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미션 없는 러닝타임 338분짜리 영화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오른손 엄지 손가락의 굳은살을 확 잡아 뜯어 버렸다. 필리핀 군부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가 시대적 배경인 흑백영화였다. 5시간 38분의 길고 긴 영화의 길고 긴 엔딩 크레딧이 끝나고서야 극장에 조명이 들어왔다. 그제야 내 엄지 손가락 상태가 눈에 들어왔다. 상태는 심각했다. 내가 굳은살을 뜯어낸 쪽은 오른손 엄지의 왼쪽이었다. 다시 말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부위였다. 예를 들어 키보드를 칠 때 스페이스바를 터치하는 면. 이 일기를 쓰는 지금도 스페이스를 터치할 때 미세한 통증이 느껴진다. 그래도 지금은 거의 다 나은 것이다. 처음에는 오른손 검지로는 스페이스를 터치할 수 없었다. 터치는 고사하고 엄지를 사용하지 않을 때도 주기적으로 통증이 느껴졌고 열이 나서 화끈거렸다. 왼쪽 엄지에 비해서 과도하게 부어 있는 오른쪽 엄지를 보면서 병원에 가서 항생제라도 처방받아야 하나, 이대로 손가락이 곪아서 고름이 생기면 고름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아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풍선 터지듯 빵!! 터지기도 했다. 손톱과 피부 경계에서는 수시로 피가 스며 나왔다. 굳은살이 없어진 부분의 살이 시뻘겋게 부풀어올라 이대로 피부가 고정되어 버리면 네일 아트 받을 때 곤란하겠다 싶었다. 벌건 피부살이 손톱 위까지 올라와 핏기를 내뿜고 있었기 때문이다. 징그러웠다. 처음 며칠간은 얼굴 뾰루지나 여드름에 붙이는 작은 원형 반창고를 붙였는데 그 반창고가 오히려 더 상처를 부추기는 거 같아서 사용하지 않고, 상처연고만 핸드크림 바르듯 수시로 발랐다. 이대로 안 나으면 어쩌나 오만가지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도 내 몸은 치유력을 십 분 발휘해서 세균들을 죽이고 다시금 굳은살을 만들어 냈다. 내 평생에서 가장 긴 러닝타임 영화였고, 흑백영화였고, 독재자 마르코스에 대한 미시적 암시가 가득한 영화였다. 굳은살을 뜯을 이유가 충분했다. 

p.s. 내가 아는 가장 긴 영화는 벨라 타르의 <사탄탱고> 438분(=7시간 18분). 아쉽게도 보지 못했고, 벨라 타르의 은퇴작 <토리노의 말>은 개봉했을 때 극장에 보러 갔다가 필름 끊겨서 못 보고,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다는 일화가 있다. 사탄탱고 작가의 2025 노벨상 수상 축하!


최근 극장에서 본 독재 or 쿠데다 소재의 영화를 언급해 본다.


<악마의 등뼈>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 프랑코 시절 스페인 내전이 배경이다.


<카노아: 부끄러운 기억> 감독: 펠리페 카잘스. 1968년 멕시코에서 발생한 실제 사건을 영화로 만든 것. 극우 성향의 성직자가 무고한 청년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아서 성직자를 맹신하는 무지한 산골 동네 사람들이 그 청년들을 곡괭이 같은 걸로 때려죽인 사건이다. 영화 <갱스 오브 뉴욕>의 광장 싸움 씬의 실화 버전. 


<아임 스틸 히어> 감독: 월터 살레스. 일단 실화다. 1971년 브라질 군사 독재 정권 하에 발생하는 실종 사건이 주요 내용이다. 이때 군사 정권에 반대한 전 국회의원(현 변호사던가)이 군부에 잡혀 가고 석방되지 못한 채 실종된다. 영화 속에서는 경비행기가 사막인가 바다에 사람을 떨어뜨리는 장면이 나온다(어쩌면 아닐 수도. 최근에 이런 류의 영화를 너무 많이 봐서 어떤 영화인지 헷갈린다). 노상원이 기획했던 처단의 구체적인 장면이 나오는 영화다.


<그때 그 시절> 감독: 젝 네오. 정치 풍자 코미디 영화. 싱가포르 정부의 말도 안 되는 정책에 반대하여 정당을 만들고 반정부 시위를 하는 내용이 영화의 절반쯤 된다. 시대는 1980년대 싱가포르.


<승리> 감독: 마르코 벨로키오. 이탈리아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의 내연녀(이다 달세르)와 그 사이에 태어난 아들(알비노 달세르)에 관한 실화 바탕의 영화다. 이 영화에서 가장 섬뜩한 장면은 무솔리니의 혼외자 아들이 자신이 무솔리니의 아들이라고 자랑하고 다니면서 무솔리니 연설을 행동까지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다. 이 혼외자 아들은 정신병원에서 자살(1942년, 26세)한다. 무솔리니는 1945년(61세) 총살형을 받았다. 위키 백과에 의하면 도망 중인 무솔리를 잡고, 그날 어쩌면 다음날 재판, 같은 날 어쩌면 다음 날 총살형으로 처형받았다. 총살형 집행까지 최대 72시간 걸린 듯. 윤서결 왜 아직 살아 있지????????????? 무솔리니 시대의 야만을 잠시 빌려 쓰면 안 되나? 


<굿모닝, 나잇> 감독: 마르코 벨로키오. 1987년 이탈리아에서 발생한 실제 사건을 다룬 영화. 이탈리아 붉은 여단(네이버 ai 브리핑에 의하면 극좌 테러 조직이라고 한다)이 저지른 모로 총리 납치 살인이 내용이다. 권력을 가지지 못한, 그래서 너무나 가지고 싶어 하는 극단적 정치 조직(극좌든 극우든)이 어떤지 보여주는 영화. 과거엔 극좌의 폭력이, 요즘은 극우의 폭력이.


<공화국의 독수리> 감독: 타릭 살레. 이집트의 독재 정권 풍자 영화다. 이집트 출신인 감독은 정권을 비판하는 다수의 영화를 찍었다는 이유로 이집트에서 추방되었고 현재는 가족들과 함께 스웨덴에 거주 중이다. 이집트 입국 금지라던가.


<크렘린의 마법사> 감독: 올리비에 아사야스. 러시아의 독재자 푸틴이 주인공인 영화다. 놀랍게도 무려 푸틴 역의 배우는 주드 로!!!!!!!!!!!!!!! 이 섭외에 푸틴도 매우 흡족했으리라! 주드 로 정도의 배우가 아니었다면 아사야스 감독은 암살당했을 지도. 문화 금수저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의 필모에 이런 정치 풍자 영화가 있게 될 줄이야!! 그것도 현존하는 존엄 블라디미르 푸틴 풍자 ㄷ ㄷ . 이런 영화를 도널드 트럼프가 부러워합니다. 트럼프 역에 디카프리오 써야 할 듯 ㅋㅋㅋㅋㅋㅋ


<쇼아1> <쇼아2> <내가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감독: 클로드 란즈만. 히틀러의 유대인 인종 청소에 대한 다큐 영화. 총 러닝타임 10시간 넘음. 


<나폴레옹 1, 2, 3, 4부> 감독: 아벨 강스. 총 러닝타임은 5시간 30분이지만 장면과 대사자막이 따로 나오기 때문에 대사 장면을 다 편집하면 2시간 남짓 길이의 영화. 실망스럽게도 내용은 프랑스 국뽕이었다. 특히 영화 끝부분에 프랑스 삼색기 총 출동한다. bgm으로 프랑스 애국가가 깔렸다면 더 완벽하고 웃겼을 텐데!! 난 나폴레옹의 몰락에 대한 영화라고 예상하고 보러 갔는데, 나폴레옹의 영웅적 일대기에 관한 영화였다. 영화는 나폴레옹의 어린 시절부터 영웅의 시작 혹은 절정까지에서 끝난다. 다 보고 난 후 소감은 프랑스판 이순신 3부작 <명랑> <노량> <한산>이었다. 아무튼 나폴레옹도 전형적인 독재자 몰락 스토리를 가지고 있으니 이 목록에 추가해본다. 


<아 프리오리> 감독: 라브 다이즈. 러닝타임 338분(5시간 38분). 필리핀 군부 독재자 페르디난디 마르코스 시절이 배경인 영화. 


<그저 사고였을 뿐> 감독: 자파르 파나히. 현재도 진행 중인 이란 독재 정치 상황에 대한 영화. 감독이 실제 투옥된 경험을 픽션으로 만듦. 


<신성한 나무의 씨앗> 감독: 모함마드 라술로프. 이란 정치 판사가 주인공인 영화. 히잡 시위가 배경. 


내 엄지 손가락이 낫듯이, 아주 천천히 나을 거라고, 이 나라의 정치도 나을 거라고 믿어 본다. 


남의 나라 쿠데타 또는 독재자 영화와 내 나라의 법사위 국정 감사가 옴니버스 다큐 영화로 감상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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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쇼아>를 관람한 다음 날 트럼프가 가자 휴전을 성사시켰고 이번 노벨 평화상을 본인이 받아야 한다고 난동을 부렸다.  트럼프의 그 꼴을 보니 제비 다리를 부러뜨린 후 치료해주고 나서 금은보화가 나오는 박씨를 요구하는 놀부가 따로 없네 싶었다. 


<쇼아 1부>는 264분, <쇼아 2부> 281분 그리고 삭제된 필름 중 일부를 편집한 <내가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94분을 하루에 다 봤다.  1부 보고 나서 너무 힘들면 2부는 취소하고 집에 가야지 했는데, 영화(다큐)에 별 내용이 없어서(이미 대충 다 아는 내용들이라) 힘들지 않았다. 아우슈비츠 편 브이로그 또는 9시간짜리 겨울 노르웨이 기차 영상 비슷했다. 


<쇼아>를 보기 며칠 전에는 <리  밀러: 카메라를 든 여자>를 봤다. 2차 세계 대전과 유대인 학살이 배경이 되는 전기 영화였다. 올해 1월 개봉한 <리얼 페인>은 폴란드 유대인 학살 답사가 배경인 영화로 2025년 97회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받은 영화다. 매년 나치 히틀러에 의한 유대인 학살 관련 영화가 몇 편 만들어지는지 궁금해졌다. 2025년 97회 아카데이 남우주연상 역시도 유대인(<브루탈리스트>)이 받았다. 에드리언 브로디는 두 번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는데, 두 번 모두 유대인 학살에서 살아남은 재능이 출중하여 사회적 명망이 었었던 예술가 역이었다는 것이 웃픈 현실 ㅋ. 유대인 중에 천재들이 얼마나 많은데, 우생학으로 우리를 멸종시키려고 했나라고 따지는 듯!!


<쇼아>를 본 가장 큰 이유는 도대체 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가자 지구에 가두고 심심할 때마다 학살하는가를 알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이 다큐를 보고 내린 결론은 아우슈비츠=까방권?!!


<쇼아>를 보면서 가장 많이 떠올린 영화는 <존 오브 인터레스트>이다. 지금의 이스라엘 땅에 살고 있는 유대인은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서 행복하게 가정을 꾸리고 사는 회스 부부와 참으로 똑같다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회스 부인은 유대인의 뼛가루를 화단을 가꾸는 비료로 쓴다. 유대인의 값비싼 모피 코트를 걸치고 그 주머니 속에 있던 립스틱을 바른다. 지금 이스라엘에 사는 유대인들도 회스 부인이랑 똑같지 않나 싶다. 가자 지구에 수 백만 팔레스타인 난민을 가둬두고 의료, 식량, 이동을 차단하거나 제한하고 가끔은 학교나 병원에 폭탄을 떨어뜨려서 죽이면서 겁주고. 자신들이 당한 홀로코스트에 대해서는 한없이 억울해하면서 매년 비슷한 영화를 만들고, 영화제에서 상 받고 동정심 얻고(까방권 얻고). <쇼아>에 나오는 비겁한 독일인들은 다들 하나 같이 유대인 절멸기차(가스실과 화장 절차)를 몰랐다고 했다. 지금의 이스라엘 사람들도 "전 네타냐후에 반대합니다, 가자 지구에 그러면 안 되죠. 하지만 우리도 당했다고요!!! 내 증조부모도 아우슈비츠에서 죽었어요."라고 하겠지. 그게 독일인의 몰랐다와 같은 개소리 아닌지.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이 다른 홀로코스트와 다른 이유는 이것이 전쟁 혹은 전투 중에 발생한 비계획적 사건이 아닌 인류 역사 중 유일무이하게 '행정 절차'에 의한 체계적인 살해였다는 점이라고 하던데, <쇼아>를 보고 난 후 나는 이 점에 대해서 생각이 바뀌었다. 행정 절차를 원인이라고 생각하면 매우 이례적이고 엽기적인데, 행정 절차를 결과라고 생각하면 그다지 특별한 것도 없었다. 즉 하필 그 때 대륙철도망이 전 유럽에 완비되어 있었으니 아이히만이 아닌 그 누구라도 철도 운송으로 물건(나치는 유대인을 물건, 화물로 문서에 기록했다)을 날라서 처리할 생각을 했겠지 싶었다. 철도가 있으면 아유슈비츠고 철도가 없으면 킬링 필드인 것일 뿐이었다는 걸 <쇼아>를 보고 깨달았다. 


<쇼아>에서 유일하게 배운 것은 홀로코스트 역사학자 라울 힐버그의 "나치의 유대인 절멸 작전은 지난 천 년간 유럽에서 지속 누적되었던 유대인에 대한 차별의 결과일 뿐이다."라는 분석이었다. 천년 동안 유럽인들이 유대인에게 한 행동들(낙인찍기, 배제, 직업적 한계, 게토 등등)을 똑같이 나치도 했다. 다만 그 속에 비교적 최근의 발명품 '기차'가 추가되었을 뿐이다는 것. 


누적의 결과라는 말이 섬뜩하게 느껴졌다. 이 일기를 쓰는 지금도 그렇다. 지금 한국도 많은 것을 누적시키고 있지 않나... 윤석열이, 조희대가, 지귀연이, 박성재(영화 <한나 아렌트>에서의 아이히만이랑 똑같은 개소리를 볼 줄이야. 계엄에 따른 절차를 진행했을 뿐이다라니)가, 김건희가 누적의 중간 산물임과 동시에 이 누적을 가속시키고 있으니까. 


<쇼아>는 종전 80주년 기념 상영이라는 타이틀로 상영 중인데, 나는 그렇다면 유대인은 80년 동안 팔레스타일은 학살하고 있다는 뜻인 거네라고 읽혔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관한 비싸게 돈 들여 잘 만든 영화들, 그 영화들이 아카데미 영화제 등등에서 화려한 상을 받을 때마다 나는 '팔레스타인은, 가자 지구는 자신들의 억울함을 대변할 영화를 만들 자본력이 없을 텐데.'라는 생각을 반사적으로 하게 된다. 최근에 본 가자지구 영화(다큐)는 <폐허에서 파쿠르>. 80년 동안 팔레스타인에 병 주고 약 주고를 반복하면서 괴롭히는 이스라엘이 나치 못지않게 어쩌면 더 심각하게 잔혹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인종 청소용 절멸열차와 인종 청소용 가자지구 분리장벽 중 뭐가 더 엽기적이고 행정적인지 따져 묻고 싶다. 


 <쇼아>는 2023년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한다. 다시금 유대인의 자본력에 경의를 표한다. 이러니 트럼프가 대놓고 노벨 평화상(이제 노벨 평화상은 수명을 다 한 듯) 달라고 징징대는 거 아닌가. 내가 본 <쇼아>는 값비싼 필름으로 찍은 브이로그 정도였다. 총 러닝타임은 10시간 정도지만, 그 밀도는 120분 정도.  


p.s. 다시 생각해도 <리얼 페인> 너무 나약하다. 이런 영화 왜 만드냐? 무슨 염치로?? 윤석열의 보석 신청 이유 같네.  <리얼 페인>의 벤지(키에란 컬킨)는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만신창이 폐허가 된 건물 잔해에서 목숨 걸고 파쿠르 하는(실제로 추락해서 죽는 장면도 나옴) 가자 지구 청소년들 다큐 <폐허에서 파쿠르>를 보고 진짜 고통이 뭔지 좀 배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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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유입으로 왔어요 2025-10-16 16: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독했네요. 하나부터 끝까지 다 공감합니다..
 

영화 감상을 좋아하지만 장 뤽 고다르는 모르는 나를 어여삐 여긴 누군가가 OTT에서도 구하지 못하는 다수의 고다르 영화(무려!!!) 무료 상영 프로그램으로 나를 호객하고 있었다. '이렇게 하는데도 안 볼 거야?'라는 듯이! 


유일하게 본 고다르 영화는 지난 6월에 개봉한 <미치광이 피에로>였다. 내 감상은 주인공들의 패션(특히 채도 높은 색상)이 내 맘에 쏙 든다 정도였다. 

내 기억 속 유일한 고다르는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에 등장(?)하는 고다르다. 사실 등장하진 않는다. 오랜 기간 칩거(두문불출) 중인 고다르의 집에 찾아갔으나 집 안에 있는 것이 분명한 것으로 보이는 고다르가 집에 없는 척하며 현관문을 열어주지 않자 아쉬워하는 바르다가 나오는 장면만 있을 뿐이다. 

이렇듯 장 뤽 고다르에 대해서 아는 거 없이 본 영화 <브리티시 사운드>는 충격적(?)이었다. 마오? 마오쩌뚱의 그 마오? 문화대혁명의 그 마오? 소설 <삼체>에서 예원제가 지구멸망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삼체 외계인에게 메시지를 보내게 할 정도로 무자비했던 그 마오?!!!!!!!!!!

영화 <주말>(1967년)의 도로 정체와 교통사고 장면은 충격적으로 굉장했다. 이 장면과 영화 <브리시티 사운드>(1969년)를 같이 떠올려보면 마오쩌뚱을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여겼을지도 모르겠다고 약간은 이해가 되기도 한다.

장 뤽 고다르(1930.12.3.~2022.9.13.)의 일대기가 궁금해서 씨네21의 고다르 추모 칼럼을 읽어봤다. 그 칼럼에서 나와 고다르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하나는 팔레스타인 권리 옹호(나 역시 <쇼아>에 대한 소감이 부정적이다)와 다른 하나는 조력자살이다. 칼럼에 의하면 그는 "그는 심각하게 아팠다기보다 그저 더이상 사는 것에 지쳤을 뿐이고, 그래서 삶을 끝내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고다르는 자신이 조력자살을 택한 사실이 숨김없이 전달되길 바랐다."고 한다. 조력자살이긴 하지만 한국나이 93세(만 91세)였다. 

p.s. <브리시티 사운드>의 대본집을 갖고 싶다. 이 영화의 내레이션은 여성인권, 노동자 권리를 주제로 하는 책에서 발췌한 듯 문장이 좋았다. 나체의 여자가 집 안을 계속 걸어 다니는 장면에서 나온 여성인권에 대한 문장들을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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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에게 계란 3개를 받고 아무런 보답을 하지 않는 것은 전적으로 부적절한 처사였다. 꼭 계란을 돌려줄 필요는 없지만 가치가 대충 비슷한 것으로 돌려줘야 한다. 만약 시간적 간격이 어느 정도 있었다면, 그리고 계란의 값과 꼭 맞아떨어지는 금액만 아니라면, 돈으로 갚을 수도 있다. 거기에는 부적절한 구석이 전혀 없다. 그래도 돈의 액수는 계란 가격보다 조금 낮거나 높아야 한다. 아무것도 보답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을 착취자나 기생충으로 전락시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자신이 받은 선물의 가치와 정확히 일치하는 것으로 갚는 것은 그 이웃과 더 이상 관계를 맺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될 수 있다. 

(중략)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이웃은 비상사태가 발생할 때에도 서로 도울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영원할 것으로 여겨지는 공산주의식 관계들과 달리, 이런 종류의 이웃정은 끊임없이 창조되고 유지되어야 한다. 언제라도 연결이 끊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중략)

선물을 주는 것은 명예로운 행위이자 도발적인 행위이다. 그 선물에 보답하는 데엔 대단한 정교함이 요구된다. 타이밍이 가장 중요하다. 선물에 대한 보답으로 건네는 선물은 원래의 선물과 확실히 다르면서도 약간 더 비싼 것이어야 한다. 보답할 사람이 선물을 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사항은 무언의 도덕적 원칙이다. 나이가 더 많거나 돈이 더 많거나 더 훌륭한 사람에게 도전하는 것은 타박을 당하고, 따라서 창피를 당할 위험을 무릅쓰는 짓이다. 가난하지만 덕이 있는 사람을 그 사람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의 선물로 압도하는 것은 그저 잔인한 짓일 뿐이며 당신의 명예에도 똑같이 상처를 입힐 것이다. 

(중량)

이렇듯, 어떤 요구를 하기 위해 선물을 주는 사람도 간혹 있다. 그때 만약 상대방이 그 선물을 받는다면, 그 사람은 선물을 준 사람에게 가치가 비슷한 것이면 무엇이든 요구해도 좋다는 뜻을 전하는 셈이 된다. 

그러다 보면 이 모든 것들이 물물 교환과 아주 비슷한 것으로 바뀔 수 있다. 

<부채, 첫 5000년의 역사 / 데이비드 그레이버>



선물을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선물을 주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선물을 주고받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선물을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받은 선물이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선물을 주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타인의 취향과 필요를 고려해서 선물을 사는 것에 시간과 정성을 쏟아야 하기 때문이며

선물을 주고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주고받는 행위 자체가 납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건 뭐 몸개그 하는 코미디언들이 서로의 입에 김밥을 넣어주는 불편함으로 유머를 만들어 내는 것보다 더한 몸개그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선물을 주고받아야 하는 룰을 지키지 않아서 인간관계가 거의 없다. 아무것도 주고받지 않는 게 서로 편한 사이만 남아 있다. 


요즘처럼 물건이 흔한 시대에 선물을 주고받아야 하는 이유를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조카에게도 선물을 주지 않는다. 아기는 빨리 크고 아기 용품은 넘쳐나서 집안이 꽉 차 있는 걸 아니까 더더욱 선물의 필요성을 못 느낀다. 하지만 동생은 합리보다는 형식을 중히 여기는 이상한 꼰대 성향이 있어서 '남의 집에 갈 때 빈 손으로 가는 게 아니다'라는 박정희 시대의 예의를 아직도 지키고 있다. 동생의 손에는 항상 디저트 세트가 들려 있다. 각자의 음식 취향과 건강 이슈가 다른 이 시대에 무턱대고 디저트를 선물로 주는 게 과연 예의 일까?라고 동생에게 조언해 줬는데, 동생은 그래도 빈 손은 안 된다였다. 역시 아무거나 잘 먹는 사람들은 무례하다! 그건 예의가 아니라 강요라고!! 


선물을 받더라도 답례는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다시는 선물을 하지 말라는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서! 선물을 주고받는 사회적 룰을 지키지 않아서 관계가 틀어질 사람이라면 틀어져도 별 미련이 없다. 나는 혼자 있는 게 제일 좋고, 여러 가지 특성상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할 일도 딱히 없기 때문이다. 혼자 지내는 게 좋아서 남의 도움 없이 충분히 여유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삶을 구성했기 때문이다. 그게 내가 영화 <대부> st의 인맥을 싫어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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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대부>가 4K 리마스터링으로 재개봉했다. 아주 오래 전부터 넷플릭스에서 스트리밍 되고 있었기에 이미 봤다고 생각해서(당연히 본 줄 알았다) 딱히 보러 갈 생각은 없었는데 문제는 <대부>만 재개봉한 것이 아니라 내가 놓친, 그래서 내내 아쉬운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챌린저스>도 재개봉했다는 것이고, 이 두 영화가 연속해서 상영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극장에서 보고 싶은 마음을 넷플릭스로 대체할 수 있을지 궁금해서 넷플릭스에서 <대부>를 재생했는데, 음... 처음 본 영화였다. 본 기억이 전혀 없었다. 왜 내가 안 봤나 하는 의문과 동시에 이유가 생각났다. 그렇다, 영화 <대부>는 나에게 <삼국지>였던 것. 나는 <삼국지>를 읽지 않았고, 앞으로도 읽을 생각이 전혀 없다. 이문열의 <삼국지>도 싫어하고, 이문열도 싫어하고, 이문열의 삼국지만 열 번 읽고 서울대 갔어요했던 카피도 졸라 역겨워서 삼국지를 싫어하고 있었는데(솔직히 <삼국지> 우려 먹어서 노후연금화 하는 한국 남류작가들 너무 양아치 아닌지?)  <삼국지>를 처세와 출세의 성경으로 섬기는 직간접의 다수 한국 남자들을 보고 나서 '읽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이런 증상은 영화 <대부>도 마찬가지였다.  영화 <대부>를 협상과 영업력의 교육방송 정도로 여기는 한국 남자들을 여러 번 목격해서 일까? 왜인지 모르게 보기가 싫어졌다. 아마도 다들 마이클(알 파치노)처럼 처세와 대응해서 출세하고 싶었으리라. 


넷플릭스에서 20분 정도 <대부>를 보다가 이렇게 집에서 넷플릭스로 감상하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극장행을 결심했다. <챌린저스>와 <대부>를 이어서 보고 나서 부산행 KTX를 타고 오늘 조카를 픽업하러 역에 가면 시간이 딱 맞았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어서 상영하는 <대부 2>를 못 본다는 것. 하지만 다행히도 <대부 2>의 공식개봉날짜는 10월 15일이어서 연휴가 끝나고도 볼 수 있기에 다음을 기약하며 극장을 나섰다. 


 <챌린저스>는 영화는 못 보고 OST만 줄곧 들어서 그런가 음악이 귀에 내리 꽂혀서 영화가 2배는 더 재미있게 느껴졌다. 젠데이아는 듄에서보다 천 배 정도로 예쁘고 멋졌다. 이것은 당연한 이치일지도. 낡은 전투복으로 몸을 감춘 젠데이아와 슬릭번 포니테일에 팔과 다리는 거의 다 드러낸 테니스복을 입은 젠데이아 중 누가 멋지고 예쁠지. 구릿빛 피부색은 또 얼마나 아름답던지. 백인들이 왜 그리 태닝에 열을 올려 대는지 십분 이해가 되었다. 


루카 구아다니노의 <퀴어>를 두 번 봤다. 이 영화가 눈호강 제대로 시켜주는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챌린저스>는 그 이상이었다. 눈호강+귀호강 최고!! 영화 <퀴어>에서도 생각한 점이지만 이 감독은 자신이 원하는 이야기에 자신이 좋아하는 장면을 자연스럽게 삽입하는 기술이 천재적인 것 같다. <챌린저스>를 보면서도 '이런 이야기에 저런 장면을 넣네, 천재다' 싶었다. 하긴 원하는 장면을 찍고 싶어서 영화감독을 하는 거니까 당연한 거지. 


<대부>는 극장에서 보길 잘했다 싶었다. 왜 걸작이고 고전인지 알겠다 싶은 첫 번째 증거는 3시간 러닝타임이 2시간으로 느껴진 것. 또 영화에서 이제 마이클의 시간이구나 했던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이게 영화의 절반일 듯싶었고 시간을 확인하고 싶어서 시계를 살짝 봤는데 딱 90분째였다. 이런 형식이 지켜진다는 것이 고전아닌가 싶기도.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놀란 건 젊은 알 파치노는 매우 매우 잘 생겼구나 하는 것. 내가 가장 강렬하게 기억하는 알 파치노는 영화 <인썸니아>에서 불면증 걸린 성격파탄자 형사였는데 이 때의 외모와 <대부>에서의 외모를 일치 시키기가 좀 힘들었다.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은 마르코 벨로치오 감독처럼 1939년생이고 이탈리아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코폴라 감독의 경우 2000년 이후의 필모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이고, 벨로치오 감독은 2000년 이후 필모가 더 화려하고 지금도 영화를 찍고 있다. 1956년생인 왕가위 감독도 십 년 넘게 이렇다 할 영화를 찍지 않고 있는데. 왜 안 찍는지 궁금하다(어쩌면 건강 이슈 일지도...). 그러고 보면 에릭 로메르(1920~2010년)처럼 꾸준히 영화를 찍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을 일임과 동시에 행운일 듯. 무엇보다 건강과 체력이 되지 않으면 아무리 창의력이 넘쳐난다한들 작품활동을 할 수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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