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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이의 첫 심부름 ㅣ 내 친구는 그림책
쓰쓰이 요리코 글, 하야시 아키코 그림 / 한림출판사 / 1991년 3월
평점 :
동네어귀마다 구멍가게 하나씩 끼고살던 내 어릴적과는 달리 우리아들 건강이는 제손으로 과자 사먹을 일이 없는 미국에 살고있다.
구멍가게도 물론 없고 아이들끼리 다니는 것도 허용안되는 미국의 사회분위기탓도 있겠다. 차를 타고 큰 마켓에 시장을 보러가는 엄마나 아빠뒤를 따라가 간식거리를 고르고 쇼핑카트에 넣는게 전부이다. 마켓 직원들도 워낙 바쁘다보니 아이와 말 주고받는 경우도 드물다. 방과후에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다니며 공기놀이하고 땅따먹기도하고 용돈모은것으로 붕어빵이랑 떡볶기도 사먹던 어릴적을 비교해보면 참 심심할 노릇이다. 놀이터도 엄마손을 잡지 않으면 못가는 형편이고보니. PLAY-DATE 같은 문화가 있어서 친구몇과 한 집에 모여 일정시간 노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그래서인지 건강이가 처음 이슬이의 첫심부름을 보던 날, 엄마 심부름을 혼자 간다는것 자체가 무척 신기하고 놀라웠나보다. 이슬이가 심부름을 나서서 만난 친구 영수의 눈이 이만큼 커지면서 "정말?"하고 묻는 대목에서 마구 웃음보를 터뜨리며 정말? 정말?을 따라하더니 "정말" 하고 "그래" 두 글자는 확실히 읽을 수 있게 되었다 하하하...
하야시 아키코의 책들은 섬세함에 있어서 다른 책들이 도저히 따라갈수 없는 것 같다. 거기다 쓰쓰이 요리코이라는 또다른 섬세한 어린이 관찰가와 만나면서 한권통째 사랑스런 책이 만들어졌다. 이슬이가 <다섯살>이 되었다는 것, 친구와의 짧은 대화속에서 혼자 심부름을 가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모험인지가 하는것을, 우유주세요 하는 이슬이의 작은 목소리와 한방울 똑 떨어뜨린 눈물, 동전때문에 아픔도 잠시 잊었던 순간과 거스름돈도 잊고 뛰어나가버리는 모습들... 아들과 하루종일 떨어져있지 않는 나지만 이렇게 섬세하게 아이모습을 바라본 적이 없었다. 곁에서 책을 보는 아들도 흘끔 다시 보이고, 내 두근거림이 발각?되지 않았을까 조심스러웠던 어릴적 내 모습도 보이는것 같았다.
<이슬이의 첫 심부름>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언덕>과 언덕아래 기다리고 있던 <엄마의 모습>이 아닐까. 익숙한 길이지만 혼자 가는 언덕오름은 낯설다. 그 모든 낯설음과 긴장을 확 풀어버리는 풍경이 엄마가 기다리고 있는 언덕아래의 모습이다. 기다림. 바라봄.
놀이터에서 놀고있는데 경쾌한 음악소리가 달려왔다. 고개를 돌리려는 찰라 건강이가 뛰기 시작한다. 아이스크림 트럭이다. 이동하는 구멍가게 처럼 이동네 저동네의 아이들이 뛰노는 놀이터를 찾아오는 아이스크림 트럭. 헐레벌떡 건강이의 뒤를 따라 왔는데 녀석은 벌써 판매대 차창에 온몸을 매달고 외치고 있다. "넘버 뚜~ 스폰지밥 아이스크림 플리---즈!! "
자동차 소리가 목소리를 삼키지 않도록 크게 말하라고 했더니 동네 놀이터 떠나갈 정도로 소리를 질러댄다. 잘한다 우리 아들! 그런데 이를 어쩌나.... 엄마가 동전을 안가지고 왔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