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베강(江) 연안의 마이센과 피르나의 중간, 베를린 남쪽 약 189km 지점에 위치하여, 엘베강에 의해서 좌안(左岸)의 구시가(舊市街)와 우안의 신시가로 나뉘며, 7개의 교량에 의해서 연결되어 있다. '독일의 피렌체'라고 불릴 만큼 아름다운 도시로, 1711∼1722년에 건립된 바로크 양식의 츠빙거궁전을 비롯하여 왕성(王城)·드레스덴미술관 등 유명한 건축물과 회화 등 많은 문화재가 있고, 드레스덴 교향악단·국민극장 등이 있어 예술의 도시, 음악의 도시로서 알려져 있다.   -- 네이버 백과사전 --

문화유산이 많은 정말 아름다운 도시인데, 군사시설이 하나도 없었는데, 2차대전 중 연합군의 폭격을 받았다더라,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충격받고 안타까워 했단다, 그걸 얼추 다 복원했다더라 -- 얼마나 아름다운 곳일까 궁금했다.  



엘베강의 유람선. 강 건너에서 본 <브륄의 테라스> 전경. 18세기에는 브륄 백작의 사유 정원지였고 지금은 미술관과 구의사당이 있고, 드레스덴의 아름다운 건축물과 엘베강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산책로이다. 

<브륄의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풍경들. 정면, 왼쪽, 오른쪽.  <유럽의 발코니>라는 별명이 당연하지 싶다. 





드레스덴의 곳곳에는 1945년 포화의 흔적이 역력하다. 부서지지 않고 남은 부분들은 까맣게 재가 내려앉아있가 하면 복원한 부분들은, 세월의 때가 전혀 묻지 않아 눈부시게 하얗다. 
18세기에 사암으로 지어진 이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완전히 무너졌는데, 왼쪽 입구의 검은 벽돌 기둥이 그나마 남은 부분이다. 그리고 그 잔해에서 건져 쓸 수 있는 모든 조각을 그러모아 재건축에 사용했다. 

  



Frauenkirche 교회 내부
칠이 밝고 천장의 돔과 모든 창문으로 햇빛이 한가득 들어 참 밝고 환한 교회이다. 오르간 연주를 들으러 예배에 참석했다.   



Zwinger 궁전. 바로크 양식의 궁전 건물을 벽으로 두르고 조성한 가운데 정원이 독특하다.



15세기 말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Royal Palace. 동화책이나, 유럽 다른 곳에서 보았던 "성"과는 차이가 많이 나는 모습이다. 안내서에서 "왕궁"이라고 설명해주지 않았다면, 누군가의 저택이라 생각하고 지나쳤을지도 모르는....
색슨 왕가의 보물 저장실 Green Vault 는 시간별로 예약해서 입장해야 하고, 그래서 그 소장품 일부만 따로 공개한 특별전시를 보았는데 금, 은, 산호, 다이아몬드를 세공한 화려한 집기들에 대해 "미쳤군" 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어서 그 아름다움과 정교함을 제대로 감상한 것 같지 않다.  

 

Theaterplatz 에서 본 Hofkirche 성당.
로만 양식이란다 (뭐가 어떻게 다른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나는 이 성당이 참 좋다. 유럽에서 유명하다는 성당들이라 하면 대체로 안팎으로 뾰족쬬족하고 어두침침한 고딕 양식들만 보았는데, 이 성당의 바깥은 적당이 화려하되 질리도록 겹겹이 장식하지 않았고, 보는 각도마다 느낌이 다르고 변화가 많은가 하면 단아하고 차분한 인상이다. 갸름함과 안정된 무게감이 참 조화를 잘 이루었구나 생각한다. 





성당내부는 비교적 장식이 적은 조용한 흰 벽이다. 
성당에서 화려하고 육중한 성화 대신 이렇게 소박하고 현실적으로 그린 예수 그림을 본적이 있었던가....
무엇보다 현대미술로 제단을 삼은 작은 채플들이 인상적이다.



1973년에 만들어진 피에타.  드레스덴의 조각가 Friedrich Press 작품.
Hofkirche 성당 뒤쪽 이 피에타가 놓인 채플은 후세에 전쟁을 경고하고 전쟁의 모든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메모리얼이다. 



중앙제단 왼쪽의 작은 목조 제단 채플.
설명이 독어로만 되어 있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2차 대전 폭격의 직접적인 사상자인 20대 청년 일곱 명을 위로하고 있다. 사진이 심하게 흔들려서 알아보기 힘들지만, 가슴에 구멍이 뚫리고 절규하고 무너지고 있는 상처입은 사람들을 표현하고 있다. 아쉬운 것은, 이 제단을 보고 있자면 연합군의 폭격이 무고한 드레스덴 시민들에게 참 몹쓸 상처를 남겼구나 하는 생각만 든다는 것이다. 물론, 군사시설 하나 없고 보존해야 할 문화유적이 이렇게 많은 곳을 침공한 미군도 참 못됐지만, 이 일로 이렇게 슬픈 독일 사람들은 그들이 죽이고 고문한 더 많은 무고한 희생자와 그 유족들이 어떤 상처를 입었을지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늦은 오후, 아우구스투스 다리 건너편에서 보는 Hofkirche 성당은 느낌이 또 다르다. 



국립오페라 극장 Semper 오페라 하우스. 
1838~41년에 지어졌고 화재로 1871~78년에 이탈리안 르네상스 양식으로 재건되었고 19세기의 가장 아름다운 건물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으며, 1945년에 완전히 무너진 걸 1985년에 복원했다.
(제발... 누구 이 건축 양식들의 의미를 설명해 주세요)





2만5천개 도자기 타일. <왕자들의 행진>



아침 골목길



이런 표지판을 여럿 보았다. 어쩌라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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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ced 2006-11-03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구두님, 반갑습니다.^^ 연합군의 드레스덴 폭격은 길이길이 욕먹을 일이지만, 당시 독일의 광기에서 드레스덴 시민들도 자유롭지 않았을 테고 그들 역시 격리되고 죽어나가는 유태인들에게 그다지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라는, 드레스덴에서 징발되었거나 지원해간 군인들 역시 누군가를 처참하게 죽이는 데 일조했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독일군이 저지른 게 있는데 그정도 당한 거 가지고 뭘... 이라는 생각이 아니라는 건 아시겠지요. 예술의 힘은 강합니다. 그 조각을 보면서 드레스덴이 입은 상처의 아픔과 폭격에 대한 분노가 확 꽂혔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반딧불의 묘>를 본 후의 답답함이랄까요, 죄없는 민간인들이었지만 그들의 친척과 이웃이 행한 일도 많은 이들에게 같은 또는 더 큰 상처를 입혔음을 생각해보았기를, 자신들만이 피해자라는 생각을 하고 있지 않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merced 2006-11-03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네...? 제 말의 어디가 ["죄는 다 죄지." 라는 50보, 100보식의 근본주의적 잣대]인가요? 유태인 학살을 방조했다고 해서 드레스덴이 폭격을 맞아도 된다는 논리, 아닌데요...
드레스덴 폭격은 끔찍한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유태인 학살도 끔찍한 일이고, 바람구두님의 말대로 "둘다 저항할 힘이 없는 이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다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그런데 어느 한쪽만 피해자로 여겨지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이지요.
911로 상처입은 사람들을 소재로 한 예술작품을 보고 뉴욕의 민간인들이 너무 안되서 아프가니스탄 공격이 타당하다고 생각한 미국인이 없기를 바라고,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을 비난하고 그로 인해 다친 일본인 민간인들을 안스러워 하되 일본인들의 상처만 부각된다면 저는 불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