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그런 식이야. 친구가 말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싸우기를 바라는 거지. 암에 대해 그런 식으로 배워왔으니까. 환자와 질병의 싸움이다. 곧 선과 악의 싸움이다. 행동에도 옳은 방식이 있고 그른 방식이 있다. 강한 대응과 나약한 대응. 투사의 방식과 포기자의 방식. 이기고 살아남으면 영웅이 돼. 지면 글쎄, 아마 온 힘을 다해 싸우지 않은 거겠지. 고약한 멍청이 의사들이 내린 사형선고를 받아들이지 않은 덕에 수년을 더 살 수 있었던 이런저런 사람들 얘기를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넌 믿을 수 없을 거야. 사람들은 말기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고 해. 친구가 말한다. 불치라거나 수술 불가능하다는 말도 그렇고. 그런 건 패배주의적 말이라는 거야. 살아 버티는 한 가능성은 있다 같은 정신 나간 얘기를 해. 의술의 기적은 매일 일어난다는 말도. 매일 찾아보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야. 이런 말도 하지. 교육받았다는 똑똑한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이들 암의 치료법이 금방이라도 나올 거라는 환상에 빠져 있는 줄은 미처 몰랐어.
<어떻게 지내요 / 시그리드 누네즈>
최근에 2건의 충격적인 투신자살 사건을 뉴스에서 보았다. 투신으로 사망한 사람은 모두(4명) 10대였다. 사건 1은 부산 소재 예술고등학교 학생 3명의 동반 투신, 사건 2는 경기도에서 정신의학과 진료 직후 해당 건물의 옥상에서 투신한 사건(지나가던 행인 모녀 2명까지 사망)이었다. 늘 주장하는 거지만 존엄사(안락사) 허가해야 한다. 그만 살고 싶다는 사람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반인권적으로 방치하는 것이 말이 되나? 전인류가 조폭 같다. 조폭이 조직을 떠날 때 신체 일부(주로는 손가락?)을 절단하는 처벌을 받듯, 사는 것을 그만하고 싶은 사람을 절대 편하게 보내주지 않겠다는 원칙을 고수하면서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자살하게 방치하는 것은 너무 잔인하다.
하지만 말해 뭐 하겠는가. 말기 암 환자에게도 존엄사(안락사)가 불법인데.
드라마 <미지의 서울>을 봤다. 물론 내가 이 드라마를 재미있게 못 볼 거라는 걸 200% 장담했지만, 한국에서 한국사람들과 살아야 하기 때문에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봤는데 4화 후반부에서 미지의 엄마가 미지 방문을 때려 부수고(방 문 손잡이를 망치로 때려 부순다. 이걸 연출한다고? 이래도 된다고? 시발 미친. <소년의 시간>에서는 살인범 신병 확보를 위해서 특공대가 그 집에 들어갈 때 현관문 부숨. 미지가 살인범이냐?) 미지의 엄마가 방으로 들어가서 미지에게 악다구니를 하면 장면까지 보고 이 드라마를 계속 보는 걸 포기했다. 이런 장면 진짜 싫다!
왜 이런 장면을 연출하는 걸까? 연출가와 극본가에게 진심으로 물어보고 싶다. 왜 부모가 (못난) 자식에게 저딴 식으로 악다구니하는 장면을 연출하는 거냐고? 미지의 엄마(장영남 배우)는 진짜 최악인 게 자신은 딸들에게 모질게 퍼부으면서, 자신의 엄마에겐 왜 나에게 다정하게 대하지 않았냐고 또 퍼부음. 윤서결이냐? 하나만 해라, 하나만. 윤서결식 법치 아니냐. 내가 하면 합법, 남이 나에게 하면 죄다 불법. 이런 미친 사패.
tvN 제작의 <미지의 서울>에서의 부모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드 <소년의 시간>에서의 부모가 정말 비교됐다. 두 드라마 모두 과장이라고 치더라도, 도대체 한드에서 부모상을 늘 저렇게(피해의식 가득한 부모) 연출하는 이유는 도대체 뭐야? 특히 엄마 역에 대한 연출. <미지의 서울> 엄마 역 장영남 배우(이것과 대조적 엄마역은 연분홍 교감 센세인 김선영 배우인가?), <웰컴투 삼달이> 엄마 역 김미경 배우는 정말 처참하다.
한드에서의 부모(특히 엄마)는 자녀가 자신의 희생에 보답하지 못하고 자신을 실망시키고 힘들게 하면 악다구니를 퍼붓고 자식을 비난한다(이게 데이트 폭력과 뭐가 다른가? 내가 널 사랑하기 때문에 감시하고 억압하고 때리고 한다고 변명하는 가해자의 논리와 뭐가 다른가?). 자식을 독립된 인격체가 아니라 자신의 애완동물 취급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소년의 시간>에서의 부모는 자신들의 양육 방식에 잘못은 없었는지 고찰한다.
나는 또한 이런 식(자식이 부모를 실망시켰을 때, 특히 부모의 희생에 대한 보답을 하지 못할 때 자식에게 악다구니를 퍼붓는 부모)의 연출이 현재 한국의 부모와 자식들에게 미치는 해악이 크다고 생각한다. 은연중에 부모는 자식에게 퍼부어도 되고, 자식은 부모를 실망시키면 악다구니를 들어도 싸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떤 청소년들은 그냥 자살해 버리는 것이다. 이 나라의 구조, 분위기 속에서는 구원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투신해 버리는 것이다. 청소년이 자살로 택할 수 있는 방법 중 가장 편리한(비용 0원, 준비물 없음) 방법이 투신이라는 것도 슬프지.
여름이 되면, 늘 자살에 대해서 생각이 많아진다. 왜냐하면 나는 늘 첫 더위가 느껴지는 날에는 fx의 핫썸머를 들었기 때문이다. 설리가 자살한 후 처음 돌아온 여름날에는 핫썸머를 듣지 못했다. 그다음 해 여름부터는 핫썸머를 들었는데, 노래는 참 흥이 나고 좋지만, 감정적으로는 매우 슬프다. 설리는 왜 죽어버렸을까, 설리를 생각하면 세트처럼 구하라가 따라온다.
ps. 아직 상영 중인 영화 <신성한 나무의 씨앗> 속의 이란 가족 제도의 현실을 보면서 한국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자애가 없는 것은 인류 종특인가 싶기도 했다. 자애가 부족한 사람들이 자식을 키우는 게 인류의 비극인가 싶기도 했다. 소설 <어떻게 지내요>의 두 주인공 중 한 명인 말기 암 환자(영화 <룸 넥스트 도어>의 틸다 스윈튼) 역시도 자애가 없는 부모(엄마)의 전형이다. 이 소설에 나오는 "아이를 한 명만 낳은 걸 후회해." 이 말 자체가 내가 생각하는 부모 그 자체다. 인간은 순전한 이기심으로 자식을 낳고 소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