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폭염이다. 온열 질환자가 사상 최대라는 뉴스 타이틀을 얼핏 본 것 같다. 감기에 걸렸다. 처음에는 목이 칼칼하니 목소리가 탁한 것 외에는 아무런 증상이 없었다. 그래서 목과 관련된 여러 가지 병들을 떠올렸다. 그래봤자 갑상선암이었지만. 검색해 보니 갑상선암은 증상이 없다고 한다. 


다음날, 일어나니 목에 가래가 낀 것처럼 목구멍이 턱 막힌 느낌이었다. 억지로 억지로 에헴 에헴 목구멍에 붙어 있는 무언가를 떠어내어 보니 꾸덕한 버터 같은 가래가 조금 나왔다. 그 외에는 딱히 증상이 없었다.


또 다음날, 샤넬에 가서 두 시간 정도 이런저런 주얼리와 가방들을 착용해 봤다. 더 보고 싶었는데 영화 시간이 되어서 매장을 나왔다. 극장에서는 아랍영화제를 하고 있었는데 <폐허에서 파쿠르>라는 가자 지구 청년의 목숨을 건 파쿠르와 가자 지구 탈출에 대한 다큐를 봤다. 집으로 돌아올 때 자동차의 에어컨 바람이 매우 차갑게 여겨져서 에어컨을 끄고 운전했다. 집에 도착해서도 별로 덥지 않아서 에어컨을 켜지 않고 샤워하고 바로 잤다.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새벽 2시쯤 오한이 느껴져서 잠에서 깼다. 그때서야 알았다. 이것은 감기, 여름 감기!! 주방으로 가서 상비약이 있는 싱크대를 열어 타이레놀 한 알을 먹고 다시 잤다. 서늘한 느낌이 들어서 내 몸이 김밥 속 재료라도 된다는 듯이 여름 냉감 이불을  김처럼 둘둘 말고 잤다. 


또또 다음날, 콧물이 좀 나왔고, 콧물 때문에 코가 좀 막힌 것 같았다. 봄에 입던 긴 팔 셔츠와 베스트를 입었다. 마스크도 꼈다. 오전 근무만 하고 퇴근했다. 어제 쇼핑을 도와준 직원에게 연락하고 샤넬에 갔다. 샤넬에서 최신상  25-26-fw 25백을 샀다. 거대한 쇼핑백을 들고 주차장으로 가서 트렁크에 쇼핑백을 넣어두고, 쇼핑백 대신 황정은의 신간 <작은 일기>를 꺼내 들었다. 백화점 3층에 있는 메종 키츠네 카페에서 플랫 화이트를 마시면서 내란 수괴 윤 씨가 탄핵되는 날까지의 일기를 읽고 책을 덮었다. 


또또또 다음날, 마스크와 긴 옷 그리고 샤넬 25백으로 중무장을 하고 출근했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욕조에 따뜻한 물을 가득 받았다. 몸을 최대한 온수 속에 담그고 반신욕 덮개를 목까지 올리고 욕조에 기대어 앉아 뉴스를 들었다. 내란 수괴 윤 씨가 소송을 한 104명에게 위자료 10만 원씩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받았다고 했다. 위자료 총액이 어제, 그제 내가 샤넬에서 쓴 돈보다 적었다.


몸이 좀 데워졌는지 거실이 덥게 느껴져서 에어컨을 켰다. 에어컨이 거실을 차갑게 만드는 동안 마스크를 쓰고 긴 팔 옷을 입었다. 이름이 참 맘에 드는 스트레스리스 리클라이너에 눕다시피 앉아서 찜 해둔 영화 중에서 뭘 볼지 리모컨  버튼을 이리저리 눌렀다. <시민 덕희>나 <크로스> 같은 가볍고 통쾌한 범죄 영화가 보고 싶은데 웬만한 건 다 봐서 볼 게 없었다. 거실이 춥게 느껴져서 에어컨을 껐다. <시민 덕희>의 장윤주와 <크로스>의 황정민, 둘 다 나오는 <베테랑 2>를 골랐다. 재미없다는 소문이 있어서 기대 없이 봤는데도 불구하고 재미가 없었다. 졸렸다. 그래서 30분 정도 남겨두고 그냥 잤다. 모델 장윤주 배우(??)의 연기와 배역은 <시민 덕희>가 10배는 더 나았다. 정해인이 악역하기엔 얼굴에 악의가 좀 부족한 듯도 하고. <비상선언>에서 임시완 악역 같을 거라고 기대했는데, 정해인의 얼굴에는 온기가 많은 듯. 임시완은 서늘한 연기엔 참 서늘해 보임. 


여름 감기는 처음이다.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봐도 여름 감기에 걸린 기억은 없다. 이 폭염에 긴 옷에 마스크라니. 지금도 에어컨 켜지 않고 있다. 뉴스에서는 전국 대부분이 폭염 경보라고 한다. 내가 사는 동네도 현재 폭염 경보다. 웃기게도 난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처서 즈음의 여름 같다고 생각했다. 요 몇 년 동안에는 처서에도 굉장히 더웠지만 2000년대나 2010년대에도 처서가 지나면 모기입도 삐뚤어진다는 속담처럼 처서즈음부터는 시원했다. 처서 즈음에 나오는 아오리 사과가 나의 가장 중요한 절기 음식인 시절도 있었다. 무엇보다 그 시절 아오리 사과는 저렴했다. 특히 파장 무렵 시장에 가면 8개에 2000원에 팔기도 했다. 언제던가 마트 과일 코너에서 아오리 사과가 1개에 2000원 하는 걸 보고 기겁을 했던 적이 있다. 물론 좀 더 크고 좀 더 품질이 좋아 보였지만. 


소울 푸드가 죄다 싸구려 음식(아오리 사과 포함)이다. 어렸을 때 먹던 음식들이 그러했기 때문인 것 같다. 뜨거운 오뚜기(일본산 고급 고체 커리 말고) 카레가 먹고 싶었다. 아플 때마다 먹고 싶은 건 죄다 어렸을 때 엄마가 해주던 사소하고 저렴한 음식들이다. 갓 만든 뜨거운 오뚜기 카레(감자, 양파, 당근, 돼지고기, 파프리카)를 에어컨도 없이 긴 팔 옷을 입고 땀을 흘리면서 퍼 먹었다. 나답지 않게 두 그릇을 먹었다. 최근 몇 년을 통틀어서 이렇게 맛있게 음식을 먹은 기억이 없다. 얼마 전에도 뷰가 좋은 해운대 고오급 호텔 뷔페에 가서 시식 코너에서 조각 음식 먹듯 먹은 나인데 말이다. 사람들이 스테이크, 대게 등등 비싼 음식을 여러 접시 먹을 때 나는 수삼냉채, 생선구이, 샐러드 한 접시 먹고 끝. 디저트로는 파인애플 2조각, 수박 2조각 먹고 끝. 내가 만든 오뚜기 카레가 호텔 뷔페보다 10배는 넘게 맛있었다.


내가 만약 소설가인데, 권여선처럼 음식 에세이를 쓰게 된다면 아마도 여름 감기엔 오뚜기 카레를 처방한다 어쩌고 하는 글을 쓸지도. 권여선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생존한 한국 소설가임에도 불구하고(원래 제일 좋아하던 작가는 죽었음. 박완서 소설가이다) 최근작(맞나?) <술꾼들의 모국어>는 사지도 읽지도 않았다. 기존의 음식 에세이 <오늘 뭐 먹지?>와 비슷할 거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나는 술과 안주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얘기가 나온 김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창작자는 가수 오지은 작가(?)인데 오지은의 최신작 <우울증 가이드북>을 사지 않았다. <술꾼들이 모국어>, <우울증 가이드북은> 나에게 있어서 <삐뽀삐뽀 119 소아과>와 다를 바 없는 책이기 때문이다. => 여기서 밝혀진 사실 하나: 나에겐 오타쿠의 피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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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나무의 씨앗> 2024 칸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감독: 모함마드 라술라프 (이란)


자파르 파나히(이란) 감독처럼 이란 정부로부터 탄압(출국금지, 징역 8년, 재산 몰수, 태형 ㄷ ㄷ )받으며 영화를 계속해서 찍는 감독의 최신작. 계엄이 성공했다면 수용번호 3617의 부부도 이런 식의 탄압을 했겠지. 신체 훼손 장면(수술 장면도 못봐서 의학드라마도 좋아하지 않고, 웬만해선 보지 않는다)을 못 보는 나임에도 불구하고 정부 정책에 항의(히잡 반대를 주장하는 시민을 죽인)하는 시위대에게 산탄총(쇠구슬 총)을 무분별하게 발사하는 장소에 우연히 있었기에 얼굴에 십 여발의 쇠구슬이 박힌 대학생(여)의 얼굴에서 족집게로 쇠구슬을 꺼내는 장면을 구토감을 느끼면서도 두 눈 부릅뜨면서 끝까지 봤다. 


가부장제의 발명 자체가 인류가 쓸모없이 이기적이라는 결정적인 증거!


영화의 엔딩에 매우 흡족해 하며 극장을 나왔다. 


<페니키안 스킴> 2025. 5. 28. 개봉

감독: 웨스 앤더슨


미국(유럽)의 가부장과 한국(이란) 가부장을 비교하면서 보면 더 재미있다. 

2000년 이후 서구 가부장은 딸에게도 가부장을 상속하려 한다. 

하지만 한국(이란)은 아직도 가부장을 아들에게 상속하려고 한다.

어제 영화<특별시민>을 봤는데 2017년 작품인데 호주제가 살아있었던 1997년인 줄(호주제는 2008년 폐지됨).

3선을 노리는 가부장 변종구(2선의 서울시장 역)는 상습 가정폭력범(배우자인 아내를 때림)이며 자신의 뺑소니 사망사건을 딸에게 덮어 씌움. 이 장면에서 아들이었다면 저랬을까 하는 의심이 100% 들었다. 경쟁자인 양진주(라미란 배우)의 하버드 출신의 미국 변호사 아들이 등장한다. 이 구조가 웃겼다. 감독은 풍자적으로 이런 딸, 아들 구조를 썼을까, 아니면 별 생각없는 신념(아들은 하버드고, 딸은 희생양)으로 썼을까 궁금했다. 


다시 영화 <페니키안 스킴>으로 돌아와서 타락한 가부장은 수녀 지망생 딸에 의해서 구원받는다는 점에서 대안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성한 나무의 씨앗>에서는 갱생 가능성이 1도 없는 가부장이라서 장렬하게 처벌받는다.




<퀴어> 2025. 6. 20. 개봉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


하!!!!! 

간지!!!!!!

간지!!!!!!!


경치가 끝내주게 아름다운 적도 근처 섬으로 휴가 갔다 온 기분이 들게 하는 영화. 


엔딩에 대한 호불호가 있던데, 난 절대적인 호!!!

이 감독의 필모에 <서스페리아>가 있는 이유지!!!!


개인적으론 호크니의 수영장 그림을 멍 때리고 보고 있으면 힐링이 되는데, 이 영화가 그랬다.

걍 힐링됨.


퀴어는 거들뿐.

분위기와 취향이 다 하는 영화.


이런 게 인생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p.s. 커리어의 후반부에 이런 아름다운 영화의 주연을 맡게 된 다니엘 크레이그는 어떤 기분일까? 최고의 필모 아닌지. 이런 생각을 했을 거 같다. '음, 역시 뱃살 관리 하길 잘 했어.' 하는 ㅋㅋㅋ. 




<노이즈> 2025. 6. 25. 개봉

감독: 김수진(입봉작이라고 한다)


이선빈, 류경수가 출연한다고 해서 기본은 할 거라고 생각하고 예매했다.


퇴근하고 나서, 왠지 의욕이 없었던 날 극장이나 가자하고 가서 본 영화.

집 근처 극장에서 큰 기대없이 한국 공포 장르 영화를 보는 것도 나쁘지 않는 처방.


볼 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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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그런 식이야. 친구가 말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싸우기를 바라는 거지. 암에 대해 그런 식으로 배워왔으니까. 환자와 질병의 싸움이다. 곧 선과 악의 싸움이다. 행동에도 옳은 방식이 있고 그른 방식이 있다. 강한 대응과 나약한 대응. 투사의 방식과 포기자의 방식. 이기고 살아남으면 영웅이 돼. 지면 글쎄, 아마 온 힘을 다해 싸우지 않은 거겠지. 고약한 멍청이 의사들이 내린 사형선고를 받아들이지 않은 덕에 수년을 더 살 수 있었던 이런저런 사람들 얘기를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넌 믿을 수 없을 거야. 사람들은 말기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고 해. 친구가 말한다. 불치라거나 수술 불가능하다는 말도 그렇고. 그런 건 패배주의적 말이라는 거야. 살아 버티는 한 가능성은 있다 같은 정신 나간 얘기를 해. 의술의 기적은 매일 일어난다는 말도. 매일 찾아보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야. 이런 말도 하지. 교육받았다는 똑똑한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이들 암의 치료법이 금방이라도 나올 거라는 환상에 빠져 있는 줄은 미처 몰랐어.

<어떻게 지내요 / 시그리드 누네즈>


최근에 2건의 충격적인 투신자살 사건을 뉴스에서 보았다. 투신으로 사망한 사람은 모두(4명) 10대였다. 사건 1은 부산 소재 예술고등학교 학생 3명의 동반 투신, 사건 2는 경기도에서 정신의학과 진료 직후 해당 건물의 옥상에서 투신한 사건(지나가던 행인 모녀 2명까지 사망)이었다. 늘 주장하는 거지만 존엄사(안락사) 허가해야 한다. 그만 살고 싶다는 사람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반인권적으로 방치하는 것이 말이 되나? 전인류가 조폭 같다. 조폭이 조직을 떠날 때 신체 일부(주로는 손가락?)을 절단하는 처벌을 받듯, 사는 것을 그만하고 싶은 사람을 절대 편하게 보내주지 않겠다는 원칙을 고수하면서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자살하게 방치하는 것은 너무 잔인하다. 


하지만 말해 뭐 하겠는가. 말기 암 환자에게도 존엄사(안락사)가 불법인데. 


드라마 <미지의 서울>을 봤다. 물론 내가 이 드라마를 재미있게 못 볼 거라는 걸 200% 장담했지만, 한국에서 한국사람들과 살아야 하기 때문에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봤는데 4화 후반부에서 미지의 엄마가 미지 방문을 때려 부수고(방 문 손잡이를 망치로 때려 부순다. 이걸 연출한다고? 이래도 된다고? 시발 미친. <소년의 시간>에서는 살인범 신병 확보를 위해서 특공대가 그 집에 들어갈 때 현관문 부숨. 미지가 살인범이냐?) 미지의 엄마가 방으로 들어가서 미지에게 악다구니를 하면 장면까지 보고 이 드라마를 계속 보는 걸 포기했다. 이런 장면 진짜 싫다! 


왜 이런 장면을 연출하는 걸까? 연출가와 극본가에게 진심으로 물어보고 싶다. 왜 부모가 (못난) 자식에게 저딴 식으로 악다구니하는 장면을 연출하는 거냐고? 미지의 엄마(장영남 배우)는 진짜 최악인 게 자신은 딸들에게 모질게 퍼부으면서, 자신의 엄마에겐 왜 나에게 다정하게 대하지 않았냐고 또 퍼부음. 윤서결이냐? 하나만 해라, 하나만. 윤서결식 법치 아니냐. 내가 하면 합법, 남이 나에게 하면 죄다 불법. 이런 미친 사패.


tvN 제작의 <미지의 서울>에서의 부모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드 <소년의 시간>에서의 부모가 정말 비교됐다. 두 드라마 모두 과장이라고 치더라도, 도대체 한드에서 부모상을 늘 저렇게(피해의식 가득한 부모) 연출하는 이유는 도대체 뭐야? 특히 엄마 역에 대한 연출. <미지의 서울> 엄마 역 장영남 배우(이것과 대조적 엄마역은 연분홍 교감 센세인 김선영 배우인가?), <웰컴투 삼달이> 엄마 역 김미경 배우는 정말 처참하다. 


한드에서의 부모(특히 엄마)는 자녀가 자신의 희생에 보답하지 못하고 자신을 실망시키고 힘들게 하면 악다구니를 퍼붓고 자식을 비난한다(이게 데이트 폭력과 뭐가 다른가? 내가 널 사랑하기 때문에 감시하고 억압하고 때리고 한다고 변명하는 가해자의 논리와 뭐가 다른가?). 자식을 독립된 인격체가 아니라 자신의 애완동물 취급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소년의 시간>에서의 부모는 자신들의 양육 방식에 잘못은 없었는지 고찰한다. 


나는 또한 이런 식(자식이 부모를 실망시켰을 때, 특히 부모의 희생에 대한 보답을 하지 못할 때 자식에게 악다구니를 퍼붓는 부모)의 연출이 현재 한국의 부모와 자식들에게 미치는 해악이 크다고 생각한다. 은연중에 부모는 자식에게 퍼부어도 되고, 자식은 부모를 실망시키면 악다구니를 들어도 싸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떤 청소년들은 그냥 자살해 버리는 것이다. 이 나라의 구조, 분위기 속에서는 구원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투신해 버리는 것이다. 청소년이 자살로 택할 수 있는 방법 중 가장 편리한(비용 0원, 준비물 없음) 방법이 투신이라는 것도 슬프지. 


여름이 되면, 늘 자살에 대해서 생각이 많아진다. 왜냐하면 나는 늘 첫 더위가 느껴지는 날에는 fx의 핫썸머를 들었기 때문이다. 설리가 자살한 후 처음 돌아온 여름날에는 핫썸머를 듣지 못했다. 그다음 해 여름부터는 핫썸머를 들었는데, 노래는 참 흥이 나고 좋지만, 감정적으로는 매우 슬프다. 설리는 왜 죽어버렸을까, 설리를 생각하면 세트처럼 구하라가 따라온다. 


ps. 아직 상영 중인 영화 <신성한 나무의 씨앗> 속의 이란 가족 제도의 현실을 보면서 한국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자애가 없는 것은 인류 종특인가 싶기도 했다. 자애가 부족한 사람들이 자식을 키우는 게 인류의 비극인가 싶기도 했다. 소설 <어떻게 지내요>의 두 주인공 중 한 명인 말기 암 환자(영화 <룸 넥스트 도어>의 틸다 스윈튼) 역시도 자애가 없는 부모(엄마)의 전형이다. 이 소설에 나오는 "아이를 한 명만 낳은 걸 후회해." 이 말 자체가 내가 생각하는 부모 그 자체다. 인간은 순전한 이기심으로 자식을 낳고 소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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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노래를 들을까 생각하다가 애플뮤직의 댄스 카테고리를 눌렀더니 제일 먼저 추천된 것은 아비치 2014였다. 언젠가 유명해서 들어봤다기 '내 취향은 아니네.'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어제 아비치의 곡들을 듣는데 맘에 들었다. 맘에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매우 슬펐다. 이렇게 흥이 나는 음악을 만든 사람이 자살을 하다니... 최전성기(더 살았더라면 더 높이 오르지 않았을까)에, 28살의 나이에 자살로 생을 끝낸 사람이 만든 세상에서 가장 신나는 음악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슬펐다. 갑자기 아비치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서 검색해 보았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호텔방에서 와인병을 깨서 목을 그었다고 한다. 데뷔 이후 10년 간 휴식 없이 계속 공연을 하러 다녔다고 한다. 


얼마 전 이재명 대통령의 문화예술계 간단회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조수미에게 "재능과 노력 중에서 무엇이 더 중요하냐"라고 물었다. 조수미의 대답은 이랬다. "우선 재능은 필수다. 하지만 노력 없이는 그 재능을 발휘할 수 없다." 그 대답을 듣고 나는 "재능이라는 계륵."이라는 생각을 했다. 또한 재능이 없는 것이 사는 것에는 더 편리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재능=버리긴 아깝고 그걸 발휘하려면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 그러니 계륵이지라는 생각을 했다. 


아치비의 노래를 들으면서는 계륵이 재앙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목숨을 연료로 재능의 불꽃을 피우는 게 합리적일까? 탁월한 재능이 없는 내 처지에서 탁월한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그 재능을 발현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수단이나 방법들을 이해하고 납득할 길을 없지만.


남들이 없는 재능이 있으니 그 재능을 모른 척하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쓰는 데는 대가가 따른다. 그러나 엄청난 보상이 주어진다. 


영화 <페니키안 스킴>에서 딸이 아버지에게 "도대체 이런 무모한 싸움을 하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 그때 아버지의 대답은 "누가 이기는지 알고 싶어서."이다. 나는 사람들이 싸우고, 노력하는 게 부와 권력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저 대사처럼 인간세상의 이 난리법석의 이유는 '누가 이기는지 궁금'해서 일뿐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몹시 슬퍼졌다. 


재능을 쓰는 사람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재능과 나 자신 중 누가 이기는지 알고 싶어서. 재능에 잡아먹히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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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는 아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가끔은 아빠가 용서받지 못할 끔찍한 일을 한 가지 저질러서 딱 그것만 원망하며 살고 싶어. 그런데 그런 게 없고 매일 자잘한 일만 있지. 찔끔찔끔." 큰 상처 대신 자잘한 상처가 쌓이는 곳이 바로 집이다. 

(중략)

"사랑해요. 용서할게요. 용서해주세요. 굿바이."

<영화 보고 오는 길에 글을 썼습니다 / 김중혁>


#1. 넷플릭스 드라마 <광장>

장르불문 절대 피할 수 없는 K-가족 판타지

이준혁이 출연한다길래 본 넥플릭스 드라마 <광장>을 보면서 '아, 씨, 동생의 죽음에 대한 복수라고 했을 때, 바로 그때 피했어야 했네.' 하는 생각을 100번 정도 했다. 공중파의 멜로드라마도 웹툰 원작의 넷플릭스 드라마도 피할 수 없는 한국인의 인장은 바로 가족 판타지! 


오늘도 나는 어디서 생겨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집 안의 날벌레들을 생명체라기보다는 제거해야 하는 얼룩 정도로 생각하면서 살충제를 뿌리고 휴지로 집어서 쓰레기봉투에 넣는다. 나에게 날벌레=제거해야하는 얼룩일 뿐이다. 사람을 날벌레 죽이듯 하는 조직폭력배의 두목인 봉산과 주운, 그 두 양아치가 자신의 자식(딸 아님, 아들임)에 대해서만 특별히 성모 마리아급의 자애를 베푸는 모습에서 나는 폭소하고야 말았다. 배꼽 가출하는 줄. 가족 판타지 없이는 한국의 영화나 드라마는 제작이 불가능한 것 아닌지 요즘 진지하게 생각 중이다. 

주운이 금손에게 큰 소리로 말하며 절규한다 "다 너를 위해서였다!!!!!" 하지만 금손은 "아버지는 내가 원하는 대로 다 할 수 있다고 하면서도 정작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어요."라고 김 선생에게 말한다. 금손의 저 말이 K-부모 종특임. 이주운(허준호 배우)은 전형적인 한국의 이율배반적인 부모상이다. 자신의 부도덕한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자식 핑계를 대고, 모든 건 다 자식을 위한 것이라고 울부짖지만 그 부모들이 말하는 자.식.이라는 것은 부모라는 자들의 머릿속에만 들어있는 망상 속 자식인 것이다. 그 자식이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독립적인 인간이라는 것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다. 자식은 부모의 미니미라는 생각 말고는 없는 것이다. 최근에 읽은 소설 <파친코>도 이점에서는 가족 판타지다. 양진과 선자가 서로를 원망하는 부분을 읽은데 내가 복장을 얼마나 쳤는지. 아주 그냥 누가 더 희생했고 누가 더 억울한가 배틀 대환장 파티. 애초에 낳지를 마라고 이 사람들아. 가장 억울하고 불쌍한 건 '노아'잖아. <파친코>를 읽은 후 미국태생의 작가도 한국인의 유전자가 있는 한 가족 파타지로부터 좀처럼 벗어나기 힘든 건가 하는 생각을 좀 했다. 어쩌면 K-컬처로 흥행하려면 필수 양념으로 가족 판타지가 꼭 들어가야 하는 걸지도. 그게 아니면 <오징어 게임>처럼 지독하게 잔인하거나. 


소지섭과 이준혁이 연기하는 기준, 기석 형제의 우애를 보면서도 저 형제가 손에 들어야 하는 건 칼이 아니고 볏짚으로 만든 쌀가마니지 쌀가마니야 하고 생각했다. 느와르판 K-의좋은 형제.


p.s.

늘 궁금한 점. 떼로 싸울 때 아군과 적군은 어떻게 구분하지?

영화 <갱스 오브 뉴욕>의 광장에서의 곡괭이 도끼 살육 장면에서 '죽여야 할 상대방을 어떻게 구분하지? 옷차림이 똑같은데 말이야.' 하는 의문이 많이 들었다. 마찬가지로 드라마 <광장>에서도 봉산파, 주운파 구분 없이 조폭들은  전부 검정 슈트에 흰 셔츠 차림인데 어떻게 적을 구분하지? 이 의문은 영화 <하얼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p.s.2

K-조폭 장르를 볼 때마다 이질감이 느껴진다. 절대 적응 안 됨. <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의 전성시대>류의 영화들을 보면 이상하게도 뭔가 모르게 쪽팔린다. 양아치들이 좋은 양복 차려입고 나와서 거들먹거리면서 그 속에서 도덕을 찾고, 의리를 찾는 게 웃기고 부끄럽다. 아, 홍콩 조폭 장르도 좋아하지 않는다. <무간도>를 볼 때도 몸 둘 바를 몰랐다. 폭력, 서열, 의리를 따지는 인간 군상들을 보면 나는 뭔지 모르게 불편하고 부끄럽다(내란우두 머리 윤 씨가 자신의 인권 운운하는 걸 볼 때의 부끄러움 같은 것. 부끄러운 짓을 하는 인간을 볼 때 느껴지는 부끄러움!). 내가 조폭 장르를 이해 못 하는 것은 조폭 장르를 좋아하는 누군가가 넷플릭스 드라마 <브리저튼>을 이해 못 하는 것과 같겠지. 정략결혼에서 사랑 운운하는 것과 양아치들이 의리 운운하는 것 중에 뭐가 더 이율배반적인가... 어려운 문제다 ㅋㅋㅋ


#2. 영화 <마이어로위츠 이야기>

김중혁의 영화감상문 모음집 <영화 보고 오는 길에 글을 썼습니다>에서 영화 <마이어로위츠 이야기>에 대한 감상문을 읽고 그날 당장 보고 싶어서 수면 시간을 어겨가면서까지 영화를 다 보고 평소보다 늦게 잠들었다. 내가 경험한 가족이 그 영화 속에 있었다! 자기중심적이며 철저하게 이기적인 부모, 부모의 사랑을 더 받기 위한 경쟁을 했던 관계가 소원한 삼 남매, 부모의 재산 처분에 대한 삼 남매의 서로 다른 생각, 부모의 병 수발에 대한 억울함, 나를 방관했던 부모에 대한 원망, 그렇지만 뇌혈관이 터져서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다 늙은 부모의 육체를 봤을 때의 연민, 하지만 회복한 부모가 또다시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하는 것에 울화가 치민 자녀. 내 부모가 나에게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에 상처받았지만, 정작 본인도 자신의 자녀에게 고대로 행동하는 작태(이 장면 정말 좋았다!!) 등등 이 영화는 어느 한 장면 버릴 것이 없는 리얼 가족 다큐 그 자체다. 픽션인데 다큐보다 더 놀랍도록 현실 그 자체임! 특히 식당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대화하는 장면! 서로 상대방의 말은 1도 듣지 않고 자기 할 말만 계속 함. 


#3. 넷플릭스 드라마 <애나 만들기>

<애나 만들기>에 등장하는 애나의 부모의 태도가 맘에 들었다. 자신의 자식이지만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다고 하면서 거리를 두는 그 태도가 맘에 들었다. 드라마 <광장>의 봉산이 아들 준모를 대하는 태도와 매우 대조적. 내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덮어두고 편들고 보호하는 게 K-부모식 자애인데, 그건 자애가 아니고 내란수괴 윤 씨의 내 인권만 소중해라고 행동하는 지독한 자기중심적 행동과 똑같다. 혹은 "내 개는 안 물어욧!" 하는 반려 부모들의 이기적인 자기 반려동물 애호 거나. 영화 <마더>에서 봉준호가 풍자하는 K-모성. 김혜자의 명대사 "너 엄마 없어?" 


#4.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그러나 K-컬처에도 훌륭한 가족 그리고 우정에 관한 영화가 있다. 우정 판타지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긴 하지 ㅋㅋㅋ. 이 영화에는 가족 판타지도 우정 판타지도 없다. 가족사진 속에서 자신을 도려내고 출가를 하는 태희(배두나 배우), 무리로 친하게 지냈던 여고 친구들과는 자연스럽게 멀어지고, 그 무리도 흩어지고. 드라마 <웰컴투 삼달리>는 그런 면에서 가족 판타지, 우정 판타지의 대환장 쇼! 솔직히 나는 눈 뜨고 보기가 힘들었다. 3화까지 보고 포기. 



#5. 마무리

나의 정서심리구조가 일반적인 사람들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자각하는 요즘이다. 이 정도로 고립(?)되어 있으면 인간이  그릴울 법도 한데, 그 어느 때보다 편하고 좋다. 심지어 건강검사 결과도 좋아짐. 한국 드라마가 보여주는 가족상, 친구상, 애인상에 졸라 가스라이팅 당해서 자연발생적인 그런 인간관계들을 굳이 내치지 않고 반평생을 보내버린 것이 억울하기까지 하다. 


요즘처럼 박제된 듯(일상의 루틴에서 벗어나지 않고 사는 것) 살다가 아무도 모르게 죽고 싶다. 내가 죽었다는 것조차 모르게 그렇게 흔적도 없이 소멸해버리고 싶다. 늘 조르지오 모란디의 물병들이 그려진 정물화같은 생활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림에 대해서 거의 알지 못하지만 정물화의 핵심은 안정감이 느껴지는 구도에 있다고 생각한다. 안정감있게 정지되어 있지만 계속 바라고 보고 있으면 역설적이게도 역동성이 느껴지는. 요즘은 드디어 내가 조르지오 모란디의 물병 정물화 같은 생활을 완성했구나 감탄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충동도 절망도 없이 매일 하루를 버텨내는(살아내는) 중이다. 


나도 내가 이렇게 혼자서 잘 지낼 줄 몰랐다. 혼자 잘 지내는 것에 천재적 재능이 있는 것 같다. 그리운 인간, 보고 싶은 인간 한 명이 없다는 것은 내가 인격적, 사회적으로 부족해서일까 아니면 내 주변에 머물렀던 자들의 인격과 사회성이 문제였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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