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는 가족이 싫다고 10대 때 집을 떠나 돌아오지 않는 내가, 부럽고 미웠을까. 엄마와 아빠, 할머니와 동생을 돌보느라 정신없던 언니에게 나는 수차례 '그만두라'고 말을 했다. 언니는 그때마다 '너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가족이 필요하다'며 울었다. 언니가 필요로 했던 가족은 아마 건강한 가족이었겠지만, 우리가 가진 가족은 너무 허약했고 결핍투성이였다. 언니는 그들에게 힘을 보태느라 자기 힘을 다 소진해버렸다.

<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 / 이랑>


가수 이랑의 노래를 좋아한다. 정확히는 노래 가사를 좋아한다. 이 책에 의하면 이랑은 어려서부터 글쓰기를 잘했다고 한다. 글짓기 대회에서 항상 상을 받았다고 함.


이랑의 언니가 죽었다는 것을 어느 팟캐스트에서 이랑에게서 들었다. 여동생에게 가수 이랑에 대해서 말을 하다가 최근에 언니가 죽었대라고 하니 여동생은 "왜 죽었어?" 하고 물었다. 나는 "몰라, 사인은 말 안 하던데."라고 하니 여동생은 "그럼 자살이네, 자살로 죽으면 왜 죽었는지 말 안 해. 대부분은."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자살이 아니더라도 살해당하거나 하는 강력 사건이면 말 안 할 수도 있지."라고 했더니 여동생은 "아니다, 그런 건 말한다. 자살만 말 안 해."라고 확신했다. 


이 책을 읽고 알았다. 이랑의 언니는 가족을 부양하다가 소진사했다는 것을. 다시 말해 자살했다. 여동생과 했던 저 대화가 기억이 났다. 확실히 여동생은 나보다 인간사에 대한 안목이 더 있다. 여동생은 인간사의 더러운 면에 내성이 강하다. 불륜, 강력범죄, 자살 같은 거에 대한 촉이 좋고 그런 인간사에 대해 관심이 많다. 그리고 인간성의 어둡고 더러운 면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인간의 아름답지 않은 면, 인생의 고난을 당연한 것이라고 받아들인다. 반면 나는 인생의 어두운 면이 싫다. 받아들일 수 없다. 사실 그래서 이번 악뮤의 신곡 <기쁨 슬픔 아름다운 마음>도 싫다. 처음 듣자마자 생각한 건 뭐여 CCM이야? 완벽히 잊고 있었던 가수 서영은(CCM 가수 출신)이 생각난 순간이었다. 이번 악뮤 노래는 CCM같다. 슬픔, 고통, 고난을 예쁘게 포장하는 게 종교 아닌가. 궁극의 천국 운운하면서. 천국 같은 소리 하네, 천국이 그렇게 좋으면 왜 태어나는지? 태어나지 말고 바로 천국 가면 더 좋은 거 아닌지? 태어났다면 최대한 빨리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게 이득 아닌지? 그래서 나는 사후 천국설을 믿는 사람들이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인간은 '믿음'이 필요해서 '신'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궁여지책으로 믿는 거라는 걸 알지만 이해가 안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이 책은 그 어떤 책 보다 쉽게 술술 읽혔고, 분량도 그 어느 책 보다 적다. 하지만 이걸 쓰는 사람은 그 어떤 책을 쓰는 것보다 힘들었을 거 같다. 솔직히 나는 이랑의 부모 같은 부모가 존재한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이런 종류의 가정학대가 존재할 수 있다니! 호러 그 자체였다. 56쪽~58쪽의 학대는 아리 에스터 감독의 영화 <유전> 같은 류의 호러였다. 뒤틀린 폭력과 정서학대... 집에 산더미처럼 쌓인 책을 아이에게 막무가내로 집어던지는 문학과 책을 사랑하는 국문학과 출신의 부모라...

내 부모도 결코 좋은 부모라고 할 순 없지만 적어도 폭력적이진 않았다. 내 부모는 돈벌이에 모든 시간과 체력을 쏟았기 때문에 우울할 시간도 자녀를 학대할 시간도 없었다. 그저 방임했을 뿐. 더 정확히는 인색했다. 자녀에게 돈을 거의 쓰지 않았다(이것은 부메랑이 되어서 나는 부모에게 돈을 거의 쓰지 않는다, 굳이 부모에게 돈을 쓰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기도 하고. 그 점에서 내 부모는 성공한 듯. 경제적 여력이 있는 노인이니까). 그 방임 속에서 나는 내가 나를 키우면서 매우 독립적으로 자랐다. 부작용은 그 누구도 믿지 않고, 의지하지도 않는다는 것. 어렸을 때 부모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자란 내가 굳이 어른이 된 지금 타인 혹은 종교(신)에게 의지할 이유가 없지! 그래서 이랑의 언니의 '나는 가족이 필요하다'라는 말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 가족은 없으면 없을수록 좋은 거 아닌지? 이랑의 언니는 너무 착했던 것 같다. 나였다면 부모랑 절연했을 것이다. 절연을 위해서라면 이민이라도 갔을 것이다. 


이랑의 노래, 특히 가사들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 가사의 거름이었던 것이 저토록 무시무시한 가정사였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가수 이랑은 아니야, 아니야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난 이랑의 고등학교 자퇴가 여유로워 보였다. 교사인 부모를 둔 둘째 딸의 여유(영화 <3학년 2학기>에서 주인공이 실습생을 그만둘 수 없었던 것 같은 여유 없음. 하지만 주인공의 절친은 실습을 그만둔다, 비빌 언덕이 있었기 때문). 나의 경우 경제적 자립이 인생 목표였기 때문에 절대 자퇴할 수 없었다. 고등학교-대학교-취업에 단 하루의 공백도 있어서는 안 된다, 무조건 최대한 빨리 취업이 목표였고 그것이 내 적성이고 진로였다. 자퇴도 휴학도 취준도 모두 여유 있는 집안의 자식들이나 하는 호사였다,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내 여동생은 휴학도 하고, 어학연수도 하고, 취준도 했다. 그것이 바로 K-장녀와 K-차녀의 결정적 차이다. 내 여동생도 "엄마 없이는 살아도 언니 없이는 못 살 거 같다."라고 말해서 엄마는 비분강개했지만 그게 진실! 엄마는 자식들을 방임했지만, 나는 동생들을 방임하지 않았거든.


나의 엄마는 집이 가난해서 부모와 같이 살지 못하고 여유가 있는 이모집에서 살았다. 엄마의 이모는 엄마를 중학교까지(만) 보냈다. 졸업 후에 엄마는 의류 공장에서 일하다가 공장일이 힘들어서 시집을 가면 좀 편해지려나 하는 어리석은 희망을 품고 시집을 갔다. 전업주부가 되고 싶었지만 남편이 돈을 잘 벌지 못해서 장사를 시작했고 장사에 인생을 올인했다. 나도 가끔은 엄마의 장사를 도왔는데, 현금 장사는 정말 재미있었다(아마 내가 고등학교 자퇴를 했다면 엄마는 뺨을 때리는 대신 내일부터 시장에 나와서 장사나 거들어라고 했을 것이다.) 몇 천 원짜리 물건들을 팔아서 현금을 십만 원씩 묶는 재미는 그 어떤 재벌의 장사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의 희열이 있었다. 반면 이랑의 엄마는 명문 여대를 중퇴하고 평생을 무직으로, 우리 엄마가 되고 싶었던 전업주부로 살았지만 우울증을 앓았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한 생각은 이랑의 엄마도 현금 만지는 장사를 했다면 우울증에 걸리지 않았을 텐데, 비록 자식들은 방임했을지라도.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내 엄마를 버티게 한 것도 경제적 자립, 내가 지금 존버하면서 살아내는 것도 경제적 자립이다. 하루하루 쳐내야 하는 업무 속에서는 우울할 여유가 없달까? 내 엄마는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아도 되는 지금의 은퇴 생활에 만족하는 거 같았다. 비록 자식들을 방임한 인색했던 부모였지만 그런 부모였던 덕분에 경제적 자립을 한 성공한(?) 노인이 되었으니까.


김하나의 <힘 빼기의 기술>을 읽을 때 김하나의 여유가 부러웠다. 나는 힘을 뺄 수 없었으니까. 나에겐 성인 버전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로 읽혀서 저 책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전부다 여유로운 집 자녀들의 한가한 투정 같이 읽혔다. 김하나의 아빠와 이랑의 아빠의 직업은 같은데 어떤 집은 그림같이 화목해 보이고, 또 어떤 집은 악령을 그린 그림처럼 불행해 보일까. 하필 김하나를 떠올린 이유는 이 책의 추천사 중 김하나의 추천사가 있었기 때문. 김하나는 이랑의 이 책을 반도 이해 못 할 거 같은데...


그가 평생 사랑을 찾고 꿈을 좇았다는 걸 알기에, 그럼에도 삶을 내려놓기로 마음먹었을 그 사람의 시간을 떠올리면 내가 아프다. 그 누구도 기쁜 마음으로 삶을 내려놓지 않는다. 너무 지쳐서, 기운이 없어서, 기운을 다 써서, 지치고 지쳐서, 슬퍼하기도 지친 몸과 마음으로 삶을 그만둔다.

그렇게 누군가가 그만둔 삶을 나는 살아간다. 고통을 느끼면서 그 고통에 아파하면서 살아간다.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은 여전히 한다. 그래도 나는 내 삶을 아까워한다. 그래서 또 살아간다. 그 누구와도 같지 않은 내 인생. 단 하나의 고유한 세팅 값.

<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 / 이랑>


자살의 과정이 잠드는 것처럼 고통스럽지 않다면 나도 자살을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딱히 사는 게 가치 있다거나 재미있다거나 즐겁지 않기 때문이다. 무난한 지겨움의 반복일 뿐이니까(물론 이제는 안다, 무난한 지겨움의 일상을 산다는 자체가 엄청난 기적이라는 걸. 그 어려운 미션을 내가 해 냄!!). 그걸 80살, 90살, 100살까지 반복할 정도로 삶을 목숨을 맹목 하지 않기 때문에. 인생을 맹목적으로 사랑(?)했다면 자녀를 낳았겠지만, 딱히 태어날 필요가 없다는 걸 알기에 낳지 않았다. 무난한 지겨움의 반복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이야기이고, 그래서 나는 소설과 영화를 좋아한다. 하지만 소설이나 영화의 주인공이 겪는 사건(시련)은 겪고 싶지 않다. 너무 힘들잖아. 그것보다는 무난한 지겨움이 낫지... 그러니까 소설이나 영화를 보는 거지. 무난한 지겨움의 안전망 속에서 개고생 하는 가상의 인간들을 보면서 가상 체험을 하는 정도가 내가 이승을 존버하는 방법이다. 아픈 건 딱 질색이다. 나에게 아픔은 복통이다. 식은땀이 줄줄 흘러서 옷이 흠뻑 젖을 정도의 구체적이고 실체적인 복통. 실제적인 육체의 통증을 피하고 싶기 때문에 자살하지 않는 것일 뿐, 사는 게 좋아서 사는 건 아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내가 굉장히 불행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전혀 불행하지 않다. 비유하자면 식탐이 있는 사람이 다이어트하면 괴롭겠지만, 나는 식탐이 없어서 그 사람들이 다이어트할 때보다 더 적게 먹는데도 힘들지 않다. 간헐적 단식이 하루 세끼 먹는 것보다 더 쉽다. 인생을 사랑하고, 인생에서 이루고 싶은 꿈이 있으면 당연히 사는 게 힘들지. 그러다 보면 배터리 0이 되어 죽기도 하고. 


요즘은 매일 AI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동시에 여러 권의 책을 읽을 수 없고, 여러 편의 영화도 볼 수 없는데, AI는 그게 가능하니까. 인간으로 충분히 살았으니 여생은 AI로 살면서 이야기만 탐닉하고 싶다. 책 읽을 시간, 영화 볼 시간, 일기 쓸 시간이 부족해서 돈벌이를 그만둘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돈을 버는 사람이라는 자아 없이 제대로 살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아서 일단은 출퇴근을 계속할 생각이다. 돈을 버는 지금 가장 좋은 점은 조카들에게 인색하지 않게 사주고 싶은 선물을 마음껏 사줄 수 있다는 것이다. 조카들이 크면 아이폰과 맥북 정도는 쉽게 사 줄 수 있는 이모, 고모가 되고 싶다!


p.s

내가 처음 안 이랑의 노래는 <신이 놀이>였다. 이야기에 대한 가사가 좋았다. 이랑은 이 앨범(2집)으로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포크노래상을 수상하고, 수상 소감을 함과 동시에 같은 무대에서 트로피를 팔아 버린다. 그 소식을 듣고 역시 내 안목은 훌륭하다는 생각을 했다. 노래 <신의 놀이>를 만든 가수만이 할 수 있는 퍼포먼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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