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대부>가 4K 리마스터링으로 재개봉했다. 아주 오래 전부터 넷플릭스에서 스트리밍 되고 있었기에 이미 봤다고 생각해서(당연히 본 줄 알았다) 딱히 보러 갈 생각은 없었는데 문제는 <대부>만 재개봉한 것이 아니라 내가 놓친, 그래서 내내 아쉬운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챌린저스>도 재개봉했다는 것이고, 이 두 영화가 연속해서 상영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극장에서 보고 싶은 마음을 넷플릭스로 대체할 수 있을지 궁금해서 넷플릭스에서 <대부>를 재생했는데, 음... 처음 본 영화였다. 본 기억이 전혀 없었다. 왜 내가 안 봤나 하는 의문과 동시에 이유가 생각났다. 그렇다, 영화 <대부>는 나에게 <삼국지>였던 것. 나는 <삼국지>를 읽지 않았고, 앞으로도 읽을 생각이 전혀 없다. 이문열의 <삼국지>도 싫어하고, 이문열도 싫어하고, 이문열의 삼국지만 열 번 읽고 서울대 갔어요했던 카피도 졸라 역겨워서 삼국지를 싫어하고 있었는데(솔직히 <삼국지> 우려 먹어서 노후연금화 하는 한국 남류작가들 너무 양아치 아닌지?) <삼국지>를 처세와 출세의 성경으로 섬기는 직간접의 다수 한국 남자들을 보고 나서 '읽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이런 증상은 영화 <대부>도 마찬가지였다. 영화 <대부>를 협상과 영업력의 교육방송 정도로 여기는 한국 남자들을 여러 번 목격해서 일까? 왜인지 모르게 보기가 싫어졌다. 아마도 다들 마이클(알 파치노)처럼 처세와 대응해서 출세하고 싶었으리라.
넷플릭스에서 20분 정도 <대부>를 보다가 이렇게 집에서 넷플릭스로 감상하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극장행을 결심했다. <챌린저스>와 <대부>를 이어서 보고 나서 부산행 KTX를 타고 오늘 조카를 픽업하러 역에 가면 시간이 딱 맞았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어서 상영하는 <대부 2>를 못 본다는 것. 하지만 다행히도 <대부 2>의 공식개봉날짜는 10월 15일이어서 연휴가 끝나고도 볼 수 있기에 다음을 기약하며 극장을 나섰다.
<챌린저스>는 영화는 못 보고 OST만 줄곧 들어서 그런가 음악이 귀에 내리 꽂혀서 영화가 2배는 더 재미있게 느껴졌다. 젠데이아는 듄에서보다 천 배 정도로 예쁘고 멋졌다. 이것은 당연한 이치일지도. 낡은 전투복으로 몸을 감춘 젠데이아와 슬릭번 포니테일에 팔과 다리는 거의 다 드러낸 테니스복을 입은 젠데이아 중 누가 멋지고 예쁠지. 구릿빛 피부색은 또 얼마나 아름답던지. 백인들이 왜 그리 태닝에 열을 올려 대는지 십분 이해가 되었다.
루카 구아다니노의 <퀴어>를 두 번 봤다. 이 영화가 눈호강 제대로 시켜주는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챌린저스>는 그 이상이었다. 눈호강+귀호강 최고!! 영화 <퀴어>에서도 생각한 점이지만 이 감독은 자신이 원하는 이야기에 자신이 좋아하는 장면을 자연스럽게 삽입하는 기술이 천재적인 것 같다. <챌린저스>를 보면서도 '이런 이야기에 저런 장면을 넣네, 천재다' 싶었다. 하긴 원하는 장면을 찍고 싶어서 영화감독을 하는 거니까 당연한 거지.
<대부>는 극장에서 보길 잘했다 싶었다. 왜 걸작이고 고전인지 알겠다 싶은 첫 번째 증거는 3시간 러닝타임이 2시간으로 느껴진 것. 또 영화에서 이제 마이클의 시간이구나 했던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이게 영화의 절반일 듯싶었고 시간을 확인하고 싶어서 시계를 살짝 봤는데 딱 90분째였다. 이런 형식이 지켜진다는 것이 고전아닌가 싶기도.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놀란 건 젊은 알 파치노는 매우 매우 잘 생겼구나 하는 것. 내가 가장 강렬하게 기억하는 알 파치노는 영화 <인썸니아>에서 불면증 걸린 성격파탄자 형사였는데 이 때의 외모와 <대부>에서의 외모를 일치 시키기가 좀 힘들었다.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은 마르코 벨로치오 감독처럼 1939년생이고 이탈리아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코폴라 감독의 경우 2000년 이후의 필모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이고, 벨로치오 감독은 2000년 이후 필모가 더 화려하고 지금도 영화를 찍고 있다. 1956년생인 왕가위 감독도 십 년 넘게 이렇다 할 영화를 찍지 않고 있는데. 왜 안 찍는지 궁금하다(어쩌면 건강 이슈 일지도...). 그러고 보면 에릭 로메르(1920~2010년)처럼 꾸준히 영화를 찍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을 일임과 동시에 행운일 듯. 무엇보다 건강과 체력이 되지 않으면 아무리 창의력이 넘쳐난다한들 작품활동을 할 수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