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용서 - 잃어버린 기술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 지음, 전병욱 옮김 / 쉴터 / 1999년 10월
평점 :
품절
성경공부 주제나 설교와 세미나 주제로 이만큼 자주 등장하는 주제가 있을까요? <잃어버린 기술 -용서>는 <용서>에 대해서라기보다 <용서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엮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론을 접할때보다 훨씬 감동의 깊이가 있는 것 같아요.
책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리 평범하지 않은, 아니 오히려 <지독하게> 상흔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평생 지고가야할 장애를 입은 사람들도 많고 월남전 같은 대난에 의해 인생이 뒤흔들린 사람도 있습니다. 뜻하지 않은 재난이 아니라 사람에 의해 그것도 대부분 의도적 범죄행위로 삶이 망가져버린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선택했던건, 바로 <용서>였습니다. 분노나 복수심으로 더 자기자신을 가혹하게 몰고가는 대신 말입니다. 분노나 복수심은 오히려 더한 마비를 가져올 뿐이라지요. 해고당한데 앙심을 품은 이로부터 가혹한 경험을 했던 소년으로부터 단지 순찰을 돌다가 전신마비로 이어지는 총격을 당한 경찰, 공동체속에서 깨어지는 아픔을 겪었던 가정.. 쉽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그들의 선택은 <생명과 사랑, 회복된 관계>등의 고귀한 열매를 맺는 씨앗이 되었습니다.
또한 이들로부터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되었습니다. <용서>한다는 것은 범법행위에 대한 죄의 댓가를 없애준다는 뜻은 아니란 것입니다. 등장인물에게 해를 입힌 몇몇 사람들은 ‘당신이 나를 용서했다면 변호사나.. 재판정에서 내게 유리하도록 선처를 호소해달라, 형을 없애달라’고 부탁하거나 주장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그것이 마치 <용서>의 결과인것처럼. 그러나 사회질서와 법의 권위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이 <용서>가 아님을, 등장인물들은 잘 설명합니다. 마음으로부터 관계를 깨는 분노와 복수심을 제거하는 것이 <용서>이며 죄의 댓가는 반드시 지불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요.
내적 치유에 관계된 어느 책에서 용서가 의지의 결단과 더불어 순차적인 감정해소란 정의를 읽은 기억이 납니다. 이분들은 삶으로 그 말을 보여줍니다. 한번에 해치우듯 모든 감정이 소멸한 것은 아니지만, 그때마다 의지적으로 용서를 <선택>하며 한걸음씩 전진한 것을요.
이들곁엔 또한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더군요. 사랑속에서 이런 용기있는 결단이 가능했는지 아니면 용서를 결단할만큼 덕과 인성이 있었기에 좋은 사람들이 곁에 있게됬는지는 알수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마음에 절망과 한, 슬픔과 분노로 가득차있는 어두운 사람곁에 머물기란 쉽지 않겠고, 양측에서 따스함이 서로 교통되었기에 장애가 극복되는 아름다운 공동체가 형성되었겠지요.
책 후반에 성경적으로 살기로 결단한 사람들의 공동체를 소개받는 것도 흥미있었습니다. 부럽기도 하고 도전도 되구요. 모든 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강추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