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드, 내가 불태워 버린 것들을 찬양하기 위하여
학교 교실 책상앞 조그만 걸상에 앉아 읽는 책들이 있다.
걸어가며 읽는 책들이 있다. (책의 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떤 것은 숲에서 읽는 것, 또 어떤 것은 다른 들판에서 읽는 것, 그리하여 키케로는 말했더라. "그들은 우리와 더불어 전원에 있으니." 어떤 것은 내가 마차 안에서 읽는 책, 또 다른 것들은 헛간의 건초 더미 속에 누워서 읽는 책들.
우리에게 영혼이 있음을 믿게 하기 위한 책도 있고 영혼을 절망케 하는 책도 있다.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책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책들에서는 신에게 이르지 못한다. 개인의 서가가 아니면 꽂아둘 수 없는 책들이 있다.
양봉(養蜂)에 관한 이야기만 쓰여 있어 어떤 이들에겐 너무 전문적이라고 생각되는 책도 있고 자연에 관한 이야기가 어찌나 많은지 읽고 나면 산보할 필요가 없어지는 책도 있다.
점잖은 어른들에게는 멸시를 받지만 어린 아이들은 흥미진진해하는 책들도 있다.
사화집(詞華集)이라고 불리는 것으로서 무슨 주제에 대해서든 좋은 말은 모두 다 모아놓은 것도 있다. -39쪽
그대들이 인생을 사랑하도록 해주려는 책들이 있는가 하면 쓰고 난 뒤에 저자가 자살하였다는 책도 있다. 증오의 씨를 뿌리고 뿌린 것을 스스로 거두는 책들도 있다. 황홀함이 가득하고 감미로울 정도로 겸허하여 읽으면 광채가 나는 듯한 책도 있다. 우리보다 순결하며 우리보다 낫게 살아간 형제들처럼 우리가 아끼는 책들이 있다.
비범한 글씨로 쓰여 있어서 깊이 연구해 봐도 이해할 수 없는 책들도 있다.
나타나엘이여, 이 모든 책들을 우리는 언제 다 불태워 버리게 될 것인가!
서 푼짜리도 못 되는 책들이 있는가 하면 엄청나게 값진 책들도 있다.
왕과 왕비의 이야기를 하는 책들이 있는가 하면 한없이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는 다른 책들도 있다.
정오의 나뭇잎 소리보다 더 부드러운 말로 된 책들도 있다. 파트모스 섬에서 요한이 쥐처럼 뜯어 먹은 것은 한 권의 책이지만 (요한계시록 10장9~10절) 나는 차라리 나무딸기가 더 좋다. 그 때문에 그의 오장육부는 쓰디쓴 맛으로 가득히 찼고 그 후 그는 온갖 환상을 보았다.
바닷가 모래가 부드럽다는 것을 책에서 읽기만 하면 다 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맨발로 그것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39쪽
자연의 모든 노력은 쾌락을 지향한다. 쾌락은 풀잎을 자라게 하고 싹을 발육하게 하며 꽃봉오리를 피어나게 한다. 화관(花冠)을 햇빛의 입맞춤에 노출시키고 생명 있는 모든 것을 혼인하게 하며 둔한 유충을 번데기로 변하게 하고 번데기의 감옥에서 나비를 해방시키는 것도 쾌락이다. 쾌락에 인도되어 모든 것 것은 최대한의 안락, 더 나은 의식, 더 나은 진보······를 동경한다. 그런 까닭에 나는 책 속에서보다 쾌락 속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런 까닭에 나는 책 속에서 명쾌함보다는 난삽함을 더 많이 발견했다.-260쪽
나는 가끔, 대개는 심술궂은 마음을 가지고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남에 대해 나쁘게 이야기하고, 비겁한 마음을 가지고 많은 작품들에 대하여 실제 생각 이상으로 좋게 말했다. 책이든 그림이든 그 작품의 작자들을 나의 적으로 만들어 놓을까 봐 두려워서 말이다. 나는 때때로 조금도 재미있다고 여기지 않는 사람들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고, 어리석은 말을 무척 고상하다고 느끼는 척도 했다. 또 때때로 조금도 재미있다고 여기지 않는 사람들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고, 어리석은 말을 무척 고상하다고 느끼는 척도 했다. 또 때로는 따분해 죽을 지경인데도 재미나는 척했고, 사람들이 "좀 있다 가시죠······." 하는 말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설 용기를 못 내고 앉아 있기도 했다. 나는 너무나 자주 마음의 충동을 이성으로 제지했다. 반면에 마음은 침묵하는데도 말을 하는 일이 지나치게 잦았다. 나는 가끔 남들의 동의를 얻기 위하여 어리석은 짓들을 했다. 반대로 내가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남들이 동의해 주지 않을 것을 알기에 감히 하지 못한 일들도 많다. -271쪽
나는 그대에게 희망을 건다. 그대가 굳세다고 믿으면 나는 미련없이 삶과 작별할 수 있다. 나의 기쁨을 받아라. 만인의 행복을 중대시키는 것을 그대의 행복으로 삼아라. 일하고 투쟁하며 그대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면 그 어느 것도 나쁘게 받아들이지 말라. 모든 것이 자기가 하기에 달렸다는 것을 끊임없이 마음에 새겨라. 비겁하지 않고서야 인간이 하기에 달려 있는 모든 악의 편을 들 수는 없는 법. 예지가 체념 속에 있다고 단 한 번이라도 생각한 적이 있거든 다시는 그렇게 생각지 않도록 하라. 동지여, 사람들이 그대에게 제안하는 바대로의 삶을 받아들이지 말라. 삶이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항상 굳게 믿어라. 그대의 삶도, 다른 사람들의 삶도. 이승의 삶을 위안해 주고 이 삶의 가난을 받아들이도록 도와주는 어떤 다른 삶, 미래의 삶이 아니다. 받아들이지 말라. 삶에서 거의 대부분의 고통은 신의 책임이 아니라 인간들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그대가 깨닫기 시작하는 날부터 그대는 그 고통들의 편을 더 이상 들지 않게 될 것이다. -2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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