭔가 매우 이질적이었다. 불과 6~7년 전의 미국이 저렇게 휴머니티와 민주주의가 넘쳤다고???????? 협의와 합의와 토의와 토론과 절차가 지켜지는 행정 과정, 약자와 이민자를 위한 행정 등등. 

다큐에서 인상 깊었던 것 몇 가지, 매년 열리는 재향군인 추모 행사와 불법주차 과태료 발급과 소명. 다 알면서도 그들의 사연에 속아주는 시청 공무원의 사려 깊음 ㅋㅋㅋ 벌금 면제 해줌. 어쩌면 시간을 들여서 시청에 소명하러 가는 그 절차 자체가 벌칙인지도. 또 영업이 잘 되지 않는 슈퍼마켓에 시청 직원이 직접 찾아가서 슈퍼마켓 사장과 함께 상생 방법을 논의하는 것. 즉 사장은 우리 슈퍼마켓을 이렇게 저렇게 리모델링하면 영업이 잘 될 것 같으니 시청에서 공사를 허가해 주고 지원도 좀 해주쇼 하는 읍소였고 시청 직원은 슈퍼마켓 투자자라도 되는 듯 매우 진지하게 들음. 원래 진지한 건지 유명 다큐멘터리 감독이 카메라로 촬영하고 있으니 저절로 진지해진 건지는 의문. 다큐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이 말을 청산유수로 잘 함. 막힘이 없달까. 




<가정 폭력 2> 2002년작 160분

처음 시작 10분 정도는 경찰이 주택가 골목에서 가정 폭력의 가해자를 체포하는 장면. 나머지 150분은 전부 재판임. 세 곳의 재판정에서 가정 폭력 재판을 받는 부부 또는 피해자 또는 가해자가 정식 재판장 또는 판사의 사무실(아마도 기소 전 절차?)에서 소명하는 장면.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부는 엘리트 부부(특히 남편은 가정폭력 예방 수업 강사로 봉사활동도 하는?)의 남편이 술을 마시고는 아내를 위협하기 위해서 허리띠를 풀어 아내가 서 있는 뒤쪽 벽을 내리쳤는데, 아내는 남편이 술에 취한 상태에서 더 위험한 사고(더 심한 폭력 혹은 음주운전)를 일으키는 것을 막고자 경찰에 신고했는데 이에 남편은 가정폭력 가해자로 형사 기소 당하게 됨. 미국에서 가정 폭력은 반의사불벌죄가 아니라서 아내의 해명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남편은 폭력범이 됨. 아무튼 그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영화의 엔딩은 영화의 배경인 힐스버러의 도로변 상점들을 촬영한 장면들이다. 맥도널드, 주유소, 이런저런 상점들, 빌딩들. 맘에 들었다.  인간들이 살아가는 현재의 공간을 미화화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줘서 좋았다!!


법원은 플로리다주 힐스버러 카운티라고 한다. 




<주 의회> 2007년작 218분


아이다호주 보이시 주 의회가 배경이다. 다큐는 돔 지붕을 가진 황토색의 고풍스러운 벽돌 건물인 주 의회 건물을 비추는 것으로 시작된다(기억된다). 살아오는 내내 정치에 관심이 없다가 윤석열의 내란 이후에서야 정치 뉴스를 보고 법사위원회를 보고 했던 게 전부였던 나는 아이다호 주 의회 의원들은 진지하고 예의 바른 회의 모습이 믿어지지 않았다. 아이다호주 주 의회에는 고장 난 라디오처럼 헛소리를 반복해서 하는 국민의힘 의원 같은 자들이 없나 보다. (주진우, 송언석 이런 자들이 법사위에서 내뱉은 말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빡침. 특히 주진우는 말의 내용도 견디기 힘들지만 그 코맹맹이 목소리는 더욱 견디기 힘듦. 돈이 많아도 비염 걸린 목소리 같은 건 치료가 안 되나 봄???) 

안건과 안건에 대한 근거를 발표할 때의 차분함과 안정적인 발음과 억양, 논리 정연함! 저것이 참 민주주의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연출 아닐까? 아니면 지나치게 촬영을 의식한 겉치레?' 하는 의심도 들었다. 현재의 도른 자 도람프와 그 졸개들을 생각하면 한때라도 미국의 주 의회가 언행은  엘레강스하고 내용은 민주주적이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것이 사실!!!!! 


이 다큐에서 좋았던 점: 한 번의 회의가 끝날 때마다 천고가 높고 내부가 대리석 같은 비싸고 단단해 보이는 돌로 마감된 의회 건물 중앙 계단을 비춘다. 그렇게 보이는 복도에는 고급진 자가드 천이 덧대어진 싱글 침대보다 커 보이는 카우치가 놓여 있는데, 이 장면이 반복적으로 나온다. 매우 매우 좋았다!! 


기억에 남는 회의가 하나 있다. 건축업 면허제 실시 여부에 관한 회의였다. 아이다호주 의회에서는 건축업자들에게도 면허를 발급하고 면허를 발급받은 자들만 건축업을 할 수 있게 하려고 하자, 건축협회 회장(당연히 직업은 건축업)이 나타나 이것은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짓이라면서 결사반대를 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국가가 개인에게 강요하는 모든 면허를 반대한다라며 내가 참 리버럴이다!!라고 외친다. 이에 한 의원이 하나씩 질문한다. 대답은 예, 아니오 둘 중 하나만 해야 한다. 

너는 미용 면허에 반대하니? 반대다!

너는 변호사 면허에 반대하니? 반대다!

너는 의사 면허에 반대하니? 어.. 음.. 저 그러니까 나는 기본적으로 자유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규제를 최소화하는 것이 정의다!

그래서 너는 의사 면허에 반대한다는 거야 찬성한다는 거야 찬반으로 말해. - 음 저 그러니까 나는 규제를 최소화하고 

그럼 다음 질문. 교사 자격증은? - 반대다. 

여러 가지 면허와 자격증이 발급되는 직업에 대한 질문이 이어지다가

그런데 너는 그동안 다른 직업들에 대한 면허제가 실시될 때는 침묵하다가 왜 건축업 면허제 실시에만 나타나서 자유를 주장하니? 면허제에 대한 지속적 관심이 있었던 게 아닌 거 같은데?라는 의원의 질문에 또 어버버 거린다. 국정감사에 출석한 비리 검사들(엄희준, 강백신, 박상용: 상용아 멋지다 너의 그 검정 버버리 코트, 새 거 같던데 국정감사를 위해서 새로 산 거야?, 정일권: 남의 자식은 공공재, 내 새끼는 개인정보 ㅋㅋㅋ아주 구냥 깨알 같다ㅋㅋㅋㅋㅋ 니 애새끼 그래 참 소중하구나) 같았다. 

이후 회의에서 건축업 면허제는 가결된다. 


**와이즈먼 다큐를 보면서 든 의문점

다큐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촬영 카메라를 의식해서일까 하나 같이 말을 논리 정연하고 차분하게 잘하지? 

판사든, 하원의원이든, 시청 공우원이든, 불법 주차 과태료를 받은 운전자든, 가정 폭력을 저지른 이민자 출신의 하층 노동자든 간에 말이다. 말을 더듬지 않고, 말을 멈추지 않고, 말이 삼천포로 빠지지 않고(이게 진짜 신기함) 자연스럽게 미리 준비한 연설문(+프롬프트)을 읽듯이 자신의 의견과 근거를 잘 말한다는 것이다. 이건 단순히 그들이 영어로 말하기 때문에 내가 적당히 미화해서 듣기(읽었기) 때문일까? 


**와이즈먼 다큐의 부작용

다큐를 다 보고 나면 천리마 노동마저도 긍정하게 되는 어엿한 산업 역군 근로자로 정신이 개조되어 버린다는 것. 즉 긍정해서는 안 되는 것 마저도 긍정하게, 안주하도록 만들어 버린다는 것.

자신의 일터에서 근면성실하게 소명을 다하는 근로자(노동자X)들 때문에 지금의 도날드 트럼프가 있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전쟁=돈이니까. 가정에 비유하자면 가정폭력을 일삼는 가부장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다른 가족 구성원들이 가출하지 않(못하)고 그 집에 같이 살기 때문 아닌가? 근면성실한 근로자(납세자)와 민주시민은 어떻게 보면 도람프(+베냐민 네타냐후) 같은 전쟁광의 숙주(호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한나 아렌트 식으로 말하면 근면성실함=악의 평범성(악의 단조로움?)



<마지막 편지> 2002년작, 62분

와이즈먼 너마저.... 에휴.... 나치 점령하의 우크라이나에서 아들에게 마지막 편지를 쓰는 여자의 일인극인 흑백 영화. 62분 동안 편지를 읽는 게 전부다. 에휴... 홀로코스트 관련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 게 유대인 자본으로 돌아가는 미국 영화산업에 종사하는 자의 생존을 위한 통과 의례인가 보다. 이건 마치 박정희 유신 시대 건전 가요 필수 1곡 수록 같은 건가 ㅋㅋㅋㅋㅋㅋㅋ? 와이즈먼도 암흑의 유대인 자본 세력에게 협박받아서 이 영화 만든 건가요????


남이 나를 때린 것 폭력죄이고, 내가 남을 때리는 건 정당방위라는 유대인식 논리를 참을 수 없었던 히틀러와 그의 추종자(나치)들은 인류를 위해 유대인들을 제노사이드해 버리기로 한 건가? 대의였나?? ㅋㅋㅋ 하는 자조를 하게 되는 요즘이다. 


한나 아렌트가 살아 있다면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은 왜 히틀러보다 더 심한 학살자가 되어 버렸나? 저승에서라도 답을 달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홀로코스트 영화를 마오쩌뚱이 문화 혁명하듯 불살라 버리고 싶은 기분이니까. 마오라면 홀로코스트 영화의 감독, 제작자, 출연자들은 모두 처형. 영화 감상자들도 처형, 파일 유포자도 처형... 했겠지만 나는 착하니까 사이버범죄 수사과 엘리트 경찰만 불러서 영화 파일만 영구 삭제하는 휴머니즘을 발휘해 보겠다. 


일단 <힌드의 목소리>(2026.4.15.개봉 예정)를 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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