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에 강한 아이가 공부도 잘한다 평생성적 프로젝트 3
김강일.김명옥 지음 / 예담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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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 그러니까요, 피아니스트 만들것도 아닌데 피아노는 왜 쳐야 한데요? "

수상경력이나 입시, 여타 비슷한 목적에서 음악교육을 담당하던때와는 달리, 남편을 따라 미국에 온 후로는 내가 원하던 오감중심의 피아노/음악교육을 맘껏 펼칠수 있었다. 아마, 쉽게 남들과 비교되고 즐기는 음악이 아닌 목적이 있는 음악교육을 원하는 한국풍토와는 달리, 조금은 마음에 여유가 있으신 이곳 학부형들의 배려? 덕분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씩, 위에 기술한 질문처럼, 조급증이나 욕구불만을 가진 학부모님들의 볼멘 전화를 받곤한다. 아이의 진도는 물론, 테크닉, 악보를 읽는 능력, 암보능력, 발표능력.. 또래들과의 비교분석을 끝내신 학부모님들은, 집에서는 연습을 게을리 하는것같은데 그러면서도 왜 렛슨은 꼬박꼬박 가려하는지 궁금해하신다. 궁금하실것이다. 음악을 느끼고 보고 맛보고 주물럭거리는 렛슨시간의 비밀을 알턱이 없으시니까말이다. 피아노렛슨 초반에가지는 느린진도는 몇몇 학부모님들께서 아주 못마땅하게 여기시는 시간이다. 아이들마다 음악을 접해본 경험이 다르고 전혀 준비되지 않은 아이부터 이미 준비된아이까지 개개인의 차이가 심한데, 일단 교재의 진도나 외워치는 능력에 뿌듯함을 느끼시는 부모님들이 상당히 많으신것 같다.

이책 <예능에 강한 아이가 공부도 잘한다>는 부모님들이 전반적으로 가지시는 답답함들에 대해 선생인 나를 대변해주는 일종의 속풀이와도 같은 책이다. 비단 나뿐아니라 음악교사라면 누구나 학부모님들의 일차적인 요구에 맞추어드려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을것이다. 예능교사와 부모님사이의 중재서라고 부르면어떨까?

이미 두권의 저서를 통해 공부기술보다는 학업성취를 높여주는 공부저력에 대해 말씀해오신 두분 저자가 이번엔 예능을 통한 학습능력바탕을 언급하신다. 예능교육의 핵심인 감성훈련뿐 아니라, 인내력, 손가락사용을통한 두뇌개발, 성취감들을 잠깐 설명한다음 피아노를 중심한 음악교육과 미술교육 전반에 대해 부모님들이 알고계셔야할 상식적인 이야기들을 쉽고 명료하게 기술되어있다.

폭이 워낙 넓고 이미 두권의 서적을 통해 충분히 이야기된 부분이 있기때문에, 책 전반의 내용은 그다지 무겁거나 깊지는 않다. 그러나 예능에 대한 선입견과 예능을 접하는 아이들에게 촛점맞추기보다 부모만족도에 예능교육의 성과를 두고있는 한국사회전반의 풍토를 생각한다면, 한번쯤 짚고넘어가야할 내용들이 주를 이룬다. 부모와 함께 충분히 오감을 사용하여 음악과 미술에 노출된 아이들은 학령기에 접어들기전에 이미 좋은 학습바탕을 이룬다는것이 책의 주제인데, 과학적이고 분석적인 접근보다 저자의 경험에서 우러난 산물이라 보면 좋겠다.

책을 읽는 내내, 전에 가르쳤던 학생중 ** 이가 계속 떠올랐다. 재능도 있고 긍정적이고 표현력도 섬세한 아이였는데 5개월만에 피아노를 그만두었다. 연습은 제대로 해오지않았지만 렛슨을 회피하던 아이는 아니었다. 어느날 작은 음악회겸 발표회를 앞두고 아이들편에 부모초대장을 보내었는데, 당일, 음악을 전공했다는 그 아이의 부모님만 참석을 안하셨다. 알고보니 녀석이 일부러 초대장을 감춘것이다. " 아빠에게 내 어글리ugly(흉한,엉망인) 피아노소리를 듣게하고싶지않아요" 그래서 연습도 안한다는것이다. 음하나 박자하나 리듬한번틀리는데 일일이 간섭하셨던 부모님덕에 **이는 수개월만에 음악에대한 기분좋은 경험을 잃게되었다. 또한명 ##이도 생각났다. 위로 두 누나가 현악기를 전공하는 탓에, '정트리오'같은 연주형제를 만들고싶었던 부모님은 ##이에게 선택의 여지없이 피아노를 시키셨다.

예능은, 부모의 만족을 위해 '교육'하는것이 결코 아니다. 비단 학습능력뿐 아니라 군데군데 험난한 고비를 만나게될 인생여정에서 아이의 삶에 강하고 긍적적이고 풍요로운 영향을 주는 큰 밑그림을 그려주는 것이 진짜 예능의 역할일 것이다. 평생을 <반짝 반짝 작은 별>만 연주하고 살아도 그것이 아이의 인생에 생기가 되어준다면 기꺼이 소나티네와 체르니를 포기할 준비를 해야하지 않을까. 책장에 <예능에 강한 아이..>를 꼽아두고 조급증에 걸리신 부모님들이 연습실을 노크할때마다 빌려드려야겠다. ^^ 나와 내 학생들이 누리는 기쁨의 시간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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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
몰리 뱅 글.그림, 이은화 옮김 / 케이유니버스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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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난만한 아이들이 재미나게 생활하는 동화책들.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천사같다.

그건 그저 엄마들의 희망 사항이 아닐까? 처음 소피를 만났을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소피에게 갈등이 일어났다. 장난감을 가지고 즐겁게 놀고있는데 아무런 양해없이 빼앗긴 것이다. 엄마의 기대는? 동화책이라면 으레히, 엄마에게 달려와서 해결해달라고 하거나 갈등해소를 위해 직접 대화를? 시도하거나 혹여 장난감을 놓고 갈등이 고조되더라도 친구와 다시 사이좋게 놀기위한 뭔가 특별한 작가의 장치가 궁금하다.

그런데 소피는 화를 냈다!! 그것도 불을 뿜어내고 발을 구르고 괴물같은 소리를 와아아아-- 소리를 지르면서! 맙소사, 무슨 이런 책이 다 있담... 그러더니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갔다. 바람이 머리카락을 간지르기 시작하고... 나무 위에 올라 자연에 안겨있다 오더니 볼케이노 같던 소피가 산들바람 같아졌다. 작가의 장치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심어놓으신 장치들을 보게된것이다.

엄마의 기대는 이런것이 아니다. 정말 아니다. 문제 해결 능력! 그것이야말로 엄마의 기대이다. .... 기대일 뿐이다. 아이속에 차있는 분노, 화, 이것을 풀어주려고 하기보다 제한하고 통제하고 다듬기만 하려고 한, 가지치기 하는 가위같은 내 기대를 한권의 책이 거울처럼 보여주었다. 어른들의 정당한 요구이든지 친구관계의 갈등이든지 어린 건강이 속에도 분노가 차오를때가 있다. 말로 표현하는것도 중요한 표현방법이겠지만 사실 화를 다루는 것은 성숙한 어른들에게도 힘든 일이다. 오죽하면 성경이 화를 다스릴수 있는 사람이 장군보다 낫다고 할까. 더군다나 늘 조용해라 소리지르지 마라 울지마라 떠들지마라.. 라는 말들을 하루종일 들어야 하는 아이들은 어떻게 에너지를 발산할수있을까.. 엄마엄마 소피가 소리를 질러요! 어어? 화가났어요! 책을 보며 재밌어하던 건강이가 잠깐 조용해졌다. 소피를 따라 밖에 다녀왔나보다. 바람과 나무가 있는 뜰로.

울고싶을땐 울게 기다려주자. 뚝! 하는 말 반으로 줄여야겠다. 그리고 건강이를 데리고 숲으로 가야겠다. 소리지르고 달리면서 자연이 아이를 달래주길 소망해야겠다. 건강이를 다듬으려는 가위를 내려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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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친구할래? 상상력을 키워 주는 그림책 3
신지윤 외 / 웅진주니어 / 199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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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들이 다 그렇지뭐. 눈처럼 하얀 물개인형. 그거에 폭 빠져서 사달라고 매달린게 언젠데 매번 모른척 ! 아이 미워라! 친구한테 선물받은 커다란 고릴라, 몇번이나 창고에서 꺼내고 몇번이나 쓰레기통에 있는거 건져냈는지 모르겠당! 엄마 미워!

.... 그러던 내가 요즘은 인형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누굴 닮았는지(?) 인형에 무척 애정깊다. 젤 친한 친구도 A 인형, 젤 친한 동생도 B인형, 화풀이 대상도 C인형, 외출할때 가방에 챙겨넣는 것도 인형, 잠잘때도 인형.. 그런데 밤비 영화를 보더니 또 사슴인형까지 사달라고 난리를 부린다. 안된다 안되! 먼지 날리지 관리 어렵지 자리 많이 차지하지 빨기 힘들지 꾀죄죄하고 닳도록 버리지도 못하고 끼고있을 놈을 또 사달라고?? 그것도 사내자슥이!! 안되안되안되!!

<나랑 친구할래?>는 우리 모자의 모습을 너무 적나라하게 담고있는 책이다. 분명한 이유가 있어서 펭귄과 같이 사는것을 반대하는 엄마와 펭귄의 존재감을 너무 깊이 느끼고있는 '아들'  하얀 눈이. 누구와 함께 한다는것이 때로는 불편하고 힘에 겹고 필요치 않아보인다. 그렇지만 그 존재의 서툴지만 진실된 사랑의 마음을 알게되면 그 모든 힘겹고 불편하고 귀챦았던 것들은 사랑안에 덮어지게 된다. 불편함보다 정을 먼저 통하고 사는 하얀눈이. 그리고 .. 우리 건강이.

첨엔 좀 황당한 동화책처럼 보였다. 아무리 아이의 상상력이라지만. 그런데 다섯살짜리 건강이의 눈엔 환상적인 친구, 환상적인 놀이, 엄마등 뒤에서 느끼는 두근거림들이 낯설지 않은가보다. 내 등 뒤에서 미키랑 지미랑 .. 이렇게 놀고있구나 싶어서 괜히 미안해졌다. 눈이와 엄마의 갈등은 제모습으로 돌아올수없는 펭귄을 엄마에게 고쳐달라고 하면서 해결의 기미가 보인다. 엄마 싫어! 를 외치다가도 엄마 지미가 없어졌어요 엉엉엉 엄마 미키 모자가 떨어졌어요 엉엉엉.. 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건강이처럼. 그때마다 단단히 각오해야겠다. 건강이의 친구를 귀챦아 버리지 않아야겠다고. 건강이의 친구에서 나의 친구로, 우리 가족으로 생각하기로. 어릴때 읽었던 소공녀 속 세라같은 마음으로 건강이와 인형들과 함께 자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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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이의 첫 심부름 내 친구는 그림책
쓰쓰이 요리코 글, 하야시 아키코 그림 / 한림출판사 / 199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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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어귀마다 구멍가게 하나씩 끼고살던 내 어릴적과는 달리 우리아들 건강이는 제손으로 과자 사먹을 일이 없는 미국에 살고있다.

구멍가게도 물론 없고 아이들끼리 다니는 것도 허용안되는 미국의 사회분위기탓도 있겠다. 차를 타고 큰 마켓에 시장을 보러가는 엄마나 아빠뒤를 따라가 간식거리를 고르고 쇼핑카트에 넣는게 전부이다. 마켓 직원들도 워낙 바쁘다보니 아이와 말 주고받는 경우도 드물다. 방과후에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다니며 공기놀이하고 땅따먹기도하고 용돈모은것으로 붕어빵이랑 떡볶기도 사먹던 어릴적을 비교해보면 참 심심할 노릇이다. 놀이터도 엄마손을 잡지 않으면 못가는 형편이고보니. PLAY-DATE 같은 문화가 있어서 친구몇과 한 집에 모여 일정시간 노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그래서인지 건강이가 처음 이슬이의 첫심부름을 보던 날, 엄마 심부름을 혼자 간다는것 자체가 무척 신기하고 놀라웠나보다. 이슬이가 심부름을 나서서 만난 친구 영수의 눈이 이만큼 커지면서 "정말?"하고 묻는 대목에서 마구 웃음보를 터뜨리며 정말? 정말?을 따라하더니 "정말" 하고 "그래" 두 글자는 확실히 읽을 수 있게 되었다 하하하... 

하야시 아키코의 책들은 섬세함에 있어서 다른 책들이 도저히 따라갈수 없는 것 같다. 거기다 쓰쓰이 요리코이라는 또다른 섬세한 어린이 관찰가와 만나면서 한권통째 사랑스런 책이 만들어졌다. 이슬이가 <다섯살>이 되었다는 것, 친구와의 짧은 대화속에서 혼자 심부름을 가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모험인지가 하는것을, 우유주세요 하는 이슬이의 작은 목소리와 한방울 똑 떨어뜨린 눈물, 동전때문에 아픔도 잠시 잊었던 순간과 거스름돈도 잊고 뛰어나가버리는 모습들...  아들과 하루종일 떨어져있지 않는 나지만 이렇게 섬세하게 아이모습을 바라본 적이 없었다. 곁에서 책을 보는 아들도 흘끔 다시 보이고,   내 두근거림이 발각?되지 않았을까 조심스러웠던 어릴적 내 모습도 보이는것 같았다.

<이슬이의 첫 심부름>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언덕>과 언덕아래 기다리고 있던 <엄마의 모습>이 아닐까. 익숙한 길이지만 혼자 가는 언덕오름은 낯설다. 그 모든 낯설음과 긴장을 확 풀어버리는 풍경이 엄마가 기다리고 있는 언덕아래의 모습이다. 기다림. 바라봄.

놀이터에서 놀고있는데 경쾌한 음악소리가 달려왔다. 고개를 돌리려는 찰라 건강이가 뛰기 시작한다. 아이스크림 트럭이다. 이동하는 구멍가게 처럼 이동네 저동네의 아이들이 뛰노는 놀이터를 찾아오는 아이스크림 트럭.  헐레벌떡 건강이의 뒤를 따라 왔는데 녀석은 벌써 판매대 차창에 온몸을 매달고 외치고 있다. "넘버 뚜~ 스폰지밥 아이스크림 플리---즈!! "

자동차 소리가 목소리를 삼키지 않도록 크게 말하라고 했더니 동네 놀이터 떠나갈 정도로 소리를 질러댄다. 잘한다 우리 아들! 그런데 이를 어쩌나.... 엄마가 동전을 안가지고 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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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꽃 향기 - 전2권 세트
김하인 지음 / 생각의나무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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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없다.

그래서 살짝 표지만 넘겨보구서 하아~ 그렇고 그런내용이겠구나. 서른넘은 아줌마가 읽기엔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겠군. 하고서 한참을 서재에 꽂아 두었다. 그런데 나날이 나날이 메말라가는 내 가슴이 안스럽기도하고 작가의 이름이 곱기도 하고 다른 장소에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 비록 그것이 가상공간이라 할지라도- 모습을 엿보고 싶기도했다.

그러나 책을 들게 된 가장 중요한 동기는, 고국에 남겨두고운 사람들의 향기때문이리라.

어느날 계절갈기를 하려고 붙박이 장 문을 활짝 열었다. 그런데 갑자기 엄마 냄새가 나는 것이다! 이상한데? 고국을 떠난지 수년세월이 흘렀는데.. 엄마 냄새라니? 분명히 친정엄마 체취였다. 결혼전, 한번씩 겉옷이라도 걸칠량이면 묘하게 코끝을 아리던 엄마의 체취. 얼른얼른 벗어버리고 로션 담뿍 바르곤했었는데. 그런데 엄마냄새라니? 남편의 옷과 내 옷이 뒤섞인 장속에 들어가 킁킁대며 옷 하나하나의 냄새를 맡아가기 시작했다. 와이셔츠며 바지며.. 남편의 옷에서 나는건 분명히 아니고.. 그렇다면? 나는 깜짝놀라 서랍까지 열어가며 내 옷들에서 나는 엄마냄새를 맡기시작했다. 그렇게 싫었던 냄새인데. 향수까지 선물할 정도로. 엄마에게서 수백수천 떨어진 내 옷장속에서 엄마냄새가 나다니!!

그것은 사실 나의 체취였다. 이십대 생화같은 향내가 아니라, 주부 6년차의 숨길수없는 살냄새였다. 기묘할정도로 엄마를 닮아있는..... 성격도 얼굴도 하나도 엄마를 닮은 구석이 없었던 나였는데..... 나는 엄마의 체취를 고스란히 물려받았던 것이다. 장을 뒤지다 말고 나는 그만 어린애처럼 엉엉 울고말았다. 내게서 엄마냄새가 난다는 이상함때문도 아니고, 그렇게 싫던 냄새가 나의 것이 되어서도 아니었다. 이론적으론 분명히 내 체취였지만, 나는 나이 들어가는 내게서 엄마의 몸냄새를 맡고있었던 것이다... 그리운 엄마의 품냄새를.

다행이었다.

국화꽃향기는 그런 경험 이후에 읽었음으로. 삼일이나 감지않은 여대생의 머리에서 평생 지울수없는 국화꽃 향기를 맡을수있다니. 나는 국화향을 잘 안다. 감성이 세밀하던 여중생시절, 우리 학교 뒷편에는 고 우장춘 박사님이 연구를 하셨던 원예 고등학교가 있었고 해마다 가을이면 국화축제가 열렸다. 등하교 길에 차도에서 올라오는 매연보다도 더 강하고 분명하게 맡아지던 국화꽃 향기. 그것은 미주의 머리에서 나는 냄새가 아니라 그녀의 삶에서 나오는 향이었겠지?

김하인의 소설은  계란말이 같다. 특별히 들어간 재료도 없이 둘둘말아 상에 놓였는데도 늘 손이 가는 계란말이처럼, 앞뒤도 분명치않고 깊이있는 정보도 주지 않은채, 그런데도 계속 읽어내려가게하는 심심한 맛이 있다. 나는 아직도 삼일감지않은 여대생의 머리냄새때문에 평생을 그녀의 움직이지 않는 나무가 되어준 주인공이 이해가 되지않는다. 결혼이란, 열정이란, 인생이란 그런 허상에게 무조건적으로 퍼부어야할만큼 가벼운 것이 아니기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남자의 삶에 끌리는 것은...

실상 국화꽃 향기를 뿜어대고 있는 것은 미주의 머리칼이 아니었던 것이다... 한번 맡으면 취할정도로 어지러운 깊은 국화향은 승우, 본인이 내고 있는 향이었다. 그렇다면 사랑이란, 자신의 온전한 향을 인지하게 해주는 매게체일까?

그런것 같다. 사랑하는 이를 만나면서, 내가 알지못하던 나의 숨은 부분이, 숨어있던 성격이, 숨어있던 상처가, 숨어있던 낮은 자존감이, 숨어있던 버릇들이 서서히 떠오르는 것들을 보면....

얻지못한 사랑을 구하며 모든 에너지를 쏟을때보다, 함께 있던 사랑이 사라질때 더 힘이 빠지는 법. 소망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동시에 두배로 생산해내지만, 소망의 상실은 몸속에 있던 모든 기운을 소멸시켜버린다. 그래서 나는, 미주의 미련한 결정에 찬성할수밖에 없다. 그녀가 생각했던 것은, 암에 대한 처절한 투병생활에 대한 공포도 아니고, 자신의 초췌해질 모습을 보는 두려움도 아니고..... 승우였다. 미주를 잃고난후 완전히 기가 소멸될 승우. 그이에게 삶의 의미를 줄수있는길, 오리온성좌저편에서 항상 그이를 바라볼 미주자신의 눈길을 가까이서 느낄수있는길, 그녀의 호흡을 그녀의 살결을 남길수있는 유일한 것을 남겨야만 했다. 그것이 적에 대한 단순한 반기보다 더 강한 인내를 불러일으킨다. 그녀의 계절은 가더라도 승우의 계절을 찬란하게 해주기위해...

운명은 없다. 운명은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 승우는 미주에게 운명을 걸었다. 그리고...

승우는 주미에게서 미주를 맡는다. 아니다. 승우는 주미에게 자신의 진한 국화향을 매일매일 느끼게 해줄것이다. 강하고 분명한 사랑의 향기를. 또한 그는 주미에게 움직이지 않는 나무가 되어줄것이다. 주미의 인생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마다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줄것이다....엄마가 내게 해주셨던 것처럼. 만추의 끝, 엄마에게 국화꽃 한다발을 보내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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