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마지막주 목요일 오후 밀라노에 도착했다.
이틀  전부터 사진기가 고장나버렸기 때문에 여기 사진들은 모두 인터넷에서 모은 거다.
밀라노는 역에서부터 두오모, 비토리오 에마누엘레2세 갤러리까지, 어쩌면 그렇게 높고 큰지, 예전에는 거인들이 살았나 싶다.





밀라노 중앙역



밀라노의 중심 두오모 광장과 고딕 양식의 절정이라는 두오모. 
나는 이 성당이 싫다.  들어가자 마자 그 천장의 높이에 질렸고, 옥상에 올라가서 가까이서 보니 더더욱 돌을 깎아 만든 수백개의 뾰족뾰족한 탑과 조상들이 끔찍하다.  그 큰 건물의 구석구석 빈틈없이 화려하여 질식할 것 같다.  500년동안 이걸 만들었다니 더더욱 미친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묻고 싶다. "하나님, 이 곳이 편하십니까."
... 그래도 스테인드 글래스는 아름답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성당 위에 올라가서 보면...

성당 측면.  안쪽에서 보면 아름다운 스테인드 글래스.





식당, 쇼핑할 곳이 많은 유리천장의 아케이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갤러리.
보이는가, 어디에도 빠지지 않는 맥도널드. 그래도 때로는 반가운... 눈치 안보고 써도 되는 화장실. 



두오모쪽에서 들어와 갤러리를 나와서 마주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그의 제자들.
건너편으로는 라 스칼라 극장이 있다.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교회에 가서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볼까 했는데, 예약을 해야 한다 해서 전화해보았더니, 앞으로 한달이 지나도록 꽉 차 있단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빈치에서 태어나 (그러니까 이름이 "빈치 출신의 레오나르도"이다) 피렌체에서 공부하고, 밀라노의 영주 루도비코 일 모로의 후원으로 17년동안 밀라노에서 살았다. (1499년 프랑스의 밀라노 점령으로 일모로가 몰락할 때까지) 이 기간동안 다빈치는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며 그동안 축적된 재능을 발휘하였다.
여기와서 들은 이야기 : 사실 일모로는 피렌체의 메디치家처럼 덕망있고 세련된 르네상스 예술의 후원자로 이름을 높이고 싶어했고, 그래서 다빈치를 "초빙"했다는...

Museo Poldi-Pezzoli
폴디페촐리家에서 대대로 수집한 15~19세기의 회화, 시계, 보석, 태피스트리를 폴디페촐리가 저택을 개조하여 전시하고 있다.  옛날 사람이 살던 집과 가구를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다.
작가정보에 태어나고 죽은 연대 외에도 태어난 도시, 죽은 도시를 함께 쓰는 것이 흥미롭다.  여럿 보다보니, 지역마다 성향이 다름을 조금은 알겠다.  베니치아에서 태어나 밀라노에서 죽었다 하면 이 작가의 색감과 구도, 취향이 왜 이렇게 형성되는지  대략 알 듯도 하다.    

    Lorenzo Bartolini (Prato 1777 - Florence 1850), Trust in God

  Sandro Botticelli (Florence 1445 - 1510), The Dead Christ Mourned

 
Piero del Pollaiolo (Florence 1443 - Rome 1496), Portrait of a Woman


Francesco Hayez (Venice 1791 - Milan 1882), Self-Portrait in a group of Friends

Pinacoteca di Brera



이튿날 2시 반 비행기를 앞두고 아침 일찍 브레라 회화관에 갔다.
건물 앞과 중정에서 가방메고 수다떨고 있는 어린 학생들이 많아서 미술관에 사람이 많으려나 했더니
오래된 커다란 건물에 1층은 도서관이고 2층으로 올라가면 Pinacoteca di Brera이다. 


Giovanni Bellini, 피에타, c1465

성모가 예수의 주검을 무릎위에 두지 않은, 독특한 포즈의 피에타이다.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는 가느다란 금테 후광을 두르기는 했지만 핏기 없는 푸릇한 시체이다 (예수의 시신을 주검으로 그린 피에타를 전엔 못보았다).  고단하게 그러나 평온하게 세상을 떠난 얼굴.  더 이상 피흐르지 않지만 아직도 붉은 못자국이 선명한 아들의 시신을 옆에서 안은 어머니의 얼굴은 젊고 아름다운 성녀가 아니다.  밤새 가슴이 타들어갔을, 아직도 미어질, 자식의 처절한 죽음을 지켜본 성모는 눈자위가 까맣고 입술이 바짝 말랐다. 잡아주지 않으면 그대로 툭 쓰러질 주검을, 마찬가지로 곧 무너져내릴 것 같은 어머니가 안스럽게 끌어안고 있다.  처절하고 가슴 아픈 피에타, 눈물이 난다.   


Caravaggio, Supper at Emmaus, 1606

부활한 그리스도. 엠마오로 가는길에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은 처음엔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가 얘기를 나누고 나서야 예수님인줄 알았다고 한다.  (무슨 얘기냐, 바보들...)  아래 램브란트의 같은 제목의 그림을 보면, 그게 성스러운 순간임을 알겠다. 
그런데 이 까라밧지오의 그림을 보면서 나는 "엠마오네 집에서의 저녁식사인가?" 라고 생각했고, 식탁위의 저 부실한 음식과 주름이 자글자글한 인물들을 보라, 엠마오네는 되게 못사는구나, 했다.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사내, 후광도 없는데 예수님인 줄은 그나마 어떻게 알아보았는지. 퀭한 얼굴에 목에도 주름이 선명한 노파, 1606년의 그림이 어쩌면 이렇게 사실적으로 인물을 그리고 삶의 고단함을 드러내는가. 예수의 인상도, 그림 전체의 색감과 비현실적인 명암도 마음에 든다.


Rembrandt, Supper at Emmaus, 1648, 파리 루브르 뮤지엄.


Francesco Hayez, The Kiss, 1859

장면, 순간, 색감 -- 보는이를 확 사로잡는 그림.  저기 위에 친구들을 배경으로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스스로를 표현한 작가의 작품이다.  Hayez는 바로 여기 브레라 미술학교에서 가르치고 교장도 지냈으며, 이탈리아에서 신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로의 이행을 대표하는 작가라 한다.


Giovanni Luteri, St. Sebastian, 1490-91

이 그림을 보고 한참을 키득거렸다. 이건 뭐냐... 섹시 세바스띠아노?
중세로부터 세바스찬 성자의 순교를 소재로 한 그림들이 무수하지만 (중세의 종교화를 가만 들여다보면,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인물의 표정이 웃긴 것도 많다.  기둥에 묶여 돌과 화살을 맞으며 순교하는 성 세바스찬이 :(  이런 단순한 입모양만 그리고 있기도 하고, 어떤 것들은 잔혹하게도 얼굴에 꽂힌 화살과 상처를 정밀하게 그려내기도 한다) 이런 포즈는 처음 본다. 거의 패러디 수준이다.

아무거나 하나 비교해 보자 :


Hans Holbein, Martyrdom of St Sebastian (1524). Pinakothek, Munich, Germany.

브레라 미술관에도 전체적으로 성서, 성자를 소재로 한 (특히 베네치아에서 여럿 본 산 마르코의 이야기, 유해 이전과 관련된) 커~~다란 그림들이 많다. 15~18세기의 롬바르디아파와 베네치아파 작품들이라 한다.


Marco d'Oggiono (1475-c1530), The Archangels Triumphing Over Lucifer

      Giovanni Bellini, Predica di San Marco in Alessandria d'Egitto


Andrea Mantegna (1431-1506), Cristo Morto
원근법과 시선이 독특하다.


Raffaello, 성모마리아의 결혼


스포르체스코 성 Castello Sforzesco

밀라노 시내의 웬만한 건물들도 베네치아나 볼로냐보다 높고 화려하다.  보고 있는 건물들 중에는 전후에 지어진 것들도 많다 한다.  어쨌거나, 화려한 장식에 살짝 질린 나는 이 상대적으로 투박하지만 견고하고 군더더기없고 짜임새와 균형감이 돋보이는 벽돌로 지은 성이 반갑다. (물론 스케일 면에서는 여전히 압도적이다) 유치원생들부터 고등학생까지 무리지어, 뮤지엄 견학을 온 듯, 성의 4면마다 있는 입구로 종알종알 들어온다.  사진은 성 안쪽. 1466년에 완성되었고 회화, 악기, 고고학유물 등을 전시하는 여러개의 미술관과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오래된 건물들, 역사적 유물을 의미있게 잘 살려 쓰고 누구나 드나들 수 있다는 게 마음에 든다.  이젠 정말로 공항 갈 시간이 되어 버려 이 성에 있는 전시를 하나도 못보고 온 것은 마음 상한다.

스포르체스코 성을 나서면 탁 트이고 한가로운 셈피오네 공원이 있다. 멀리 보이는 건 평화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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