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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를 기다리며 ㅣ 베틀북 그림책 14
루이스 엘럿 글 그림, 이상희 옮김 / 베틀북 / 2001년 6월
평점 :
절판
어쩌면 나는 너무 냉소적인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는 좌절감이 들었습니다. 분명 사람들이 그리고 언론이 찬사를 보낸 책인데도 제겐 이렇다하게 와닿는 면은 커녕 불평거리만 쌓였으니까요. 무덤덤하게 첫 만남을 가진후.. 가만.. 작가가 혹시 이런 것들을 의도했는지도 모르겠다.. 라는 생각에 미쳐 다시 찬찬히 읽어보았습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발견하지 못하는 아름다움과 어른들눈에 희미하게 보이는 '그 무엇'을 기막히게 읽어내는 마음의 눈이 있쟎아요? 아들을 위해 책을 샀는데..하며 제 시선으로 책을 '분석'하는 작업을 먼저 멈추었습니다.
태국 또 베트남의 뜨거운 해변에서 느껴보았던 현란하고 화려한 색감으로 하얀종이위에 피어있는 꽃들. 그래서인지 나비를 위한 책인지 꽃을 위한 책인지 첨엔 분간을 못하겠더군요.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면 이 얼마나 멋진 고정관념의 전복입니까.. 언제나 주인공이기만 했던 '나비'와 배경정도로 그려졌던 '꽃'. 작가는 그 둘사이의 간격을 사악 없애놓았습니다. 화려한 꽃잎 몇장 엮어묶은 듯한 날개를 가지기 전까지, 알은, 애벌레는, 고치는 꽃들속에 숨어 숨쉴 뿐입니다. 그것을 반영하는듯 초반부 책편집도 커다란 꽃그림 속에 작은 책이 품겨져 있는 모양새로 이야기를 진행한답니다.
어쩌면 작가는, 고운 바람에 하늘거리며 날아가는 꽃잎속에서 나비를 연상했는지도 모릅니다. 미국이라는 이국땅에서 잠시나마 향수병을 쫓을 수 있는때가 이맘때, 봄입니다. 만개한 벗꽃과 함께 벗꽃 비슷하게 닮은 dogwood가 꽃망울을 터뜨린 산책로를 고사리같은 아들손을 잡고 지나다보면 어느새 향수병은 저만치 밀려가고... <날개를 기다리며>를 본 후로는 바람결따라 흩날리는 꽃잎속에서 나비를 볼수있게 되었습니다. 고향에서 보았던 희고 노란 나비들, 연분홍 나비들이 꽃비와 함께 나리는 상상으로..
그렇게 꽃 속에서 나비를 끄집어낸 후, 작가는 잠시 날아오른 나비에게 포커스를 둡니다. 팔랑이며 날개짓하는 모습을 이런저런 각도에서 바라보며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새로운 꽃밭속으로 따라들어가게 합니다. 주인공과 엑스트라로 따로이 구별짓지 않고 꽃과 나비-자연을 하나로 엮어낸 작가의 솜씨에 탄복합니다.
(미술을 잘 모르지만) 꼴라쥬와 오려붙이기, 종이위에 살짝 물든 독특한 번지기 효과들도 페이지마다 빛을 발하는군요. 제 생각이 틀리지만은 않았는지, 작가는 책 뒤쪽에 '무슨 나비일까요?'하며 각종 나비들을 소개한다음, '무슨 꽃일까요?'하며 책속에 등장했던 꽃들도 무대위로 올려 커튼콜을 시킵니다. 그리고 꽃밭을 가꾸어보라고 넌지시 언지도 줍니다. 그래야 우리눈에 늘 주목받던 그 나비들을 볼수 있을테니까.
시끌 법썩대며 요란하게 읽어주어야 하는 어린이 책들속에서 andante라는 여유있는 속도를 즐길만한 보석같은 책한권이 늘었네요. 헤르만 헷세의 <나비> 에릭 칼의 <배고픈 애벌레>와 함께 이쁘고 독특한 나비책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다행입니다, 아직 감수성이 죽지 않아서. 정말 다행입니다, 머리로만 아니라 마음으로 책읽는 법을 잊지 않아서. 그리고 아들곁에 다시 나비를 둘수 있어서 정말 정말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