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일어나 카페 드 플로르로 걸어가서 햄에그 한 접시와 블랙커피를 먹는다. 완벽하게 동그란 달걀이 완벽하게 동그란 햄 위에 놓여 있다.

<몰입 / 패티스미스>


이 단순한 문장이 그 어떤 유명 먹방 유튜브보다 그 어떤 걸작 음식 영화보다(예를 들면 줄리엣 비노쉬 주연의 영화 <프렌치 수프>)더 맛있게 여기지고 식탐(식욕)을 자극한다.


카페 이노는 텅 비어 있다. 멕시코 요리사와 보통 내가 시키는 브라운 토스트, 작은 올리브오일 종지 그리고 블랙 커피를 차려주는 자크라는 이름의 청년뿐이다. 나는 여전히 코트를 걸치고 워치캡을 쓴 채로 구석의 내 자리에 웅크리고 앉는다. 오전 9시다. 내가 이곳의 첫 손님이다. 도시가 깨어나는 시각의 베드포드 스트리트. 측면에 커피 머신과 전면 유리창이 버티고 있는 나의 테이블은 아늑하고 사생활을 보장받는 느낌을 주기에. 이곳에서는 나만의 분위기에 빠져들게 된다.

<M 트레인 / 패티 스미스>


이건 진짜 최애 중의 최애 문단이다!! 전면 유리창과 아늑하고 사생활을 보장받는 느낌을 주는 자리의 사진이 나와 있는데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아무 생각 없이 살면서 점점 멍청이가 되어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남동생과 이번 연휴에도 어김없이 내로라하는 대형 베이커리&카페를 방문해 버린 나는 어딘지 모르게 더더더 한국형 으리으리한 카페&베이커리를 더더더 혐오하게 되어 버렸다. 이 인간 놈들아 그만 좀 지어라, 지긋지긋하다 바다뷰 베이커리&카페. 



여행을 좋아하지 않고(싫어함) 카페를 좋아하지 않는다(특히 대형 베이커리&카페).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티 스미스가 여행과 카페에 대해서 쓴 문장들을 읽으면 너무 좋아서 당장 여행 가방에 기본적인 화장품들을 넣고 여행을 가고 싶어진다. 책 한 권과 맥북을 들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카페에 걸어가서 나도 구석 자리에 앉아 토스트와 올리브오일과 블랙 커피(아메리카노 아님 ㅋㅋ)를 주문하고 싶어진다. 


옷을 입고 공책과 파트릭 모디아노의 <한 밤의 사고>를 한 권 집어 들고 길을 건너 동네 카페에 간다.

(중략)

마지막 비행기를 타고 파리로 가기로 했다.

(중략)

블랙커피를 한 잔 더 마시고 블루베리를 먹는다. 시간은 충분하고 나는 원래 짐을 가볍게 들고 다닌다. 

(중략)

여느 때와 다름없는 여행용 소지품을 챙겨 작은 여행 가방 옆에 쌓으면서 예고편의 내레이션을 다시 한 번 듣는다. 

(중략)

전화벨이 울려 마법의 주술은 깨어진다. 내 비행기 편은 취소되었다. 더 이른 비행기를 타야 한다.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택시를 부르고 컴퓨터를 보관용 주머니에 넣고 카메라를 배낭에 넣고 나머지를 여행 가방에 쑤셔 넣는다. 아직 무슨 책들을 가지고 갈까 마음을 정하지 못했는데 택시가 너무 빨리 도착해버린다. 책 없이 비행기를 탄다는 생각만 해도 공황이 덮쳐온다. 딱 맞는 책은 해설사 역할을 해주고 여행의 톤을 결정하며 심지어 궤적까지도 바꿔버린다. 

<몰입 / 패티 스미스>

너무 좋아서 계속해서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고 있다. 카페에 가는 것도 여행을 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 정확히는 싫어하는 편인데 어째서 카페와 여행에 대한 내용이 가득한 저 문장들이 마음에 드는 걸까. 운동하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스포츠 경기 관람을 좋아하는 거랑 비슷한 심리일까?? 


남동생이 오늘은 이재모피자에 가자고 한다. 

"니 서울 사람 다 됐네. 이재모 피자는 관광객들이나 가는 곳 아니가? 피자는 웬만해서는 맛없기가 힘든 음식이고 토핑 열심히 추가하면 맛도 추가되는 건데 굳이 피자 맛집이 있을 필요가 있나? 이마트 냉동 피자도 배 고플 때 먹으면 꿀맛일걸."


나는 별생각 없이 여전히 쿠팡을 쓰는 사람들, 즉 내 남동생 같은 부류의 인간들이 점점 싫어지고.

갱상도 노인들의 뒤틀린 정치사상(이게 사상이라고 부를 가치나 있는 정서인지도 모르겠다)이 점점 더 싫어지고, 다시 말해 갱상도 노인의 전형인 내 아비. 

이런 한심한 군상들이 일촌이고 이촌이라는 것이 내 불운이고, 저런 사람들과 나 혼자라면 절대 가지 않았을 이재모 피자라는 곳에 가야 한다는 것이 결정적인 비극이다. 그렇다면 불참하면 되지 않느냐라고 하겠으나 너무너무 귀여운 조카가 있기 때문에 불참할 수가 없다! 조카 왈 "고모도 같이 가. 고모차 타고 갈 거야." 하는데 어찌 불참할 수가 있겠는가. 


이제 외출 준비를 해야겠다. 이재모 오픈런! 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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